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없어. 자식을 향한 모성애, <소나기>같은 소설에 나오는 수줍은 풋사랑. 그거 이외에 사랑이란 없어."

  웃풍이 찼던 자취방, 뿌연 형광등 아래서 Y가 했던 말이다. 당시에 그녀는 휴학 중이었다. 늘 지나치던 가게가 있었는데 가게 주인으로 뵈는 서른 즈음의 남자가 어느 날 그녀에게 데이트 신청을 한 모양이었다. 심심하던 차에 수작에 응해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는 이야길 하며 그녀는 뜬금없이 저런 말을 했었다. 애송이 아니면 조로. 그 때 나는 그녀를 그렇게 판단했었다. 그리고 그녀를 좋아했었다.

  이틀 학교를 나가면 하루는 쉬어줘야 할 정도로 심신이 약했던 Y의 행방은 지금도 묘연하다. 그녀를 찾아볼 길이 없어 답답해 하던 하루는 인터넷 검색창에 그녀의 이름 석 자를 처 넣고 모든 링크들을 클릭했었다. 소용 없는 일이었지만 그렇게라도 그리움을 표현하는 게 그녀와 나를 향한 예의일 듯 싶었다. 이제 내게 남아있는 건 Y의 이름 석 자, 정리되지 못한 채 아무렇게나 꽂혀 있는 자잘한 메모들, 그리고 위에 쓴 말 뿐이다.

  그녀의 친구 E는 얼마전 떠나가려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한테 헤어지자는 말 하지 마. 너무 마음 아프니까.

  처음엔 발라드를 좋아하다가 팝을 듣게 되고 이후 락을 찾게 되더니 곧이어 재즈에 맛 들이고 결국 클래식에 눈을 뜬 다음엔 전통가요로 귀환하는, 세상과 점점 한통속이 되어가는 통속적인 일상 속에서 문득문득 떠오르는 Y는 신기루와도 같다. 속여도 좋고 속아도 좋아, 외롭지만 않다면. Y는 어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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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11-21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해보니...저도 몇몇 그리운 이름이 있네요...^^
반정도는 이미 이세상사람이 아니고 나머지 반정도는 생사불명을 모른다죠..

비로그인 2006-11-21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신기루같은 사람, 계속 생각나지만 볼 수 없고 다다를 수 없는 사람.

깐따삐야 2006-11-21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님, 어떻게 보면 일상이 되어주지 않고 일찍 떠나가줘서 다행이란 생각도 들어요. 보고싶은 얼굴이 없다면 오히려 더 쓸쓸할 것 같아요. 간사한 사람 마음. ^^

깐따삐야 2006-11-21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Jude님, 대개는 속이고, 속을 줄 알면서도 너무나들 외롭고 약해서 상대에게 언 발을 내밀기도 하죠. 잠시잠깐의 온기가 필요해서 말이죠. 그게 사람인 것 같아요. 우연찮게 신기루가 되어버린 사람도 있는 거지만 보통은 그냥 일상으로 남는거고 그 일상도 너무나 소중하잖아요. 보고싶은 얼굴만큼이나 지금 보고 있는 얼굴 또한 고맙고 귀하단 생각 들어요. ^^
 

  세상에 잘 헤어지는 법이란 게 있을까. 오늘 친구 S와 동료 E가 연인과의 이별 소식을 전해왔다. 대개 무더운 여름에 헤어지고 추워지기 시작하는 가을에 만남을 시작하려 한다는데 꼭 그런 것만도 아닌가 보다. 과정이야 어쨌든 내가 아는 누군가가 이별했다는 사실은 결코 희소식은 아니다. 결과적으로 잘된 일이라고 해도 그건 말 그대로 결과일 뿐. 훌훌 털어내든 끙끙 견뎌내든 당사자의 몫은 고스란히 남는 거니까.

