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츠제럴드 - 미국 문학의 꺼지지 않는 ‘초록 불빛’ 클래식 클라우드 12
최민석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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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학을 전공했음에도, 대학 다닐 때 영문학 자체를 이해 못했어요. 문학이 담은 메세지와 상징을 이해하기 보단, 스토리 위주로 들여다 봤는데,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겠고 무엇보다 인간의 내외면적이 밑바닥을 보여주거나, 어둡고 불행한 스토리로 전개되어서 책장을 넘기는 그 자체가 싫었던 것 같아요. 가뜩이나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힘들어 주겠는데 우울한 문학마저 접하는 것을 꺼려했죠. 왠만해선 남탓을 안하고 싶은데, 영문학을 대학에서 어떻게 접하는지 제대로 배우지 못했음을 탓하고 싶어요. 그런데, 대학의 울타리를 벗어나 대학 시절에 접한 문학을 다시 만나고 그 문학이 담은 메세지와 상징, 철학, 그리고 교훈 등을 인지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강의나, 해설서 등을 통해서 문학을 마주하니, 문학이 너무나 재미있고 이젠 흥미를 붙이기 시작했습니다. (진작에 이렇게 접했으면.. 암튼) 많은 문학 중에, 가장 흥미롭게 여기는 『위대한 개츠비』글로 전개되는 개츠비의 이야기가 사실 이해되지 않아서 레오나드로 디카프리오 주연의 영화 『위대한 개츠비』를 먼저 관람해서 스토리 전반을 이해할 수 있었고, 또 시중에 다양하게 번역된 『위대한 개츠비』는 여전히 뜨거운 감자인데, 원문과 번역서를 번갈아보면서,『위대한 개츠비』를 더 가까이하고 싶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소설가 최민석이 『위대한 개츠비』의 저자 스콧 피츠제럴드의 삶의 여정과 발자취를 따라 가면서 피츠제럴드의 삶이 『위대한 개츠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들여다 볼 수 있었습니다. 


■ 클래식클라우드 피츠제럴드 내용 

이 책은 소설『위대한 개츠비』에만 국한된 내용을 담지 않고, 저자 스콧 F. 피츠제럴드의 생애를 다루고 있습니다. 소설가 최민석이 피츠제럴드가 태어나 자란 곳, 다니던 학교, 그가 머물렀던 지역과 호텔, 카페 그리고 그와 그의 가족들이 잠든 곳을 들리면서 피츠제럴드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피츠제럴드의 입장이 되어봅니다. 무엇보다, 미국의 계급사회, 상류사회를 통해서 받은 상처와 열등감, 혹은 화려한 상류사회를 향한 동경이 그가 써왔던 무수한 작품들 속에 베어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대로, 소설가 최민석이 피츠제럴드의 발자취를 따라, 피츠제럴드가 머물렀던 호텔과 지역 등을 사진으로 들여다 볼 수 있고, 피츠제럴드의 첫 사랑, 그의 아내와 딸,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피츠제럴드 자신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그리고 그의 작품 속에 어떻게 묘사되는지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느낀 점 

21세기 현대 미국 대학에서 가장 많이 읽히고, 미국에서 매해 30만권 이상 팔리고 출판사 랜덤하우스가 꼽은 "영어로 쓴 위대한 20세기 소설" 중 2위를 차지한 소설『위대한 개츠비』(p. 47). 1920년, 스콧 F. 피츠제럴드는 첫 장편소설『낙원의 이편』으로 단시간에 인기 작가로 거듭나면서 호화로운 생활을 영위하다가, 5년 후, 1925년 두 번째 장편소설『위대한 개츠비』를 출간하지만, 첫 데뷔작에 비해 큰 인기를 끌지 못합니다. 『위대한 개츠비』는 그가 죽은지 10년이 되어서야, 서서히 빛을 발하기 시작합니다.

스콧 F. 피츠제럴드가 비극적인 삶을 살다간 작가 중에 한 사람이라는 건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소설가 최민석이 피츠제럴드 생과 작품에 관한 모든 자료와, 피츠제럴드의 발자취를 따라, 그가 머물렀던 곳과 마주하며 간접적으로 그가 되어보는 글의 전개로, 그의 삶이 열등감과 우월감에 뒤죽박죽 섞여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스콧 F. 피츠제럴드는 가구 사업가 아버지와 부유한 이민자의 딸 사이에서, 1896년에 태어났습니다. 피츠제럴드는 살아 생전에, 신분 상승에 대한 욕구가 참 강했는데, 그 영향은 이민자 출신의 어머니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어머니는 그를 무리해서라도 명문가 자제들이 다니는 학교에 보냈으나, 그는 학교생활을 하면서 상류사회로부터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낍니다. 열등감이 극에 달하기 시작한 계기는, 시카고 부호의 딸 지네브라 킹으로부터 실연을 당하는데, 이유는 집안이 가난하다는 이유였습니다. 첫 사랑으로부터 집안이 가난하다는 이유로 거부당했고, 앨라배마주 대법원 판사의 딸 젤다로부터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이유로 또 실연을 당합니다. 그러나, 상류사회로부터 경험한 상대적 박탈감을 토대로 쓴 그의 첫 장편소설 『낙원의 이편』이 대히트를 치면서, 그는 젤다에게 다시 청혼을 하고 결혼에 성공합니다. 데뷔작의 성공으로, 그는 지난 시간의 서러움을 해소라도 하듯, 아내와 함께 상류층 사교계에 몸을 담으면서 사치스러운 생활을 즐깁니다. 그러나, 영원할 것만 같은 그의 상류층의 삶은 그리 오래가지 않습니다. 아내 젤다가 조현병 등에 시다리고, 그 또한 술에 의존하는, 불완전한 삶을 아슬아슬하게 살아갑니다. 한 때 누렸던 화려했던 삶을 포기하지 못했던 스콧 F. 피츠제럴드. 1920년대 유흥, 향락, 사치와 쾌락에 사로잡힌 소비지향적인 시대로, 그는 늘 상류사회에 대한 동경과, 열등감으로 똘똘 뭉쳐있었고, 그의 삶이 있는 그대로 투영된『위대한 개츠비』를 출간합니다. 소설가 최민석이 언급한대로, 『위대한 개츠비』는 자전적 소설입니다. 개츠비가 저자 자신이라고 해도 될 정도입니다. 

『위대한 개츠비』를 단순히, 첫 사랑을 되찾고 싶어서 금의환향한 개츠비의 순애보와 비극을 담은 소설이라고 하기엔 이릅니다. 돈이 최고였던 시대, 물론 지금과 전혀 다를바 없는 시대이긴 하지만, 그 당시에 존재한 계급사회에 대한 비판과 허무주의를 담고 있습니다. 부와 명예로 사람을 평가하던 시대, 상류사회로 향하는 사다리를 타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부와 명예를 얻었으나, 어느순간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리는, 인생이 덧없음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스콧 F.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가 그가 죽은지 10년 후에 재조명 된 것은, 아마도 피츠제럴드가 미리 경험했던, 물질만능 계급사회로 인한 열패감에 시달린 사람들이 많아져서가 아닐까요? 

솔직히, 피츠제럴드 삶을 들여다 보면서 답답했습니다. 자신의 분수와 처지를 빨리 인정하고, 자신과 같은 예술적인 감각이 강했던 아내 젤다의 능력도 인정하면서, 자신의 형편에 맞는 삶을 왜 살지 못했냐며, 그를 질타하기도 했습니다. 자기다운 삶을 살기를 거부했고, 첫 데뷔작 만큼 명성을 얻을 만한 작품을 쓰려고 애를 썼고, 상류사회로 다시 넘어가기 위해서, 그는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자신을 죽음으로 모는, 삶에 대한 그의 태도가 거슬렸습니다. 하지만, 그 시대는, 지금과 같이 삶의 가치를 지향하는 시대가 아니라, 눈으로 보여지는 부와 명예로 사람을 판단하는 시대였기에, 그는 상류사회에 처절하게 집착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죽음의 끝자락에서, 물질을 쫓는 인생이 그만큼 허무하다는 것을 직감했을 겁니다. (그러나 끝까지 인정하지 않은 듯 하고요.) 그래서『위대한 개츠비』속 비극은, 부와 명예를 아무리 쫓아도 결국엔 허무하게 끝날 인생을 미리 예견한 듯 그려내고 있습니다. 부와 명예가 최고였던 시대,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그런 시대입니다. 가치지향적인 삶을 추구하지만, 여전히 자본주의 사회가 자리잡고 있어서, 노력해도 상류사회가 누리는 것 만큼 누릴 수 없는 시대입니다. 돈없으면 노력 조차도 배신하는 시대. 성공이 기회는 상류층에게만 주어지는 시대.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위대한 개츠비』에 열광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책글귀

p. 17 작가들은 대게 떠돌이다. 작가가 되기 전에 이미 모국의 곳곳을 다니며, 견문을 쌓고 경험의 지경으 넓히고 생각의 폭을 넓힌다(중략). 그러다 조면 본 것이 많아지고, 경험한 것도 많아지니 뭐라도 쓰고 싶어진다. 그런데 이들은 대게 하고픈 말을 가슴에 간직한 채 살기보다는, 경험한 것을 모두 말하고픈 족속이다. 일단 타자기 앞에 앉아서 손가락을 움직이는 순간, 자신이 경험한 것에서 받은 영감, 그 영감이 빚어낸 상상, 그리고 그 경험과 상상이 어우러져 창조한 새로운 무언가가 페이지를 채우기 시작한다.

