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로 산다는 것 - 숨어사는 예술가들의 작업실 기행
박영택 지음, 김홍희 사진 / 마음산책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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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이 책을 고른 것은 아니었다. 예술은 이 세상에 차고 넘치고 예술가들도 이 세상에 너무나도 많다. 그들의 삶을 궁금해하기에 앞서 예술과 전혀 상관없이 살아가고 있는 내 삶에 대해 생각하기만도 사실 내겐 벅찬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찬찬히 다 읽어본 것은 일종의 반발심 때문이었다.

<예술가로 산다는 것>은 문구 자체가 암시하고 있는 것처럼 뭔가 가치있고 특별한 일로 인정받는다. 그러나 '예술'은 커녕 자잘한 일상의 노동들로 하루를 사는 대부분의 소시민들은 특별하고 가치있는 일에서 영원히 이방인이다. 생각해보라, '영업사원으로 산다는 것'이라든가 '아줌마로 산다는 것' 혹은 '아이엄마로 산다는 것'이란 제목의 책은 아마 팔리지 않을 것이다.

'예술'이란 것이 흔해빠질 만큼 넘쳐나고 있는 지금에도 예술은 고매하고 범접할 수 없는 어떤 것이고 예술가들은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로 치부된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모든 위대하고 가치있는 일들에 맞서 하루를 밥 짓고 아이 돌보고 청소하는 가사노동으로 보내는 내 삶이 결코 볼품없는 것이 아님을, 예술가의 삶 만큼이나 특별한 일임을 증명해보이고 싶었다. 그래서 그런 반발심 비슷한 감정으로, 도대체 이들은 어찌 살기에 '예술가의 삶'이란 꼬리표를 달고 있는 것인지 알아보려 한 것이다.

읽어보니 어땠느냐고? 저자가 소개하는 이 열 명의 예술가들은 예술가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인 선입견들을 지지해준다. 이들은 사회와 격리되어, 아니 스스로 사회적인 삶을 차단하고 자신만의 예술을 위해 현실적인 모든 고단함을 감내하고 살아가고 있었다. 사교적이기에는 너무도 완고한 자신만의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고흐, 고갱 등을 떠올리게 하는 고독하고도 가난한 예술가의 전형이었다. 고단하고도 고단한 삶, 그리고 그속에서 피어나는 작품들.

이들의 모습이 우리가 지닌 예술가에 대한 허상을 충족시킨다고는 해도, 실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예술가의 초상은 아니다. 저자의 말마따나 '오늘날의 그림 그리는 일은 일종의 직업이자 수완 좋고 인맥과 학연의 끈들을 잘 활용해야 하는 비즈니스로 전락해버렸기에' 이처럼 주위 눈치 살피지 않고 오직 자기세계에만 빠져있는 예술가들을 만나는 것은 희귀한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나는 그들이 얼마만큼의 희생과 대가를 치르면서 그같은 삶을 지탱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 이들의 삶은 우리네의 일상적인 삶과 그만큼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었다. 예술이란 이렇게 일상의 자질구레한 삶과는 그 질을 달리 하는 것인가.

이들 아름다운 예술가들의 모습에 분명 박수를 보내면서도 나는 한켠으로 불순한 마음이 솟아오르는 걸 억누를 수 없었다. 예술이 뭔데? 그것이 얼마나 고매한 것이건대 보통 사람들의 개미같은 하루를 순식간에 보잘 것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린단 말인가. 오히려 이렇게 지지부진하게 하루를 이어가는 것보다 격정적으로 하고싶은 일에 매달려 하루를 태우며 사는 것이 어쩌면 더 쉽지 않겠는가. 누군들 '예술'을 하고 싶지 않겠는가. 창조적으로 자신을 꽃피우는 일,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줄 수 있는 자신만의 작업을 하는 일.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개미같은 보폭으로 하루를 살고 있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의 작은 보폭으로, 그것도 매양 똑같아 보이는 일상사로 수를 놓으면서.