  친구 S의 경우는 서로 한동안 계속 삐걱였다. 몇 차례 헤어졌다 다시 만나기를 반복했고 결국 남자 쪽에서 '우리는 인연이 아닌가봐' 라는 흔해빠진 말로 이별을 전했다. 너무 뻔해서 마치 이별법전 1조 1항에 나오는 말 같다. 꼭 결혼으로까지 골인해야만 인연이었던 것은 아닐텐데.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하지 않는가. 너희 집이 가난해서 싫어, 네가 너무 뚱뚱해서 싫어. 만약 우리가 이렇듯 손에 잡히는 구체적인 이유를 상대방에게 말한다면 상대방은 더 깊게 상처를 입을까, 아니면 더 시원하게 서로를 잊게 될까. 나란 사람은 이별 장면에서 예를 갖추는 사람을 싫어하면서도 나 자신은 예를 깍듯이 갖추는 식이었다. 네가 너무 아이같아서 짜증나, 내가 네 엄마냐? 라고 말하면 될 것을 너와 맞춰가기엔 내가 너무 부족한 것 같아, 라는 말로 순화하는 식이었다. 반면에 상대방은 보다 강력하고 충격적인 언사로 나를 짓밟아주었으면 하는 묘한 바람이 있었다. 그래, 이해해. 우리는 인연이 아닌가봐... 같은 말이 아니라, 엄마인 척 하다가 지금서 내빼는 이유가 뭔데? 너 정말 이중적이고 재수없는 애였구나, 이런 말로 내 가슴에 풍덩풍덩 돌팔매질을 해주길 바랬다. 당시엔 몰랐지만 되돌아보면 상당히 이기적인 계산이 깔린 포즈였다. 

  동료 E는 사람에 따라서 가장 맥 빠지는 방법으로 헤어진 케이스였다. 박스 안에 갖가지 초콜릿과 빼빼로를 포장해서 가지고 간 것이 엊그제였는데 전화를 했더니 없는 전화번호라는 안내가 나오더란다. 참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상황이었다. 감질나게 건네주는 젤리니 초콜릿을 받아먹으며 누구는 좋겠다며 여러 사람이 모여 함께 너스레를 떨던 시각에 남자는 한숨을 한 번 쉰 다음 조용히 전화번호를 바꾸고 친구를 만나, 어쩌면 혼자서 술잔을 기울이며 E와의 이별을 준비했을 거라고 생각하니 기가 막혔다. 아침에 소식을 전해듣고 내가 맨 처음 했던 말은 안타깝게도 야, 참 영화같다...가 아니라 야, 참 그지같다...였다. 뭐 그런 그지같은 경우가 다 있단 말인가.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남자 편에서 E를 부담스러워 했고 생활형편도 좋지 않아 미안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다. 쉽게 바꾸기 힘든 어떤 피치 못할 상황이나 남자로써의 자존심 등을 십분 이해하면서도 하루 아침에 조카의 차지가 되어버린 빨간색 초컬릿 상자를 떠올리니 야속하고 착잡하기 그지없었다. E는 다시 와도 절대로 안 받아줄거라고 했지만 어쩐지 다시 오면 받아줄지도 모르겠단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아마도 E의 그 남자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한 가지 아이러니한 것은, E에 비해 한없이 작게만 느껴졌던 그 남자가 오늘은 한없이 크게만 보였다는 것이다. E가 어쩌면 아주 괜찮은 남자 하나를 놓치고 있는건 아닐까 하는 해괴망측한 생각까지 들면서.

  오늘 컴퓨터 앞에 앉으면서 문득 떠올렸던 생각은 연애로부터 점점 초연해지고 있다, 혹은 초연해진 척 한다, 초연해지면 안된다? 였다. 뭘까, 진상은. 그냥 아직 혼자여서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혼자여서 쓸쓸한 것이 아니라 참 다행이라는. 이별 소식을 들은 날이었고 이별이 두렵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다. 만나는 법과 헤어지는 법까지 공식화 되어가고 있는 현실에서 저만치 비껴 서서 넋두리나 할 수 있다는 점이 왠지 여유만만하게 느껴졌다. 하늘까지 치솟았다가 바닥까지 추락하는 감정의 파고를 겪는 일은 더 이상 재미있지 않다. 예전에 나는 사랑에 빠지는 일이 재미있었다. 기뻐도 좋고 슬퍼도 좋았다. 기쁨이 최고조에 올랐을 때 알싸하게 느껴지는 공허라든가, 슬픔이 최정상에 다다랐을 때 뜨겁게 가슴을 덥히는 감흥과도 같은 그런 묘하고 야릇한 느낌들을 사랑했다. 결국 내가 사랑이라고 믿었던 것은, 대상에 대한 애정이 아니라 그러한 느낌들에 대한 취미였을지도.

