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한 부모들은 아이를 느리게 키운다
신의진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아이 키우는 엄마들이라면 다 그런 경험이 있겠지만 나 역시 예전에는 학습지나 유아교재 등을 들고 방문하는 교사들을 대하기가 꽤나 당혹스러웠었다. 그저 책을 팔아먹기 위해 하는 소리라고 치부해버리기에는 그들의 말이 너무나 호소력이 있었고, 그렇다고 그들의 말대로 이것저것 아이에게 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요즈음 아이들의 책은 얼마나 이쁘고 눈에 쏙 들어오게 만들어졌는가. 안 사도 좋으니 아이들 교육에 대한 이야기라도 나누자며 방문교사가 집안으로 들어온 순간부터 나는 나약하게 이리저리 흔들린다. (안 되겠다 싶으면 무조건 애아빠 핑게를 대지만 한번 나약하게 흔들린 맘이 보였다 치면 빠져나갈 구멍을 찾기도 쉽지 않다)

그 뿐만이 아니다. 유아들을 겨냥한 학습 프로그램들은 어찌 이리 차고도 넘치는지. 백화점이나 대형 마켓의 문화센터에는 아이들 지능발달에 도움이 된다는 갖가지 수업들이 붐을 이루고 있다. 수강료가 비싸서 아예 엄두도 안 내는 것은 제외하더라도 월 4-5만원의 수강료를 내고 아이에게 효과적인 교육을 시켜준다는 데 못 보낼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도무지 무엇을 어떻게 시켜줘야 가장 좋을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다다익선'은 아니지 않은가. 아이는 아직 말도 제대로 하고 있지 않은데 괜히 애한테 이것저것 시켜 부작용만 일으키게 할까봐 두려워진다. 그럼 이런저런 고민 말고 그냥 지금처럼 집에서 같이 뒹굴기로 결정을 볼까?

생각이 오락가락할 무렵 이 책을 알게 되었다. 소아과 의사인 저자는 언젠가 텔레비전에 나와서도 비슷한 요지의 특강을 한 적이 있었기에 이 책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지는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어쨌거나 나는 이 책을 읽어야만 했다. 아이의 교육에 관한 한 누구보다도 엄마인 내가 중심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옆집 엄마가, 방문교사가, 유치원 교사가, 혹은 그 누구가 얘기하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것이어야 했다.

이 책을 읽고 난 뒤 나는 비로소 '안심'할 수 있었다.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그래, 그렇게 요란을 떤다고 되는 일이 아니야. 거봐, 내 생각이 맞았쟎아. 그냥 자연스럽게 키우는 게 가장 좋다니까.' 물론 그 '자연스럽게'라는 말이 쉬운 게 아니라는 건 나도 알고 있다. 내 한 몸 추스리기도 쉽지 않은 터에 아이 키우는 일이 어찌 쉬울 수 있겠는가. 다만 공부하고 또 배우면서 아이를 키울 따름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부모들이 부딪치는 여러가지 난관들, 가령 아이의 돌출적인 행동이나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에 대처하는 요령이나 부모의 자세에 대해 자상히 설명해주고 있다. 본인이 직접 아이엄마로서 아이를 키우기도 했거니와 소아과 의사로서 아이들을 상담해본 경험이 적절히 보완되어 있어, 여전히 불안하고 걱정이 많은 우리 부모들에게 좋은 길잡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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