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 더 돔 1 밀리언셀러 클럽 111
스티븐 킹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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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상상력, 다음 내용이 기다려지는 걸작!]

인구 천여 명의 체스터스밀 마을에 투명 돔이 내려왔습니다. 어떤 예고도, 전조도 없이 갑자기 벌어진 일이었어요. 예기치 않은 투명 돔의 출현으로 많은 사람들과 동물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비행 교습을 받던 마을 의장의 아내 클로뎃 샌더스와 척 톰슨, 119번 국도 갓길을 따라 체스터스밀 마을로 향하던 마멋 한 마리, 차를 몰고 가던 사람들과 비행중이던 새 떼 등 그 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았고, 또 순식간에 증가했습니다. 그 와중에 마을에서는 살인사건마저 일어나서 앞으로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예고하죠. 돔 안에 갇힌 마을 사람들. 그 안에서 누군가는 권력을 쥐기 위해 음모를 꾸미고, 누군가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노력하며, 또 누군가는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몸부림칩니다. 각기 다른 상황에 추구하는 목적은 다르지만 그들의 머릿속에 심어진 의문은 하나입니다. '누가 돔을 만들었을까'

 

영미소설의 대마왕 스티븐 킹이지만, 저는 그의 작품을 딱 한 편 읽어봤어요. [듀마 키]. 그런데 (제 기억이 맞다면) 으스스한 공포분위기에 초현실적인 느낌이 강한 작품이라 저의 취향은 아니었답니다. 누군가가 스티븐 킹은 추리소설 뿐만 아니라 다른 장르에서도 뛰어난 필력을 자랑하는 작가라고 추천해주었지만, 아시잖아요, 세상에는 읽어야 할 책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그런데 [언더 더 돔] 의 대략적인 내용을 듣는 순간, 느낌이 팍! 왔습니다. '아, 이건 엄청 재밌겠구나, 대박이겠구나!' 그래서 아직 완결도 채 되지 않은 작품을 읽기 시작했는데요, 오래오래 아껴 읽고 싶은 작품은 정말 오랜만이었어요. 명절만 있지 않았다면 3권을 배송받아 함께 읽을 수 있었을텐데, 또 명절이 끝날 때까지 2권을 외롭게 놓아둘 수는 없어서 그야말로 후딱 읽어버렸습니다.

 

1권은 돔이 내려온 후 상황을 파악하려는 마을 사람들의 노력과 주요 인물들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돔이 내려왔을 때, 주인공 격이라 할 수 있는 바비 (데일 바버라는 마을에서 권력을 잡고 있는 빅 짐 레니의 아들 주니어와 문제를 일으켰다가 막 마을을 빠져나가는 참이었어요.), 야심에 찬 비열한 인물 빅 짐 레니, 그의 똑같은 아들 주니어 레니, 의로운 보조의 러스티, 마을 신문 편집장 줄리아 등의 성격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드러나죠. 등장하는 사람들의 수가 꽤 많고 관계가 복잡해서 처음에는 헷갈리지만, 다행히 마을 지도와 인물들을 소개한 종이가 들어 있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1권이 맛보기라고 한다면 2권부터는 본격적으로 갈등이 생기고 의견이 대립하며 긴장이 고조됩니다. 마을에 일어난 재난을 수단으로 자신의 권력을 확고히 하기 위해 어떤 방법도 서슴치 않는 빅 짐 레니의 악행과 그를 저지하기 위한 바비와 줄리아의 고난이 들어있어요. 그들 뿐만 아니라 마을에서 그 동안 일어났던 소소한(?) 일들의 결과와 바비에게 닥친 위기, 핼러윈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조짐이 긴장을 한층 높여주죠. 3권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2권이었습니다.

 

