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일 직장상사의 도시락을 싼다 - 런치의 앗코짱 앗코짱 시리즈 1
유즈키 아사코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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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가 좋아하는 일본 드라마 중 <파견의 품격>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직장의 신>이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 되었었는데요, 파견직이지만 모든 일을 빈틈없이 완벽하게 처리하는 여성이 주인공으로 그녀와 관계된 회사 내 에피소드들을 그리고 있습니다. 보다보면 통쾌함이랄까 카타르시스라고 할까 그런 시원한 기분이 느껴져 무척 재미있게 봤었어요. 맡은 일은 100% 완수해내고 당당하면서 할 말 다하는 여주인공을 보면서 , 나도 저런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했었습니다. 아주 오래 전 드라마지만 그 때의 저는 직장의 신으로 불리던 그 여성보다는, 그녀와 같은 회사를 다니며 그녀를 동경하는 다른 여성 캐릭터에 더 가까웠거든요. 지금의 저는 어느 쪽에 더 가까운지 알 수 없지만, 한 번씩 책이나 드라마를 통해 앗코같은 여성을 만나면 또다시 다짐하게 됩니다. 나도 이런 멋진 여성이 되고 싶다고.

 

[나는 매일 직장 상사의 도시락을 싼다]를 처음에는 오해했었어요. 사전연재로 만난 이 작품의 제목만 얼핏 보고 으아니! 직장 상사의 도시락을 매일 싸다니, 직장 내 괴롭힘인가!-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거든요. 그런데 이게 웬걸요. 읽다보니 저절로 빠져들게 되는, 도시락과 관련된 무척 따뜻한 이야기인겁니다. 비정규직에 실연까지 당한, 절대로 NO라고 말하지 못하는 성격의 미치코는 어느 날 자신의 도시락을 한 번 먹어본 직장 상사인 앗코짱으로부터-물론 그녀 앞에서 대놓고 앗코짱이라고 말하지는 못합니다-일주일간 점심식사를 바꾸자는 제안을 받습니다. 미치코는 앗코짱에게 일주일간 도시락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앗코짱은 자신이 가던 음식점과 점심값을 제공하는 형식인 거죠. 각각의 장소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과 맛있는 음식들. 단 일주일의 경험이었지만 그 시간들은 미치코를 변화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앗코짱은 겉보기에는 냉정하고 빈틈없을 것 같은 그런 사람이에요. 하지만 침울한 미치코를 알게 모르게 위로해주기도 하고, 자신에게 관심 있다는 남자의 연락처를 받고선 수줍게(?) 미소를 띠기도 하죠. 겉은 차가워보이지만 속은 따뜻한 츤데레같은 캐릭터라고 할까요. 읽는 내내 미치코가 성장해가는 과정에 흐뭇한 미소가 절로 나오면서 나도 앗코같은 여성이 되고 싶다, 혹은 앗코 같은 여성이 주위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부럽기도 했습니다. 책 중간중간에 음식 삽화가 들어가 있는데요, 무척 따뜻한 색감에 마음까지 부드러워지는 그림들이었어요. 앞의 두 편은 미치코와 앗코의 이야기, 뒤의 두 편은 그들과는 상관없지만 역시 성장해가는 여성 캐릭터들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듭니다. 앗코 같은 완성형(?) 캐릭터도 멋지지만 미치코처럼 실수하고 방황하면서도 결국에는 길을 찾아내 성장해같은 캐릭터도 멋지다고요. 앗코와는 달리 미치코는 요리도 잘하고 순수하고 어떤 상황에서든 포기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도 가지고 있거든요. 우리 모두 어쩌면 앗코보다는 미치코라는 여성에 더 가까운 사람들이기에 앗코를 보며 부러워하면서도 미치코를 생각하면서는 더 힘을 내게 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먹는 것은 살아가는 것, 이라는 문장이 마음에 박힌 즐거운 작품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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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기억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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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아홉 폴과 마흔 여덟 수전의 아찔하고도 위험한 사랑이 시작됩니다. 아직 그 무엇도 결정되지 않은 미래를 가진 폴에 비해, 수전은 남편과 두 딸과 안정된 생활을 소유하고 있죠. 테니스 클럽에서 만나고 시작된 그들의 사랑은 결국 그의 부모님과 그녀의 남편, 주변에도 알려지지만 폴과 수전을 막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 듯합니다. 마침내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함께 살게 된 두 사람. 영원히 계속될 거라 믿었던 사랑, 두 사람 사이는 수전의 알콜중독 증상으로 균열을 맞이하고 그들의 사랑 또한 시간 속으로 사라져 폴의 기억 안에서만 살아있습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로 저를 비롯한 많은 독자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된 작가 줄리언 반스의 [연애의 기억]입니다. 단 하나의 작품으로 저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그 후 출간되는 작품 모두 관심있게 지켜보았지만 이번만큼 크게 기대했던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제목만으로도 얼마나 설레이나요. 연애라니, 그것도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작가가 쓴 연애소설이라니, 제목만으로도 가슴 속 어딘가가 간지럽고도 안타까운 느낌이 들어 보라색 표지의 책을 한참이나 들여다보았습니다. . 그런데 이 러브, 무척이나 파격적입니다. 열아홉 남자와 마흔 여덟의 여자. 무려 30년 정도의 나이 차. 서로 상대의 무엇에 그렇게 끌린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 커플이었어요.

