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며칠 두통에 시달렸다. 엊그제 저녁엔 두통약을 먹고 겨우 잠이 들었고 어제 아침에도 두통약을 먹고 출근을 했건만 머리가 아프다 못해 급기야는 눈두덩이가지 욱씬거리기 시작했다. 눈동자를 손으로 만져보니 뻐근한 감이 왔다. 감기로 고열에 시달릴 때나 느껴지는 증상인데 이마를 짚어보면 약간의 미열만 있을 뿐. 게다가 콧물도 나지 않고 목도 아프지 않으니 감기 초기 증상도 아니었다. 그렇게 온종일 아팠다가 퇴근 무렵 즈음해서는 조금 괜찮아지는가 싶더니 저녁이 다가오자 다시 고통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다른 데는 모두 말짱한데 오직 머리만이 욱씬욱씬, 뜨끈뜨끈. 요즘 신경 쓰는 일 있니? 아니, 그런 거 없는데. 너무 사소한 거에 신경쓰지 마. 너 아니어도 세상은 다 굴러가게 되어 있어. 그치, 아마 내가 없으면 더 잘 굴러갈지도 몰라. 흐흐. 엄마는 내가 요즘 많이 피로한 모양이라며 귤껍질과 대추 닳인 물에 꿀을 넣은 차를 준비해 주셨다. 엄마는 잘 알고 계신다. 나란 사람이 나이만 남부럽잖게 먹었을 뿐 여전히 어린 애고 여린 애라는 것을. 나도 엄마를 조금은 알고 있다. 엄마란 사람이 연세만 남부럽잖게 드셨을 뿐 여전히 나와 같은 여성이고 누구보다 매력적인 분이라는 것을.
엄마는 그간 내가 보아온 사람 중에 가장 현명하고 근사한 사람이지만 사실은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 가장 슬픈 사람이기도 하다. 나는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엄마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겠다. 내가 쉽게 센치해지는 사람이라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엄마의 깊고 짙은 눈동자를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콧등이 시큰해질 때가 있다. 엄마는 당신의 운명에 능동적으로 순응해 오신 분이다. 눈앞에 벽이 보인다고 해서 그 운명을 바꾸려고 하지 않았고 그 운명 내에서 어떻게든 끝장을 보려고 하셨다. 사방이 온통 막막한 벽 뿐일 때, 그 벽을 피하려고 들면 실패나 죽음 뿐이지만 그 벽을 피하지 않으면 사람은 더 강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는 거야. 엄마보고 다시 살라고 하면 힘들어서 못 살겠지. 그렇지만 인생이 다행히 한 번 뿐이잖니. 내가 한창 뒤늦은 사춘기를 겪으며 힘들어하고 방황할 때 엄마는 저처럼 무슨 위인전기에나 나올법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셨다. 다른 사람이 그런 말을 했다면 그다지 와닿지 않았겠지만 곁에서 엄마의 삶을 익히 보아온 나는 엄마가 그 짙은 눈동자에 눈물이 아니라 웃음을 띄우며 낭랑하게 말씀하시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았었다. 그리고는 약해질 때마다 내가 엄마 딸이라는 것을 떠올리곤 했다. 엄마 딸인데 엄마의 반의 반의 반이라도 닮았겠지. 그렇다면 이렇게 주저앉으면 안되는 거지. 아빠를 닮아 선천적으로 부드럽고 유약한 성품은 내가 뭔가를 이루려고 하는 찰나에 늘 우유부단하게 내 의지를 흔들어 버리곤 했지만 너희 엄마는 잠도 안 자고 너희를 키웠다는 주위 지인들의 이야기처럼, 밤낮에 걸쳐 엄마로부터 받은 후천적 교육 덕분에 나는 목표만 하나 정해지면 비교적 끈기 있게 밀고 나가는 근성을 심신에 익힐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엄마에게 잘해드리는 방법을 잘 모른다. 늘상 받기만 했던 사람은 주는 것이 어색해지고, 늘상 주기만 했던 사람은 받는 것이 또한 불편한 법이다. 전에 놀러왔던 후배가 집으로 돌아가던 중에 엄마와 통화하는 내용을 듣고 깜짝 놀랐다. 엄마가 뭐라셔? 우리집에서 자고 가니깐 걱정되셨나 보다. 아니요, 집에 오는 길에 백화점 들러서 H화장품 사오라고 하시네요. 