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 - 김이설 소설집
김이설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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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는 이 이야기들을 임신 중에 썼다 했다. 혹자는 어떻게 아기를 가진 몸으로, 한껏 좋은 생각, 고운 생각만 해도 모자랄 시기에 이런 이야기들을 썼느냐고, 아니 쓸 수 있었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나 역시 잠깐 그런 생각이 들었다가 책을 끝까지 읽고나서 오히려 임신 중이었기에 가능했던 이야기들이구나, 하고 바꾸어 생각하게 되었다.  

  무지한 남성들은 배부른 여성의 몸이 가장 아름답다고 찬탄하기 바쁘지만 과연 그뿐인가. 기쁨과 놀라움도 잠시, 나는 임신 기간 내내 변해가는 심신에 적응 불가의 상태를 지속하면서 온갖 기괴한 악몽과 절대 일어나서는 안될 불길한 상상에 시달려야 했다. 더불어 아기를 가진 여인들에 대한 절절한 동류 의식, 악조건 속에서 아기를 낳아 길러야만 하는 여인들에 대한 연민, 아기를 가진 여성으로서 남성으로 대표되는 사회 전반으로부터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울분 등, 많은 복잡한 감정을 겪었다. 그리고 그럴수록 나 자신과 아기를 지켜내야 한다는 생래적 본능으로 짐승처럼 예민해졌다. 나도 딸이 있고, 작가도 두 딸을 키우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이 험상궂은 사회에서 딸의 어미는 사방에 눈 달린 수호신이 되어도 모자랄 판이다.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의 여자들은 얼핏 <감자>의 복녀, <테스>의 테스, 김기덕 영화의 히로인을 떠올리게 했다. 위선적 지식인에게 희롱당하는 노숙자 소녀, 아버지의 빚으로 길거리에 나앉게 되자 대리모를 자청하는 여대생, 성폭행한 남자를 아빠라 부르며 트럭 생활을 하는 소녀, 부인병을 대물림하는 모녀, 남편의 형과 함께 살며 이웃이 버리고 간 여자아이를 돌보는 여인, 극단에서 일하며 알바로 몸을 파는 여배우 등, 평소에 관심조차 없고 대충 모른 척 했던, 하지만 우리가 분명히 '아는 여자'들에 관한 이야기다. 마지막에 실린 <하루>의 '나'처럼 교양있어 뵈는 중산층 여성의 삶을 견고히 유지하기 위해 나는 그런 여자 모른다고 시치미를 떼고 있었을 뿐이지 않은가.   

  여자들은, 특히 자의식이라 명명되는 자신만의 사고와 언어를 갖지 못한 여자들은, 그들을 그저 하나의 물적 대상으로 여기는 남자들과, 그런 남자들이 굳건히 축조해놓은 사회적 폭력에 의해 이처럼 끊임없이 희롱당한다. 더욱이 사방이 벽인 막막한 경제적 난관 앞에서 자의식이라든가 자기성찰은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에 불과하다. 그뿐인가. 겉으로는 한껏 사람 좋은 눈빛을 보내면서 속으로는 나와 너는 엄연히 다르다고 선을 긋는 뭇 여성들의 이중잣대는 여자들을 더욱 소외시킨다.  

  하지만 이 전망 없고 갓길 없어 보이는 어둡고 가파른 작품들 속에 간간히 빛이 보인다. 비록 거래로 만났지만 대리모와 여인 사이에 이해와 연민의 감정이 느껴지고, 똑같은 병에 걸린 모녀는 서로의 고통을 위로한다. 바닥까지 치닿은 상황에서도 여인은 이웃의 딸과 이마를 맞대고 미역국을 마시고, 여배우는 집 나간 엄마의 딸인 소녀에게 우동을 사먹인다. 가혹한 운명, 또는 인연이지만 딱히 누구의 잘못이랄 수도 없지 않은가. 이러한 몇몇 장면에서 모종의 끈끈한 연대감을 느꼈다.   

