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리가 어제 죽인 괴물 - 이윤기 산문집
이윤기 지음 / 시공사 / 2002년 9월
평점 :
절판
만약 본문 내용과 저자의 이름을 가리고 책을 골라야만 한다면 겉표지 디자인과 책 제목에 의지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 점에서 이 책은 제목을 참 잘 지었다. 저자의 이름을 알지 못한다 해도 책 제목에 끌려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손에 잡았을 것이다. 물론 이 산문집의 저자 이윤기씨는 익히 알려져 있는 작가이자 번역가, 그리고 내가 인정하는 언어 다듬이이다. 그래서 그의 이름만 믿고도 책을 고를 수 있었겠지만 이 책을 집어들었을 때 썩 마음에 들었던 것은 책의 제목이었다. <우리가 어제 죽인 괴물>이라... 신화적 이야기를 연상시키면서도 갓 잡아 펄떡거리는 물고기처럼 신선했다.
밤늦은 시간이었지만 조금만 읽고 자려는 생각으로 한 장 두 장 넘겼다. 그런데 읽다보니 멈출 수가 없다. 속독도 아닌 터라 새벽녘에야 겨우 잠들 수가 있었다. 이윤기씨는 역시 괜찮은 '약장수'다. 그는 호기심이 이는 제목으로 우리를 끌어들이고, 감칠맛 나면서도 단정한 여밈을 지니고 있는 문장으로 그의 글 속에 우리를 잡아둔다.
총 6부로 나뉘어져 실려있는 이 산문들은 신문이나 월간지, 주간지 등에 실렸던 글들을 모은 것이다. 각각의 부제에 따라 환경 얘기, 먹거리 얘기, 나고자란 얘기, 혹은 글 쓰기에 대한 얘기 등이 소탈하게 씌여져 있다. 책을 읽다가 신화의 한 대목과 맞닥뜨리거나 저자의 추천도서와 만나는 것은 내게, 길을 가다가 숨겨놓은 새알 찾아 먹는 기쁨과 같았다.
그러나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들이 그닥 새로운 내용은 아니었기 때문에, 읽으면서보다는 읽은 뒤의 감상이 약간 소소했던 게 사실이었다. 저자의 작품들을 이미 정독, 섭렵하고 있는 독자들에게라면 약간 시시하게 생각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읽는 맛으로만으로도 충분히 가치있는 책, 주변에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다만 한 가지, 내게 그토록 인상적이었던 이 책의 제목이 책 내용과 맞아떨어지는가에 대해서는 의심스런 생각을 품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본문 중에 신화 속에서 영웅들이 죽이던 괴물,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죽이고 있는 괴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긴 한다. 그러나 그것을 책 제목으로 쓰기엔 너무 약하지 않은가. 이 제목은 분명 '가수'나 '차력사'의 역할? 저자에게 미안한 웃음으로 얼른 내 생각을 눈가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