인상적인 것은, 자칫 심각한 분위로 빠질 수 있는 작품에 군데군데 유머가 들어가 있다는 겁니다. 돔이 내려온 날, 사람이 아닌 마멋 한 마리는 마치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으로 그려져 있어요. 죽음의 순간, 마멋이 느낀 사태와 그의 생각은 생각지 못한 순간에 웃음을 터뜨리게 만들었죠. 그런 장면이 중간중간 있는데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과연 돔은 누가 내려보낸 걸까요? 외계인? 그것도 아니면 정부에서 하던 실험의 실패로 빚어진 결과일까요? 돔 데이 이후 마을에서 벌어진 어린 아이들의 발작은 어떻게 된 것인지, 과연 핼러윈에 무슨 벌어질 지 정말 궁금합니다. 이 명절, 빨리 지나가서 3권이 배송되는 날이 오기만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독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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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말했다 : 우리를 닮은 그녀의 이야기
김성원 지음, 김효정 사진 / 인디고(글담)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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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잊고 지냈지만, 한밤의 라디오는 한 때 내게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 라디오를 켜둔 채 취침예약을 해놓고 자리에 누우면 까만 밤을 헤치고 들려오는 누군가의 목소리. 더없이 차분하고 더없이 아늑했던 그 밤들에, 내 마음은 까닭모를 설레임과 눈물로 가득했었다. 그 중에서 가장 좋아했던 건 감미로운 음악을 배경으로 DJ가 나긋나긋 읽어주던 생활에 관한 단상들. 때로는 사랑을, 때로는 삶의 힘겨움을, 때로는 인생의 환희를 읊어주던 목소리가 방안에 가득 퍼지면, 그것은 곧 다른 누가 아닌 나의 이야기가 되어 있었으므로. 시간이 흐르고 더 이상 라디오를 가까이 하지 않던 시간, 아련했던 감성들이 희미해졌다고 느낀 순간, 라디오는 다시 내 곁에 와있다. 

[그녀가 말했다] 는 KBS <유희열의 라디오 천국>에 방송된 '그녀가 말했다' 코너를 책으로 엮어낸 것이다. 런던, 도쿄, 파리의 풍경을 담은 사진으로 그 매력을 더했다. 이 책은 한 번에 죽 읽어내기에는 아까운 책이다. 무언가를 얻고자 읽는 책이 아니라 쓱 지나가버리는 일상생활을 다른 이의 목소리를 빌려 조금 천천히 들여다보기 위한 책이니까. 그래서 나는 하루에 몇 편씩만, 그리고 새벽 시간에 야금야금 읽었다. 좋은 문장은 곱씹어보고, 나도 이랬던 적이 있는데 하며 공감도 하고,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작가의 생각에 감탄도 하면서. 꼭 내가 에피소드들의 주인공이 된 것만 같아서 색다른 기분이었다고 할까. 

'소심한 사람들이 연애하기 힘든 이유는 이 세상에 소심한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를 보며 나는 소심한가 아닌가 가늠해보고, '그러니까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은, 너의 가치를 생각해보라는 거지. 지금 네가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건, 네가 가격표를 먼저 생각하기 때문이야' 를 보면서는 나의 가치도 생각해보고, 나를 즐겁게 했던 것, 나를 힘들게 했던 것, 앞으로 결정하고 선택해야 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피곤에 지쳐 금방 잠이 들어버리는 평소에 비하면, 지금의 이런 시간들은 보석같다, 나에게는. 

생활속에서 얼굴을 가린 채 우리에게 정확한 의미를 전달하지 않는 무언가를 찾아내서, 생각하고 그 의미를 가늠하는 일에도 재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들은 늘, 언제나, 무언가에 쫓겨서 하루하루를 살아내야 하니까. 자신에 대해, 사랑과 삶과 소중한 것들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단 5분이라도 낼 수 있다면 조금은 따뜻한 마음으로 이 겨울도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살아있는 목소리로 <그녀가 말했다>를 들은 적은 한 번도 없지만, 그 목소리는 이미 나의 목소리다. 

나는 요즘, 라디오를 듣는다. 가장 좋아하는 건 자정에 시작되는 정엽의 푸른밤. (유희열팀, 미안합니다;;) 까만 어둠 속에 이어폰을 꽂고 자리에 누워 그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치 아는 사이같은 친근함이 느껴져 마음이 포근해진다. TV도 책도 줄 수 없는 라디오만의 힘이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는 지, 앞으로 어떤 일이 있을 지, 나도 생활 속에서 보석같은 생각들을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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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조지 오웰 지음, 김욱동 옮김 / 비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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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봤을 때는 실로 따뜻함과 정감이 우러나는 제목이 아닐 수 없다. 어쩌다 일찍 일어나는 일요일에는 나도 꼭 시청하는 프로그램이 바로 동물농장이니까. 귀엽고 사랑스러운(가끔 혐오하는 동물들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동물들이 등장하면 그 앞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도 나니까. 그런데 그런 [동물농장] 표지 한 가운데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는 것은, 먹을 때 아니면 잘 쳐다보지도 않는 돼지다. 그것도 사랑스러운 아기돼지3형제가 아니라 욕심많고 고집센 돼지의 모습. 게다가 주위 동물들보다 못해도 2배는 되어보일 것 같은 액자를 차지하고 있다. 책을 읽기 전부터 괜히 밉살스럽다.