 

저는 특히 연애를 다룬 작품을 읽을 때는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기 전까지의 서사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난데없이 다짜고짜 너를 사랑해가 아닌, 둘 사이의 감정의 교류가 전해주는 그 독특한 분위기를 즐깁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제목 자체가 연애의 기억이기 때문인지 두 사람의 사랑이 시작되는 데 있어 특징지을만한 것이 눈에 띄지 않았어요. 그저 테니스 클럽에서 만난 그들이 사랑하게 되었고, 그들만의 과정을 거쳐 결국 파국을 맞이한 기억이 서술의 중심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솔직히 폴과 수전의 사랑에 빠져들기 힘들었습니다. 게다가 곰돌군 두 명을 키우는 엄마이다보니 과연 아들뻘 되는 남자와 러브하는 것이 가능한가, 우리 곰돌군 중 한 명이 30년의 나이차를 극복하겠다며 수전같은 여성과 결혼하겠다면 나는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어요. 제가 연애소설을 읽기에는 이미 너무나 현실적인 사람이 된 것일까요. 러브에는 약간이라도 환상이 필요하다고 여기니까요.

 

게다가 오랜만에 만난 작가의 문장은 이리저리 미로 속을 거니는 듯한 느낌에 혼란스러웠습니다. 옛 기억을, 추억을 더듬는 과정이었기 때문인지 이야기가 이리 저리 흔들리며 진행되는 느낌이었어요. 사랑했던 시간으로부터 이미 50년이 지난 폴의 모습을 대변하는 문장들이었던가요. 무척 사색적이고 숨은 의미를 찾으려 노력하며 읽어야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수전이 그렇게 된 상황에는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비록 30년의 나이 차이지만, 그럼에도 서로를 선택했으니 행복했다면 어땠을까, 현실이 녹록치 않음을 그려낸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 이번 작품 어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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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머더 레이코 형사 시리즈 6
혼다 데쓰야 지음, 이로미 옮김 / 자음과모음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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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다 데쓰야 작가의 [스트로베리 나이트]를 저는 드라마로 먼저 접했습니다. 좋아하는 배우 다케우치 유코와 니시지마 히데토시가 출연한 작품으로, 아주 오래 전 드라마이지만 전체적으로 어두운 배경의 걸크러쉬 매력을 내뿜었던 상처 입은 형사 히메카와 레이코의 캐릭터가 무척 마음에 들었어요. 상사와 부하 관계지만 남녀사이로 둘 사이에 오고갔던 묘한 감정의 기운들도 마음을 설레이게 했었는데요, 극장판에서는 히메카와가 니시지마 히데토시가 연기한 기쿠타가 아닌 다른 남성을 마음에 두는 설정인 듯 해서 차마 볼 수가 없었답니다. 소녀시절 폭행을 당한 아픔을 차마 기쿠타에게 털어놓지 못하고 좋아하면서도 좋아한다 말할 수 없었던 히메카와와 그런 그녀를 곁에서 묵묵히 지켜주던 기쿠타였는데 이번 [블루 머더]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모습으로 마주하게 되네요.

 

 

 

한동안 출간되지 않아 포기하고 있던 히메카와 시리즈가, 기존 [스트로베리 나이트]부터 [소울 케이지], [시머트리], [인비저블 레인], [감염유희]까지 개정판에 [블루 머더][인덱스] 까지 더해 새로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전작에서 조폭인 마키타와의 관계로 인해 히메카와 반은 해체, 팀원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히메카와는 현재 이케부쿠로 서 형사과 강력계에 배속되어 있는 상태. 그런 그녀 앞에 온몸을 구타당해 살해된 조직폭력단 니와타 조직의 가와무라 조지 살해사건이 발생합니다. 무기도 특정 지을 수 없는 상황에서 동일범의 짓으로 보이는 시신이 계속 발견되고, 히메카와와 기쿠타는 서로 다른 곳에서 출발하지만 결국 하나의 사건으로 모아지는 접점에서 조우해요. 사건을 해결하는 시선과는 달리 범행을 저지르는 이들의 이야기도 같이 서술되는 가운데, 이 범행이 노리는 것은 무엇인가, 예측할 수 없었던 진실이 밝혀집니다.



