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9단
양순자 지음 / 명진출판사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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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에서 봉사활동을 오랜 동안 하신 지은이가 세상을 바라보는 자기의 방법에 대해서 쓴 글이다.

65세인 자신이 봉사를 통해서 그리고 자신의 삶을 통해서 깨달은 것들이 9단 정도의 경지에 올랐다고, '내가 한수 가르쳐주지.' 하고 쓰셨다.

그러나 아마도 내 생각에 그 인생 9단의 의미는 '나 그만큼 높은 경지에 올랐서' 라기 보다는 '나 10단 아니야'에 있는 것 같다.

어떤사람들은 이 분의 글에서 동감도 하고 반감도 갖고 그럴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분이 하신 이야기를 자신의 처지에 맞게 또 나름 대로 해석도 할 것이다.

이 책에서 내가 기억하는 또는 기억하고 싶은 이야기들은 이런 것들이었다.

우리 모두는 다 사형수이다.

죽을 날을 받아 놓고 있다는 것이다. 그 유명한 아메리칸 부티의 처음 대사는 '오늘이 나의 인생의 남은 날들의 첫째날이다.' 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또 나의 인생의 마지막 날일 수도 있다.

그래서 오늘이 가장 중요하다. 평소의 나의 생각과 같다. 내일을 준비하지 않는 베짱이가 되자는 것이 아니다. 오늘이 가장 소중하고 오늘을 희생하며 보장받는 내일이란 없다.

세상은 살기 힘들다.

세상은 살기 힘들었고 앞으로도 그럴것이다. 허무한 기대에 실망하지 말자. 다 보잘것없고 힘든날중에 하루나 며칠이 기뻣다면 그 것에 감사할 뿐이다.

어려운 일이 닥치는 것은 당연하다. 왜 이런일이 나에게 라고 생각하는 것은 부질없다. 이런나쁜일은 나에게나 또 누구에게나 닥치게 돼 있는 것이다. 그냥 올것이 왔구나 하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 일이 계속 나를 피해가는 요행수는 몇몇 사람에게는 가능하겠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그렇지 못하다.

봉사 끝을 보려고 하면 할 수없다.

많은 사람들이 커다란 포부를 가지고 봉사에 뛰어들었다가 중도에 포기했단다. 이 부분은 내가 결코 한번도 시도해 보지도 않은 일이었지만. 작자가 지도 하는 바는 있었다.

거창한 대의 명분이나 신념보다 그냥 내가 이순간 이자리에서 남을 도와서 내가 기쁘고 남이 조금이라도 기쁘다면 그것으로 봉사는 그 의의를 다한 것이다. 끝장을 보려하지 말란다.

작자가 만난 그 많은 사형수들이 다 편안한 마음으로 죽음을 맞았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다. 다만 그를 만나기 전보다는 조금 나아진 마음으로 갔다고 믿는단다. 그밖에 우리가 할수있는 일이 뭐 또 있으랴.

9단 할머니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바와 많은 공통점이 있었다. 동시에 내가 이성적으로 알고는 있지만 결코 행동으로 또는 마음으로 찾지 못하는 마음의 평정이 거기에 있었다.

결론적으로 내가 느낀것은 '인생은 고달픔의 연속이며 허무한 것이다.' 허무주의에 빠지자 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인생 조금 힘을 빼고 보면 훨씬 살기 쉬워 진다는 것이다.

내가 중국어를 처음 배우기 시작할때. 이제까지의 다른 외국어에 비해서 발음이 잘 안됐다. 그 점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 그래서 발음 크리닉도 다니고 했었는 데.

얼마 있다. 내가 깨달은 것이 있었다. 내가 4성을 제대로 하지 못할까봐 너무 열심히 너무 힘을 주었기 때문에 사성이 제대로 안된 것이었다.

때로는 너무 열심히 힘을 주어 사는 것이 일을 그르칠때가 많다.