이 책의 동물들은, 어린 시절의 우리가 소원했던대로, 말도 하고 생각도 한다. 두 발로 걷는 인간을 몰아내고 '장원농장'에서 '동물농장'이라는 이름 아래 획기적인 변혁을 꾀한 동물들이다. 인간에게 핍박받던 생활에서 벗어나 모두가 평등한 생활을 꿈꾸면서 잘 먹고 잘 사는 미래를 다짐하고 있다. 돼지, 개, 말, 당나귀, 닭, 양 등이 모여 행동강령을 정하고 절대로 두 발 달린 인간과는 거래하지도 않고 신뢰하지도 않으면서 그들만의 왕국을 만들 수 있다고 희망한다. 그 안에서, 돼지들이 머리를 든다. 우리는 너희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을 하는 거야, 그러니 이 정도의 이익은 봐도 되지 않겠어?, 내가 나쁜 게 아니라 쟤가 나쁜 거였어, 너희들 설마 인간인 존스가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는 건 아니겠지, 등등의 말로 동물들을 세뇌시키고 결국은 또 다른 계급 사회를 만들어내는 돼지들이다.

이 책, 참 친절하다. 편집도 그렇지만 작품 자체의 성향이 그렇다.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주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서 책을 읽을 때 조금 산만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작품을 잘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 때문에 스스로 작품을 해석할 수 있는 우리들의 능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지만, 설사 그런 주석들이 없었다 해도 작가가 독자들에게 전하려는 메세지가 무엇이었는지 자연스럽게 이해될 정도로 작품 자체가 친절하다. 평등하고 살기 좋은 사회를 꿈꿨던 동물들에게, 돼지들이 옷을 입고 두 발로 걷는 장면 하나로 모든 것은 설명된다. 이것보다 더 무서운 광경은, 동물들에게 없었을 것이므로. 
  

동물사회를 통해 인간들의 삶을 풍자한 우화다. 세계문학이라 불려 다가가는 데 어색함이 없었다면 거짓이겠지만, 그런 어색함을 모두 지워줄 정도로 흥미로운 작품이다. 무엇보다 한 체제 안에서 그것의 장점과 단점을 모두 꿰뚫고 있는 사람의 객관적인 시선이랄까, 그런 날카로움이 느껴져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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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누구도 아닌 너에게 - 제142회 나오키상 수상작
시라이시 가즈후미 지음, 김해용 옮김 / 레드박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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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릿가든>의 김주원은 길라임과 혼인신고를 한 후, 그 사실을 알고 쓰러진 어머니의 병실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언젠가 한 번은 후회할 거라고. 하지만 후회하면 후회하는대로 그 여자와 살아갈 거라고. <내 이름은 김삼순>의 현진헌은 삼순이에게 가기 위해 옛 여자친구에게 이별을 고하며, 너 가면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그녀에게 또 이렇게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죽을 걸 알면서도 산다-고. 사랑, 그게 뭐 대단한 거라고. 라며 뻥 날려버리기에는, 우리 모두 사랑에 너무 길들여져 버렸다. 사랑을 하지 않을 때도, 사랑을 하고 있을 때도. 시간이 흐를수록 농도와 깊이를 바꿔가며 끊임없이 마음을 괴롭히는 감정. 사랑했다가,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가, 다른 사람에게 상처도 줬다가, 결혼해도 후회할지도 모른다고 걱정도 하는 그 수많은 시간 속에서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정말 내 운명의 짝인지 확신한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그 말을 듣고서야 도카이 씨는 한 번도 향수를 보여준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함께 살면서 늘 그 좋은 냄새에 싸여 있었기에 오히려 아키오는 그 향수에 대한 관심을 잃었다. 아키오에게 그 냄새는 도카이씨 그 자체였다.    -p174

이 작품의 표제작 <다른 누구도 아닌 너에게>에서 일견 우유부단하고 아무 특징없는 사람으로 비춰지는 아키오는, 운명의 상대를 발견했을 때는 이 사람이 틀림없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을 거라고 믿는 남자이다. 그는 그 운명의 증거가 '향기'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그 사람' 자체가 증거였음을 깨닫게 된다. '사람'을 보지 않고 눈에 보이는 '증거'를 쫓아가다 보면 운명의 상대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표식은 어디에서나 찾을 수 있을 터. 저마다의 매력은 존재할 테니 말이다. 눈에 띄게 아름답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은 그 사람을 농담의 대상이라고만 생각할지라도 내 마음 안에서 빛나는 단 한 사람. 증거라고 생각했던 것이 결국은 그 사람 자체였음을 깨닫게 하는 사람이 바로 운명의 짝이 아닐까.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의지가 되고 행복을 가져다 주는 사람.

