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7시 반쯤 마트에 갔는데 줄선 사람들이 장난이 아니었다. 다들 축구 보면서 먹을 야식거리들을 사가는 것 같았다. 집으로 오는 길, 빨간 티셔츠 입은 학생들이 두런두런 줄지어 지나가고 거리는 또 다시 한적해졌다.
8시가 넘자 축구가 시작되고 초저녁부터 잠이 든 영달이가 이렇게 고마울 데가! 요즘 영달이는 친정엄마가 데리고 주무신다. 엄마는 아르헨티나면 우승 후보 아니냐며 4대 0으로 안 지면 다행이라고 썩소를 날리신 후 영달이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셨다. 나도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워낙 흥이 좋으니 이변이 일어나기를 바랬다.
그런데 경기가 시작되자 천장이 들썩들썩. 박주영이 자책골을 넣으면서 윗층에서 난리가 났다. 원래 지난 그리스전 때부터 온 아파트 단지가 요동을 쳤지만 어제는 더욱 심하더라는. 특히 윗층 아저씨의 함성 소리가 엄청났다. 요즘 날이 더워서 다들 창문을 열어놓고 살다보니 더 생생하게 들렸다.
윗층 응원단들은 끊임없이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고 발을 굴러대고 이청용이 한 골을 만회하자 저쪽 동네에서는 팡팡, 축포가 터진다. 전후반 사이의 짬에는 하늘에서 오색찬란 불꽃놀이가 벌어지고 멀리서 빠방빵 빵빵, 하는 자동차 경적소리가 들린다. 한 마디로 아주 난리가 났다.
결국 쌕쌕 잠이 들었던 영달이, 으앙! 하고 울음을 터뜨리고 소리 날까봐 문도 못 열고 베란다 쪽으로 나가서 안방을 들여다보니 엄마가 영달이를 안고 어르고 계셨다. 윗층 아저씨, 왜이렇게 열정적이냐. 그러게나 말여요.
후반전이 시작되고 염기훈의 왼발 슛이 골대를 비껴나가는 순간, 여기저기서 아효~ 아이쿠~ 하는 소리들이 들려오고 윗층 응원단은 거의 째지는 듯한 소리를 질러가며 난리법석이었다. 나도 이 시점은 무진장 아쉬웠다. 그래도 영달이가 다시 깰까봐 크게 소리도 못 내고 마냥 투덜투덜.
연이어 골을 내주면서 동네는 조용해지고 윗층 아저씨 및 응원단도 잠잠해졌다. 나도 괜히 다른 채널 돌려보면서 체념 모드. 메시가 대단한 선수라는 것을 다시 한번 절감했고 해외 무대에서 뛰어본 경험이 없는 국내파 선수들에 대한 약간의 아쉬움. 더욱이 상대는 아르헨티나였으니.
그나저나 월드컵은 흥미진진한데 영달이가 잠을 못 자서 걱정이다. 낮부터 동네가 들썩거리기 시작하면 낌새를 아는지 심란해한다. 특히 윗층 아저씨, 조금만 자제해 주셨으면 좋겠다. 여기도 합동 응원하는 곳 많은데 왜 늘 안방에서 응원하시는지도 알 수 없고. 그 열정과 목청이면 카메라에도 잡히실 것 같던데. 우리 영달이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기 키우는 집들은 우리나라 경기 있을 때마다 좀 곤란할 것 같다.
그래도 16강을 갔으면 좋겠다. 나이지리아도 아마 죽기 살기로 나올텐데 화이팅이다. 다음주 수요일엔 윗층 응원단이 야외로 나가길 빌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