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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가 좋아 ㅣ 아기 그림책 나비잠
조은희 그림, 마거릿 와이즈 브라운 글, 최재숙 옮김 / 보림 / 2003년 3월
평점 :
방금 나는 벌레를 한 마리 때려잡았다. 이리 날아들다니 제가 자초한 일이다. 방충망을 다 닫아놨는데 도대체 어디로 들어온 것일까. 피를 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죽이기보다는 방생하는 것을 더 좋아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집안에는 나 혼자 밖에 없었고 그 녀석은 계속 붕붕거리며 내 주위를 날아다녔다. 으으... 난 두꺼운 책을 골라잡고선, 그 책 밑에 흰 종이도 깔아서 마침 녀석이 앉아있는 책상 위로 던졌다. 까맣게 반짝이는 껍질을 가진, 풍뎅이과 벌레였다. 덜 죽으면 고통스러우니까 한번 더 꽝. 흰 종이에 눌려 죽은 그 벌레를 쓰레기통에 버리며 나는 다시금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그 벌레가 무슨 죄가 있으랴. 내가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죄가 아니듯 그 벌레도 벌레로 태어난 것이 죄가 될 리 없다. 징그럽다는 것도 사람의 눈으로 보아서 그렇지, 제 족속에서는 또 얼마나 아름다운 날개로 빛났을 것인가. 그러나 이렇든 저렇든 그 불쌍한 녀석은 죽고 말았다. 우리 아이가 옆에 있었더라면 아마 죽지 않았을 것을.
몇 주 전 저녁 무렵이었다. 나는 안방에서 기어다니고 있는 커다란 장수풍뎅이 한 마리를 발견하였다. (풍뎅이들은 어찌하여 우리 집을 좋아하는지?) "벌레다!" 나는 큰 목소리로 아이를 불렀다. "이거 봐, 굉장하지? 와, 이쁘다" 벌레 근처에만 가도 소름이 돋는 게 사실이지만 아이 앞에서 나는 대체로 이렇게 곤충 애호자인 양 한다. 아이는 곤충을 좋아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방으로 달려들어가 책까지 갖고 와서는 그림을 펼쳐보여줬다. "이거 봐, 이 벌레야. 봐, 똑같이 생겼지?"
그때 아이에게 보여줬던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다. <벌레가 좋아>. 아, 참. 그때 그 벌레는 물론 죽지 않았다. 아이와 한참 이야기를 나눈 뒤에 종이 위에 얌전히 올라앉아 창 밖으로 던져졌다. 날아다니는 것이니 떨어지지 않고 제 힘으로 날았을 것이다. 나는 그때 이 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무척 다행스럽게 여겨졌다. 책에 나온 그림과 실제의 모습을 견주어 볼 수 있다는 것은 살아있는 학습일 터이다.
이 책에는 많은 벌레들이 나온다. 벌레라고 하기보다는 곤충이라고 하는 것이 적당하겠지만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말하기 좋은, 이 '벌레'라는 호칭으로 이런 저런 곤충들을 두루 보여주고 있다. 글은 아주 적다. 그러나 쓸데 없이 이런저런 글이 많았다면 오히려 아이들에게 벌레들을 보여주는 데 방해만 되었을 것이다. 귀여운 사내아이의 독백 "난 벌레가 좋아" 이 한 마디가 그림책 전체를 이끌고 있다. 실사로 그려진 그림들은 아니지만, 그래서 더 정감이 가는 책. 세 살 이쪽저쪽 아이 엄마들에게 추천하기로 손색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