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구두 2005-02-04
늙기로 결심하다. 누군가에게 "세상에 변하지 않는 건 아무 것도 없어." 라고 단호하게 말한 아침에 저는 결심했어요. 이제부터 늙기로 하자.
내 나이 이제 서른 여섯이 되었습니다...
이제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부르면 주변 사람들의 비웃음을 듣게 되는 나이가 된 거죠.
어째서 살기등등했던 나, 독기로 가득했던 나, 제 한 몸 건사하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부딪치는 모든 것들에 시비를 걸었던 나는 늙기로 했을까요?
"사랑과 지식에 대한 갈구는 나를 천국 바로 앞까지 데려다 주었지만, 인류의 고통에 대한 연민이 나를 이땅으로 다시 내려놓았다."는 버트란드 러셀의 이야기를 그제야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된 모양이더군요.
나의 어두운 세계는 방금 전 누군가는 통과해온 터널이었음을...
깊고 어둔 암흑과 천지분간할 수 없는 축축함의 밀도들,
세상의 모든 천둥과 벼락이 날 겨냥한다고 믿었던 오만들,
그들이 살핀 건, 연민이었음을...
그래, 이제 저는 또다른 천둥벌거숭이들에게 연민을 보냅니다.
"너도 이제 곧 아프겠구나." 라는 연민....
이제 나는 늙는다.
그러나 다행하다.
참으로 다행하다.
내가 늙으니 아이들이 자라는 구나 하는....
17살에서 멈춘 내가 이제 늙기로 결심했습니다.
만난 첫인사치고 다소 거창한가요?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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