오래전 나와 비슷한 동료가 하나 있었다. 그도 나 처럼 문제가 무엇인지는 아는 데 그 힘조절이 많이 안되었나보다. 그가 어느 해외 출장에서 돌아온 뒤에 손에 쥐고 다니던 책이 있었다.

Don't sweat!   It is a small thing.
Everything is a small 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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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가치투자 전략 가치투자총서 1
최준철.김민국 지음 / 이콘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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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투자라는 말이 신조어인지 원래 있던 말인지. 번역된 말인지는 알지 못한다.

이 책은 챠트 분석을 이용한 수급위주의 주식 투자에서 진정한 투자자로써의 투자를 권하고 있다.

외국의 많은 서적들을 보고 신봉하는 저자가 나름대로 되세김질한 책이다. 무엇보다 읽기 쉽고 이해하지 쉽게 되어 있다. 그리고 각장의 마지막에는 포인트를 잘 정리하고 있다. 이 책에서 받는 느낌은 책의 내용을 떠나서 '공부 잘하는 사람의 노트북'을 엿보는 것 같았다.

혹시 요즘 뜨고 있는 경제 마인드를 아이들에게 심어주고 싶은 부모가 있다면 초등학교 고학년이면 충분히 소화할수 있는 수준의 책이다. 내용을 이해 못하더러도 공부잘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자신이 배운것을 정리하는 지의 지표가 되는 아주 좋은 교과서이다.

내용은 워렌 버펫이나 벤저민 그래엄, 피터 린치의 서적들을 탐독한 사람이라면 그래 새로울 것은 없지만 앞의 세 사람의 책을 보고 이 책을 본다면 총정리하기에 아주 좋은 책이다.

앞으로 주식 투자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려는 일확천금을 꿈꾸지 않는 성실한 투자 예비자들에게 적극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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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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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랍인 조르바라는 말이 더 익숙했던 그 소설.

얼마전(그러니까 꽤나 오래전) TV 문학 프로그램에도 소개된적이 있었던 것 같다. 말로만 듣던 이 책을 읽어 보았다.

글쎄 뭐라 말해야 좋을 지.

간단하게 시작하자면, 끝까지 빨리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서 지식을 습득한 지식인 작자와 삶에서 지식을 습득한 조르바.

책을 읽으면서 삶에서 묻어난 철학을 이야기 하는 조르바와 작자 사이에서 어차피 조르바도 작자의 창작물이니 작자의 다른 분신이 아닌 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러기에 조르바는 정말 한 발 앞서서 그리고 한 길 위에서 작자를 우리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조르바가 실존의 인물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이 이야기 자체가 거의 작가 자신과 조르바 사이에 실제 일어난 일에 기초 한다는 것을 알았다.

철학이라는 단어가 언제나 고리타분하고 구름에 구름잡는 소리 같고 실생활에 무슨 도움이 될까 싶은 생각이 있었지만 요즘 가뜩 삶에 대한 문제를 생각하다보니. 철학이나 신학이라는 단어가 내 앞에 가까이 와있다. 누가 이야기 해주어서도 아니고 끊임없이 대답없는 질문의 끝에 길을 찾아 나서니 이즈음에 와있다.

대부분의 조르바의 말에 동의 한다. 나이가 먹었다고 결코 현명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세월이 가기전에는 결코 볼수 없는 것들이 있다.

무어라 말하기 힘든 무겁고 벅찬 마음으로 이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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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남자, 프랑스 요리로 말을 걸어오다
벵자맹 주아노 외 지음 / 한길사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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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프랑스 사람이 나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대표적인 한국요리는 뭐냐." 고.

이런 질문을 받으면 한국 사람들 조차 김치 또는 불고기를 든다. 정말 이 두가지 요리가 한국요리를 대표할까?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

김치는 하나의 독립된 주요리라고 할수 없다. 불고기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음식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다.