p. 55-58아이로니컬한 것은 작가의 고통이 커질수록, 결과물은 더 빛난다는 것이다. 작가가 쓰지 못해 방황하는 것은 좋은 작품을 쓰겠다는 욕망이 커졌기 때문이다. 실패를 경험한 작가일수록 더욱 그렇다. 이럴 때 쓰고자 하는 작품의 기준은 높아져, 쓰는 행위는 고통스러워지지만, 피같이 토해낸 작품은 미완성일지라도 '가장 성숙한 작품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p. 107 전업 작가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글을 써야 한다. 취재지에서 문전박대를 당하고 생산성 없는 경험을 했다 해서, '바깥 공기 한번 성큼 했다'는 식으로는 쓸 수 없는 노릇이다. 피츠제럴드는 아내가 정신 병동에 입원해 있을 때에도, 더 이상 책을 내는 것이 불가능해 무명 시나리오 작가로 지낼 때에도, 계속 소설을 썼다. 빚더미에 앉았을 때에도, 계단을 오르내리기 벅찰 만큼 건강이 악화됐을 때에도, 죽기 며칠 전까지도 희망을 품고 재기작 원고를 썼다. 역으로 말하자면, 그는 언제나 써야 했던 작가였다.

p. 150 그나저나 작가는 어떤 존재인가. 자신의 콤플렉스마저도 창작의 동력으로 삼는 존재 아닌가. 피츠제럴드는 개츠비를 자기 대신 참전 시켜 무공 훈장을 받게 했다. 그리고 개츠비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는지 『위대한 개츠비』의 화자인 닉까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것으로 설정했다.

p. 153 (중략) 피츠제럴드가 받은 상처의 대부분은 태생적인 것이었다. 유년기에는 곱상한 외모 때문에 세인트폴의 고약한 소년들에게 시달렸고, 청소년기에는 뉴저지의 명문 카톨릭 기숙학교 뉴먼에서 상류층 자제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겪으며 지내야 했다. 대학생이 된 후에는 지네브라 킹의 아버지에게 거절당했다. 부자 가문 출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잘못이 아닌, 태생적 결정 요인에 의해 상처를 주고받는 미국 사회에 대해 그는 어찌 느꼈을까. 그리고 자신들만의 공고한 벽을 쌓아둔 미국의 지배 계층, 그 중에서도 부자들에 대해 어떻게 느꼈을까.

p. 201 『위대한 개츠비』야말로 원문으로 읽어야 하는 소설이다. 많은 역자들의 노력으로 여러 번역본이 나와 있지만, 그들의 노력과 성취와는 별개로 그 어떤 번역본도 이 아름다운 영어 문장을 완전히 옮기는 건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게다가 『밤은 부드러워』나 『낙원의 이편』과 달리, 『위대한 개츠비』의 문장은 심플하고, 정제돼 있다. 비록, 초반본에 많은 오류가 있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p. 287 시대와 전체적인 사회를 읽고 나면, 『위대한 개츠비』는 결코 단순한 소설이 아니게 된다. 이것은 아메리칸드림이 빚어낸 다분히 미국적인 욕망에 젖어, 사랑마저도 물질로 회복하고자 했던 한 인물의 실패담이다. 동시에, 그 시대가 겪은 사회적 병폐 현상들(향락, 소비주의, 허영)을 병풍처럼 펼쳐놓고 진행되는 사회적 거울이다.

p. 289 그럼에도, 내가 '개츠비'의 실패를 인정하는 이유가 있다. '문학은 태생적으로 슬플 수 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작가가 높은 성공의 탑을 쌓아 올린다 해도, 그 탑은 금세 무너질 수 있다. 당대 사람들의 비난에 의해, 독자의 외면에 의해, 시장의 외면에 의해, 혹은 스스로 미처 깨닫지도 못하고 저지른 실수에 의해, 비단 금전적인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아무리 좋은 작품으로 인정을 받은 작가라도, 이미 받은 찬사를 유지하거나, 그것을 뛰어넘는 작품을 쓰려 할수록 작가는 불행해진다. 성공한 작가가 되기는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이나 어렵고, 그 성공한 작가가 행복하게 자족하며 지내기는 스스로 하늘에 별을 만들어 걸어놓는 것만큼이나 어렵다.성공을 맛본 작가는 언제나 과거의 자신과 싸운다.

p. 289-290 살다보면 어려 경험이 축적되고, 그 경험들이 예상치 못한 화학적 작용을 일으켜 평소의 나라면 도저히 생각해낼 수 없는 것을 만들어낼 때가 있다. 작가의 전성기란 바로 이런 걸 써내는 때다. 이때, 신은 잠시 자신의 능력을 인간에게 빌려준다. 그리고 이 능력을 빌려 받은 평범한 인간을 평생 과거의 자신과 싸운다. 그 평범하지 않았던 때의 나를 회복하거나, 그때를 뛰어넘는 비범성을 위해 평생 끝없는 싸움을 나 자신에게 거는 것이다.


■ 본 포스팅은 서평단 참여로 제공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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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VS 80의 사회 - 상위 20퍼센트는 어떻게 불평등을 유지하는가
리처드 리브스 지음, 김승진 옮김 / 민음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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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까지도 조국 딸의 학력은 부모의 이권으로 인해 반영된 것이라며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죠. 솔직히 이런 이슈를 자주 접하면서 짐작할 수 있었던 건, 조국 가족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조국과 같은 특정계층이 자신들이 가진 재력과 인맥 네트워크로 자녀들의 스펙과 성공에 많이 관여한다는 것과, 우리나라 입시제도는 돈있고 빽이 단단한 계층에만 유리하도록 설계되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를 짐작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들의 자녀들에게만 유리할 수 있도록 설계한 입시제도로 이미 혜택을 본 계층이 이견을 가진 같은 계층으로부터 정치적인 기득권을 뺏기지 않으려고 역이용하면서 더 두드러졌기 때문입니다. 일반 서민들이 봤을 땐 자기 얼굴에 침뱉기이며, 다양한 혜택을 누리는 것과 동떨어진 서민들의 분노를 악용하여 여론을 조장하려는 것도 보이는데, 이에 나를 포함한 서민들은 그들만의 리드를 보면서 상대적인 박탈감만 더해질 뿐입니다. 단순히 자신들의 카르텔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서민들의 정서를 이용할 뿐입니다. 여전히 눈에 보이지 않는 계급사회는 존재하고, 상위20%는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불평등을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상위20%가 누리는 불평등에 대한 씁쓸한 현실을 리처드 리브스의 20vs80의 사회를 통해서 사실적이며 적나라게 들여다 볼 수 있었습니다. 