  <손>은 독특한 작품이었다. 처음으로 남성 화자가 등장했고 우유를 밀어넣는 배달부의 손에 셔터를 눌러대는 모양새는 상당히 그로테스크했다. 진화한 히키고모리를 마주한 느낌이랄까. 이러한 작품을 보면 작가의 다음 행보가 더욱 궁금해진다. 한 가지 색깔에 멈추어 있을 것 같지 않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나는 작가 공지영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녀는 독자들이 자신을 싫어하면서도 자신의 작품은 사서 읽는다고 말하지만 대중적 호기심과 판매전략에 의해서도 책은 얼마든지 팔릴 수 있다. 그것을 모르지 않을텐데 그렇게 말한다니 좀 어이가 없다. 왜 공지영 이야기를 하냐면 나는 그녀의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너와 나는 다르다는 전제를 깔고 들어가는, 자기안위의 연민이 못마땅하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다. 식모였던 <봉순이 언니>를 그렇게 그려놨고, 미모의 중산층 여성이 하잘것 없는 사형수를 사랑하게 되어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는 설정 자체도 좀 오버다. 연민을 위한 연민은 겉돌고, 속이고, 급기야 짜증이 엄습한다.   

  반면에 작가 김이설은 그녀의 인물들에게 희망 따윈 없다고 잘라 말하는 듯 하지만 그 거칠고, 독하고, 어두운 목소리 이면에 괜찮다, 당신들 탓이 아니다, 계속 살아라, 그 또한 삶이다, 하는 존중과 다독임의 목소리가 면면히 들려온다. 그녀는 식모를 천사로 미화시키지도 않고 안락한 생활을 지켜내려는 중산층 여성과 사형수를 억지로 엮어주지도 않는다. 그녀의 주인공들은 유리구두를 찾아 방황하는 신데렐라가 아니라 맨발로 진흙탕을 뒹굴며 쌍시옷을 날리는 생 한복판의 여자들이다. 이 작가는 듬직하게도 언어를 다룰 줄 아는 본인의 재능을 그들을 위해 바치고 있다. 소중한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건강과 건필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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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인 2010-06-29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친소재를 다루었지만 진솔함이 농축되어 있는 책이라는 느낌을 받게 합니다.
극히 사실적인 현실의 소재와 주인공들을 독자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도록 했다는 것에 주목해 봅니다.

깐따삐야 2010-07-01 10:28   좋아요 0 | URL
전호인님도 읽으셨군요. 모처럼 아주 강한 인상을 남기는 소설집을 읽었습니다.^^

레와 2010-06-29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관함에 담을게요! ^^

깐따삐야 2010-07-01 10:28   좋아요 0 | URL
네네.^^

2010-06-30 1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01 1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skul23 2010-06-30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빨리 구입해서 읽고 싶어요 ..

깐따삐야 2010-07-01 10:41   좋아요 0 | URL
뽐뿌질이 심했나요? ^^
 
특별한 선물
이서인 지음 / 화남출판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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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에 나온 책인데 그때 나는 무슨 책을 읽고 있었을까. 왜 이 책을 지나쳤을까. 아마 홍보 탓일 것이다. 웬 뒷북인지 요즘은 좀 되는 소설들에 관심이 간다. 최근 소설들은 -최근에 나온 소설들을 모두 읽지는 못하였으나- 낭비라는 느낌을 준다. 치열함이 없다.  

  줄거리는 매우 단순하다. 횟집을 겸한 민박집에 장기투숙을 하게 된 하유정이라는 작가와, 그곳 주방장인 한수라는 남자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다. 러브스토리 또는 불륜이라고 쓰려다가 그냥 만남이라고 쓴다. 하유정은 한수를 사랑하지 않았으므로 러브스토리가 아니며 불륜이라고 하기에는 한수의 순정이 저급해 보인다.  