  이런 깨달음들이 나를 더 행복하게 해줄지 결국 나를 더 외롭게 할지는 잘 모르겠다. 몰라서 용감한 게 좋은걸까, 알고나니 조심스러운 게 더 좋은걸까. 알고나서도 여전히 용감한 게 어쩌면 제일 좋은 건지도 모르겠다. 그 경지에 오르면 정말 멋지고 쿨한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나에겐 아직 겁나먼 이야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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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14 0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깐따삐야 2006-11-14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어차피 똑같은 사이클의 반복일 뿐인데 다채로운 비유에 기대어 살아가는 걸까요. 그냥 요즘은 문득문득, 아직 혼자여서 다행이란 생각만 들어요.

Mephistopheles 2006-11-14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번도 이별을 통보한 적은 없었지만 그 이별을 통보하는 입장에서도 전전긍긍할것
같은 느낌일것 같아요..^^

깐따삐야 2006-11-14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님, 아마 그렇겠죠. 그래도 일방적으로 전화번호를 바꾸어 버리는 것은, 먹다 떨어뜨린 아이스크림처럼 먹먹하고도 신경질 나는 일이에요. ㅡㅡ;
 

  "넌 7년 터울로 사춘기를 겪는 것 같다."

  엄마가 하신 말씀이다. 찬찬히 되돌아보니 과히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 싶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볼수록 엄마니까 과연 저런 통찰이 나오는구나 싶을만치 소름끼치는 지적이었다. 미운 일곱 살이라는 말처럼 일곱 살 무렵의 나는 항상 엄마가 곁에 있어야만 마음을 놓는, 엄마 탐이 심한 땡깡쟁이였다고 한다. 조금이라도 제 성에 안 차는 것이 있으면 손톱으로 동네 오빠들을 할퀴어놓고 신고 있던 슬리퍼를 벗어서 또래 친구의 면상을 가격하기도 하는, '우리 아이 이만큼 달라졌어요' 같은 프로그램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그런 못되고 심란스런 꼬마였다고. 엄마는 사는 게 바빠서 그만큼 나에게 일관되고 따듯하게 신경을 써주지 못해 내가 그랬던 모양이라고 당신 탓을 하시지만 전혀 다른 성향으로 조용히 성장해 온 오빠를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열네 살 적에는 대개 사춘기라 말하는 사춘기를 겪었다. 아침에 눈 뜨면 학교에 가기 싫었고 학교에 가면 수업 시간 내내 다른 생각만 하다가 돌아오곤 했다. 어떤 선생님은 걸걸한 목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어떤 선생님은 옷깃에서 묻어나는 담배 냄새가 싫었고, 어떤 선생님은 온몸에서 풍겨나는 열패감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친구들이 죄다 바보같았고 내가 사는 동네가 너무 비좁게 느껴졌다. 그리고는 종종 이러한 상념에 빠지는 스스로가 미워져서 아무 죄도 없는 부모님에게 신경질을 부려대곤 했다. 그 때는 인터넷도 없어서 책과의 소통이 유일한 위안거리였다. 책 없이도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 책이 있어야만 행복한 사람보다 훨씬 더 자유로운 사람이라는 생각을 그 때는 하지 못했다. 책은 곧 일용할 양식이었고 오직 밥만 먹는 친구들을 경멸했다. 어쩌면 마음 속으로는 아무런 잡념도, 계산도 없이 터져나오는 그네들의 호쾌한 웃음소리를 부러워하고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친밀의 대상이기 보다는 동경의 대상이고 싶은,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오만함이 정신을 지배하던 시기였다.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그렇듯 예민하고 까탈스런 자식을 대함에 있어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를 적절히 파악할 줄 아셨던 엄마의 지혜로움이 일견 오만방자해 보이지만 사실은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던 내면의 중심을 잡아주었던 것 같다.