그러나 그것이 위대한 예술가의 작업만 못하리란 법이 어디 있는가. 그것이 어떤 그림을 그릴지 누가 알겠는가. 아니 사실 하루하루 자기자신의 마음 위에서 흔들리며 도를 닦듯 걸어가는 우리 모두에게 있어, 예술 아닌 것이 어디 있겠는가 말이다. ...진지한 예술가들의 몇몇 삶을 그저 순수한 의도로 관찰해 들려준 저자의 이야기가 내게로 와서는 결국 이렇게 자기 옹호적으로 해석되고 말았다. 나 역시 내가 갇혀있는 그물 안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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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08-09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읽었습니다.^^
 
소년보다 순수하고 노인보다 지혜로울 수 있다면
김인경 지음 / 혜문서관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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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일은 왜 이리도 어려운 것일까. 아무리 마음을 추스리고 가다듬으려 해도 불쑥불쑥 돋아나는 절망과 고통, 근심과 노여움은 쫒아내기 어렵다. 무엇이 이렇게 사는 일을 어렵게 만드는 것일까. 어찌 해야 이 모든 근심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어떻게 분노와 실망을 쫒아내고 기쁨과 즐거움과 행복만을 깃들게 할 수 있는지 알 도리는 없다. 아니 사실은 우리 모두가 그 해답을 알고 있다. 욕심을 버리고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며 살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단순한 문장을 실행하며 사는 것도 도인의 수행처럼 어렵게만 느껴진다. 우리는 그저 노력할 따름, 고통을 쫒아내기란 여전히 힘들다.

그렇게 마음이 부산하고 힘들 때, 혹은 허전하거나 절망적일 때 나는 이 책을 읽는다. 소년보다 순수하고 노인보다 지혜로울 수 있다면. 책 제목 그대로만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이 책에는 우화와 동화, 그리고 사람 사는 이야기들이 두서없이 섞여서 실려있다. 마음이 텅 비어있는 것만 같았던 어느 날, 나는 이 책의 어느 이야기를 읽다가 울었었다. 그리고 비 온 뒤 맑게 개이는 하늘처럼 내 마음이 청명하게 가라앉는 걸 느꼈다. 사람이 살아가는 최소한의 조건은 무엇인지, 희망이 얼마나 작은 것에서도 움터날 수 있는지, 기쁨이 혹은 행복이란 것이 얼마나 작은 것에서도 샘솟을 수 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살아있음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새삼 느끼게 해주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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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로 키우자 3 - 24~36개월
장은미, 김영숙 지음 / 혜민.혜지원(리빙아트)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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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어떻게 놀아줘야 하지?'는 어린 아이를 둔 엄마들이 수시로 부딪치는 고민 중 가장 큰 것일 것이다. 매일매일의 시간들을 부질없는 자잘한 일상사로 채우고 있으면서도 늘 쉴새없이 바쁜 우리 엄마들, 그리고 매일매일이 늘 새롭고 신기한 일로 가득차 있는 우리 아이들. 눈높이를 맞춰 놀아주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특히 '아이'라는 존재를 이해하는 데 서툴러 애가 태어났을 때부터 끙끙거렸던 나는 이 책을 발견했을 때 조금 마음이 놓이는 기분이었다. 애가 아주 어렸을 때 이 시리즈의 첫 권을 샀고 지금은 세권째를 보고 있다. 이 '놀이...' 시리즈가 다른 엄마들에게는 얼마나 크게 도움이 되는지 알 수 없지만 내게는, 머리에 아무 생각이 안 들 때나 정신이 산만해 아이와 제대로 놀아주지 못하고 있을 때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있다. 놀이방법을 하나하나 일러주고 있으니까 말이다. 쉽지만, 읽어보면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꼭 알아둬야 할 놀이들이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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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남자가 좋다
송명희 지음 / 푸른사상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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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현직 대학교수가 쓴 수필, 그것도 문화비평의 성격을 띤 수필집이다. 가볍고 안이하게 느껴지는 제목에서 약간의 거부감이 느껴졌지만, 페미니즘에 근거한 에세이가 아니겠나 생각하며 이 수필집을 집어들었다. 책을 다 읽은 지금의 감상은 한 마디로 '역시 수필은 수필'이라는 것이다. 저자의 다른 책은 읽어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이 책은 아무래도 신변잡기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 것 같다. 하긴 수필집인 만큼 그것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저자에게서는 페미니즘과 친자연주의적 휴머니티의 감성이 느껴졌지만 그것이 내게 전폭적인 공감대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어느 순간부턴가 나는 약간 삐딱한 시선이 되었는데, 상투적인 내용도 지루했지만, 문장 자체도 늘어지고 고루하여 읽는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주위 지인(知人)들에 대한 불필요한 사족은 너무 많았다. 그들에 대해, 혹은 그들에 대한 저자의 생각에 대해 궁금해할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저자가 문화평론가라는 사실에 무색하게도 이 책은 말을 하다가 만 듯한 어설픈 느낌을 던져주었다. 단지 나만의 느낌일지도 모르지만 이미 다 알려질 대로 알려진, 모두가 이미 친숙하게 느끼고 있는 이야기를 되풀이해 말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지도 못하고 울타리 안에서 말을 걸고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거기에 또 책 제목은, 왜 이렇게 가비얍게 붙인 것일까? 이런 제목이라면 내용이 페미니즘적 시각에서 보다 확실한 성격을 띤 것이어야 한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버무려진 내용에서 이 제목은 조금 우습다.