20vs80의 사회 내용 및 구성


우리는 보통 상위1%를 "상류층"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어떤 학자들은 슈퍼리치나 상위1%에나 초점을 두어 "중상류층"의 책임을 빼놓는다(p. 39)고 저자는 언급하며 자신도 중상류층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는 영국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넘어와 미국 시민이 되었습니다. 미국이라는 나라를 새로운 조국으로 삼게 된 이유는 "기회"에 대한 이상 때문(p.19)이었다고 말합니다. 영국이라는 나라에선 계급의 장벽이 존재한 반면 미국은 계급없는 사회라는 점에서 매료되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살아보니 미국의 계급구조가 영국보다 더 견고하다는 사실을 깨닫곤 크게 낙심했다고 합니다. 상위 20%중 상위 1%를 제외한 나머니 19%가 미국 전체 부의 절반이상을 차지하고 있다(p.36)고 합니다. 저자는 자신이 포함된 중상류층이 그들의 위치와 계층의 벽을 단단하게 유지하기 위해 어떤 수단과 방법을 이용하는지를 자료와 다른 학자들의 주장을 기반하여 적나라게 보여주고 그만의 통찰력을 제시하고 반성하고, 상류층과 중상류층이 유지하는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는 방법들을 제시합니다. 



느낀 점 


jtbc 드라마 "스카이캐슬"이 한창 인기를 끌었고, 그 드라마에서 담고 있는 내용들이 시청자들을 자극했죠. 상류층의 사모님들이 자신의 남편은 왕으로, 자녀들은 왕자 혹은 공주로 만들어주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상류층 사람들의 삶을 풍자했던 드라마였죠. 예전엔 이와 같은 소재의 드라마를 보면, 가짜이길 바랐습니다. 그러나, 드라마 소재 또한 사실을 기반하기에, 드라마를 보면서도 참 씁쓸하더라고요. 실제로 상류층과 중상류층은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이 가진 재력과 인맥은 자신들만을 위한 것이지, 서민들과 절대 나눠가질 생각도 없으며, 무엇보다, 그들의 계층의 사다리에서 내려오지 않기 위해서 더 안간힘을 쓴다는 것이죠. 특히, 우리나라에선 고위직 공무원, 언론인, 기업가, 문화예술 분야, 출판, 미디어 등 영향력과 기득권을 가지고 있으며, 나라를 위한다고 머리를 꽁꽁 싸맨다곤 하지만, 여론 조장을 위해서 서민들을 활용할 뿐 실제론 자신들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한 몸부림에 불과합니다. 나라를 위한다는 정치인들은, 우리나라 교육현실의 취약점을 알기 때문에, 자신들의 자녀는 주로 해외유학을 보내는 걸 보면 알지 않나요. 우리나라 교육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면 왜 유학을 보냅니까? 교육뿐만 아닙니다. 상위20%의 사람들은 자녀의 교육에 이어 사회에 성공적으로 자리잡는데도 크게 관여합니다. 자신들의 거대한 인맥을 활용해서, 자녀들을 취업시킵니다. 그들의 힘으로 그들의 자녀를 다양한 기회에 노출시킬 수 있으며, 기회도 잡을 수 있죠.


예전엔, 진심으로 노력만 하면 뭐든 이뤄낼 수 있는 세상이긴 했습니다. 그래서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도 있었는데, 요즘엔 그 말이 아무 소용없다죠. 노력해도 연줄과 빽이 없으면 노력이 물거품되는 건 문제도 아닙니다. 조교시절에, 우수한 학생이 우수한 스펙을 가졌음에도 자신이 지방대생이라는 이유로, 자신보다 성적이 현저하게 낮은 서울지역 대학 출신의 학생이 취업한 사실을 두고 분개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그 당시 나는 "이번에 운이 없어서 그럴꺼야. 지방대는 문제가 아닐꺼야"라며 어줍잖게 위로한 적 있었는데, 알고보니 학생이 지원했던 기업이 지향하는 출신대학 가이드라인이 존재했더라고요. 그때 불평등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해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노력하면 언젠가는 기회가 올 것이라는, 사회에 대한 막연한 기대가 있었거든요. 그러나 나에게도 일로서든 뭐든 열심히 해도 사회적인 안정을 누리기 위한 힘을 실어주는 이들은 없었고, 그들은 그들만의 자릴 지키기 위해 나를 활용하는 정도로 끝내는 걸 보곤, 심히 분노한 적 있었습니다. 상위20%의 삶을 유지시켜주기 위해 나머지 80%가 희생하는 것이 과연 그들을 위한 것일까요?


저자 리처드 리브스처럼 양심적인 상류층 혹은 중상류층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계급사회는 여전히 존재하고, 가장 심각하게 생각해야하는 것은 계급의 분화가 아니라, 계급의 영속성이라고 합니다. 즉, 누리는 계층만 대대손손 누리며, 그렇지 못하는 계층은 늘 가난에 허덕여야 한다는 뜻이예요. 저자는 이러한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1) 계획하지 않는 임신과 출산을 줄이고 2)가정 방문 프로그램을 늘려 육아의 질을 높이며 3)더 훌륭한 교사들이 일할 수 있게 하며 4) 대학 학자금 조달 기회를 공정하고 만들고 5) 배타적인 토지 용도 규제를 없애고 6)동문 자녀 우대를 없애며 7) 인턴기회를 개방하고, 8) 역진적인 조세 보조 폐지로 자금을 마련하자는 등 다양하게 제시합니다.


저자는 미국 시민권자가 되고, 미국 여권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고 합니다. 미국의 개방과 평등에 매료되어 미국 시민권자가 되었지만 그의 옛 조국 영국의 계급구조보다 더 심한 미국의 계급구조에 낙담했으나, 그럼에도 미국에 대한 자부심 때문에라도, 그는 미국 상위20%의 불평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위와 같은 대안책을 제시하므로써, 미국의 개방과 평등을 지향하고 아메라칸 드림이 단순히 상위20%만의 기회 사재기의 기회가 아닌 다른 계층과 함께 나눌 수 있는 기회로 바뀌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져 있습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사람일수록, 옳지 않은건 정확하게 인정하고 개선하려는 저자의 태도를 보면서 자신의 조국과 자신이 속한 계층을 올바르게 지키는 방법을 배웁니다.


솔직히, 나 또한 지금보다는 나은 삶을 살고 싶어서 경제적인 조건을 개선하고 싶고 내 자식도 좋은 환경에서 키우고 교육시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하지만 나도 80%에 속하는 대중 중에 한 사람으로서, 기회라는 것이 아주 제한적이고 한정적이라는 점에서 앞으로의 삶이 막막하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자와 같은 학자들이 상위 20%가 누리는 불평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현실을 적나라게 직시하되 80%에 속한 나도 평등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을 들여다봅니다. 무엇보다 나도 언젠가는 지금보다 경제적인 여유를 누릴 수 있는 입장이 된다면 다같이 함께 누릴 수 있는 삶을 지향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내가 상류층 1%든 5%로에 들든, 다수의 사람들이 치열하게 희생해 준 덕분에 누릴 수 있는 삶이지 나만 잘해서 누리는 삶이라 생각하지 않거든요. 이런 초심, 꼭 마음에 간직하되 나를 성장시켜야겠습니다.



이 책을 추천드리고 싶은 분들


열심히 노력했음에도 사회적인 안정과 동떨어진 삶을 살아가는 모든 분들에게, 열심히 노력했음에도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 살아가는 모든 분들에게 꼭 추천드리고 싶어요. 우리들의 삶이 어떤 특정계층이 누리는 불평등으로 인해 제한적이었다는 걸 알게됩니다. 팔자 탓 환경탓 부모 탓만 해왔는데, 이 책을 읽으면 우리 팔자,우리환경과 우리 부모님들에게 한계가 많았기에 우리 조건을 탓할 이유는 없어집니다. 여단순히 예나 지금이나 존재하는 계급구조가 문제이며, 이 계급구조가 다수의 대중들에게 공통적으로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아닌, 그들만의 계층에서만 세습되고 꾸준히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이 계급구조가 평등한 수평구조로 바뀌기까진 얼마나 걸릴지 모릅니다만, 적어도 우리도 알건 알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상위20%만큼 가지지 못하고 배우지 못하고 인맥이 없다고해서 부당한 처우를 당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면 안되는 거잖아요. 세상에 태어난 이상, 우리모두는 가치있는 존재니까요. 