  책을 읽다보면 하유정이라는 여자에 대해 계속 분노하게 된다. 남편과 딸이 있는 그녀는 작가란 모름지기 자유로운 영혼이어야 한다는 구실로 남성 편력을 즐긴다. 물론 천재적인 남성들로부터 영감과 잠재력을 이끌어내던 루 살로메 같은 여인은 아니다. 그녀에게 남자란, 그리고 연애란 심심풀이 육포 같은 것이다.  

  복잡한 가정의 묵묵한 맏이로, 식당의 근면성실한 일꾼으로 아무런 갈망 없이 살아왔던 한수에게 완전한 낯섦으로 다가온 하유정은 지식인, 먹물 특유의 관찰력과 통찰력으로 순수덩어리인 한수를 알아본다. 그리고는 아무 어려움 없이 한수를 자기 남자로 만들어 버린다. 한수는 자신과는 전혀 다른 세계, 매우 고급하고 세련된 세계에서 왕림한 듯한 하유정에게 스스로를 아낌없이 내어준다.

  "하 작가님은 정말 모든 사람에게 배려가 깊어요. 하기야 작가라면 마땅히 인간을 연민할 줄 알아야지요. 그런 면에서 하 작가님은 작가로서의 진정성을 갖추신 분이에요." 다시 김 선생의 말, "오히려 제가 저들에게 배우죠." 그녀의 말. 한수는 벌떡 일어나 주방으로 돌아왔다(p.254). 오히려 제가 저들에게 배우죠. 이 대목에서는 토할 것 같았다. 그리고 뜨끔했다.    

  헌신하다가 헌신짝처럼 내팽개쳐진 한수에게 그러나 이 연애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아닌 바, 이렇게 묻고 있다. 저 여자는 자기가 어떤 여자라는 것을 알고 있을까?(p.277) 작가는 독자들이 하유정에게 분노하기 전에 자기 자신을 먼저 돌아보았으면 한다고 썼다. 하지만 이런 소설을 읽는 평범한 독자들보다는 권해줄 사람들이 따로 있지 않은가. 지식권력으로 분류되는, 소설책이라고는 전혀 사볼 것 같지 않은 사람들에게 한번 읽혀봤으면 싶다. 물론 튼튼한 자기애와 자기합리화를 자양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한권의 소설로 개선될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이런저런 상상해보기를 좋아하는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하유정이라는 작가와 오버랩되는 여류작가 한명을 떠올렸다. 물론 나는 그 작가의 사생활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다. 그런데도 자꾸 그 여자가 생각났다. 그리고 하유정의 친구로 잠깐 등장하는 또 다른 여류작가가 이 책을 쓴 '이서인'의 반영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너는 그래도 나는 아니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오만일 것이고 일부의 이야기를 전체가 다 그런 것처럼 결정지워버리는 것은 편견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작가의 오만과 편견이 독자에게 뭔가 매섭고 찌릿한 일깨움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무기력하거나 자폐적인 목소리만 넘쳐나는 요즘 소설을 읽다가 간만에 참 강단있는 소설을 만나니 모처럼 뭐 하나 제대로 읽은 것 같다. 

  그런데 작가 이서인은 알고보니 소설가 임영태와 함께 사는 여인이었다. 표지에 실린 사진이 아름다웠다. 작가의 첫 장편인 <숲속의 연어>는 절판되었단다. 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누구 가지고 계신 분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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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7시 반쯤 마트에 갔는데 줄선 사람들이 장난이 아니었다. 다들 축구 보면서 먹을 야식거리들을 사가는 것 같았다. 집으로 오는 길, 빨간 티셔츠 입은 학생들이 두런두런 줄지어 지나가고 거리는 또 다시 한적해졌다.  

  8시가 넘자 축구가 시작되고 초저녁부터 잠이 든 영달이가 이렇게 고마울 데가! 요즘 영달이는 친정엄마가 데리고 주무신다. 엄마는 아르헨티나면 우승 후보 아니냐며 4대 0으로 안 지면 다행이라고 썩소를 날리신 후 영달이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셨다. 나도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워낙 흥이 좋으니 이변이 일어나기를 바랬다.  

