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
피터 메일 지음, 강현석 옮김, 에드워드 코렌 그림 / 이소출판사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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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시선을 통해서 내 삶을 본다면 아마 재미있을 것이다. 그런데 개를 통해서 사람의 일상을 본다면 어떨까?

요즘 생각에 작가라는 사람이 갖추어야 할 능력 내지는 덕목 중에 하나가 관찰력이라고 생각한다. 사물을 그냥 스쳐지나가는 일상으로 보지 않는 것. 그것이 꼭 언제나 분석적이며 비판적이야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찬찬히 애정을 가지고 본다면 누구처럼 땅 바닥에 기어다니는 하찮은 개미를 가지고도 몇부작의 장편을 쓸수도 있겠지. 물론 사물 저편을 넘겨다 볼수있는 상상력이 빠지면 불가능 하겠지만 말이다.

'보이'는 개의 이름이다. 개라는 것을 그저 집을 지키거나, 사냥을 하는 데 유용하게 써먹을 때에나 의미가 있는 시골집에서 태어나서, 그런 능력이 없다는 것이 증명되자 밥만 축내게 둘수는 없었던 주인에 의해서 버려졌다. 그리고는 운좋게 할일은 없고 돈은 많아서 날씨 좋은 남프랑스의 프로방스에서 넉넉한 삶을 누리는 부부에게 거두어졌다. 이제부터는 생활견이아닌 애완견의 삶이 시작된것이다.

작가가 '보이'의 눈을 빌려 묘사한 인간 생활은 재미있기도 하고 어의 없기도 하다. 어쨋던 사실 이 모든 것들이 '보이'가 아닌 작가의 관찰력이라는 것 쯤은 다 알고 보고 있는 거니까. 물론 '보이'가 말을 할수 있다면 '말도 안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데.' 라고 말할수 도 있겠지만, 놀라운 것은 사람뿐만아니라 개의 행태를 세세하게 관찰하고 이글을 완성했을 작가의 역량이다.

애완견을 하나쯤 키우고 있는 사람이라면 보이를 자신의 개에 대비해 보는 재미를 느낄 수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도 '개'라는 가면을 쓴 사람이 하는 사람들 이야기도 흥미있을 것이다. 원작자가 보여주는 위트도 수준 이상이지만 글을 옮긴이의 자연스러운 번역도 이책을 읽는 즐거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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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프로방스
피터 메일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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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Hotel Patis.

'빠스띠스'는 남불에서 즐겨 마시는 리퀴어 종류이다. 색깔은 우유빛이고 그냥 마시기는 너무 진해 얼음과 물을 섞어마신다. 처음에는 익숙치않은 맛이라 이상하지만 한잔을 다 마시기전에 씁쓸하면서 상큼한 맛이 그야말로 더운 날씨에는 어울리는 술이라는 생각이든다.

발음하기도 어렵지 않는 원제를 버리고 왜 내안의 프로방스라는 자못 감상적으로 보이기 쉬운 제목을 선택했는 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상상력이 풍부하지 않는 나이지만 이 책 한권을 들고 있는 몇시간동안 런던의 중심가의 호화스런 사무실의 주인이 되기도 하고 런던의 트렌디한 식당에서 식사도 하고 불과 몇시간 만에 수영장이 딸린 작지만 호화로운 호텔의 주인이 되기도 하는 호사를 부려보았다.

프랑스 남부의 뜨거운 태양아래 일광욕을 하기도 하고 멋진 음식과 술에 빠져들고 유럽의 여러 곳곳에서 날라온 여유있는 작자들 중에 섞여서 촛불을 밝힌 식사도 즐기고 건조한 시골길을 따라 마치 투르 드 프랑스(Tour de France)자전거 경기의 참가자처럼 사이클을 달리기도 하고 돈많은 영국 비지니스맨의 여자친구가 되는 꿈도 꾸고 이도 저도 다 질릴쯤이 되어서는 뉴욕으로 날아가버렸다. 언제나 돌아올수 있는 프로방스의 멋진 호텔을 뒤로한체. 책 한권으로 이렇게 즐겁고 유쾌하기는 정말 오랜만인것 같다.

그러나 이 즐겁고 호사스런 생활에도 언제나 문제는 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무엇을 하던 어디에 있던 언제나 상주하는 사소하고 때로는 심각한 문제들이 말이다. 한때 매력적이고 사랑스러웠던 여자는 나에게 한푼이라고 더 뜯어내려는 전처로 바뀌었고, 남들에게는 호사스러워 보이는 생활에는 정작 활력이 없다. 새로이 손을 덴 사업에서 나는 주변인이 된 기분이고 엄청난 청구서에 아연 질색하기도 한다. 내가 빠져나오려한 그 사회와 다르지 않은 인간관계, 모사꾼들, 사기꾼들은 어디에나 존재했고 사소한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면서 벌써 지쳐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분야에 최선을 다해서 일가를 이룬것 처럼 다른 분야도 잘 처리해 나가고 있다. 나는 역시 멋진 놈이다. 그렇기에 나같은 놈을 알아주는 또다른 멋진 놈을 만나 적절한 시기에 또다른 삶을 향해 나아갈수 있다. 멋진 인생이다.