■ 책 속 글귀


p. 23-24 중상류층 아이들은 대개 양친이 있는 안정적인 가정에서 자라고, 부모 모두 교육 수준이 높으며, 좋은 동네에 살고, 인근 가장 좋은 학교에 다닌다. 또 다양한 재주와 능력을 계발하여 좋은 학위와 자격증을 딴다. 중상류층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유리하다.


p. 50 중상류층의 경제 수준이 높이진 것은 임금만의 결과가 아니다. 배우자도 매우 중요한 요인이었다. 대부분의 중상류층 가구에는 두 명의 고소득자가 존재한다. 가정은 이미 오래전에 생산의 주요 단위로서의 기능을 멈췄지만, 구성원들 간에 소득과 비용을 공유하는 도구로서는 여전히 효과적으로 기능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측면에서의 이득 역시, 학력, 가족 구성, 안정성 등에서의 격차 때문에 위쪽으로 쏠린다는 점이다. 사회 전체적으로는 결혼율이 낮아졌고 한부모 가정도 많아졌지만 중상류층에서는 아직 이런 추세가 그리 두드러지게 발견되지 않는다.

p. 51 가정은 위험과 자원을 분산하고 공유하는 기능을 한다. 따라서 남녀 모두에게 소득 격차는 결혼 기회의 격차로 한층 더 강화된다. 미국에서 고학력자는 단지 '결혼 가능성'만 높은 것이 아니라 '그들끼리 결혼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동류 짝짓기(assortative mating)"라는, 무척 낭만적이지 못한 표현으로 불린다. 간단히 말하면 대졸자는 대졸자와 결혼한다는 것이다. 학력이 어느 정도 두뇌를 반영하고 두뇌가 어느 정도 아이에게 유전된다면, 동류 짝짓기는 중상류층의 이점을 한층 더 강화하게 될 것이다.


p. 52- 53 대졸자가 두 명인 가구는 자녀에게 투자할 돈도 더 많을 것이다. 아이를 좋은 사립 학교에 보내거나 최고의 공립 학교가 있는 동네에 집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또 교육 수준이 높은 부모는 시간을 더 융통성 있게 조절할 수 있는 일자리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커서 일과 가정생활의 균형도 잘 맞출 수 있을 것이다. 반면 교육 수준이 낮은 부모(또는 한부모)는 불안정하고 유연성을 허용하지 않는 노동 여건에 처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중략) 노벨상을 수상한 경제학자 제임스 헤크먼은 부모 잘못 만나는 것은 "가장 큰 시장 실패"라고 불렀다. 중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는 이 '시장 실패"를 성공적으로 피한 셈이다. 


p. 59 정말로 그렇다. 미국의 중상류층인 우리에게 인생은 썩 괜찮다. 우리는 불황에서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쉽게 회복되었고 이제는 풍요로운 경제의 트랙에 다시 올라탔다. 우리가 계급으로서 누리는 이점은 은행 잔고 수준을 훨씬 넘어서 교육 수준, 직장에서의 통제력, 동네의 질, 자신 있게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능력, 건강, 식생활, 수명, 가족의 안정성까지 포함한다.


p. 88 오늘날 미국에서 중상류층의 지위는 어느 때보다도, 다른 어느 나라에서보다도 효과적으로 세습되고 있다.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단지 계급의 분화가 아니라 계급 분화의 영속성이다. 이는 미국인에게 매우 큰 경종을 울려야 마땅하다.


p. 92 미국인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 소득 불평등을 더 많이 용인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세대마다 가난한 사람들이 부유한 사람들과 공정하게 경쟁하며 더 뛰어난 사람이 성공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은 늘 승리자를 좋아했다. 하지만 승리자들이 공정하고 공평하게 이기기를 원했다.


p. 146 (중략) 계급의 영속성에 일조하는 또 다른 요인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바로 '기회 사재기'다. 이는 중상류층이 실력을 갖춰서가 아니라 경쟁의 판을 조작해서 승자가 될 때 발생한다.(중략) 나는 특히 세 가지의 기회 사재기 형태를 지적하고자 한다. 배타적인 토지 용도 규제, 불공정한 대학 입학 절차, 그리고 인턴 기회의 불공정한 분대다. 물론 이것이 다는 아니다. 세대 간 계급 재상산에 특히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이 세 가지를 집중적으로 살펴볼 것이지만, 기회를 사재기하는 방법은 이것 말고도 많다.


p. 151-152 '기회 사재기'라는 표현을 위대한 사회학자 찰스 탈리에게서 따온 것이다. 틸리는 대작 『지속되는 불평등』에서 집단 간 불평등을 영속화하는 두 가지 요인을 지적했는데, 하나가 착취, 다른 하나가 기회 사재기다. 착취는(마르크스주의적인 뉘앙스에서) 권력을 가진 사람이 타인의 노동으로 창출된 경제적 가치를 불공정하게 뽑아 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달리 기회 사재기는 타인에게 무엇을 가져오느냐가 아니라 당신 자신이 무엇을 화곱하고 있느냐와 관련이 있다. 탈리에 따르면, 어떤 집단은 "가치있고, 재생 가능하고, 독점하기 쉽고, 네트워크에 도움이 되고, 그 네트워크의 작동 방식에 의해 강화되는 종류의 자원에 더 접근할 수 있다." 이런 집단들은 "자신들이 그러한 자원에 대해 계속해서 통제력을 가질 수 있게 해 주는 신화와 제도를 만들고 접근권을 사재기함으로써 다른 이들이 그 자원을 누리지 못하게 막는다."


p. 160 대학의 신입생 선발 과정도 다양한 방식의 경제력, 연줄, 노하우가 있는 사람들이 유리하도록 기울어져 있다. 대학들은 학교 방문 프로그램에 참여한다든지 해서 해당 학교에 '강한 관심'을 보이는 지원자를 높이 평가한다. 조기 전형도 부유한 학생들에게 유리하다.


p. 166 미국은 대학들이 동문 자녀라는 지위를 입학 사정에서 고려하는 유일한 나라다. 영국의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조차도 20세기 중반에 이 관행을 없앴다. 또 얼마 전 옥스퍼드 트리니티 칼리지의 학장은 민주적인 현대 사회에서 대학들은 큰 기부금을 낸 경우라 해도 동문 자녀들을 특별히 고려해 주는 관행을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후견 제도와 마찬가지로 혈통 제도도 18세기의 옥스퍼드에는 존재했지마 21세기에는 부적절하다."


p. 178-179 기회 사재기는 하나의 커다란 기계와 작동해서 나오는 결과가 아니라 개인들의 작은 선택과 선호들이 일으킨 효과가 누적되어 생기는 결과다. 내 딸이 좋은 대학에 동문 자녀 자격으로 입학할 수 있게 조금 밀어 주는 것, 내 아드리 인턴 자리를 잡아 전문직 직업의 세계를 맛볼 수 있게 돕는 것, 주택 밀도를 낮게 유지하겠다고 말하는 후보에게 투표하는 것 등을 하나씩 따로따로 보면 사소해 보인다. 하지만 많은 "미시적 선호들"(경제학자 토머스 셸링의 표현이다.)이 그렇듯이 이런 것들이 종합되면 사회 전반의 문화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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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김종관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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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여러가지 정보가 담겨져 있거나, 자기계발을 위한 방법론들이 즐비한 책들에 빠져들다가도, 정보와 방법에 치여 때론 잔잔한 이야기를 담아 대화하듯 풀어낸 글 위로 눈을 살포시 올려두면 마음을 올려두는 것처럼 편안한 느낌에 매료될 때가 있고, 그 순간을 위해 차분하고 고요한 에세이를 찾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는 영화감독 김종관의 에세이 나는 당신과 가까운 곳에___있습니다를 읽으며 마음을 내려놔봤습니다. 



■ 나는 당신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내용 및 구성 


이 책은 최악의하루,페르소나_밤을걷다 등 다양한 단편영화를 만든 영화감독 김종관이 직접 쓴 에세이이며, 1)가까운 산책-10년 전 2)베를린 천사의 시 3)시네마 천국-영화와 기억 4)흐르다-추억과 이야기 5)어느 꿈속에서-10년 후 6)시나리오 로 총 6부로 구성되어 있어요. 저자는 "창작이 정체된다고 느꼈던 시기(p.9)"에 책에 담긴 글을 썼다고 언급합니다. 자신의 기억들을 모아, 어느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기억은 "자신의 창작에 베어들어 이곳저곳에 남아 있게 되었다(p.9)"는 프롤로그 속 글귀가 인상적입니다. 



