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내 안의 프로방스
피터 메일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12월
평점 :
품절
원제는 Hotel Patis.
'빠스띠스'는 남불에서 즐겨 마시는 리퀴어 종류이다. 색깔은 우유빛이고 그냥 마시기는 너무 진해 얼음과 물을 섞어마신다. 처음에는 익숙치않은 맛이라 이상하지만 한잔을 다 마시기전에 씁쓸하면서 상큼한 맛이 그야말로 더운 날씨에는 어울리는 술이라는 생각이든다.
발음하기도 어렵지 않는 원제를 버리고 왜 내안의 프로방스라는 자못 감상적으로 보이기 쉬운 제목을 선택했는 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상상력이 풍부하지 않는 나이지만 이 책 한권을 들고 있는 몇시간동안 런던의 중심가의 호화스런 사무실의 주인이 되기도 하고 런던의 트렌디한 식당에서 식사도 하고 불과 몇시간 만에 수영장이 딸린 작지만 호화로운 호텔의 주인이 되기도 하는 호사를 부려보았다.
프랑스 남부의 뜨거운 태양아래 일광욕을 하기도 하고 멋진 음식과 술에 빠져들고 유럽의 여러 곳곳에서 날라온 여유있는 작자들 중에 섞여서 촛불을 밝힌 식사도 즐기고 건조한 시골길을 따라 마치 투르 드 프랑스(Tour de France)자전거 경기의 참가자처럼 사이클을 달리기도 하고 돈많은 영국 비지니스맨의 여자친구가 되는 꿈도 꾸고 이도 저도 다 질릴쯤이 되어서는 뉴욕으로 날아가버렸다. 언제나 돌아올수 있는 프로방스의 멋진 호텔을 뒤로한체. 책 한권으로 이렇게 즐겁고 유쾌하기는 정말 오랜만인것 같다.
그러나 이 즐겁고 호사스런 생활에도 언제나 문제는 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무엇을 하던 어디에 있던 언제나 상주하는 사소하고 때로는 심각한 문제들이 말이다. 한때 매력적이고 사랑스러웠던 여자는 나에게 한푼이라고 더 뜯어내려는 전처로 바뀌었고, 남들에게는 호사스러워 보이는 생활에는 정작 활력이 없다. 새로이 손을 덴 사업에서 나는 주변인이 된 기분이고 엄청난 청구서에 아연 질색하기도 한다. 내가 빠져나오려한 그 사회와 다르지 않은 인간관계, 모사꾼들, 사기꾼들은 어디에나 존재했고 사소한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면서 벌써 지쳐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분야에 최선을 다해서 일가를 이룬것 처럼 다른 분야도 잘 처리해 나가고 있다. 나는 역시 멋진 놈이다. 그렇기에 나같은 놈을 알아주는 또다른 멋진 놈을 만나 적절한 시기에 또다른 삶을 향해 나아갈수 있다. 멋진 인생이다.
즐거웠다. 남불의 태양에 벌써 앞가슴과 허벅지까지 다 골고루 매혹적으로 태워 버린것 같고, 상상만 해도 군침이도는 음식과 포도주가 아직 내 입안에 남아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