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상황에서조차 어떻게 집사의 직무를 우선할 수 있었을까. 나라면 손은 물론 온몸이 떨리고 가슴이 죄어들어서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할 것 같은데. 스티븐스에게 ‘집사’가 어떤 의미인지 명확하게 보여 준, 아버지와의 일화.

 

그런데 이 냥반, 왜 여행 가서도 자꾸 집사로서의 자신의 과거만 생각하는 걸까. 제목도 그렇고, 설마 유령이 된 스티븐스가 죽음의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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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떨어뜨린 귀한 보석이라도 찾고 있는 사람처럼.

p 106

 

 

스티븐스 1세가 정자로 올라가는 언덕배기 쪽, 네 개의 석판으로 된 그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찾고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집사로서의 여전한 자긍심이었을까, 세월의 흐름에 휩쓸려 젊음이 사라져가면서 이제 결코 예전같을 수 없다는 깨달음이었을까. ‘실수들 자체는 사소할 지 몰라도 더 큰 의미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아채야 하는 인생의 황혼.

 

마음을 먹먹하게 하는 대목. 담담한 기술이 더 가슴에 사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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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위'는 자신이 몸담은 전문가적 실존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집사의 능력과 결정적인 관계가 있다.

p 70

 

 

자신의 직업인 '집사'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스티븐스. 여행을 떠난 첫날인데 그 날 아침에 본 풍경의 '위대함'과 집사의 품위를 연관지어 생각할 정도로 그는 뼛속까지 '집사'인 듯 하다.

 

새벽에 혼자 만끽하는 독서 시간. 이 고요함과 작품의 분위기가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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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달링턴 홀에서 일해온 스티븐스. 새로운 주인 패러데이 어르신이 잠시 미국에 다녀오는 동안 휴가를 다녀와도 좋다는 허락을 받는다. 처음에는 아무 의미 없이 받아넘겼으나, 예전 달링턴 홀에서 함께 일했던 켄턴 양의 편지를 받고 여행을 결심한 스티븐스.

 

 

아마도, 오랫동안 여행다운 여행을 다녀오지 못한 듯, 떠나기 전 느끼는 염려와 설레임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문장들. 주인의 농담 하나에도 안절부절 못하는 순진한 스티븐스의 여행은, 그에게 어떤 경험을 선사해줄까. <부커 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에 더 가슴이 두근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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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깨끗하게 살아온 것을 자부하던 바리사이 대신 차마 고개도 들지 못하고 있던 죄 많은 세리에게서 의로움을 보았다. 공자는 앎의 실체를 더 많은 앎에서가 아니라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 찾았다. 잘못을 넘어서는 것에 있어서도 그는 마찬가지 논리였다. 심지어 선의 실질도 구악, 즉 불선이 갖는 겸허한 자인에서 구했을 뿐이었다.

p 255

 

 

알 듯도 같고 모를 듯도 같은 저자의 공자와 예수에 대한 찬사. 마지막을 공자와 예수로 장식한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이 저자를 이토록 감동하게 만들었는지 점점 더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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