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선수도 있잖아. 특출하지는 않은데 꾸준한 선수들. 어느 경기에서든 몇 퍼센트 이상 자기 역할 성실히 해내는 선수들. 난 그런 선수가 되고 싶어요. 어느 날은 골대를 잡아먹을 듯이 현란하게 뛰고 다른 어느 날은 모니터 속으로 돌을 던지고 싶을 만큼 형편없고... 나는 그렇게 기복이 심한, 믿을 수 없는 선수 같아요.”
남편의 깊어진 눈동자와 마주하는 날이 있다. 내가 동굴로 숨어드는 날. 아침을 잘 차려먹고 설거지까지 마치고 나서 그러다 문득, “나 밖에 좀 나갔다 올게요.” 남편은 어디를 가냐고 했고 나는 친정에를 간다고 했다. 가는 도중에 서점에 들러 최승자의 새로 나온 시집을 샀고 무슨 변덕인지 초콜릿이 가득 묻은 아이스크림도 샀다. 다 도착했을 즈음, 공중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엄마 목소리. 엄마가 베란다에 나와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엄마, 내가 오는 걸 어떻게 알았어?” “응, 빨래 널다가 본거야.”
그 날 하루 종일 엄마와 수다를 떨고 고기도 구워먹고 잔치국수도 끓여먹고 엄마가 대추와 마른고추를 채 썰어 너는 모습도 지켜보며, 그렇게 빈둥빈둥, 시간을 보냈다. 오후에 남편한테서 전화가 왔고 나는 좀 더 이따가 데리러 오면 좋겠다고 했다. “실은 아침에 전화 왔었어.” “뭐라고?” 남편은 내가 친정에 간다고, 무척 우울해 하는데 왜 그런지 잘 모르겠다고, 장모님이 잘 좀 보살펴 달라고 했단다.
얼마 후, 나를 데리러 온 남편의 얼굴이 아침보다 한 뼘은 더 핼쑥해진 것 같았다. 엄마는 내게 그만 좀 징징거리라고 했고 나는 순순히 남편을 따라 나섰다. 집에 가는 동안 그는 별 말이 없었고 나는 집에 도착해 엄마가 해주신 음식들을 풀어놓으며 저녁부터 차렸다. “얼굴이 왜 그래요? 갑자기 눈이 더 처진 것 같애.” “아까 낮잠을 자서 그런가.” 그는 묵묵히, 맛있게 밥 한 그릇을 비웠다. 나도 없는데 이것저것 반찬을 꺼내놓고 제대로 점심을 차려 먹었을 리 만무했다. 생각이 많아 보이는 눈빛은 밥을 먹는 동안에도 여전했다.
다음 날, 연수원에서 시험을 마치고 온 그가 모처럼 저녁을 밖에 나가서 먹자고 했다. “그래요. 시험 끝났다고 술도 못 사주는데 간만에 외식할까.” 장소는 파마산 돈까스로 유명한 모교 중문의 레스토랑. 주차할 곳을 궁리하다가 여름에 연수 받을 때 들고 다니던 가방을 뒤져보니 옳거니, 주차권이 한 장 나온다. 어둑어둑해지는 저녁, 단과대 뒤편에 차를 세워놓고 보송보송한 후배들을 지나치며 조금 걸었다. 학부 시절의 몇 가지 추억을 떠올리기도 하고 신축된 강의동, 못 보던 술집들을 힐끔거리며.
그는 돈까스를, 나는 스파게티를 시켰다. 샐러드 바가 생기면서 본 메뉴가 시원찮아졌고 리모델링을 했다는데 스파게티 전문점인 쏘렌토와 거의 다를 바가 없더라는. 그나저나 하루가 지났는데도 남편의 깊고 처진 눈은 그대로였고 나는 그의 눈초리가 올라갔으면 하는 바람에서 별 것도 아닌 이야기에 박장대소를 하며 오버를 했다.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리 둘을 엮어준 장본인인 J의 근황을 이야기하며 그가 정말 잘되기를 바랐다.
밖으로 나오니 저녁 바람이 꽤 찼다. 주차장까지 걸어가던 길, 잘 안 벌어지는 입을 옹송거리며 위의 운동선수 이야기를 했다. 남편은 진심인지, 위로인지, 태어날 아이를 위해서도 자신처럼 사시사철 잔잔한 것보다는 나처럼 다채로운 감정을 가진 엄마가 좋다는 이야기를 했다. “글쎄, 엄마는 모름지기 일관성이 있어야 하는데 나도 나를 어쩌지 못할 때가 있으니.” “당신은 아직 젊어서 그런 거예요.” 그는 금세 나이 들어 버린 노인처럼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래 전부터 꾸준한 사람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사람들이 행여 나를 그런 사람으로 착각하면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자괴감 때문에 부끄러운 적도 많았다. 나는 미련할 정도로 고집스러운 사람이기는 해도 매사 한결같은 꾸준한 사람은 못 된다. 고집은 그저 그 사람만의 성미에 불과하지만 꾸준함은 다르다. 인내와 약속, 책임 등 많은 것들이 뒤따르는 고급한 미덕이다. 그저 고집스러울 뿐인 나는 주변의 꾸준한 사람들의 덕을 보며 산다. 그들은 고집과 변덕으로 시시때때로 생떼를 부리는 나를 큰 산과 같은 묵직한 꾸준함으로 받아준다. 아무리 잘난 척을 해봤자 그들의 수고로움 앞에서는 나는 그저 아직 어리거나 젊은, 어떤 상황에서는 결국 자기 하나밖에 볼 줄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일 뿐이다.
학창시절에는 공부하는 테크닉을 익히고, 사회에 나와서는 능력 있는 교사가 되기 위해 새로운 테크닉을 궁리하고, 결혼해서는 갖가지 살림 테크닉을 배우고... 언뜻 보면 상당히 부지런히 살아온 것 같지만 그러한 자잘한 테크닉을 넘어 정작 중요한 부분에서는 여전히 미숙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문득 스쳐 지나는 잔상에 몰입한다든지, 감정의 결을 건드리는 사소한 자극에 휘둘린다든지, 과거나 미래의 시간에 스스로를 두고 온다든지, 그럴 때마다 아무 영문도 모르는 주변 사람을 미궁에 빠뜨리는 안하무인의 습성. 그런 나를 마주하는 날이면 스스로가 가증스럽다. 일상이라는 무대에서 좀 전까지 꾸준함을 가장한 채 연극이라도 했던 것인가, 하는 의문도 든다.
엄마 말씀처럼 잠깐인 듯싶다가도 멀미날 듯 긴 것이 삶이다. 별로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꾸준함 밖에는 삶과 대적할 뾰족한 도리가 없는 것 같다. 반짝이는 매력들에 눈과 마음을 뺏기느라 그 묵묵한 미덕을 닦는 데에 너무 소홀했다. 그 날, 집으로 돌아오면서 남편과 나는 우리 주변의 한결같은 이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누구를 비판하고 싶어질 때는 말이지," 하고 아버지는 나에게 말씀하셨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네가 누리고 있는 만큼 그렇게 유리한 처지에 있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위대한 개츠비』中 그처럼 불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도 나를 향해 한결 같은 마음을 보여주곤 했다. 나는 다른 그 어떤 테크닉보다도 그 인정과 여유를 배워야 한다. 위대해지기 위해서라기보다 조금 덜 미안해지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