느낀 점 


에세이의 제목에서 느껴지는 느낌은 참 든든합니다. 하지만, 제목과 에세이에 담겨진 글에서 느껴지는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은 참 달라요. 누군가의 기억과 추억에 들여다보는 기분이랄까요? 그리고 그 누군가의 일상의 편린 속에서 고요하고 평화롭게 흘러가는 기분이라서, 누군가의 기억와 추억이 벤 글귀를 따라 눈은 흘러갑니다. 마음을 내려놓기도 합니다. 특히, 시글벅적한 텔레비전 미디어에 빠져들다가, 그곳에서 나와 누군가의 기억과 추억으로 다시 시선을 돌리니 그렇게 평화로울 수 없어요. 삐쭉삐쭉 곤두 선, 더듬이 같은 신경이 차분하게 내려앉고, 글귀 한 자 한 자에 몰입합니다. 뭔가를 상상한다기 보단, 그냥 글감에서 풍겨지는 분위기와 느낌에 심취되더라고요.


특히, 영화도 만들고 글도 쓰는 저자의 글솜씨에 반하기도 했습니다. 단순한 글솜씨라기보단, 뭐랄까, 일상을 바라고 일상에서 접하는 느낌들을 생각치도 못한 다양한 표현들로 어떻게 꾸미는지.. 내 머리를 아무리 쥐어짜도 짜도,내 느낌을 예쁘게 꾸밀만큼 다양한 표현이 없어서 늘 고민이거든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아직까진 너무 이성적이고 차갑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래서 상대적으로 따뜻한 감성이 묻어나고 차분함이 젖어든 글귀를 보면 시선이 사로잡히고, 마음도 뺏깁니다. 부러워서요.

에세이 속 글귀는 단편적으로 쪼개져서 적힌고 채워진 글들이라, 연계성도 없고, 그렇다고 막~ 공감되는 글귀는 없습니다. 앞서 언급한대로 누군가의 추억과 기억을 들여다보고 따라가는 것에 더 가까워요. 그러다가 와닿는 글귀를 보면 시선을 고정하고 읽고 또 읽어봅니다. 이해될 때까지요. 산문같기도 하고, 함축적인 의미를 담은 운문같은 글귀들로 이뤄져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에 닿는 글귀를 보다가도 이해될때까지 여러번 반복해서 읽었어요. 영화감독 김종관의 글귀가 벤 일상이 잔잔한 편린으로 나의 기억 한 켠에 자리잡는 기분도 듭니다.



이 책을 추천드리고 싶은 분들

시끌벅적한 일상에서 벗어나, 잔잔하고 평화롭게 마음을 내려놓고 휴식을 취하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책 속 글귀


p. 55-58 한 시간 후 나는 어느 작은 숲길에 있었다. 깊은 그림자가 드리운 숲 안에서 잘게 부서져 들어오는 햇살들을 보고 있었다. 새들이 초현실적인 대화를 이어가고, 나는 거기서도 알아듣고 있다는 표정을 짓는다. 올레길을 걷다 보면 느끼게 된다. 눈뿐만 아니라 귀도 열어두어야 한다는 것을. 


p. 58-59 제주도에서 사실 올레길 외에도 수많은 길이 있고, 그 길만큼, 그 길을 지난 사람들만큼 서로 다른 추억과 사연들이 있다. 계절마다 날씨마다 다른 옷을 입고 기다리는 그 길들은 닳은 듯 닳지 않은 길이다. 그 많은 길들 중 하나인 올레길은, 길의 시작과 끝이 있지만 길을 걷는 목적은 그 끝에 있지 않다. 빨리 걸어도 좋고 천천히 걸어도 좋고, 쉬어도 좋고 뒤를 돌아봐도 좋다. 걸음이 멈추는 끝은 마을의 그루나무이거나, 작은 포구이거나, 해 질 녘의 텅 빈 해수욕장이곤 했다. 끝은 다음으로 이어진다. 그 끝에 선 기분은 마치, 보신각의 종이 올리며 새해가 되는 순간과 닮았다.


p. 78 발끝이 짓무를 때까지 걷고 싶을 때가 있다. 그 어떤 것에서 나 자신이 가장 멀리 떨어지길 바란다. 새로운 세상을 찾아 여행을 할 때 마주치는 낯선 풍경은 우주가 아닌 이상 낯익은 일면이 도드라지게 다가온다.

p. 81 별이 가득한 우주. 저마다 입증된 스타들이 가득한 광활한 그곳의 화려함에 눈 둘 곳 없다가, 이 그림 하나만을 담아 나왔다. 미술관을 나서 강으로 난 길을 걸으며, 마지막으로 본 이 그림이 수많은 별들 중에서 나만의 스타임을 알았다. 작가의 이름도 모른 채, 그 그림을 생각했다. 달이 보이지 않았지만 달에 비쳐진 풍경을 보고, 음악이 들리지 않았지만 그 공간 가득한 음악을 상상했다.


p. 83 그림을 보고 돌아오며, 나를 지나치고 내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중요한 것은, 무언가를 잃어버렸지만 그림이 주는 위안은 그대로였다는 것, 그리고 그 잃어버린 것들 때문에 위안은 더 깊어졌다는 것. 달빛에 의지한 여인들의 왈츠가 있는 그림은, 지금 여기에서의 남루한 재회로 인해 비로소 의미가 생겼다.

p. 98-99 집들 사이의 좁은 언덕길 틈으로 석양이 진 바다가 보였다. 전혀 기대하지 않은 않았던, 마주치리라 예상하지 못했던 공간에서 해 질 녘 바다를 보았다. 언덕 밑 해안선으로는 아까 보았던 파란 트레이닝복 소년들이 여전히 달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기대하지 않았던 아름다움에 당황했다. 매우 조용했고, 기분 좋은 바람이 불었고, 그 언덕에 서 있을 때 우리의 관계가 생겨났다. 내내 지치던 풍경에 나는 어느새 반해 있었다.


p. 136 완벽하게 좋은 순간, 그것을 나눌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자신에게 유익한 것인지. 소중한 사람과 함께 나눌 수 있는 기억은 스러져가는 환영을 잃어버리지 않는 단 하나의 방법이다.


p. 175 길 위에 시간들이 놓여있다. 길을 가면서 자주 뒤돌아보는 것은 의미가 없다. 목적지도 모른 채 달려가는 것도 의미는 없다. 오늘은 어제가 되고 내일은 오늘을 지나 어제가 될 것이다. 오늘은 오늘일 뿐이지만, 수많은 어제가 나의 오늘을 움직인다. 그러니까 오늘을 후회없이 살아야 한다거나, 그런 말을 하고 싶은 건 아니다. 다만 후회하며 엉망진창으로 살든, 고민하며 살든, 우리는 어제가 만들어낸 길들을 밟고 오늘이라는 길 위에 걷는다는 걸 생각한다.

p. 197 때때로 옛 동네를 찾아갔다. 옛 동네를 걸으며 그 생생한 추억에 지워지는 기억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 대부분의 공간은 사라졌고 누구도 그 기억을 위한 비석을 세워주지는 않는다. 허물어지는 언덕에 올라 사진을 찍고 글로 그 기억을 남겨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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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짤리면 지구가 멸망할 줄 알았는데 - 회사에서 뒤통수 맞고 쓰러진 회사인간의 쉽지도 가볍지도 않았던 퇴사 적응기
민경주 지음 / 홍익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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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익 목적을 위한 사회활동에 뛰어든건 딱 20살이었고, 딱 31살에 사회생활로 인해 많은 상처를 받고 일을 놓아야 했습니다.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 돈을 목적으로 일을 해야했기에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그 또한 사회생활의 일환인 줄 알고 버티면서 야근을 밥먹듯 하며, 나를 챙기도 못하고 살았던 지난 20대. 중간에 짤리기도 했지만, 일복이 있었던 덕분에 그나마 일을 이어서도 했지만, 조직을 위해서 치열하게 충성하며 열과성을 다했으나, 나에겐 어떠한 보상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정규직을 목표로 일했는데, 조직은 일개미같은 직원을 위해서 힘써주지 않는 현실을 보곤, 사회생활에 치를 떨곤 자발적으로 일을 그만둬야 했죠. 이후 나는 백수의 삶을 살았고, 지금도 내 길을 찾가 위해서 여전히 퇴사적응기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퇴사적응기라는 표현은 회사에서 짤리면 지구가 멸방할 줄 알았는데라는 책을 읽고 알게 되었고, 이 책을 읽으며 퇴사 후 경험해야 하는 물질적, 심적인 딜레마를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회사에서 짤리면 지구가 멸망할 줄 알았는데 내용 및 구성


저자는 서른 살 겨울, 회사에서 짤렸습니다. 엄청난 기업도 아니고, "코딱지만한 회사에서 쥐꼬리만 한 월급을 월급날 정확하게 받지 못해 찔끔찔끔 밀리면서 받다가 결국 방출 통보를 받은(p. 15)"은 저자가, 퇴사 후 경험해야 하는 여러가지 고충과 심리적인 고통을 겪었던 이야기를 1) 퇴사 후에 오는 것들 2) 퇴사하고 뭐하세요? 3) 도전에는 실패가 따르지 4)퇴사 후에 맞는 역풍 5) 바닥과의 조우 6) 다시 쌓아 올리기, 총 6파트로 나눠서 퇴사 후 인생적응기를 담고 있습니다. 



