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의 선물 - 커피향보다 더 진한 사람의 향기를 담은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이야기
히말라야 커피로드 제작진 지음 / 김영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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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에는 마법이 숨어있다. 굳이 마시지 않아도 그 향만으로도 기분을 포근하게 만들어주는 커피. 맛이 어떤지, 무엇 때문에 빠져있는지 정확히 설명하지도 못하면서 우리는 커피를 즐긴다. 나도 언젠가부터 하루일과에서 커피가 빠지면 어쩐지 허전함을 느끼는 커피 마니아가 되었다. 쉬고 싶고 여유를 즐기고 싶을 때 커피와 함께 하면 남은 하루를 더 씩씩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운이 솟아나기 때문이다. 그런 커피가 어디서 오는지, 누가 만들고 있는지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나 자신이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참 신기하다. 그저 막연히 브라질 어디선가 오겠거니 했던 커피가 네팔의 말레 마을에서도 만들어지고 있었다.

히말라야 산맥에 깊숙이 자리한 마을, 아스레와 말레(좋은 사람들이 여기 정착하다라는 뜻). 네팔의 카트만두에 도착해서도 차를 타고 낭떠러지 길을 쉼없이 달려가야 한다. 마을 입구로 가기 위해서는 중간에 차를 포기하고 험한 산길을 올라가야 하는 말레 마을은, 그래서 외지인의 손길이 닿을 수 없었고 도시의 온갖 소음에서 벗어나 천연의 그늘 아래서 커피 농사를 할 수 있었다. 해발 2,000 미터에 자리한 데다 (고지대일수록 커피 열매는 단단해지고 밀도도 높아진다고 한다), 이른 아침 마을 전체를 덮는 안개까지, 농작물의 수확은 어렵지만 커피 농사에 필요한 최적의 환경이 갖추어진 그 곳에서 몇 가구가 커피를 희망으로 여기며 커피 농사에 매진하고 있다. [히말라야의 선물]에는 이런 말레 마을 사람들 각각의 슬픔과 애환, 희망이 담겨 있다.

22세의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은 미나. 그녀는 먹성 좋은 네 아이와 장난꾸러기 두 마리의 염소를 책임져야 한다. 남편이 떠나고 어려운 살림에 매일의 양식을 걱정해야 하지만 그녀에게는 네 명의 아이와 커피 농사가 희망이다. 커피를 잘 재배해서 수입이 생기면 아이들을 교육시킬 수도 있고 학용품을 사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태어났다면 한창 젊음을 즐길 나이에 미나는 황무지에 커피 묘목을 심기 위해 잡초를 뽑고 돌을 골라냈다. 말레 마을에서 가장 꼭대기 집에 사는 움나트와 수바커르, 꺼멀라와 그들의 어머니 다니사라. 우등생이었던 움나트는 상급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커피 농사에 매달리지만 폭우로 커피 나무를 잃은 뒤 인도로 이주 노동을 떠났다. 그 뒤를 이어 열네 살 수바커르가 당당한 소년 커피 농부로 거듭난다. 가족의 행복을 위해 가족과 떨어진 멋진 남자 다슈람. 그는 커피가 두 번 익으면 돌아온다고 가족들에게 약속했다. 사랑하는 아내와 귀여운 두 딸을 위해. 말레 마을에 처음으로 커피를 들여온 데브라스, 가장 많은 커피 나무를 소유한 둘씨람, 커피 농사에 모든 열정과 노력을 바치는 이쏘리. 열 살 아들에게 글을 배우면서도 행복한 서른 여덟(으로 추정되는) 로크나트.

비록 힘들고 어려운 살림이지만 그들의 웃음은 눈부시다. 어쩌면 이렇게도 순박하게 활짝 웃을 수 있는지. 가지고 있으면서 더 많이 가지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가족의 행복을 위해 정성스레 커피 나무를 돌보는 말레 마을 사람들. 나는 그 중에서도 이쏘리의 이야기가 마음에 남았다. 다른 형제들과는 달리 가난한 살림에 몇 그루 밖에 커피 나무를 가지지 못했던 이쏘리. 하지만 커피 나무에 대한 그의 열정은 말레 마을 사람들 모두가 인정할 정도로 뜨겁다. 그런 그의 커피 나무가 폭우로 인해 다 쓸려가고 한 그루밖에 남지 않았다. 살아남은 한 그루의 커피 나무를 '희망의 나무'라 부르며 이쏘리는 다시 일어선다. 그리고 다가온 수확의 시기. 1kg에 불과한 수확량을 들고 이쏘리는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절망의 시간을 견딘 후 얻은 눈 앞의 수확에 감사하는 이쏘리의 순박함이 그대로 느껴지는 부분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공정무역에 대해 알게 되었다. 저개발국 생산자에게는 정당한 몫, 공정한 대가가 돌아가도록 하고 소비자는 합리적인 가격에 물건을 구매할 수 있는 운동이라고 한다. 특히 책에 소개된 '아름다운커피'는 저개발국 농부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될 수 있도록 공정무역 원칙 아래 커피를 생산하고 수입하는 곳이다. 말레 마을 사람들의 커피도 공정무역을 통해 올바른 대가를 받고 전 세계로 퍼져나가면 좋겠다. 그래서 이주 노동을 떠난 움나트가 돌아와 상급학교에도 진학하고, 슬픔을 참으며 가족들과 헤어져야 했던 다슈람도 돌아와 가족들과 행복한 웃음을 짓게 되기를.

말레 마을에는 펄핑 (수확할 시기가 된 빨간 커피 열매의 껍질과 과육을 제거하는 과정) 기계도 들어왔다. 이제 그들의 커피는 더욱 좋은 품질로 거듭 태어나 말레 마을 사람들의 열정에 한층 불을 지필 것이다. 내가 커피 한 잔 하며 글을 쓰는 지금도 그들은 커피 나무에 온 신경을 쓰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남일같지 않다. 이 책을 통해, 그리고 지금 마시는 커피 한 잔을 통해 나는 가지 않아도 그 곳 사람들과 친구가 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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