나, 왔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 길밖에는, 그렇게 각오하고 왔어요. 그런데 대체 무슨 일이에요?   -p292

단순하고 평범한 사랑을 그린 <다른 누구도 아닌 너에게>에 비해 <둘도 없이 소중한 너에게>는 건조하고 퇴폐적인 냄새를 풍기는 커플의 이야기다. 약혼한 남자가 있으면서 예전의 불륜관계를 지속하는 미하루와 구로키. 약혼자에게서는 얻을 수 없는 것을 구로키를 통해 맛보면서 그와의 관계를 지속하는 미하루는 그를 사랑하면서도 좀처럼 마음을 인정하지 않는 여자다. 구로키 또한 입으로는 쿨한 관계, 서로 책임을 지지 않는 관계를 선호하는 척 떠들지만 내 눈에는 그들 모두 사랑 앞에서 겁내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이런 부족한 나와 결혼해줄 거냐고 묻지 못해 늦게 사랑을 깨닫는 커플. 약간 변태적인 관계를 갖는 커플임에도 그 몸부림들이 어쩐지 애달파서, 기묘한 느낌이 들게하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과연 나오키상의 선정 기준은 무엇일까를 궁금하게 만든 작품들이기도 했다. 섬세한 감정 묘사가 뛰어나서 남자 작가임에도 여성으로 자주 오인받는다는 시라이시 가즈후미. 그 감성이 잘 전해지지 않았다는 것은 결국 원어로 접했을 때만 느낄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이야기인 거다. '혼을 부르는 걸작'이라거나 '아찔할 정도로 감동했다' 거나 하는 느낌은 받지 못했으니까. 그럼에도 자꾸 이 작품에 마음이 가고 신경이 쓰이는 것은 그 주제가 '사랑'이기 때문일까. 

사람들 얼굴에 사랑표지판이 있어서 '나는 너를 사랑해' 라거나 '내가 너의 운명의 짝이야'라거나 '너와 결혼하고 싶어' 와 같은 말들이 감정에 따라 드러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같은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나를 사랑하는지 아닌지, 결국 우리가 고민하는 것은 그 한 가지다.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만큼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해 주면 좋겠다는 것. 그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서 우리는 상처입고 아파한다. 나중에 후회하면 어때. 아이스크림을 고르는 일에서조차 후회는 있는걸. 후회해도 좋다고, 그 후회까지 떠안고 같이 가고 싶다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운명의 증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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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의 선물 - 커피향보다 더 진한 사람의 향기를 담은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이야기
히말라야 커피로드 제작진 지음 / 김영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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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에는 마법이 숨어있다. 굳이 마시지 않아도 그 향만으로도 기분을 포근하게 만들어주는 커피. 맛이 어떤지, 무엇 때문에 빠져있는지 정확히 설명하지도 못하면서 우리는 커피를 즐긴다. 나도 언젠가부터 하루일과에서 커피가 빠지면 어쩐지 허전함을 느끼는 커피 마니아가 되었다. 쉬고 싶고 여유를 즐기고 싶을 때 커피와 함께 하면 남은 하루를 더 씩씩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운이 솟아나기 때문이다. 그런 커피가 어디서 오는지, 누가 만들고 있는지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나 자신이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참 신기하다. 그저 막연히 브라질 어디선가 오겠거니 했던 커피가 네팔의 말레 마을에서도 만들어지고 있었다.

히말라야 산맥에 깊숙이 자리한 마을, 아스레와 말레(좋은 사람들이 여기 정착하다라는 뜻). 네팔의 카트만두에 도착해서도 차를 타고 낭떠러지 길을 쉼없이 달려가야 한다. 마을 입구로 가기 위해서는 중간에 차를 포기하고 험한 산길을 올라가야 하는 말레 마을은, 그래서 외지인의 손길이 닿을 수 없었고 도시의 온갖 소음에서 벗어나 천연의 그늘 아래서 커피 농사를 할 수 있었다. 해발 2,000 미터에 자리한 데다 (고지대일수록 커피 열매는 단단해지고 밀도도 높아진다고 한다), 이른 아침 마을 전체를 덮는 안개까지, 농작물의 수확은 어렵지만 커피 농사에 필요한 최적의 환경이 갖추어진 그 곳에서 몇 가구가 커피를 희망으로 여기며 커피 농사에 매진하고 있다. [히말라야의 선물]에는 이런 말레 마을 사람들 각각의 슬픔과 애환, 희망이 담겨 있다.

