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시선>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한낮의 시선
이승우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소설을 읽고 아직도? 라는 생각을 했다. 작가 이승우에 대해서. 이십대 초반,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무성영화에 나오는 코메디언 같다는 생각을 하며 극심한 허무함에 빠져 있었다. 나는 도저히 나를 구원할 수가 없었다. 친구를 따라 성당에 나가보기도 했고 서점과 도서관의 심리, 철학 코너에서 하루 종일 배회하기도 했다. 젊은이라면 누구나 그런 때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그 시기로부터 벗어난다.

  그 무렵에 읽었던 책들이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 김성동의 『만다라』, 이승우의 『에리직톤의 초상』과 같은 책들이었다. 종교도 없었고 주변의 종교인들에 대해서도 다분히 회의적이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위와 같은 책들을 문학으로, 소설로 읽었다. 그때 작가 이승우와 처음 만났다. 젊고 열정적인 신학도가 아니라면 결코 써내지 못할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빛나는 처녀작이란 대개 그 시기의 그 아름다움으로 제 몫을 다 할 뿐. 작가도 세파를 피해갈 수 없으니 그가 추구하는 세계에도 변화가 있으리라 짐작했다.

  그런데 아직도, 그는 쓰고 있다. 신과 절대자, 아버지에 대해. 최근에 가장 주목받았던 『생의 이면』도 그렇고 꾸준히 내놓고 있는 중단편집에 실린 작품들 또한 그 색채에 일관성이 있다. 그런데 지겹지 않다. 도리어 눈물겹다고 해야 하나. 두 번 쯤 감탄하게 된다. 한 가지 주제에 천착해 꾸준히 밀고 나가는 그 고집에 한 번, 그리고 무겁고 답이 없는 이야깃거리를 쉽고 흥미진진하게 풀어가는 솜씨에 한 번. 책을 만들기에만 급급한 요즘 작가들이 눈여겨 배워야 할 미덕이다.

『한낮의 시선』속에 담긴 사연도 이전에 그가 추구했던 이야기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느 날, 폐결핵으로 요양 중에 문득 아버지를 찾아 나서게 된 청년이 있다. 이런저런 환영과 꿈에 시달리다가 무언지 모를 힘에 이끌려 지난 세월 무의식 속에 묻혀 있었던 아버지를 찾지만 청년은 아버지로부터 자식임을 거부당한다. 하지만 폭군이면서 동시에 보호자였던 병장을 살해한 일병의 이야기를 예로 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두렵고 불안한 ‘있음’보다 두렵지도 않고 불안하지도 않은 ‘없음’이 더 두렵고 불안했을 것이다(p.142). 실제로 그렇다. 인간이 종교를 갖고, 예술을 하고, 사랑을 하는 것. 그렇듯 삶 전반을 아우르는 숱한 행위들은 어쩌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몇 배나 더 큰 불확실성과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지만 그래도 인간은 그 두렵고 불안한 ‘있음’을 찾아다니고 의지한다. 아버지를 찾는 청년의 운명 또한 그렇다. 그는 인정받을 수도 있지만 거부당할 수도 있다. 선택은 오롯이 아버지의 몫이다. 하지만 평화로운 ‘부재’보다는 불편한 ‘존재’를 기어이 찾아 나선다. 의지할만한 권위와 절대를 지향하는 인간 운명의 상징에 다름 아니다.

  나는 천내로 데려가 달라는 말만 했다. 내가 꿈속에서 보았던 숲이 천내의 숲이라는 걸 나는 꿈을 꾸는 동안에도 알고 있었다. 나는 그 숲속에 들어가 있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가장 깊은 곳, 하늘을 받치고 선 키 큰 나무들과 투명한 햇빛이 큰 품이 되어 껴안는, 가장 오래된 시간의 정적 속에 들어가 있고 싶었다. 그곳에서라면 아무것도 갈망하지 않고, 무엇에도 쫓기는 일 없이 그저 존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그루 나무처럼 햇빛에 휩싸인 채 다만 존재하는 것이 가능할 것 같았다. 그곳에서라면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할 말이 없는’ 상태에 도달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 같았다(p.159). 마침내 마음속에서 아버지를 살해한 청년이 가고 싶은 곳. 천내의 숲. 그곳은 혼돈이나 갈망 없이 다만 존재하는 것이 가능한 곳, 아무런 할 말이 없는 상태로 머무를 수 있는 곳이다. 결국 믿고 기댈만한 절대적 존재를 찾아 헤매는 것이 인간 운명이지만 그 질긴 존재의 시선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한낮의 투명한 숲속에 홀로 설 수 있는 경지, 천내의 숲은 그 경지의 종착점이자 작가 이승우가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이상향이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여전히 삶과 인간의 근원을 파고드는 작가의 꾸준한 고집에 존경과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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