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밤의 피크닉
온다 리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05년 9월
평점 :
한권의 소설책이지만 읽는이에 따라서 자기만의 상상과 경험과 추억을 바탕으로 소설은 재구성 되기 마련이다. 난 이 책을 읽는 내내 고등학교때 수학여행이 계속 오버랩되어 더디게 더디게 읽어나갈수 밖에 없었다. 그 때의 추억 한스푼 떠서 천천히 떠올리며 멍하니 있다가 "이럴때가 아니지!" 하고는 다시금 정신을 차리고 다음 단락부터 읽기 시작했다. 묘하게 동질감을 느끼게 만드는 무언가가 존재했다.
이 책의 학교처럼 우리학교도 남녀공학이었다. 1반에서 4반까지는 남자반 5반에서 8반까지는 여자반으로 나뉘었으며, ㄷ자 형태로 여자반 남자반을 묘하게 나누어놓은 형상의 학교였다. 그렇다보니 평상시에는 그다지 서로를 인지하지 못한채 여고인것처럼 남고인것처럼 살다가 수학여행을 가서야 맞다 우리학교가 남녀공학이었구나 하며 뒤늦은 탄성을 외쳤다.
그건 그렇고 소설속의 보행제와 비슷한 느낌의 경험은 수학여행을 가서 며칠이 지나고 설악산을 등반했을때 그때였다. 여자애들은 보폭도 느리고 속도도 느리다보니 선생님들이 여자반을 먼저가게 만들고 남자반이 그 뒤를 따르게 만들었으나 10분 정도만 지나면 밑에서 마치 육식짐승처럼 맹렬하게 돌진하는 남자반들로 인해 뒤섞이기 일쑤였다. 단지 흔들바위에서 사진을 찍는다는 목적하에 이 산행은 시작되었음을 뒤늦게 감지한 우리들은 "허어... 이걸 보려고 여기까지 이렇게 고생하며 땀흘리며 올라온게야!" 하는 표정으로 선생님들을 쳐다보았다.
뭐 이걸로 오늘 산행은 끝이겠거니 했는데 이게 왠걸 사진을 다 찍고나자 다시 복귀를 외치시며 숙소로 일제히 돌아가자는 명령이 떨어졌다. 가자마자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마치 군인처럼 이상하고 커다란 음악소리에 맞춰서 두시간 오침을 명받았다. 정말 꿀맛같이 잠들었다. 그리고 그 짧디짧은 두시간후 또 이상한 소리에 맞춰서 강제로 기상을 명받고 다시 산행에 올랐다. 이번에는 비선대가 목적지란다. 또 단체 사진을 찍기 위해 가는것임을 말하지 않아도 알수있었다. 이럴려면 왜 다시 숙소로 돌아갔단 말인가? 그냥 두군데 모두 한번에 갔다가 숙소로 돌아가서 밥을 먹는게 낫지 왜 이런 지독한 산행을 하느라 하루를 보내야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며 투덜투덜 거리긴해도 반기를 들거나 반항을 하는 녀석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그러려지 하며 걷고 또 걸을수 밖에...그건 그렇고 또 다른 폭포에도 들러서 거기서 또 찰칵!
올라올때는 친구들과 정답게 조잘조잘 이야기를 나누며 재미나게 걸었지만 내려가는 길에서는 지치고 힘들고 짜증나고 또 남자반에게 따라잡히지 않겠다는 무언의 의지를 가슴에 품은 여자애들이 그 내리막길을 남학생들처럼 돌진했던 것이다! 빨리 돌아가서 쉬고싶다는 생각에 그렇게 숨차게 뛰어서 내려왔던 것이다. 하여튼 그 날 우리는 3차에 걸친 산행때문에 하루를 몽땅 헌납해야 했었다.
바로 이 산행의 기억이 이 책의 보행제를 읽어내는데 계속 끼어들었던 것이다. 하여튼 입에서 단내나도록 뛰고 또 뛰다가 걷다가 칭얼댔으며, 너무 지쳐서 밥맛보다는 잠이 그리웠고, 조잘조잘 끊임없이 쉴새없이 움직이던 여고생들의 입을 꾹 다물게 만든 그 공유점탓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어느새 잊혀졌던 그 힘들었던 하루를 다시 기억속에서 끄집어내게 만들었다. 지금같으면 이런 계획을 세워놓고 하라고 한다면 절대 안한다고 못한다고 날 죽여~~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도망쳤을 것이다. 그때는 하라면 하라는 대로 순순히 따르던 반항심 제로의 아이였기 때문에 이런 추억이라도 남은 것인지도... 그 당시엔 힘들었고 지쳐서 잊고 싶은 기억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이런 기억도 추억이 되는것 같다. 오히려 더 생생하게 기억속에 각인이 되어있음을 알게되었으니깐! 이 책속의 주인공들도 몇년의 시간이 지나면 강렬한 기억과 추억에 사로잡혀서 그 기억을 맛보며 씨익 웃을것이다. 그 시절에서만 느낄수 있는 기억이기도 하고, 혼자만이 아니라 단체 모두가 함께 공유된 기억을 맛볼 수 있는 유일한 시절이다! 그래서 멋진것이라고! 책속에서 이런 문장이 있었다.
"모두 줄지어 함께 걷는다. 단지 그것뿐인데, 어째서 이렇게 특별한 느낌인 걸까" 라고...
그냥 아무것도 아닌것 같은데도 좋아하는 친구들과 같은 기억을 공유하며 고생을 하고 해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멋진거라구~~! 하고 대답해주고 싶다. 이 녀석들때문에 괜시리 나까지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고 신나게 되고 말았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깨달았다. 하여튼 고맙다 이녀석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