  그런데 경기가 시작되자 천장이 들썩들썩. 박주영이 자책골을 넣으면서 윗층에서 난리가 났다. 원래 지난 그리스전 때부터 온 아파트 단지가 요동을 쳤지만 어제는 더욱 심하더라는. 특히 윗층 아저씨의 함성 소리가 엄청났다. 요즘 날이 더워서 다들 창문을 열어놓고 살다보니 더 생생하게 들렸다. 

  윗층 응원단들은 끊임없이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고 발을 굴러대고 이청용이 한 골을 만회하자 저쪽 동네에서는 팡팡, 축포가 터진다. 전후반 사이의 짬에는 하늘에서 오색찬란 불꽃놀이가 벌어지고 멀리서 빠방빵 빵빵, 하는 자동차 경적소리가 들린다. 한 마디로 아주 난리가 났다.  

  결국 쌕쌕 잠이 들었던 영달이, 으앙! 하고 울음을 터뜨리고 소리 날까봐 문도 못 열고 베란다 쪽으로 나가서 안방을 들여다보니 엄마가 영달이를 안고 어르고 계셨다. 윗층 아저씨, 왜이렇게 열정적이냐. 그러게나 말여요.  

  후반전이 시작되고 염기훈의 왼발 슛이 골대를 비껴나가는 순간, 여기저기서 아효~ 아이쿠~ 하는 소리들이 들려오고 윗층 응원단은 거의 째지는 듯한 소리를 질러가며 난리법석이었다. 나도 이 시점은 무진장 아쉬웠다. 그래도 영달이가 다시 깰까봐 크게 소리도 못 내고 마냥 투덜투덜.  

  연이어 골을 내주면서 동네는 조용해지고 윗층 아저씨 및 응원단도 잠잠해졌다. 나도 괜히 다른 채널 돌려보면서 체념 모드. 메시가 대단한 선수라는 것을 다시 한번 절감했고 해외 무대에서 뛰어본 경험이 없는 국내파 선수들에 대한 약간의 아쉬움. 더욱이 상대는 아르헨티나였으니.   

  그나저나 월드컵은 흥미진진한데 영달이가 잠을 못 자서 걱정이다. 낮부터 동네가 들썩거리기 시작하면 낌새를 아는지 심란해한다. 특히 윗층 아저씨, 조금만 자제해 주셨으면 좋겠다. 여기도 합동 응원하는 곳 많은데 왜 늘 안방에서 응원하시는지도 알 수 없고. 그 열정과 목청이면 카메라에도 잡히실 것 같던데. 우리 영달이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기 키우는 집들은 우리나라 경기 있을 때마다 좀 곤란할 것 같다.  

  그래도 16강을 갔으면 좋겠다. 나이지리아도 아마 죽기 살기로 나올텐데 화이팅이다. 다음주 수요일엔 윗층 응원단이 야외로 나가길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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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인 2010-06-18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한민국이 들썩거리니 산에 있는 짐승들은 무슨 일인가 할 꺼에요. ㅎㅎ
이것들이 다 미쳤나 하겠죠?
아기들은 엄마아빠의 때아닌 소리에 놀라 울고.....
나이지리아와의 경기에서는 경끼해도 좋으니 대한민국을 모두 미치게 만들어 줬음 좋겠어요.
대한민국 홧팅입니다. ^*^

깐따삐야 2010-06-18 11:01   좋아요 0 | URL
산짐승들까지 붉은 악마 티셔츠 입고 응원하는 상상을 해보니 웃음이 나네요.ㅋㅋ
노노, 그래도 경끼는 안됩니다.-_- 근데 이길 것 같아요!

Mephistopheles 2010-06-18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2년엔 주니어가 마님 뱃속에 있을 때였는데..한국팀이 이탈리가 꺽을 때 그 부른배를 잡고 마님이 날라올랐죠.

비연 2010-06-18 23:47   좋아요 0 | URL
우하하하! 주니어는 뱃속부터 축구태교를..!!

