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신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김종관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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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여러가지 정보가 담겨져 있거나, 자기계발을 위한 방법론들이 즐비한 책들에 빠져들다가도, 정보와 방법에 치여 때론 잔잔한 이야기를 담아 대화하듯 풀어낸 글 위로 눈을 살포시 올려두면 마음을 올려두는 것처럼 편안한 느낌에 매료될 때가 있고, 그 순간을 위해 차분하고 고요한 에세이를 찾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는 영화감독 김종관의 에세이 나는 당신과 가까운 곳에___있습니다를 읽으며 마음을 내려놔봤습니다. 



■ 나는 당신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내용 및 구성 


이 책은 최악의하루,페르소나_밤을걷다 등 다양한 단편영화를 만든 영화감독 김종관이 직접 쓴 에세이이며, 1)가까운 산책-10년 전 2)베를린 천사의 시 3)시네마 천국-영화와 기억 4)흐르다-추억과 이야기 5)어느 꿈속에서-10년 후 6)시나리오 로 총 6부로 구성되어 있어요. 저자는 "창작이 정체된다고 느꼈던 시기(p.9)"에 책에 담긴 글을 썼다고 언급합니다. 자신의 기억들을 모아, 어느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기억은 "자신의 창작에 베어들어 이곳저곳에 남아 있게 되었다(p.9)"는 프롤로그 속 글귀가 인상적입니다. 



느낀 점 


에세이의 제목에서 느껴지는 느낌은 참 든든합니다. 하지만, 제목과 에세이에 담겨진 글에서 느껴지는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은 참 달라요. 누군가의 기억과 추억에 들여다보는 기분이랄까요? 그리고 그 누군가의 일상의 편린 속에서 고요하고 평화롭게 흘러가는 기분이라서, 누군가의 기억와 추억이 벤 글귀를 따라 눈은 흘러갑니다. 마음을 내려놓기도 합니다. 특히, 시글벅적한 텔레비전 미디어에 빠져들다가, 그곳에서 나와 누군가의 기억과 추억으로 다시 시선을 돌리니 그렇게 평화로울 수 없어요. 삐쭉삐쭉 곤두 선, 더듬이 같은 신경이 차분하게 내려앉고, 글귀 한 자 한 자에 몰입합니다. 뭔가를 상상한다기 보단, 그냥 글감에서 풍겨지는 분위기와 느낌에 심취되더라고요.


특히, 영화도 만들고 글도 쓰는 저자의 글솜씨에 반하기도 했습니다. 단순한 글솜씨라기보단, 뭐랄까, 일상을 바라고 일상에서 접하는 느낌들을 생각치도 못한 다양한 표현들로 어떻게 꾸미는지.. 내 머리를 아무리 쥐어짜도 짜도,내 느낌을 예쁘게 꾸밀만큼 다양한 표현이 없어서 늘 고민이거든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아직까진 너무 이성적이고 차갑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래서 상대적으로 따뜻한 감성이 묻어나고 차분함이 젖어든 글귀를 보면 시선이 사로잡히고, 마음도 뺏깁니다. 부러워서요.

에세이 속 글귀는 단편적으로 쪼개져서 적힌고 채워진 글들이라, 연계성도 없고, 그렇다고 막~ 공감되는 글귀는 없습니다. 앞서 언급한대로 누군가의 추억과 기억을 들여다보고 따라가는 것에 더 가까워요. 그러다가 와닿는 글귀를 보면 시선을 고정하고 읽고 또 읽어봅니다. 이해될 때까지요. 산문같기도 하고, 함축적인 의미를 담은 운문같은 글귀들로 이뤄져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에 닿는 글귀를 보다가도 이해될때까지 여러번 반복해서 읽었어요. 영화감독 김종관의 글귀가 벤 일상이 잔잔한 편린으로 나의 기억 한 켠에 자리잡는 기분도 듭니다.