  대학생이 된 후 스물한 살이 되던 해는 삶에서 맞은 첫번째 권태기였다. 무조건 잠적하고 싶고 은둔하고 싶었다. 열심히, 최선을 다하여, 성심성의껏, 그런 말들이 가장 무의미하게 들렸다. 몸무게가 급속도로 늘었다. 점심 때마다 고열량의 음식을 사먹었고 커피나 비스켓을 입에 달고 살았다. 누가 조금이라도 염려 섞인 말을 하면 네까짓게 내 우울의 정체를 알기나 하겠느냐는 냉소로 되받아치곤 했다. 부모님의 동의만을 구한 다음,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돌연 휴학을 했다. 당시에 가장 가깝게 지냈던 친구가 그 일로 조금 힘들어했다. 지금의 나라면 절대로 그런 이기적인 일은 저지르지 않을... 결국 저지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뭔가에 사로잡히면 다른 것은 아무것도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외곬수적인 성정 때문에 주변 사람들을 벙 뜨게 만드는 순간이 적잖이 있었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휴학을 하고 나서 자전거도 타고, 여행도 가고, 책도 읽고, 사람도 사귀고, 여러가지 일을 했다. 나를 잘 아는 가족들은 언젠가는 내가 제 자리로 돌아오리라는 믿음으로 나를 기다리고 또 기다려주었다. 놀다, 방황하다, 쉬다 보낸 일 년이었다. 더는 그러고 싶은 생각이 나지 않았을 때 갑자기 공부가 하고 싶어졌고 학교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턱선이 갸름해졌고 눈빛은 깊어졌고 머리는 많이 자라 있었다. 열심히, 최선을 다하여, 성심성의껏 살아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결국 원점이었지만 필름도 없이 이 세상에 딱 한 장 남아버린 사진처럼 아련하고도 소중한 시간이었다.

  이제 내년이면 스물여덟이 된다. 마의 스물여덟. 어쩌면 내 인생의 세번째 사춘기이자 두번째 권태기의 조짐은 이미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주위 선생님들도 원래 3년 차에 권태기 비슷한 것을 겪었다고들 하신다. 그래서 대개 이 즈음해서 결혼을 하든가, 공부를 더 하든가, 학교를 옮기든가, 변화를 주려고 하는가 보다. 어른이 되어 겪는 사춘기는 확실히 전과는 다르다. 부모님에게 마냥 투정을 부리는 것이 미안해졌고 직장은 대학처럼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는 곳도 아니다. 밤새 이런저런 망상에 시달리다가도 아침이면 제 시간에 일어나 부지런히 씻고 밥을 몇 술이라도 뜨고 아이들 앞에서 기운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물론 꼭 그러지 않아도 되지만, 그러지 않으면 감정이 다시 제 리듬을 찾았을 때 미안해지고 부끄러워지고, 결국 더 힘들어지고 만다. 어제는 그런 생각도 들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고입면접을 끝내고 집에 일찍 돌아간 오후, 2층 전체가 고요하고 쓸쓸했다. 그런데 그 느낌은 평화가 아니라 무료였다. 그 느낌에 나도 내 스스로가 놀랐다. 아이들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물론 아무것도 아닐 수야 없겠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그 동안 북적대고 재잘대는 아이들의 생기 속에 길들여져 있었구나 싶었다. 오늘 다시 그 악동들을 하루 종일 마주하려니 어제의 그 감상 젖은 생각이 싹 가셔 버려서 속으로 웃음이 나긴 했지만. 혼자 있다보면 같이 있고 싶고 같이 있다보면 혼자 있고 싶어지고 그런 게 사람인가 보다. 갈팡질팡, 이란 말은 어떻게 보면 참 정감 있고 예쁜 말이다.     

  겨울이 시작되었고 달력은 두 장 남았다. 올해도 거의 다 갔고 내년에 내게 어떤 변화가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변화를 바라면서도 그 변화가 내 인생의 향방을 너무 빨리 결정지우는 대사건이 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래보기도 한다. 부디 천천히, 무리하지 않은 채 나의 이십대가 지나가기를. 그리고 앞으로 겪을 사춘기는 스스로의 몫이었으면 좋겠다. 나는 잘난척을 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주변 사람들에게 한 고비를 넘길 때마다 그만큼 마음의 빚을 졌다. 특히 가족들에게, 가까운 친구들에게. 내 우울의 정체를 아는 사람들은 책 속에 있었지만 내 우울을 이해해주는 사람들은 바로 내 곁에 있었다. 숨결과 체온을 가진 인간의 모습으로 내 손을 만져주고 따끈따끈한 밥을 지어주고 나를 기다려줬다. 어쩌면 내가 교사가 된 것은 그 빚을 갚으라는 뜻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매일매일 한 다발의 꽃 대신 한 다발의 사춘기 아이들과 마주하고 있는지도. 모든 것은 지나간다. 기쁨도 슬픔도. 하지만 사춘기는 사절기처럼 반복된다. 그리고 그 때마다 성숙의 마디가 하나씩 늘어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시 우울해질 것이지만 절망하진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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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wup 2006-11-10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다발의 사춘기 아이들이라는 표현이 너무 예뻐서 멍하니 들여다 보고 있었어요.
그러네요. 사춘기도 사절기처럼 반복되는군요.
저는 몇 번의 사춘기가 있었나 세어 보며 '깜짝' 놀라고 있습니다.
따듯한 회색 페이퍼예요.
우울한 듯 하지만. 그렇게 우울하지만은 않은.