화장품 사오라고 전화를 하셨어? 네, 저희 엄마는 꼭 그 화장품만 쓰세요. 피부에 잘 맞거든요. 나는 이 날 이 때까지 우리 엄마 피부에 무슨 화장품이 잘 맞는지 신경을 쓴 적도 없고 화장품을 사드린 적은 더더군다나 없다. 시집온 언니가 그 동안 선물한 것들이 꽤 있을텐데도 그것들의 자취는 온데간데 없고 엄마의 화장대는 늘 예전과 똑같이 휑하다. 내가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가자고 하면 엄마는 시장을 봐다가 그 음식을 식탁에 올리시고 영화를 보러 가자고 하면 명절 연휴 때 텔레비전에서 할테니 기다렸다가 그 때 보신단다. 집안에도 꼭 필요한 것 이외엔 당최 들여놓질 않으신다. 물론 그럼에도, 내가 친구들을 마음대로 집안으로 불러들이고 사람들을 초대해서 먹여주고 재워주고 하는 것은 백퍼센트 엄마를 믿고 그러는 것이긴 하다. 사람들은 우리집이 무척 수수한데다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하다는 것에 놀라고 엄마의 맛깔스런 음식솜씨에 반하고 엄마가 연세에 비해 젊고 재미있으시다는 것에 즐거워한다. 그래서 손님 치르는 일이 쉽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뻔뻔하고 철 모르는 딸내미는 엄마만 철썩같이 믿고 "우리집에 놀러오세요~"란 말을 서슴없이 하는 것이다. 예전에 남자친구가 있을 적에 엄마를 시켜서 도시락까지 싸게 했던 나는 혼 빠지고 정신 나간 년임에 틀림없다. 마음에 안 드는 것을 꾹꾹 눌러참으며 그래도 딸을 생각해서 아침 일찍 정성껏 도시락을 준비해서 챙겨주셨던 엄마를 떠올리면 아, 난 지금 옆에 있는 머그잔에 코를 쑤셔박고 죽어버리고 싶을 지경이다.
엄마를 떠올리며 더욱 고맙게 생각하게 되는 것은 내가 교사가 되고 난 이후에 더 그런 것 같다. 아이들을 대하면서, 그리고 그 아이들의 부모님들을 대하면서 순간순간 느끼곤 한다. 오빠와 내가 얼마나 만만찮은 아이들이었는지. 아빠와 엄마가 우리를 키우는 일이 얼마나 고단했을지. 엄마는 물론 지금도 고무줄 바지에 싸구려 슬리퍼만 신고 다녔어도 오빠와 나 덕분에 기가 살고 기쁜 일도 많았다고 예의 그 환한 웃음을 지으며 말씀하시지만 오빠와 나는 남보기에 참해 보이는 모범생이라는 것을 빌미 삼아 부모님의 등골을 있는대로 빼먹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남매는 못 말리는 고집쟁이에 오직 저 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들이었다. 그래도 오빠는 맏이라서 그런지 의젓하고 참을성이 많기는 했다. 문제는 막내라고 막나가는 것 밖엔 몰랐던 나였다. 아직 초짜 교사이지만 내가 가르쳤고 가르치는 아이들은 대개는 내 어린시절보다는 착한 것 같다. 나처럼 그렇게 발악발악 죽자사자 대들고 손톱 밑 발톱 밑까지 새카맣게 이기적인 아이는 여직껏 못 봤다. 어린 시절의 나를 돌아보면서 아이들에게 한없이 관대해질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아이들은 너나 없이 어른이 어디까지 나를 참아줄 수 있는가를 이따금씩 시험해 보곤 하는 법이다. 엄마는 남에게 해코지를 한다든지, 거짓말을 한다든지, 인격의 큰 줄기에 해당하는 부분만 어기지 않으면 그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무한정 관대하셨다. 반면에 내가 만난 부모님들은 지나치게 관대하거나 혹은 지나치게 엄격하신 분들이 많았다. 아이의 고집에 번번히 져놓고는 아이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식으로 어설프게 자존심을 지키려드는 부모님, 타인과 사회가 정해놓은 일정한 수준에 오르지 못한다고 아이를 무조건 닦달하며 본인의 허영심을 만족시키려는 부모님, 또는 하루에도 수십에서 수백명의 아이들을 상대하는 교사에게 우리 아이를 위임했으니 책임을 지라는 식으로 방관하는 부모님 등등. 별별 독특하신 분들을 많이 보아왔다. 나 자신 평소에 '자기 자식은 제 부모가 제일 잘 안다.', '자식에게 문제가 있을 경우 부모가 자기 자신을 돌아보면 된다.'