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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참
성석제.윤대녕 외 지음 / 북스토리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마치 어린시절 읽었던 동화집처럼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짧은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거짓말이 안 좋은 이유](p.46) 마지막에 픽 웃어버렸을 정도로 해학적이다. 노영필과 송채원은 연인사이다. 채원은 부모님이 남동생을 데리고 외출하는 틈을 타 영필을 불러 들인다. 하지만, 영화나 소설속에서 항상 벌어지는 일이 그들에게도 닥치는데, 광란을 일으키는 남동생때문에 부모님과 남동생이 집으로 돌아온 것. 과연 우리의 영필과 채원은 이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
"채원이가 심심하다기에 함께 있어주려고 지금 막 도착하던 참이었습니다. 어휴, 길이 얼마나 막히던지 혼났네……"(p.52) 영필은 천연덕스러운 연기로 천신만고 끝에 일을 무마하고 집으로 향한다. 집에 홀로 계시는 홀어머니. 영필은 초인종을 누른다. 하지만 나타난 건 어머니가 아닌, 옆집 아저씨. 이건 뭔일이란 말인가? 쭈뼛거리는 아저씨의 말, "수챗구멍이 막혔다고 하시길래……지금 막 도착하는 길일세……" "……"(p.56)
남자들의 대사가 어쩜 저리 같은지…참 해학적이다. 하지만 남녀간에 사랑이란 감정은 나이를 비롯한 모든 것을 초월하는 것이니, 어머니의 입장을 보면 마냥 웃는 것도 도리가 아닌 듯. '홀로된 어머니가 얼마나 외로우셨으면 아들이 잠깐 집을 비운사이 저러셨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머니에게도 어머니의 사랑이 있으니…물론 옆집 아저씨에 부인이 있다면 문제는 달라지지만. (어쩌면 정말 옆집 아저씨는 수챗구멍을 뚫어주기 위해 온 것인지도 모른다. 그럴지도 모르지^^)
[나는 과연 쉬리를 보았을까?](p.151) 저자는 이렇게 시작한다. "기억이라는 것은 참 이상한 것이어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대신 사소하기 짝이 없다고 여겨지는 어떤 한 순간만 확대되어 또렷하게 각인되는 수가 왕왕 있게 마련이다. 나는 그것을 '기억 속 명장면'이라고 부른다."(p.151) 그리고 그다지 유쾌한 기억은 아니지만, 하나의 명장면이 될지 모른다며 이야기를 꺼낸다.
미리 표를 예매해두고 여유를 부리다 조금 늦게 입장한 저자와 친구. 거의 한가운데인 자석에 "미안합니다"를 연발하며 힘들게 앉았다. 하지만 그녀 등 뒤에서 들려오는 한마디, "재수 없어!"(p.153) 뒤를 보니 새초롬한 처녀가 못마땅한듯 비쭉 내밀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그녀를 용서하기로 한다. 젊은 처녀의 화살은, 앞에 앉은 청년의 머리를 피하기 위해 분투하던 저자에게 또 날아온다. "정말 재수 없어!"(p.156) 청년의 머리를 피해 솟구치는 저자의 머리에 대한 분노. 과연 저런 상황에서 영화를 제대로 볼 수 있었을까?
저자는 이야기한다. "앞으로 사십 년쯤 후, 그대도 살아 있다면, 아마 나는 이런 말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래, 사십 년 전 '쉬리'라는 영화가 장안을 떠들썩하게 했었지. 엄청났었어. 그런데, 나도 영화를 보았을까? 허리가 아파서 쩔쩔매며 극장에 앉아 있던 장면 하나만 또렷하게 기억나고 나머지는 글쎄, 가만있자, 영화 제목이었던 '쉬리'가 우리나라에만 살고 있는 작고 예쁜 물고기 이름이라고 그랬던가……"(p.159)
영화관에서 저런일은 누구나 한번쯤 겪어 보았을 것이다. 비단 영화관만이 아니라, 좌석이 있는 모든 곳에서 앞뒤에 앉은 사람사이 갈등은 꽤 많다. 갑자기 든 한가지 의문, 그 젊은 여자는 그 유명한 양귀자 작가님을 몰라봤단 말인가? 나 같음 부랴부랴 책 전부 다사서 사인 받았을텐데…하하
이처럼, 일상적이고 짧은 이야기지만, 그렇기에 더욱 아름답고 좋은 책이다. 큰 부담없이 시간나는 틈틈이 읽어도 좋다. 그래서 제목이 새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