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선물
이서인 지음 / 화남출판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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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에 나온 책인데 그때 나는 무슨 책을 읽고 있었을까. 왜 이 책을 지나쳤을까. 아마 홍보 탓일 것이다. 웬 뒷북인지 요즘은 좀 되는 소설들에 관심이 간다. 최근 소설들은 -최근에 나온 소설들을 모두 읽지는 못하였으나- 낭비라는 느낌을 준다. 치열함이 없다.  

  줄거리는 매우 단순하다. 횟집을 겸한 민박집에 장기투숙을 하게 된 하유정이라는 작가와, 그곳 주방장인 한수라는 남자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다. 러브스토리 또는 불륜이라고 쓰려다가 그냥 만남이라고 쓴다. 하유정은 한수를 사랑하지 않았으므로 러브스토리가 아니며 불륜이라고 하기에는 한수의 순정이 저급해 보인다.  

  책을 읽다보면 하유정이라는 여자에 대해 계속 분노하게 된다. 남편과 딸이 있는 그녀는 작가란 모름지기 자유로운 영혼이어야 한다는 구실로 남성 편력을 즐긴다. 물론 천재적인 남성들로부터 영감과 잠재력을 이끌어내던 루 살로메 같은 여인은 아니다. 그녀에게 남자란, 그리고 연애란 심심풀이 육포 같은 것이다.  

  복잡한 가정의 묵묵한 맏이로, 식당의 근면성실한 일꾼으로 아무런 갈망 없이 살아왔던 한수에게 완전한 낯섦으로 다가온 하유정은 지식인, 먹물 특유의 관찰력과 통찰력으로 순수덩어리인 한수를 알아본다. 그리고는 아무 어려움 없이 한수를 자기 남자로 만들어 버린다. 한수는 자신과는 전혀 다른 세계, 매우 고급하고 세련된 세계에서 왕림한 듯한 하유정에게 스스로를 아낌없이 내어준다.

  "하 작가님은 정말 모든 사람에게 배려가 깊어요. 하기야 작가라면 마땅히 인간을 연민할 줄 알아야지요. 그런 면에서 하 작가님은 작가로서의 진정성을 갖추신 분이에요." 다시 김 선생의 말, "오히려 제가 저들에게 배우죠." 그녀의 말. 한수는 벌떡 일어나 주방으로 돌아왔다(p.254). 오히려 제가 저들에게 배우죠. 이 대목에서는 토할 것 같았다. 그리고 뜨끔했다.    

  헌신하다가 헌신짝처럼 내팽개쳐진 한수에게 그러나 이 연애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아닌 바, 이렇게 묻고 있다. 저 여자는 자기가 어떤 여자라는 것을 알고 있을까?(p.277) 작가는 독자들이 하유정에게 분노하기 전에 자기 자신을 먼저 돌아보았으면 한다고 썼다. 하지만 이런 소설을 읽는 평범한 독자들보다는 권해줄 사람들이 따로 있지 않은가. 지식권력으로 분류되는, 소설책이라고는 전혀 사볼 것 같지 않은 사람들에게 한번 읽혀봤으면 싶다. 물론 튼튼한 자기애와 자기합리화를 자양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한권의 소설로 개선될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이런저런 상상해보기를 좋아하는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하유정이라는 작가와 오버랩되는 여류작가 한명을 떠올렸다. 물론 나는 그 작가의 사생활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다. 그런데도 자꾸 그 여자가 생각났다. 그리고 하유정의 친구로 잠깐 등장하는 또 다른 여류작가가 이 책을 쓴 '이서인'의 반영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너는 그래도 나는 아니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오만일 것이고 일부의 이야기를 전체가 다 그런 것처럼 결정지워버리는 것은 편견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작가의 오만과 편견이 독자에게 뭔가 매섭고 찌릿한 일깨움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무기력하거나 자폐적인 목소리만 넘쳐나는 요즘 소설을 읽다가 간만에 참 강단있는 소설을 만나니 모처럼 뭐 하나 제대로 읽은 것 같다. 

  그런데 작가 이서인은 알고보니 소설가 임영태와 함께 사는 여인이었다. 표지에 실린 사진이 아름다웠다. 작가의 첫 장편인 <숲속의 연어>는 절판되었단다. 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누구 가지고 계신 분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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