더 이상은 갇히고 얻어맞고 협박당하고 노예처럼 살기 싫어

그렇게 살 바엔 철창이나 무덤 속이나 똑같아

 

이케부쿠로 일대의 암흑가를 뒤흔든 블루 머더

악당들을 닥치는 대로 죽여 없애는 괴물

이렇게 서슬 퍼런 살인자는 다시 없을지 모른다

인상적인 문구가 뒷표지를 장식하고 있는데요, 저는 이 문구들로 범인이 뭔가 사연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가 단순히 조폭이나 그와 비슷한 무리들을 마구잡이로 죽이는 것처럼은 보이지 않았고, 뭔가 복수라거나 더 처참한 사정이 숨어 있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결국 밝혀진 범인은 잔인한 살인행각과는 별개로 굉장히 강한, 자신만의 철통같은 신념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할까요. 그 신념이 사회통념상 얼마나 받아들여질지는 의문으로 남지만, 히메카와는 그런 그를 이해하고 분석합니다. 악당들을 가차없이 처단하면서도 그런 그의 모습이 조금쯤은 슬프게 보여졌던 것은, 과거 배신당했던 이력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까요.

 

범행 장면이 굉장히 잔인한데다, 히메카와의 활약이 돋보이는 것은 뒷부분부터인지라 사건을 따라가다보면 취향에 맞지 않는다 여기는 분들도 계실 듯 합니다. 저는 사실 소설보다는 드라마 속 등장인물들의 팬이기는 하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좋아했던 캐릭터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기쁨에 빠져 읽어나갔던 것 같아요. 호불호가 나뉠 만한 작품이라는 점에서는 어쩔 수 없지만 저처럼 드라마나 기존 시리즈 작품들의 골수팬이라면 반갑고 즐거워할만한 만남임에 틀림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히메카와와 기쿠타의 관계는 이제 그 상태로 돌이킬 수 없는 걸까요. 소설을 읽어보시면 다들 아시게 되겠지만 그럼에도 저는 미련을 버릴 수가 없네요. 혹시 다음 이야기에서는 뭔가 변화가 없을지, 조심스레 희망을 가져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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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살인의 문 - 전2권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 / 재인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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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매한 심정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이라면 어느 정도 보통은 넘겠거니 하는 기대가 있고, 또 지금까지 읽은 작품들은 그 기대를 대부분 채워주었었는데, [살인의 문]은 그 동안의 작품들에서 느꼈던 재미의 반 정도라고 할까요. 작품이 늘 좋을 수만도, 항상 제 취향에 맞을 수도 없겠지만 굳이 두 권으로 작품을 써야 했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남자가 다른 남자를 죽이려고 마음먹고 실행에 옮기는 과정이, 좋게 말하면 친절하게, 나쁘게 말하면 지루하게 서술되어 있어요.

 

다지마 가즈유키와 구라모치 오사무는 초등학교 5학년 같은 반이 되면서 어울리게 된 사이입니다. 구라모치의 꼬임에 빠져 오목 내기 게임에 발을 딛게 된 다지마는 급기야 죽음을 맞이한 할머니의 시신을 앞에 두고 돈을 훔치고, 할머니의 죽음을 목도하면서 사람의 죽음이란 장난감의 배터리가 떨어지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릅니다. 할머니의 장례 후 동네에는 엄마가 할머니에게 독을 먹여 살해했다는 소문이 퍼지고, 그 일 하나 때문만은 아니더라도 관계가 악화된 부모님은 이혼, 아버지는 술집 호스티스에게 빠져 재산을 탕진하는 악재가 연달아 찾아오죠. 게다가 학교에서의 집단 따돌림과 폭행은 다지마에게 사람을 죽인다는 것에 특별한 감정을 갖지 못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독과 관련된 여러 서적을 탐독하면서 오랜 기간 살의를 가진다는 것, 그 살의를 실천에 옮긴다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갖게 합니다.

 

그리고 구라모치와 계속되는 악연. 3자인 독자의 입장에서는 빤히 보이는 수법들에 다지마는 늘 걸려들고 맙니다. 다단계나 사기를 직업으로 삼는 구라모치라는 걸 알면서도 너무나 어리석게 그와 행동을 함께 해요. 구라모치를 죽이고 싶어하면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알기 위해 함께 살아보기도 했다가,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상담도 하는 다지마의 모습은 정말 답답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나쁘다는 생각이 들면 안하면 되고, 나쁜 녀석이다 싶으면 인연을 끊을 수도 있었을텐데 말이에요. 구라모치, 나쁜 인간 맞습니다. 서민을 상대로 사기를 치고, 큰돈을 가로채고, 타인을 사칭하고, 자신 때문에 피해를 본 사람들의 사연을 들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아요. 그러나 다지마의 인생에 비극을 초래한 데에는 그 스스로가 강하게 구라모치를 쳐내지 못했다는 점도 한 몫했다는 점에서 씁쓸함을 남깁니다.

