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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누구도 아닌 너에게 - 제142회 나오키상 수상작
시라이시 가즈후미 지음, 김해용 옮김 / 레드박스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시크릿가든>의 김주원은 길라임과 혼인신고를 한 후, 그 사실을 알고 쓰러진 어머니의 병실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언젠가 한 번은 후회할 거라고. 하지만 후회하면 후회하는대로 그 여자와 살아갈 거라고. <내 이름은 김삼순>의 현진헌은 삼순이에게 가기 위해 옛 여자친구에게 이별을 고하며, 너 가면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그녀에게 또 이렇게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죽을 걸 알면서도 산다-고. 사랑, 그게 뭐 대단한 거라고. 라며 뻥 날려버리기에는, 우리 모두 사랑에 너무 길들여져 버렸다. 사랑을 하지 않을 때도, 사랑을 하고 있을 때도. 시간이 흐를수록 농도와 깊이를 바꿔가며 끊임없이 마음을 괴롭히는 감정. 사랑했다가,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가, 다른 사람에게 상처도 줬다가, 결혼해도 후회할지도 모른다고 걱정도 하는 그 수많은 시간 속에서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정말 내 운명의 짝인지 확신한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그 말을 듣고서야 도카이 씨는 한 번도 향수를 보여준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함께 살면서 늘 그 좋은 냄새에 싸여 있었기에 오히려 아키오는 그 향수에 대한 관심을 잃었다. 아키오에게 그 냄새는 도카이씨 그 자체였다. -p174
이 작품의 표제작 <다른 누구도 아닌 너에게>에서 일견 우유부단하고 아무 특징없는 사람으로 비춰지는 아키오는, 운명의 상대를 발견했을 때는 이 사람이 틀림없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을 거라고 믿는 남자이다. 그는 그 운명의 증거가 '향기'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그 사람' 자체가 증거였음을 깨닫게 된다. '사람'을 보지 않고 눈에 보이는 '증거'를 쫓아가다 보면 운명의 상대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표식은 어디에서나 찾을 수 있을 터. 저마다의 매력은 존재할 테니 말이다. 눈에 띄게 아름답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은 그 사람을 농담의 대상이라고만 생각할지라도 내 마음 안에서 빛나는 단 한 사람. 증거라고 생각했던 것이 결국은 그 사람 자체였음을 깨닫게 하는 사람이 바로 운명의 짝이 아닐까.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의지가 되고 행복을 가져다 주는 사람.
나, 왔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 길밖에는, 그렇게 각오하고 왔어요. 그런데 대체 무슨 일이에요? -p292
단순하고 평범한 사랑을 그린 <다른 누구도 아닌 너에게>에 비해 <둘도 없이 소중한 너에게>는 건조하고 퇴폐적인 냄새를 풍기는 커플의 이야기다. 약혼한 남자가 있으면서 예전의 불륜관계를 지속하는 미하루와 구로키. 약혼자에게서는 얻을 수 없는 것을 구로키를 통해 맛보면서 그와의 관계를 지속하는 미하루는 그를 사랑하면서도 좀처럼 마음을 인정하지 않는 여자다. 구로키 또한 입으로는 쿨한 관계, 서로 책임을 지지 않는 관계를 선호하는 척 떠들지만 내 눈에는 그들 모두 사랑 앞에서 겁내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이런 부족한 나와 결혼해줄 거냐고 묻지 못해 늦게 사랑을 깨닫는 커플. 약간 변태적인 관계를 갖는 커플임에도 그 몸부림들이 어쩐지 애달파서, 기묘한 느낌이 들게하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과연 나오키상의 선정 기준은 무엇일까를 궁금하게 만든 작품들이기도 했다. 섬세한 감정 묘사가 뛰어나서 남자 작가임에도 여성으로 자주 오인받는다는 시라이시 가즈후미. 그 감성이 잘 전해지지 않았다는 것은 결국 원어로 접했을 때만 느낄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이야기인 거다. '혼을 부르는 걸작'이라거나 '아찔할 정도로 감동했다' 거나 하는 느낌은 받지 못했으니까. 그럼에도 자꾸 이 작품에 마음이 가고 신경이 쓰이는 것은 그 주제가 '사랑'이기 때문일까.
사람들 얼굴에 사랑표지판이 있어서 '나는 너를 사랑해' 라거나 '내가 너의 운명의 짝이야'라거나 '너와 결혼하고 싶어' 와 같은 말들이 감정에 따라 드러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같은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나를 사랑하는지 아닌지, 결국 우리가 고민하는 것은 그 한 가지다.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만큼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해 주면 좋겠다는 것. 그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서 우리는 상처입고 아파한다. 나중에 후회하면 어때. 아이스크림을 고르는 일에서조차 후회는 있는걸. 후회해도 좋다고, 그 후회까지 떠안고 같이 가고 싶다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운명의 증거'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