는 엄마 말씀을 많은 부분 신봉하고 있기에 부모님들이 아이들 문제로 힘들어하시는 모습을 보면서도 그닥 크게 공감하는 편은 아니다.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원래는 착한 아인데 친구를 잘못 사귀어서, 현존 교육 시스템과 맞지 않는 성향의 아이라서, 등등 대개 문제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고 싶어하신다. 솔직히 말하면, 담임인 나를 만나러 와서 상담을 하거나 모임에 나가서 집안 이야기로 수다를 떨 것이 아니라 학원 가기 전에 천원짜리 토스트로 배를 채우는 아이에게 집에서 만든 김치볶음밥과 콩나물국이라도 먹여서 보낼 수 있는 엄마라면 아이들도 가슴 속에서 뭔가 뜨뜻한 것을 느끼지 않을까.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밥상머리에 마주 앉는 시간을 늘려보려는 노력부터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일견 물질적으로는 풍요를 누리고 있지만 외로움과 공허함에 시달리고 그것을 다시 물질적인 무언가로 채우려들지만 마치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처럼 여기저기 숭숭 뚫린 마음의 구멍에 힘겨워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 엄마가 아무리 우아하고 화려한 맵시로 인사를 건네고 지적이고 교양 있는 말투로 대화를 이끌어도 아이와 엄마가 다같이 안되 보이고 마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리고 그런 순간마다 "힘들었지만 행복하다."라고 웃으며 말씀하시는 엄마에게 더욱 고맙고 미안해지는 것이다.
나는 이런 면에서 보면 지극히 보수적인 사람인지도 모른다. 지극히 이기적인 사람일 수도 있다. 엄마는 아름답고 재능있는 여성이었지만 자식들을 키우다 보니 미모와 재능을 지킬 여력이 없었고 나는 엄마의 그런 변화를 외면한 채 마치 기생충처럼 엄마의 심신에 찰싹 들러붙어 살과 피를 쪽쪽 빨아먹고 살아왔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래서 자신을 가꾸는 일에는 열성이면서도 자식에게 소홀한 부모님들과 마주하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나오고, 반면에 거칠고 버릇 없는 아이들을 보면 무진장으로 너그러워지는가 보다. 결국 나 유리하고 나 편한대로 머리가 돌아가고 생각이 따라가는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강철처럼 씩씩하던 엄마도 이젠 많이 늙고 지쳤다는 걸 나도 안다. 고마움을 알고 소중함을 아는데 왜 그것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보답하려 들지 않을까. 부모가 백을 할 때 자식은 그 중 하나만 해도 다행이란 말이 있는데 나는 부모님이 백을 하면 백 하나를 해내라고 땡깡만 부렸던 듯 싶다. 엄마는 자식이 제 앞가림하며 살 수 있도록 열심히 뒷바라지 하고 그래서 남에게 욕 듣지 않고 제 앞가림 하며 살 수 있게 되면 그 이상 부모가 바랄 게 뭐가 있냐고 하시지만 이제는 그런 말들이 가슴 속에 아프고 안타깝게 와서 박힌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부족한 사람이고 부족한 딸이라서 요즘도 가끔 엄마가 싫어하는 짓을 할 때가 있다. 엄마를 생각하며 눈물을 글썽이다가도 제 기분이 좋으면 희희낙락 나 몰라라 만사를 다 잊어버린다. 내가 다 알아서 하겠다고 큰 소리만 칠 뿐 실제로 스스로 알아서 하는 건 별로 많지 않다. 엄마의 눈은 어딘가 슬프고 그런 엄마 눈을 볼 때마다 나는 내 자신이 싫어진다. 엄마를 위해 사는 것은 아니지만 엄마를 위해서 나도 뭔가를 하고 싶다. 까마귀 고기 삶아 먹은듯 또 금방 잊어버리고 언제 그랬냐는듯 까불지 말고 정신 좀 차리고 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