느낀 점


책의 제목처럼, 생계를 위해 돈때문에 일을 해야만 상황에 놓여서, 일을 그만두고 나면 세상이 무너지고, 우리 가족들은 전부 거지가 되어서 길바닥에 나 앉는 줄 알았습니다. 일 그만두면 지구가 멸망하는 듯한 절망의 소용돌이에 빠져들 것이라는 두려움에, 힘들어도 일을 꾸역꾸역 했던 시절이 있었어요. 윗 선에서 지시하면 지시하는대로 일을 척척 잘 해내는 편이어서, 총알받이도 역할도 자주 자처해야만 했습니다. 일에 있어서 책임을 다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고, 또 그렇게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내면 조직에선 날 알아주고 내가 어떤 실수를 해도 커버해 줄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으나, 큰 잘못을 하면 그 책임 또한 나 혼자서 짊어져야 했습니다. 조직의 일개 직원 중에 한 사람이었는데 말이죠. 따지고 보면, 함께 책임을 분담해야 할 조직에서 소위 "발뺌 현상"을 목격했고, 혼자서만 속 앓이하고 죄책감은 물론 주변사람들 눈치를 살펴야 했습니다. 심지어 직무유기라는 말도 들으면서 죄의식을 가중 시켜서, 책임감의 무게는 더해졌습니다. 그때 알았죠. 사회는 참 냉정한 곳이며, 같은 조직에 있어도 절대 엮이지 말아야 할 일에 있어선 동료를 커버해주는 것도 인색했습니다. 그리고 일개 직원이 조직의 성과를 올리기 위해 밤낮없이 일해도, 성과와 영광만 날치기할 뿐, 나에게 공을 돌리지도 않았습니다. 참 허무했고, 이용만 당하는 기분에 너무 화가나서 일을 박차고 나왔습니다. 퇴직금 명분으로 실업급여는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해서, 그나마 실업급여정도만 받고 초라하게 조직에서 나와야만 했죠.


퇴사를 하고 보니, 나에게 남은 것은 마이너스 500만원. 오로지 정직원만 되면 생활권에 안정이 찾아 올 것이라는 희망만 가지고, 돈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탓이었습니다. 계속 일을 할 것이라는 막연한 확신이 나를 챙기지도 못하고 재정관리도 하지 못한채, 그렇게 꾸역꾸역 나를 밀어붙였는데, 역시나. 자리도 잃고 돈도 잃었습니다. 나도 잃었고요. 노력의 배신이라는 말이 정말로 와닿았습니다. 일을 치열하게 하든 하지 않든, 내 그릇 챙기는 건 내가 해야 한다는 걸, 퇴사 후 암울한 삶을 살면서 뼈절이게 느꼈어요.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나와 비슷하게, 퇴사 후에 자신의 삶을 비관하고, 우울증까지 겹치는 등 여러가지 악재같은 딜레마에 빠져드는 이야기를 접하니, 이건 필히 사회문제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대학에 갓 입학해 졸업을 앞둔 선배들을 보며 저들은 심사숙고 끝에 자신의 진로를 확정하고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줄 알았고, 진심으로 그들을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들 중 대부분이 '어쩌다 보니' 그쪽 공부를 하고 있고 '어쩌다 보니' 그 회사에 취직해 '어쩌다 보니' 그 직무를 맡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p.87)"라는 문구를 보고 완전 공감. 남들하는대로만 살면 잘 살아지는 줄 알았죠. 그러나, 그 속에서도 개인의 노력이 필요하고, 개인의 집안 소득수준과 배경 등에 따라, 주어지는 기회는 한정되어 있으며, 기업은 개인의 성장을 기다려주지 않되, 책임만 다 떠넘기며, 만만한 사람을 아주 만만하게 대하는, 보이지 않는 차별 등이 사회구조 속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죠. 무엇보다 퇴사 후에 내 업을 갈고 닦는 건 결국엔 자기 몫이며, 사회가 만들어낸 딜레마에서 빠져 나오는 것도 결국 내 몫이라는 걸 알고, 내가 해낼 수 있는 작은 일부터 하나씩 해내가는 것이 정답이라면 정답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 동안에 생계문제 또한 혼자서 껴안아야 하고요. 아효-!


그럼에도 살아갑니다. 그 과정을 버텨내는 건, 언젠가 내가 하는 모든 행동과 실천이 이어져 나의 업과도 연결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으면서 말이죠. 내가 회사를 그만뒀다고해서 짤렸다고해서 지구는 멸망하지 않고, 지구는 무심하게도 참 잘 돌아갑니다. 나 또한 일을 그만두면 죽는 줄 알았는데,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고민과 고충을 고통스럽게 껴안으면서 살궁리를 하면서 지금껏 숨쉬고 있습니다. 나의 운명관에 대하여 심각하게 고민은 하지만, 결국엔 살아갑니다. 



이 책을 추천드리고 싶은 분들


최선을 다해서 조직생활을 하는 중, 갑자기 퇴사통보를 받았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고 스스로 조직을 벗어난 경험이 있는 모든, 퇴사자들에게 추천합니다. 그리고 퇴사 후, 나의 업을 찾아가는 나만의 치열한 여정 중에 있는 있는 모든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책 속 글귀


p. 18-19 풍랑을 만났을 때 배가 너무 무겁다며 선원을 바다에 던지는 선장, 내가 그동안 일하면서 회사로부터 받은 것은 월급밖에 없었는 것 같은데, 심지어 그동안의 고생에 대해 아무것도 보상받은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나는 영문도 모른 채 바다로 던져지고 있었다. 이런 선장 밑에서 계속 버틴다고 해서 언젠가 내가 보상이라는 것을 찾을 수 있을까.


p. 30 기업이란 수많은 사람들의 책임감으로 꾸역꾸역 굴러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회사가 개인에게 제공해야 하는 책임은 어디까지일까. 오랫동안 일한 사람에게 그 기간에 상응하는 퇴직금을 주어야 하며 스스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면 실업 급여를 제공해야 한다는 법이 있지만, 법은 기업에게 그 이상의 책임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다음부터는 도덕의 문제다.


p. 32 내가 회사를 아무리 사랑해도, 회사가 나의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는다. 


p. 55-56 지금 방향이 아니라 움직임 자체가 없어서 슬픈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백수의 삶은 행복 그 자체지만 돈은 점점 떨어지고 그로 인해 삶의 질도 자꾸만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목적 없이 움직이는 것은 에너지 낭비다. 일단 움직일 방향부터 최대한 빨리 결정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컴퓨터에 있는 사진첩을 뒤적거렸다. 물론, 그날 하루를 또 그렇게 탕진해버리고 말았지만.


p. 62-63 퇴사를 하면 겨울은 따뜻하게, 여름에는 시원하게 앉아 있을 수 있는 공간이 사라진다. 더 이상 수입이 없는 상황에 매일같이 카페에 앉아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자신의 집이 있다면 매달 죽일 듯이 날아오는 월세와 생활비를 감당해낼 수도 없다. 공간은 사람의 생활과 기분까지 지배한다. 퇴사자가 있어야 할 공간은 어디인가. 그렇게 어떻게든 빨리 일을 해야하는 이유가 늘어났다.


p. 80 우리는 생활에 뭔가가 더해지는 것만으로 삶이 바뀔 것이라 기대하면서 그 변화에 맞춰 기존의 환경을 바꿀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항상 쓰던 대론 새로운 도구를 쓰고는 달라진 것이 없다며 성질을 내는 일이 많다. 이런 사고는 회사에서 사람을 쓰는 일에서도 빈번히 발생한다. 