깐따삐야 2010-06-21 10:02   좋아요 0 | URL
이탈리아전 하니까 공격수 비에리가 떠오르네요. 우람한 덩치로 우리 선수들을 툭툭 치고 나가던, 그러면 호리호리한 우리의 수비수들, 거의 악으로 깡으로 막아내고. 갑자기 눈물이 앞을...;; 날아오를만한 경기였어요.^^

무스탕 2010-06-18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우리나라 경기 끝나고 나이지리아랑 그리스 경기도 끝까지 봤다죠 ^^;
2승이었으면 크게 신경을 안썼을텐데 어제 그렇게 됐으니 다른 나라들이 어찌하는지 무지 신경 쓰인다는..

깐따삐야 2010-06-21 10:04   좋아요 0 | URL
그러게 복잡하고 머리 아프게 따지지 않아도 될 정도의 실력은 언제쯤일까요. 그런데 아르헨티나는 정말 명성값 하더군요. 아르헨티나나 스페인, 두 나라 중 하나가 우승할 것 같아요.

레와 2010-06-18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2층에 사는데요, 불현듯 1층 분들이 걱정되고...으흐흐흐 ;;



깐따삐야 2010-06-21 10:05   좋아요 0 | URL
레와님도 그 시끄럽다는 윗층 응원단이시군요.ㅋㅋ^^
 
우리는 사람이 아니었어 - 1994 제18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임영태 지음 / 민음사 / 199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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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임영태 작가의 <아홉 번째 집 두 번째 대문>을 읽고 예전에 읽었던 <우리는 사람이 아니었어>를 다시 읽고 싶어졌다. 세월이 흘렀지만 역시 재미있고 좋은 소설이다. 요즘 이만큼 쓰는 작가도 드물다는 생각이 든다. 검색해보니 작가의 책 대부분이 절판된 상태. 안 팔렸고, 안 팔린단 얘기다. 많이 아쉽다.   

  이 소설엔 세 친구가 등장한다. '우리'라고 명명되는 두 사람, 그리고 '두호'. 요즘 청년들은 아니고 음악다방, DJ의 마지막 세대쯤 될까. 공고를 나와 생계비를 벌기 위해 알바를 전전하며 하릴없이 노닥거리는 우리는 서울 생활에 진력이 나거나 훌쩍 뜨고 싶을 때 춘천에 있는 두호에게 찾아간다. 두호는 노동현장에서 총무 일을 하면서 집안의 맏아들로, 빈손으로 찾아드는 우리의 물주로, 약한 내색 없이 묵묵히 살아가는 친구다. 소설은 우리의 이야기와 두호의 이야기, 그리고 우리와 두호의 이야기를, 그 또래 청년의 시점과 목소리로 들려준다.   

  그러고보니 공고생, 상고생들을 잊고 살았다. 언제는 기억하고 살았냐만은 요즘은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청춘들도 일자리가 없다고 아우성치는 마당이니 실업계 고교를 나온 청춘들에게까지 눈을 돌리지 못했다. 음악다방이라니, 무슨 고릿적 이야기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여상을 나온 친구 하나는 이번에 출산을 하면서 십년을 다닌 회사에서 잘렸다. 출산율을 걱정하는 나라에서 오늘 이 순간에도 벌어지는 일이다. 십년간 청춘을 바쳤던 직장이 그녀에게 준 것은 상당 분량의 분유였다. 모유수유를 하는 그녀는 분유가 필요하면 자기에게 말하라 했다. 아직 유통기한이 한참이나 남았다고. 그녀는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3교대로 일했고 그 와중에 편찮으신 어머니와 마땅한 직업 없이 전전하는 남동생을 돌봤다. 중학교 때까지의 내 기억으로 그녀는 영어 성적이 좋았고, 글씨를 예쁘게 썼으며, 특히 피아노를 잘 쳤다. 그리고 서태지를 좋아했다. 꿈이 뭐냐고 물은 적은 없다. 하지만 언제고 결혼하고 임신하면 내쫓는 회사에서 십년간 뼈빠지게 일하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회사에서는 아주 당연히 그만두는 걸로 알던데?" 그녀의 말에 문득 서글퍼졌다.   