이 두가지 요리가 한국요리를 대표한다고 생각하는 착각(?)은 오히려 외부로 부터 주입된것이다. 외국인 특히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한국요리, 불고기 또는 갈비. 그리고 아마도 외국인들에게 가장 특이하게 보이는 음식, 김치.

다시 앞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그 친구에게 꺼꾸로. "그럼 프랑스를 대표하는 요리는 뭐냐?"  그 친구는 대답을 못했다. "프랑스 요리는 다양해서 무엇이 하나 대표한다고 할수 없는 데."  내가 말했다. "우리 한국 요리도 마찬가지야."

이제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조금은 아시겠는 가.

스파게티가 이태리 음식을 대표한다는 착각, 스시나 사시미가 일본 요리를 대표한다는 착각을 대부분의 외국인들이 가지고 있다. 그러나 왜 우리나 외국인들이나 프랑스 요리를 대표하는 주자는 왜 지목하지 못하는 것일까. 여기에 프랑스 요리의, 아니 프랑스 요리의 마케팅 또는 이미지 메이킹의 우수성이 있다.

어느  나라나 음식은 문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단편이다. 르네상스 이후 이탈리아에서 발달한 요리가 메디치가의 왕녀가 프랑스로 시집오면서 대려온 이탈리아 요리사들에 의해서 프랑스 요리로 풍성해지고 발전해 지기 시작했다는 것은 알만한 프랑스 인들도 인정하는 바인데.

이 이야기를 전한 한 친구가 동료들로 부터 그럴리가 없다는 엄청난 무시를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만큼 파스타나 피자가 이태리 요리의 전부인지 알고 있는 문외한들에게도 프랑스 요리는 높은 가치를 인정 받고 있다.

한 식도락 하는 일본의 무라카미 류도 책에서 쓰지 않았던가. 일본에서 프랑스 요리를 비슷하게 하는 식당은 있어도 이태리요리를 제대로 하는 식당은 보지 못했다고.

일설 하고.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책, "두남자, 프랑스 요리로 말을 걸어오다."는 여러가지로 내가 좋아할 만한 책이다. 이 책은 단지 요리책이 아니다. (마치, 정명훈의 Dinner for eight가 요리책 이상의 것을 우리에게 선사하듯이.)

이 책을 보면 왜 프랑스 요리가 유명한지 알수 있다. 음식과 그 음식에 얽힌 사연들 그리고 그 음식을 나누었던 사람들을 기억하고 사랑하는 프랑스사람들이 있기에 프랑스 요리는 유명할수 밖에 없다. 이 책의 지은이가 그렇다. 각 요리마다 그 요리의 유래라 던지. 이 요리에 얽힌 자신의 개인적인 추억이라든지 하는 것들이 실려있다.

말 많은 프랑스인이 하고 싶은 수다를 다 떨어 놓았다. 프랑스 음식의 유래, 오해. 그리고 선입견을 깰수 있다. 그 어떤 책보다 프랑스 문화를 접하는 데에 좋은 책이다.

그리고 아테네 호텔의 알랭 뒤카스의 요리와는 거리가 있겠지만 힘들지 않게 비싸지 않게 만들어서 여럿이 즐길수 있는 요리들이 주로 소개되어 있다. 조금은 너무 투박하고 촌스러운 맛도 없지 않지만 그래도 음식이란 만들기 쉽고 나누어 먹기 쉬어야 되는 것이 아닌지.

프랑스 요리법을 뒤지다 보면 한가지 요리에도 너무 서로 다른 요리법이 있어서 무엇을 선택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 데. 이 책에서 보고 꼬꼬뱅을 만들고, 양파스프를 만들고 너무나 만족했다. (물론 초콜렛 무스에서 삐끗하기는 했지만)

새로운 것을 접하는 것을 즐기는 당신이라면 이 책을 한번 권하고 싶다. 꼭 요리가 아니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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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관한 달콤한 거짓말들
무라카미 류 지음, 김춘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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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본 소설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일본 영화도 그렇다. 이상하게 일본 문학이 가지는, 그것 때문에 전세계 독자를 끌어들이는 그 특이한 색채를 나는 좋아하지 않는 다. 나에게는 무척이나 변태적이라는 생각이든다.