p. 106 나는 나의 상황이 정말이지 너무 창피하고 비참했다. 나름 열심히 일하면서 인정받길 바랐던 회사에서 뒤통수를 거하게 맞고 내 일과 사람들을 빼앗겨버린 현실이, 그 뒤로 멋지게 재기하지 못하고 고꾸라져 있는 내 모습이. 하지만 내가 부끄러워하든, 아무 성과를 내지 못하든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어떻게든 내가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 느낌이 드는 지점을 찾아야 했다.


p. 126 퇴사를 맞이하면 평소보다 더 많은 약속이 생겨난다. 누군가의 삶에 급자스러운 변화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주변 사람들은 그 이유를 궁금해하기 마련이다. 꼭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퇴사를 계기로 얼굴이나 한 번 보자는 사람이 많았다는 것은 제법 괜찮은 인간관계를 가져왔다는 고마운 증거이기도 했다.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시간을 정말 넘쳐났다.


p. 132 살아서 뭐 하나 싶고, 더 이상 어떤 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나날이 계속되었다. 와중에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일을 하고 있을 때 찾아오는 우울증은 일에 더 집중하면서 조금씩 빠져나가고 있다는 자기 최면을 걸 수 있다. 하지만 일도, 계획도 없는 상태에서 찾아오는 우울증은 차고 올라갈 수 있는 바닥을 가늠할 수 없는 상태로 끝없이 어딘가로 빠지고 있는 느낌을 준다. 계속 허우적거릴 뿐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

p. 135-136 역사에 이름을 남길 정도로 업적을 세우는 피곤한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자기 일에 확신을 가지고 몰두하는 매력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나의 업은 어디로 갔고 어디서 다시 찾을 수 있는 걸까.


p. 138-139 특별히 하고 있던 일도 없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없으니 생각은 자꾸 과거로만 갔다. 그 여파인지 꿈속에서는 과거의 일들이 계속해서 나타났다. 억울했던 일, 누군가에게 미안했던 일, 지금 생각해도 너무 쪽팔려서 이불을 뻥뻥 차야 하는 일, 일생일대의 기회를 바보같이 놓쳐버린 일…. 이상하게 좋았던 일들은 생각나지 않고 나쁜 일들만 떠올랐다.


p. 191 한참 달리다가 갑자기 멈추게 될 때 받는 충격만큼, 다시 움직이기 위해서는 상당한 동력을 필요로 한다. 오랫동안 방황하고 나서 움직여야 한다고 결심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의욕을 잃어버린 나는 좀처럼 빠르게 움직일 수 없었다. 그저 주자앉아 있었다. 그런데 소속도, 져야 할 책임도 없으니 아무도 나를 일으켜 세우지 않았다. 끝도 없이 자기 비하만 계속하고 있는 상황, 우울감도 관성의 법칙을 따르는지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고 있었다.


p. 192 우울증이란 결국 혼자 털고 일어나는 것 외에는 답이 없는 병이다. 노여움의 파도가 몇 차례 지나간 후에 조금 정신을 차리니 모든 문제가 운도 지지리 없었지만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나하나 꾸준히'를 실천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사단이 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p. 214-215 첫 직장을 도망치듯 나온 이유는 일주일에 적어도 하루는 쉬고 새벽 두 시에는 집에서 잠들어 있고 싶어서였다. 그게 너무 견딜 수 없어서,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며 도망쳐놓고 나는 또다시 새벽에 잠들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할 풍파만 있을 뿐이었다. 나의 일에 관심을 가지고 도와줄 사람은 나 자신 뿐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p. 218 기록이란 참 신기하다. 갑자기 떠올리려고 하면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다가 사진이든 글이든 그 순간의 어떤 것을 마주하면 그때의 기억이 선명하게 되살아나곤 했다. 그렇게 과거의 일들이 다시 한 번 상기하면서 하루에 하나씩, 가끔 귀찮으면 빼먹기도 하면서 글 옮기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본 포스팅은 서평단 참여로 제공된 도서를 직접 읽고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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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뭘 기대한 걸까 - 누구도 나에게 배려를 부탁하지 않았다
네모토 히로유키 지음, 이은혜 옮김 / 스노우폭스북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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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능력이라고 한다면 상대의 마음을 빨리 파악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눈치가 빠르고, 무엇보다 상대가 어디가 불편하고 힘든지를 빨리 인지해서 그들의 짐을 덜어주는 걸 잘해요. 근데, 상대를 생각하는 동안, 내 자신은 방치되고 노력한 만큼 보상이 주어지지 않았을 때 힘들어하곤 했는데요. 문제는 상대가 나에게 부탁한 바가 없고 내가 먼저 나서서 마음을 읽어주고 짐을 덜어줬다는 점에서, 나 또한 나를 돌아볼 필요가 있었다는 점이예요. 물론 예전에 비해서, 상대가 부탁하기 전에 덜 나서는 편이지만, 예전엔 아주 자동이었어요. 누군가를 배려하는 것이 천성적으로 타고난 내가, 상대에게 뭘 기대하고 그렇게 애를 쓰고 혼자서 상처를 받았는지, 내가 나를 아는 편이지만, 그럼에도 더 알고 싶어서 나는 뭘 기대한걸까를 읽어봤습니다. 



나는 뭘 기대한 걸까 내용 및 구성


이 책은 '상대의 마음만 헤아리다 몸도 마음도 지쳐버린 당신에게'라는 제목의 에필로그를 시작으로 1)남의 마음을 이렇게 잘 헤어리는데 나는 왜 힘든 걸까? 2)상대와 내 마음의 선을 긋는 기대하지 않는 연습 3)남에게서 나에게로, 배려의 방향을 틀다로 총 3파트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저자가 이 책 내용에서 자주 언급하는 표현이 "상대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사람"입니다. 아주 외울 수 있을 정도로 자주 등장하는데요. 어느 순간 감정이입을 하게 됩니다. 상대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사람이 왜 상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지, 그리고 상댜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에서 선을 긋고, 자신의 마음을 헤아리는 방법들을 이 책에서 저자는 언급합니다. 




저자는 상대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사람은 "원래 자기 기준에 맞춰 행동할 수 있는 자립한 인간(p. 76)"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주체적으로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다가, 상대가 알아주지 않고 고마워하지 않으면 서서히 불만과 불신이 쌓이고 자립의 그늘에서 숨어 있는던 의존이 고개를 내민다(p.76)고 합니다. 조금더 구체적으로 이야기 하자면(p.76-77) "자립의 의존은 '타인으로부터 자립해가는 과정에 숨겨져 있는 자존심'이며, 상대를 기쁘게 해주고 싶고 편안하게 해 주고 싶은 마음이 점점 '상대가 알아주고 기뻐해줬으면 좋겠다"는 욕구로 변한다고 해요. 즉, 좋은 마음에서 시작 한 것이지만, 결국엔 상대의 호의적인 반응에 연연하며 마음을 쓰고 행동을 해서, 노력한 만큼 반응을 얻지 못하면 상처를 받는다는 뜻이 되고요. 이렇게, 나를 파악할 수 있는 내용들이 곳곳에 있긴하더라고요. 



그리고 파트별 주제에 따라 짧은 자주로 다양한 이야기를 저자는 전하는 그 중에서도 와닿는 제목들이 있었고, 그만큼 그 글귀들이 어느정도 공감이 되기도 했습니다.