  소설 속 우리와 두호도 무엇을 하기도 전에, 꿈도 꾸어보기 전에 벽에 부딪힌다. 책을 읽어도 처지에 맞지 않는 인문적 기질은(p.34) 상처로만 돌아오고 이십세기에 살면서도 잡지 속 아름다운 여성과의 연애는 언감생심일 뿐. 그러나 누구를 향하여 무엇에 대하여 분노하랴. 그 대상을 알 만큼 우리는 깨어 있지 못했다. 우리는 그저 황폐한 유적이 되어 가라앉으며 오래도록 벌레라는 말만 신음처럼 주저리고 있었다. 벌레(p.217).     

  그때와 지금은 달라졌을까? 계급이 좀더 미시화, 세분화 되었다는 것 정도? 그러나 영악해진 젊음들은 황폐한 유적이 되기를 거부한다. 할 일이 없다고 왜 황폐해야 하는가. 그들은 열심히 놀거리를 찾아다니며 무정형의 삶을 즐긴다. 우리는 벌레였어, 라고 절망할만큼 순진한 것 같지도 않다. 그래서 나는 술이 떡진 우리와 두호보다 해사한 그들이 더 낯설고, 무섭다.    

  나는 이 보잘것 없는 젊음들의 찌질한 신파, 케케묵은 정서가 썩 마음에 든다. 특히 두호의 삶은 HD 이전 드라마게임을 보는 것처럼 축축하고 촌스럽다. 요즘 소설에서는 전혀 듣도 보도 못한 케릭터들이다. 담배도 못 피우면서 길에서 만나면 담배 한갑 사주고 싶다. 선선한 저녁 무렵, 파라솔 밑에서 소주 한잔 해도 좋을 것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그렇게 그들의 삶을 응원하고 싶었다. 나는 벌써 기성화된 것일까. 어느새 어른이라도 된 것처럼 그들과 거리를 두고 있다니.  

  임영태 작가의 건필을 빈다. 내가 갖고 있는 두 책 모두 잘 읽히고 오래 곱씹게 된다. 무엇보다도 쉽게 흉내낼 수 없는 진솔함이 있다.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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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탕 2010-06-17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 아홉번째집두번째대문을 다 읽지도 못하고 도서관에 반납을 했지 뭡니까? 다시 한번 더 빌려 읽으려구요. 뒷 이야기가 궁금하지만 찾아보거나 그러지 않고 있어요. 내가 읽어야지!
저도 여상을 나왔어요. 졸업도 전에 취직을 했지요. 다행히 좋은곳(?)에 취직이 돼서 결혼을 해도 애를 낳아도 나가라는 말 한마디 안하는 직장이었지만 제가 여건이 안맞아 그만두게 되었네요.
아마 그래서 더 공무원을 선호하겠죠? 사기업과 달리 공무원은 결혼했다고, 출산한다고 그만두라는 소리 안하니까요. 얼른 기업 풍토가 바뀌어야 할텐데 말이에요..

깐따삐야 2010-06-18 10:54   좋아요 0 | URL
되게 좋게 읽은 소설이에요.^^
졸업하기도 전에 그런 좋은 직장을 구하셨다니 공부 열심히 하셨나 보다. 그 친구네 회사는 여직원이 결혼하고 임신하면 너무도 당연히 그만두는 분위기래요. 여전히 그런 곳이 많죠. 그러면서 출산율이 어쩌고 하는 거 보면.-_-
저는 교사이다보니 그만두란 소리는 안 듣지만 눈치도 보이고 아이도 안 낳은 남자 선생님들이 업무 효율 어쩌고 하는거 보면 완전 짜증나요. 우리나라는 아직도 한참 멀었어요.

비로그인 2010-06-17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연한 걸 부러워하는 몹쓸 짓을 권하는 사회.
저도 이 작가를 좋아합니다. 밑바닥에서 담담한 목소리를 끌어낼 줄 아는 필력의 작가.