그래도 요시모토 바나나, 무라카미 류, 무라카미 하루키등은 몇편 읽어보았고, 구로자와 아키로나, 기타무라 다케시등의 영화도 몇편보았다. 그리고 또또루나 센과 이치로 정도의 에니메이션은 봤다. 내가 그리 좋아했던 것은 아마도 '라생문'정도가 아니었나 싶다.

무라카미 류가 좀 싸가지가 없다는 것은 이미 느낀 바이지만. 정말 싸가지가 없다. 내가 이 책을 읽고 이렇게 느끼는 것은 그의 말이 다 옳다는 것을 내자신이 너무나 잘알고 있기 때문일것이다.

그의 말은 옳다.

그는 일본의 사회를, 청소년을, 여자들을, 남자들을 이야기 했지만 우리에 빗대어 보면 하나도 다를것이 없다.

한 십년전에 일본에서 일어난 사건들의 보도가 있을 때마다. '저것들 좀 이상한 민족 아니야.' 하고 들었다. 이지매의 이야기, 엽기적인 살인 사건들, 자살....

십년이 지난 지금 그 모든 것이 벌써 우리에게 흔한 일들이 되었다. 일본사람들이 이상했던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발전 진도가 그들 보다 느렸던것이다.

이 책의 원제는 '누구나 할수 있는 연애'란다. 그러니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은 누구나 연애를 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혼자 외롭지 않을 사람, 혼자 경제적으로 독립되어 있는 사람, 그래서 정신적으로도 독립되어있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해야지만 서로 불행하지 않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내 생각도 언제나 그랬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내가 한 사람 앞에 온전한 인간으로 떳떳하기를 기다려왔다. 그러나 그런 날은 오지 않았다.

나는 반쪽의 둘이 모여서 온전한 하나가 되는 결합은 믿지 않았다. 나는 온전한 둘이 모여서 2.5가 되는 결합을 하고 싶었다. 그건 나의 꿈이었고 그 꿈은 실행되지 않았다.

내 주위의 잘난 여자들 중에 결혼을 한 친구들이 있었다. 그들은 적어도 연봉 1억이 넘는 남자를 얻었고 그리고 남들이 보기에는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와 똑같은 조건에 나를 대입하면 내가 결코 행복하거나 포기 하고 살수 없다는 것을 안다.

나는 내가 홀로 온전히 서기를 기대하고 살아왔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반쯤 걸음마를 하다가 멈춘 형국이다. 나는 내가 이렇게 초라해지리 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이 지금의 나이다. 아마 걸음마 까지도 운이 억세게 좋아서 갔었나 보다.

이 글은 처음에는 연애 이야기인것 갔았고, 처음에는 여자들을 위한 글, 내지는 누구의 말처럼 여자들에게 아부하는 글 같았지만, 총체적으로 보면 달라진 사회와 그 속에서 가치관의 혼돈을 격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의 말이 다 옳음에도 불구하고 불만이있다.

무라카미 류는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가치관의 혼돈을 격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다는 착한 마음을 가지고 이 글을 쓰고 있지 않았다.

그는 다분히 우월한 자신의 입장에서 다른 사람들을 내려다 보면서 이글을 썼다. 여성들을 부추기는 글 같으면서도 그렇지 않다.

'이 불쌍한 인간들아. 여즉 그렇게 살고 있냐. 나를 봐라 얼마나 멋지게 사는 지. 쯧쯧.'

그래서 그의 글에는 사랑이 없다. 그의 글에는 사회의 (진정한)지도층으로서 자신의 도리를 하려는 정신도 없다.

그래서 조금은 공허하다.

하지만 그를 탓하기에는 나 자신이 너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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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26 15:4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