즐거웠다. 남불의 태양에 벌써 앞가슴과 허벅지까지 다 골고루 매혹적으로 태워 버린것 같고, 상상만 해도 군침이도는 음식과 포도주가 아직 내 입안에 남아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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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아저씨네 작은 커피집
레슬리 여키스·찰스 데커 지음, 임희근 옮김 / 김영사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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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창업붐이다. 창업에 관련된 서적들이 잘 팔린다. 그런데 이책 처럼 무슨 철학이라도 담긴듯 포장을 하면 더 잘팔릴 것이다. 그런데 이책은 아주 미흡한 점이 많은 책이다.

일단, 이 책을 아주 간단히 요약 할수 있다. 커피점의 천국 시애틀에서 작은 구멍가게 커피점이 어떻게 살아남았는 가 하면 네가지 요점이 있었다.

4P라고, 자신이 하는 일에 정열을 가지고(Passion), 좋은 사람(People)을 잘 교육시켜서 믿고 쓰면서, 고객들에게 개인적인(Personal) 친근감이 들도록 좋은 분위기를 제공하며 커피의 품질(Product)는 최상을 유지한다.

그런데 이런 이론을 주인이 발견했냐면 그게 아니다. 이 주인은 이런 거창한 이론 없이도 몸으로 그저 실천하고 그래서 이 커피점을 이렇게 일구어 왔는 데, 일이 잘 안되는 것 같아서 컨설턴트를 고용하고 그 컨설턴트가 이렇게 분석해주고 갔다. 그러면 왜 안되고 있는 냐. 어떻하면 이전 같이 잘되겠는 가.의 답은 간단히 '초심으로 돌아가라'. 그러니까 이 네가지를 잘하다가 조금 느슨해 젔으니 다시 열심히 해라 였다.

너무 간단한 이야기고 이게 전부다. 흔한 에피소드도, 자세한 창업과정도 경험담도 아무것도 없다.

그러면 여기서 이런 비지니스 모델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이 비지니스 모델은 다분히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되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생각이 없는 사람에게 적합하다.

일단 무슨일이든 정열이 있어야하니 그점은 넘어가고,

두번째, 내가 믿을수 있는 사람을 고용하기는 엄청 어렵다. 그래서 중소기업의 경우 가내수공업(?)의 형태가 되는 것이 너무 당연하다. 믿고 고용할 남은 흔치 않고 게다가 자기 사업처럼 앞서의 정열을 발휘할 사람은 더욱이 드물다. 거기다 만약 그런사람이 있다면 그의 보수는 당연히 남들 보다 높아야 하다는 재정적 문제가 발생한다. 돈 많이 받는 사람이 일도 잘한다는 것이 나의 믿음이다. 반대로 돈을 적게 주고 일잘하기를 바라는 고용주는 착각에 사는 사람이다.

세번째, 개인적인 친근감을 불러일으키기. 이 책의 배경이 되는 미국사회는 우리보다 훨씬 진보된 단계여서 개인주의가 팽배해있다. Personal touch라는 것이 확실히 먹힐만하다. 우리 나라도 점점 그렇게 되가니까 언젠가는 그렇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의 현실은 이 점에 미국 만큼의 가산점을 주지은 않는 다. 우리도 마음 편한 단골집이 좋지만, 내가 아는 한 사람은 종업원이 너무 아는 척을 하는 것이 부담 스러워서 그 가게에 안가기도 한다. 그리고 친구도 아닌 모든 손님에게 가식적인 친절이 아닌 개인적인 관심을 가져야한다는 것은, 아마 해본사람은 안다, 엄청나게 피곤한 일이다. 사람을 상대하는 것 만큼 피곤한 일도 없다. 이점을 잘 한다면 평생 고객이 남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수는 극히 제한적이다.

네째, 제품의 품질 유지에는 사실 많은 비용이 든다. 그래서 이 같은 경우 프리미엄 가격이 설정되어야하고 고로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기가 힘들다. 민감한 입맛을 가진 사람들만 결국에는 남을 것이고 이런사람들은 입맛만 까다로운것이 아니다 다른 모든 것에서도 그렇다. 즉, 위치, 매장의 외형, 서비스, 모두가 따라주어야 한다. 작은 자본을 가진 사람에게는 쉽지않은 일이다.