■ 느낀 점


아주 작은 어린시절부터 나에 대한 기억을 되짚어보면, 때를 쓰고 보채는 아이는 아니였고, 언제나 의젓한 아이로 자리잡고 있었어요. 나름 어린시절의 성향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린시절과는 다르게 요즘엔 오히려 때쓰는 일이 잦아졌다는 생각이 들긴했거든요. 특히 친정 어머니와 남편에게요. 내가 왜 그런지 곰곰히 생각해보니,어린시절엔 친정 어머니가 허덕이며 사는 것을 계속 지켜봐왔습니다. 어린 마음에서도 "엄마를 힘들게 하지 말아야지. 엄마를 도와줘야지"하는 마음이 내제되어 있긴했어요. 그 당시엔 뭔가 바라지도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그만큼 어머니의 사랑과 관심을 보상으로 받고 싶었나봐요. 그리고 그런 행동은 성인이 되어서도 이어졌고, 심지어 가정경제를 도맡는데까지 했죠. 모든 것이 인정받기 위한 행동이었으나, 모두들 "영미는 알아서 잘 하는 아이"라고 말만 할 뿐, 잘해내는 건 당연히 나의 몫이 되었고, 많은 것을 껴안다가 결국엔 스스로 지쳐서 주저 앉았죠. 그리고 주저 앉는 동안에도 누구하나 일으켜주는 사람없이, 스스로 일어나야할 때 정말로 서럽고 힘들었고, 내가 마음을 준 모든 사람들에게 분노의 화살을 겨낭하는 것을 봤고 나는 괴로워했죠. 그만큼 독립심이 강하고 무엇하나 기대하지 않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내가 생각지도 못한 분노가 끓어오르면서 나도 사랑과 관심을 받고 싶은 사람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죠. 어린아이같이 투정부리고 억지쓰는 나를 보면 내가 짜증날 정도로 내가 날 이해하지 못하는 때도 있었고요. 그리고 남편에게 마치 친정아버지가 아양을 받아주는 것처럼 잘 받아줘서 애기짓도 하고 재롱도 떠는 내 모습을 보곤 나도 깜짝 놀랐습니다. 철없이 굴어도 머릴 쓰다듬어주고 반응해주는 남편이 때론 모든걸 다 받아주는 친정 아버지처럼 든든해서 나를 다 내려놓기도 했죠.


아무리 날고 기는 사람이어도 결국엔 관심, 인정, 사랑을 받고 싶어하는 욕구는 타고났다는 점. 그걸 먹고 성장하고 성숙해진다는 것을 알겠더라고요. 나는 아닌 줄 알았는데, 내가 어린애 같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기도 했는데, 인정하고 나니 한결 맘도 편하더라고요. 책에서 언급한 것처럼, 상대의 마음을 먼저 헤어리고 배려하는 사람들은 다른 누구들보다 인정욕구가 강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않을 수 없겠더라고요. 다만, 이를 인정하되, 상대의 마음이 내가 기대하는 만큼, 만족하는 만큼 내 마음을 완벽하게 채워줄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 스스로 나를 만족하고 충족시킬 수 있도록 스스로를 컨트롤 해야한다는 점도 다시 한번더 배웠습니다. 결국엔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것은 나 자신에게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단순하지만 실천에 옮기기 어려운 원리를 책에서 언급합니다.


같은 말과 같은 이야기가 어려번 반복되서 책의 내용이 아쉽긴 하지만, 상대와 선을 긋고 나를 챙기는 방법에 관해선 언급되어 있어서 실천에 옮기긴 수월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이 책을 추천드리고 싶은 분들


나름 독립적이며,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는 당찬 성격의 소유자라며 자부하지만, 한편으론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서 끙끙 혼자서 속 앓이를 하고, 또 그런 자신을 한심하게 보고 있는 모든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책 속 글귀 


p. 25 상대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사람은 그 자리의 분위기를 미리 파악해서 평화롭게 마무리하기 위해 자신의 에너지를 소모한다. 하지만 이는 분명한 '희생'이며, 자신의 마음을 억누르는 행동일 뿐이다. 이러한 희생을 계속하는 한 당신은 무신경한 사람들에게 계속 휘둘릴 수밖에 없다.

p. 27 상대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상대의 의도를 파악해 그에 맞추어 행동한다. 하지만 때로는 의도를 잘못 파악해서 당황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이것도 역시 상대에게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다는 증거라 할 수 있다.


p. 32-33 상대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능력은 매우 훌륭한 능력이다. 다른 사람과 비교할 필요도 없이 당신의 장점이며 가치이다. 이 능력을 스스로 비하하고 제대로 인정하지 않으면 타인에게 지나친 기대감을 품고 오해를 하게 된다. 결국 기대는 무너지고 괴로운 마음만 쌓여간다. 이래서는 모처럼 얻은 장점을 활용하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단점으로 만들어 버리는 일이 허다할 것이다. 자신이 가진 능력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를 깨달으면 타인에게 기대하는 마음은 대부분 사그라든다. 

p. 58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눠 보면 항상 다른 사람을 위해서는 최선을 다해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정작 자신은 소홀히 대하는 경우가 안타까울 정도로 많다. 사실은 몸도 마음도 괴로울 정도로 지쳤으면서 '저 사람이 더 힘들 테니까'라며 힘을 짜내고, 솔직히 여유가 없는데도 '이 일을 하지 않으면 쓸모없는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무리해서 일을 한다.


p. 71 배려심이 많은 사람은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이리저리 관찰하고 분위기를 살피며 행동한다. 이런 행동이 자신의 순수한 기쁨으로 이어진다면 이는 자기 기준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다. 하지만 '미움받기 싫다',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다','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실패하기 싫다','눈에 띄고 싶지 않다','창피당하기 싫다'와 같은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다면 남의 기준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p. 73 베푸는 행동은 사랑에서 우러나는 행위다. 배려는 친절한 당신의 훌륭한 장점인데 그로 인해 고통을 받을 정도라면 잠시 접어 두자.


p. 80-81 자기 기준을 확립하면 지금까지처럼 다른 사람을 우선할 수도 있고, 자가 자신을 우선할 수도 있는'선택지'가 생긴다. 선택지가 생기면 우리는 처음으로 자유를 느낄 수 있다. 자유를 느끼는 만큼 여유가 생기고 시야가 점점 넓어지면서 누군가에게 베푸는 일도 자연스러워진다. 이런 상태에서는 설령 상대가 기대한 반응을 보이지 않거나 당신의 배려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더라도 '뭐 어때'라며 받아들일 수 있다.


p. 91 유착은 서로 지나치게 사이가 가까워 상대의 일을 자기 일처럼 느끼는 상태를 말한다. 자기 기준을 확립하면 상대에게 일어난 일에 영향을 받지 않지만, 남의 기준에 맞추고 있을 때는 마치 자신에게 일어난 일처럼 느껴 정신적으로 강항 영향을 받는다.


p. 100 자기긍정감은 자신의 좋은 점, 나쁜 점을 모두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할 때 생긴다. 이를 위해 나는 '이게 바로 나야'라고 말해 보기를 자주 권한다. 예를 들어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서 행동했는데 오히려 그 일이 뒤통수를 치는 경우 우리는 무심코 자신을 탓하거나 상대를 나쁜 사람으로 몰아가고 싶어진다. 하지만 사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며 그저 생각이 엇갈렸을 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럴 때 이 말을 떠올려 보자. '이게 바로 나인걸.'


p. 107-108, 110 우리는 스스로를 칭찬하는데 인색하다. 자기 기준을 확리하고 자기긍정감을 높이려면 스스로 자신을 인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즉 '자기 인정'이 필요하다.(중략) 자기 인정은 자신감을 키우고 자기 기준을 세워 자기긍정감을 높여 준다. 다른 사람에게 칭찬받지 못해도 괜찮다. 그저 스스로를 인정해 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p. 113 상대의 마음과 생각, 가치관, 행동은 모두 상대의 것이지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반면 나의 마음과 생각, 가치관, 행동은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분명히 구분해 두지 않으면 자기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에 휘둘리게 된다. 


p. 135 나는 늘 인간관계에서 "불편한 사람을 스승으로 삼으라"고 말한다. 자신과 스타일이 전혀 달라 대하기 불편한 사람이 바로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사실을 가르쳐 줄 스승이다. 당신이 그들을 불편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당신 자신이 싫어서 감추고 있는 부분을 그들이 드러내어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냉정한 사람, 메마른 사람이 불편하다면 당신도 이와 같은 면을 속에 감추고 억지로 사람들을 따뜻하게 대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이것이 바로 인간관계를 힘들게 만드는 요인이다.


p. 158-159 간청하거나 부탁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일은 상대에게 폐를 끼치거나 부담을 주는 일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행위는 상대의 자존감을 높여 주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식하게 하며, 남을 돞는 기쁨을 가르쳐 주거나 베푸는 즐거움을 알려주는 계기가 된다. 따라서 간청하고 부탁하거나 도움을 요청하는 일은 결코 부정적인 일이 아니다. 


p. 190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려 하는 당신의 행동은 이미 아름다운 사랑에서 우러난 행위다. 그러니 남의 마음을 헤어리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그대로 '사랑꾼'이라 정의해도 좋을 정도다. 이 사실을 깨닫고 자신의 사랑에 자신감을 가지면 당신은 틀림없이 행복해질 것이다. 상대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사람은 사랑꾼이다. 아름다운 사람을 가슴에 푼은 휴식 같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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