 

다지마와 구라모치 관계의 시작, 그리고 마침내 다지마가 살인을 실행하는 장면까지 우리 히가시노님은 장황하게 설명해놓으셨습니다. 이 둘의 관계가 과연 어떻게 될지 궁금하기는 했지만, 지금까지 읽은 작품들과는 달리 속도감이나 마음을 뒤흔드는 감동은 조금 부족하지 않았나 싶어 아쉬워요. 아니면 제가 작가님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탓일까요. 애매하고 아리송한 기분입니다.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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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수의 레퀴엠 미코시바 레이지 변호사 시리즈 3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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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보는 작가 나카야마 시치리가 돌아왔습니다! 작품도 작품이지만 블루홀6 출판사의 열정도 대단한 것 같아요. 대략 두 달에 한 번 꼴로 신간이 나오고 있어서 독자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으니, 정말 백만 번은 칭찬해드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이번 작품은 미코시바 레이지 변호사 시리즈 3입니다. [속죄의 소나타], [추억의 야상곡] 에 이어 어떤 사건을 맡아 변호하려나 했더니, 이런, 의뢰인은 무려 미코시바가 소년원 시절 신세를 진 은사 이나미님이 아니겠습니까. 그로 인해 변호사가 되어 자신만의 속죄의 길을 걷고 있는 미코시바로서는 어째서 그가 살인을 저질렀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반드시 승소해야만 하는 재판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이야기는 먼저, 충격적인 사건을 소개하며 시작됩니다. 한국 여객선 블루오션호가 침몰해 승객 251명이 사망한 사건. 대참사로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안겨주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것은 우연히 찍힌 한 남자의 모습이었습니다. 구명조끼가 부족한 위기 상황에서 연약한 여성을 폭행해 구명조끼를 빼앗은 남자. 아마 키르네아데스의 판자이야기는 한 번쯤 들어보셨을텐데요, 그 이야기에서처럼 이 남자도 긴급 피난이라는 사례가 적용되어 무죄를 선고받았어요. 그리고 시간이 흘러 발생한 이나미의 살인. 그가 죽인 사람은 이나미가 몸을 의탁하고 있는 요양원의 보호사이자 바로 긴급 피난으로 무죄를 선고 받은 남자 도치노 마모루였습니다. 자신을 구원해 준 이나미가 절대 살인을 저질렀을 리 없다고, 분명 무슨 사연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 미코시바는 그를 구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만, 이나미는 자신은 살인을 저질렀으니 벌을 받아 마땅하다며 충분히 그 벌을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합니다.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싸움이었다 생각됩니다. 죄를 저지르고도 감형받기 위해 애쓰는 다른 피고인들과는 달리 오히려 벌을 받겠다 나서는 이나미의 모습에 미코시바는 혼란스럽기만 해요. 그가 이러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어 답답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미코시바가 누굽니까. 뛰어난 실력으로 결국 사건의 진실에 다다르죠. 그 진실과 마주하고 나니 저는 이나미의 심정도 이해할 수 있었어요. 그가 감형을 주장하는 것은, 평생 지켜온 신념을 저버리는 일이 된다는 것을요. 그런 이나미였기에 미코시바 또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었고, 나름대로의 속죄의 길을 걸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타인에게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엄격한, 겉과 속이 하나로 연결된 이나미였으니 미코시바 또한 그를 마음으로부터 충실히 따를 수 있었던 것이라 생각됩니다.


인간 본성의 적나라함을 드러낸 충격적 포문, 노인 보호시설에서 자행되는 폭력의 행태, 앞선 작품들과 연결되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 등이 여느 때처럼 조목조목 논리적으로 구성된 작품입니다. 다만 그 동안 접한 나카야마 시치리의 작품 속 사건들이 대부분 떠올리기 싫을 정도로 엄청났던 덕분에 이번 소설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전보다는 덜 지저분하게(?) 느껴지실지도 모릅니다. 이번 작품에서 작가가 주력한 부분은, 사건 자체들이라기보다는, 속죄란 무엇인가에 대한 보다 깊은 물음이었던 듯해요.

법률로 처벌받는 게 훨씬 행복합니다.

  사건 말미에 미코시바가 던진 이 한 마디가 묵직한 울림을 주는 인상깊은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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