이 모든 점을 고려하면, 이 경우 '작은 연못에서 큰 물고기를 낚는 다'는 마케팅 원론적인 이야기가 되는 데. 실질적으로 소자본은 가진 사람에게는 작은 연못에 작은 물고기가 되기 쉽다. 그렇다면 돈 벌기는 힘들다는 이야기고 먹고는 사는 수준에 머문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런 모든 서비스와 품질을 제공하면려면 보통보다 열심히 일하고 먹고 사는 정도가 된다. 그렇다면 결론은 커피가 좋아 죽겠고, 사람이 좋아 죽겠다는 사람 아니면 곤란하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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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외국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진욱 옮김 / 문학사상사 / 199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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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이해가 잘 안가고 많은 부분 수긍이 가지 않지만 그의 수필 “슬픈 외국어”를 읽으면서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사람이 굉장히 평범한 것 같으면서도 매력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아마도 그가 일상에서 느끼고 내뱉는 말들 중에서 내가 공감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소설은 공감을 못하는 데 인간으로서 그의 말은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다는 것은 흥미로운 점이기도 하다.

“슬픈 외국어”는 미국 프린스턴에서의 생활동안 느낀점을 잡지에 연재한 것을 책으로 묶었기 때문에 각 장마다 서로의 연관성도 찾아보기 힘들고 때로는 각 장의 제목과 내용도 일부는 연관성을 찾아보기 힘들어보이는 곳도 있다. 외국생활에서 오는 일상을 기술한 것도 있고, 이사나 이발, 자신의 취미와 연관된 것도 있고, 째즈와 마라톤, 미국 사회를 엿본 것들도 있다.

내가 보기에 그는 한 사회를 꿰뚤어 보는 심미안을 가진 그런 인간 같지는 않다. 그는 그냥 그의 경험에 기초하여 일기 쓰듯이 그냥 담담히 쓰고 있다. 일본사회에 대해서도 그가 생각하는 것이 맞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그저 한 사람의 작가이며 작가에게는 무한한 자유가 주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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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북소리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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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와 그의 작품은 나에게는 아직도 많은 의문점을 남겨놓고 있다. 나는 아직도 왜 그가 인기 작가이고 왜 전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작품에 열광하는 지 이해가 가지 않는 다.

그러던중 '먼북소리'라는 그의 수필집에 대해서 쓴 글을 보고는 이 책을 읽어보고 싶어졌다. 일단 그의 작품을 소설로만 대해왔던 터라. 그의 수필을 통해서 그에게 가까이 다가갈수 있을 까하는 기대가 있었고.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지역이 이탈리아, 그리스등 내가 관심을 많이 두고 있는 지역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처럼 장기 체류자가 될 계획을 막연히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루끼는 1986년 부터 1989년 까지 로마와 그리스의 섬들에서 3년을 보냈고 그 기간중에 그의 최고의 작품이라 할수 있는 '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과 '댄스 댄스 댄스'를 완성하였고 몇편의 번역작품을 마쳤다.

작가에게 있어서 이 기간은 일본이라는 환경에서 부터의 탈출이기는 했으나 일상으로 부터의 탈출은 아니었다. 이 경우에서도 보다 시피 자신이 가장 익숙한 환경으로 부터의 탈출은 익숙한 관계로 부터의 단절이라고 생각한다.

하루끼의 여행은 새로운 것을 찾아나선것이 아니며 새로운 만남을 위한것도 아니었고 그 자신이 너무나 익숙한 관계들로 부터의 의도적 단절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그는 작가로서 그러한 인위적인 단절이 이시기에 필요하지 않았나 싶다.

그는 37살에 나가서 40에 돌아왔다. 그에게는 40세에 대한 막여한 기대와 두려움이 있었던것 같다. 그는 그래서 이 시기를 일본에서 보내지 않기로 정한것 같다. 어쩌면 자신을 더 뚤어지게 쳐다볼 시간을 가지기 위해서가 아니었을 까. 철저한 혼자의 몸으로 말이다.

그러나 그에게 동반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아내와 이 시간을 거의 같이 했다. 그의 아내의 관한 언급은 아주 극소한 부분에 지나지 않으면 그 또한 아주 평범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나는 그의 아내를 상상해 볼수 있었다. 그녀는 아마도 무라카미 하루키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존재인것 같다. 그러면서 동시에 공기나 물과 같이 항상 같이 하되 그 존재를 인식하기 어려운 사람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 자신이 말하는 이 삼년의 의미는 이렇다.

'이 삼년간의 의미는 대체 무엇일까? 하고 나는 생각한다. 이런 저런일이 많았지만 결국은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을 뿐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때도 있다. 나는 말하자면 상실된 상태에서 이 나라를 떠났다. 그리고 마흔 살이 되어 돌아온 지금에도 역시 그때나 다름 없이 상실되어 있는 것 처럼 보인다........
나는 그저 나이를 먹었을 뿐 무엇하나 해결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이런식으로 생각한다. 다시 한번 출발점으로 되돌아 갈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족하지 않은 가, 더욱 혹독한 지경에 빠질 가능성도 있었으니 말이다, 하고.

그렇다. 나는 낙관적인 인간인 편이다.'

나는 그의 이 말에서 내가 아마도 이 책에서 얻고자 했던 해답을 다 었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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