작년 말에 나온 책이니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는데 내겐 왜 이렇게 고리타분하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실망스럽다고 말할 순 없지만 찬찬히 행간을 다 읽기가 귀찮아지곤 했다. 저자는 스스로도 느끼지 못하는 권위와 질서 속에 앉아서 (손 안에 들고 있는 것을 예쁘다 하면서) 천연의 자연스러움을 흠모하고 있었다. 그런 고루함으로 어떻게 문화의 척도를 재는 글을 쓰고 있는 것인지, 저자의 다른 책을 읽어보지 않고는 더이상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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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가 좋아 아기 그림책 나비잠
조은희 그림, 마거릿 와이즈 브라운 글, 최재숙 옮김 / 보림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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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나는 벌레를 한 마리 때려잡았다. 이리 날아들다니 제가 자초한 일이다. 방충망을 다 닫아놨는데 도대체 어디로 들어온 것일까. 피를 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죽이기보다는 방생하는 것을 더 좋아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집안에는 나 혼자 밖에 없었고 그 녀석은 계속 붕붕거리며 내 주위를 날아다녔다. 으으... 난 두꺼운 책을 골라잡고선, 그 책 밑에 흰 종이도 깔아서 마침 녀석이 앉아있는 책상 위로 던졌다. 까맣게 반짝이는 껍질을 가진, 풍뎅이과 벌레였다. 덜 죽으면 고통스러우니까 한번 더 꽝. 흰 종이에 눌려 죽은 그 벌레를 쓰레기통에 버리며 나는 다시금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그 벌레가 무슨 죄가 있으랴. 내가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죄가 아니듯 그 벌레도 벌레로 태어난 것이 죄가 될 리 없다. 징그럽다는 것도 사람의 눈으로 보아서 그렇지, 제 족속에서는 또 얼마나 아름다운 날개로 빛났을 것인가. 그러나 이렇든 저렇든 그 불쌍한 녀석은 죽고 말았다. 우리 아이가 옆에 있었더라면 아마 죽지 않았을 것을.

몇 주 전 저녁 무렵이었다. 나는 안방에서 기어다니고 있는 커다란 장수풍뎅이 한 마리를 발견하였다. (풍뎅이들은 어찌하여 우리 집을 좋아하는지?) "벌레다!" 나는 큰 목소리로 아이를 불렀다. "이거 봐, 굉장하지? 와, 이쁘다" 벌레 근처에만 가도 소름이 돋는 게 사실이지만 아이 앞에서 나는 대체로 이렇게 곤충 애호자인 양 한다. 아이는 곤충을 좋아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방으로 달려들어가 책까지 갖고 와서는 그림을 펼쳐보여줬다. "이거 봐, 이 벌레야. 봐, 똑같이 생겼지?"

그때 아이에게 보여줬던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다. <벌레가 좋아>. 아, 참. 그때 그 벌레는 물론 죽지 않았다. 아이와 한참 이야기를 나눈 뒤에 종이 위에 얌전히 올라앉아 창 밖으로 던져졌다. 날아다니는 것이니 떨어지지 않고 제 힘으로 날았을 것이다. 나는 그때 이 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무척 다행스럽게 여겨졌다. 책에 나온 그림과 실제의 모습을 견주어 볼 수 있다는 것은 살아있는 학습일 터이다.

이 책에는 많은 벌레들이 나온다. 벌레라고 하기보다는 곤충이라고 하는 것이 적당하겠지만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말하기 좋은, 이 '벌레'라는 호칭으로 이런 저런 곤충들을 두루 보여주고 있다. 글은 아주 적다. 그러나 쓸데 없이 이런저런 글이 많았다면 오히려 아이들에게 벌레들을 보여주는 데 방해만 되었을 것이다. 귀여운 사내아이의 독백 "난 벌레가 좋아" 이 한 마디가 그림책 전체를 이끌고 있다. 실사로 그려진 그림들은 아니지만, 그래서 더 정감이 가는 책. 세 살 이쪽저쪽 아이 엄마들에게 추천하기로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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