22세의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은 미나. 그녀는 먹성 좋은 네 아이와 장난꾸러기 두 마리의 염소를 책임져야 한다. 남편이 떠나고 어려운 살림에 매일의 양식을 걱정해야 하지만 그녀에게는 네 명의 아이와 커피 농사가 희망이다. 커피를 잘 재배해서 수입이 생기면 아이들을 교육시킬 수도 있고 학용품을 사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태어났다면 한창 젊음을 즐길 나이에 미나는 황무지에 커피 묘목을 심기 위해 잡초를 뽑고 돌을 골라냈다. 말레 마을에서 가장 꼭대기 집에 사는 움나트와 수바커르, 꺼멀라와 그들의 어머니 다니사라. 우등생이었던 움나트는 상급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커피 농사에 매달리지만 폭우로 커피 나무를 잃은 뒤 인도로 이주 노동을 떠났다. 그 뒤를 이어 열네 살 수바커르가 당당한 소년 커피 농부로 거듭난다. 가족의 행복을 위해 가족과 떨어진 멋진 남자 다슈람. 그는 커피가 두 번 익으면 돌아온다고 가족들에게 약속했다. 사랑하는 아내와 귀여운 두 딸을 위해. 말레 마을에 처음으로 커피를 들여온 데브라스, 가장 많은 커피 나무를 소유한 둘씨람, 커피 농사에 모든 열정과 노력을 바치는 이쏘리. 열 살 아들에게 글을 배우면서도 행복한 서른 여덟(으로 추정되는) 로크나트.

비록 힘들고 어려운 살림이지만 그들의 웃음은 눈부시다. 어쩌면 이렇게도 순박하게 활짝 웃을 수 있는지. 가지고 있으면서 더 많이 가지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가족의 행복을 위해 정성스레 커피 나무를 돌보는 말레 마을 사람들. 나는 그 중에서도 이쏘리의 이야기가 마음에 남았다. 다른 형제들과는 달리 가난한 살림에 몇 그루 밖에 커피 나무를 가지지 못했던 이쏘리. 하지만 커피 나무에 대한 그의 열정은 말레 마을 사람들 모두가 인정할 정도로 뜨겁다. 그런 그의 커피 나무가 폭우로 인해 다 쓸려가고 한 그루밖에 남지 않았다. 살아남은 한 그루의 커피 나무를 '희망의 나무'라 부르며 이쏘리는 다시 일어선다. 그리고 다가온 수확의 시기. 1kg에 불과한 수확량을 들고 이쏘리는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절망의 시간을 견딘 후 얻은 눈 앞의 수확에 감사하는 이쏘리의 순박함이 그대로 느껴지는 부분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공정무역에 대해 알게 되었다. 저개발국 생산자에게는 정당한 몫, 공정한 대가가 돌아가도록 하고 소비자는 합리적인 가격에 물건을 구매할 수 있는 운동이라고 한다. 특히 책에 소개된 '아름다운커피'는 저개발국 농부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될 수 있도록 공정무역 원칙 아래 커피를 생산하고 수입하는 곳이다. 말레 마을 사람들의 커피도 공정무역을 통해 올바른 대가를 받고 전 세계로 퍼져나가면 좋겠다. 그래서 이주 노동을 떠난 움나트가 돌아와 상급학교에도 진학하고, 슬픔을 참으며 가족들과 헤어져야 했던 다슈람도 돌아와 가족들과 행복한 웃음을 짓게 되기를.

말레 마을에는 펄핑 (수확할 시기가 된 빨간 커피 열매의 껍질과 과육을 제거하는 과정) 기계도 들어왔다. 이제 그들의 커피는 더욱 좋은 품질로 거듭 태어나 말레 마을 사람들의 열정에 한층 불을 지필 것이다. 내가 커피 한 잔 하며 글을 쓰는 지금도 그들은 커피 나무에 온 신경을 쓰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남일같지 않다. 이 책을 통해, 그리고 지금 마시는 커피 한 잔을 통해 나는 가지 않아도 그 곳 사람들과 친구가 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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