이 책을 추천드리고 싶은 분들

시끌벅적한 일상에서 벗어나, 잔잔하고 평화롭게 마음을 내려놓고 휴식을 취하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책 속 글귀


p. 55-58 한 시간 후 나는 어느 작은 숲길에 있었다. 깊은 그림자가 드리운 숲 안에서 잘게 부서져 들어오는 햇살들을 보고 있었다. 새들이 초현실적인 대화를 이어가고, 나는 거기서도 알아듣고 있다는 표정을 짓는다. 올레길을 걷다 보면 느끼게 된다. 눈뿐만 아니라 귀도 열어두어야 한다는 것을. 


p. 58-59 제주도에서 사실 올레길 외에도 수많은 길이 있고, 그 길만큼, 그 길을 지난 사람들만큼 서로 다른 추억과 사연들이 있다. 계절마다 날씨마다 다른 옷을 입고 기다리는 그 길들은 닳은 듯 닳지 않은 길이다. 그 많은 길들 중 하나인 올레길은, 길의 시작과 끝이 있지만 길을 걷는 목적은 그 끝에 있지 않다. 빨리 걸어도 좋고 천천히 걸어도 좋고, 쉬어도 좋고 뒤를 돌아봐도 좋다. 걸음이 멈추는 끝은 마을의 그루나무이거나, 작은 포구이거나, 해 질 녘의 텅 빈 해수욕장이곤 했다. 끝은 다음으로 이어진다. 그 끝에 선 기분은 마치, 보신각의 종이 올리며 새해가 되는 순간과 닮았다.


p. 78 발끝이 짓무를 때까지 걷고 싶을 때가 있다. 그 어떤 것에서 나 자신이 가장 멀리 떨어지길 바란다. 새로운 세상을 찾아 여행을 할 때 마주치는 낯선 풍경은 우주가 아닌 이상 낯익은 일면이 도드라지게 다가온다.

p. 81 별이 가득한 우주. 저마다 입증된 스타들이 가득한 광활한 그곳의 화려함에 눈 둘 곳 없다가, 이 그림 하나만을 담아 나왔다. 미술관을 나서 강으로 난 길을 걸으며, 마지막으로 본 이 그림이 수많은 별들 중에서 나만의 스타임을 알았다. 작가의 이름도 모른 채, 그 그림을 생각했다. 달이 보이지 않았지만 달에 비쳐진 풍경을 보고, 음악이 들리지 않았지만 그 공간 가득한 음악을 상상했다.


p. 83 그림을 보고 돌아오며, 나를 지나치고 내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중요한 것은, 무언가를 잃어버렸지만 그림이 주는 위안은 그대로였다는 것, 그리고 그 잃어버린 것들 때문에 위안은 더 깊어졌다는 것. 달빛에 의지한 여인들의 왈츠가 있는 그림은, 지금 여기에서의 남루한 재회로 인해 비로소 의미가 생겼다.

p. 98-99 집들 사이의 좁은 언덕길 틈으로 석양이 진 바다가 보였다. 전혀 기대하지 않은 않았던, 마주치리라 예상하지 못했던 공간에서 해 질 녘 바다를 보았다. 언덕 밑 해안선으로는 아까 보았던 파란 트레이닝복 소년들이 여전히 달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기대하지 않았던 아름다움에 당황했다. 매우 조용했고, 기분 좋은 바람이 불었고, 그 언덕에 서 있을 때 우리의 관계가 생겨났다. 내내 지치던 풍경에 나는 어느새 반해 있었다.


p. 136 완벽하게 좋은 순간, 그것을 나눌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자신에게 유익한 것인지. 소중한 사람과 함께 나눌 수 있는 기억은 스러져가는 환영을 잃어버리지 않는 단 하나의 방법이다.


p. 175 길 위에 시간들이 놓여있다. 길을 가면서 자주 뒤돌아보는 것은 의미가 없다. 목적지도 모른 채 달려가는 것도 의미는 없다. 오늘은 어제가 되고 내일은 오늘을 지나 어제가 될 것이다. 오늘은 오늘일 뿐이지만, 수많은 어제가 나의 오늘을 움직인다. 그러니까 오늘을 후회없이 살아야 한다거나, 그런 말을 하고 싶은 건 아니다. 다만 후회하며 엉망진창으로 살든, 고민하며 살든, 우리는 어제가 만들어낸 길들을 밟고 오늘이라는 길 위에 걷는다는 걸 생각한다.

p. 197 때때로 옛 동네를 찾아갔다. 옛 동네를 걸으며 그 생생한 추억에 지워지는 기억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 대부분의 공간은 사라졌고 누구도 그 기억을 위한 비석을 세워주지는 않는다. 허물어지는 언덕에 올라 사진을 찍고 글로 그 기억을 남겨볼 뿐이다.



본 포스팅은 서평단 참여로 제공된 도서를 직접 읽고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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