깐따삐야 2010-06-18 10:56   좋아요 0 | URL
우울해요.ㅠ
Jude님도 좋아하신다니 반갑네요. 많이들 모르더라구요. 대부분 절판되었으니 그럴 만도 하고. 다음 소설을 기대하고 있어요.^^
 
진심의 탐닉 - 김혜리가 만난 크리에이티브 리더 22인 ㅣ 김혜리가 만난 사람 2
김혜리 지음 / 씨네21북스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영화야 미안해>에서 김혜리 기자의 필력은 확인한 바가 있다. 그 책을 읽고 거의 상찬에 가까운 리뷰를 썼다. 영화에 관심이 있고, 맛있고 성실한 영화평을 기대하는 이들에게 즐거운 독서가 되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이 책을 샀다.

  이 책은 '김혜리가 만난 크리에이티브 리더 22인'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김제동, 유시민, 신형철 등의 인터뷰에 관심을 갖고 읽었다. 그외 김명민이나 고현정과의 인터뷰도 흥미로웠다. 그런데 이들이 정말 리더인가, 더욱이 크리에이티브 리더인가? 어쩌면 당시 이슈가 되고 있거나 접근이 용이한 사람들을 김혜리 기자의 기준으로 선택, 취재한 것은 아닌가?

  "오늘날 인터뷰에 대한 수요는 군중 속의 고독을 강요하는 삶의 양식이 낳은 슬픈 허기의 신호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가짜처럼 보이는 시대에 진짜배기의 벌거벗은 진실에 가닿고 싶다는 간절한 발돋움이다." 인터뷰의 동기에 관해 김혜리 기자가 인용한 조지 가렛의 말이다. 그렇다면 내가 이 책에서 보리라 기대했던 것도 진짜배기의 벌거벗은 진실 같은 것일텐데 어쩐지 나는 보던 것을 다시 본 느낌이다.     

  물론 이 책에는 많은 것들이 들어있다. 유머와 감동이 살아있는 버라이어티쇼 같은 글모음이다. 김제동이 야구 포지션을 가족 구성원에 비유할 때는 무릎을 치며 폭소가 터져나오고 고현정이 촬영 구경 나온 아이를 안아주는 모습에서는 마음이 짠해진다. 그런데 새롭지 않다. 보아왔던 것들이고 있음직한 장면이다. '진짜배기'의 '벌거벗은' '진실' 같은 것은 어디에서도 못 보았다. 그래서 재미있는데도, 읽고 나면 심심하다.    

  예전에 어떤 사람이 내게 "너는 사람 속내를 털어놓게 하는 재주가 있어." 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나를 향한 부담스런 각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당시의 나는 귀는 당나귀처럼 컸고 입은 봉제인형처럼 지퍼를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놀라운 집중력이 있었다. 이 책의 멋진 제목처럼 사람에서든, 책에서든, 그 무엇에서든 진심을 탐닉하고픈 때였다. 사람을 만나고 오면 행복했고, 또 피곤했다. 그리고 지금은? 피곤할 것 같은 사람은 아예 안 만난다. 

  인터뷰는, 경청은, 그 과정을 한편의 글로 완성, 새로운 진실로 주조한다는 것은 단순히 상대방 앞에서 마음을 연다, 귀를 기울인다, 이상의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사람 속내를 털어놓게 하는 것은 재능이 아니라 성정일 가능성이 크다. 김혜리 기자는 그 성정과 에너지를 두루 갖추었다. 그러나 기왕 공식적인 인터뷰어로 나섰다면 한 걸음 더, 나아가주면 좋겠다. 어깨 힘을 느슨히 빼고 하지만 발걸음은 과감하게. 기대를 갖고 읽은 책에서 벌거벗은 진실이 아니라 고만고만한 진실만 보았기에 이렇듯 아쉬움이 남는다.  

  책을 엮지만 말고 <영화야 미안해 2>를 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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