마태우스 2006-11-11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스물세살 이후에는 사춘기를 앓을 수가 없다,고 하네요. 그러니 스물한살의 사춘기가 님에겐 마지막 사춘기였을 듯.. 내년에는 사춘기 대신 황홀기가 찾아왔으면 하네요.

마태우스 2006-11-11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도 잘쓰시는 분이 넘 띄엄띄엄 쓰시는 거 아니어요?^^

Mephistopheles 2006-11-11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혼전 저의 사춘기는 4월이였습니다..
그런데 그 사춘기가 결혼 후 유부남이 되니까 없어지더군요...^^

깐따삐야 2006-11-11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amu님, 따듯한 회색 페이퍼...^^ 고맙습니다.

마태우스님, 요즘 서서히 슬럼프에서 빠져나오려고 버둥거리고 있답니다. 한동안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꽤 힘들었어요.

메피스토님, 하긴 그럴 것 같네요. 결혼 후에도 저러면... 근데 전 왠지 결혼 후에도 저럴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만. ㅜ.ㅜ
 

  오랜만에 글을 쓴다. 노트 한 귀퉁이에 하릴없이 끄적이는 것이었든, 이렇듯 알라딘에 와서 쓰는 것이었든 참으로 오랜만에 내 이야기를 쓴다. 두껍지도, 얇지도 않은 니트를 입고 나섰는데 온종일 떨다 온 기분이다. 머리가 살짝 아프고 노곤하다. 고개를 들어보니 어느새 가을이다. 낮 동안 너무 더운 것 아니냐는 투정이 더 이상은 나오지 않는 진짜 가을.

  아이들 고입 전형이 갑자기 앞당겨져 혼을 쏙 뺐고 나도 시험을 하나 치렀다. 공부를 하고 시험을 치러보니 아이들 마음을 조금은 알 것도 같다. 그래서 사람은 한 가지 위치에만 너무 오래 머물러 있어도 못 쓰나보다. 시험 기간 동안 너무 다그치지 말아야지, 시험 감독할 때는 좀더 여유 있는 표정을 지어줘야지, 만점은 언제나 힘든 것이라는 걸 이해해 줘야지, 등등의 생각을 했다. 지나친 솔직함, 너무 긴 진솔함은 변명의 카테고리 안에 속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뚱맞은 생각도 했더랬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처럼 다시 공부가 하고 싶어졌다.

  간헐적인 나의 우울은 어디에서부터 기인하는 것일까. 언제나 반응은 극단적이다. 너무 많이 먹거나 너무 적게 먹거나, 너무 오래 자거나 너무 조금 자거나. 다시 원래대로 돌아올 것을 짐작하면서도 결국 우울에 빠진다. 이것이 네가 즐기는 심리적 경향이므로 일부러 그런 상태에 빠지려고 노력하는 것은 아니냐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재차 던져봤지만 그렇게 잔인하게 널 대한다고 해서 안 우울해질듯 싶으냐는 냉소만 돌아왔다. 이런 내 모습을 보고 너 자신을 좀더 소중히 하라는 충고를 들었다. 예견할 수 있는 충고이면서도 귀를 통해 들어오는 순간엔 어쩔 수 없이 자존감을 찡하게 자극하는 말이다. 고작해야 스스로를 막 대하는 사람으로 비쳤다니. 내 우울은 형이상학적인 우울이니 고상하고 네 우울은 형이하학적인 우울이니 저급하다는 식으로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제는 그 사람은 내가 아니고, 내가 그 사람이 아니라는 그 이유가 도리어 오해의 벽 보다는 이해의 문으로 통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난 너와 다르기 때문에 널 이해해. 써놓고 입으로 말해보니 아리송하지만, 느껴진다. 그 곡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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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10-28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깐따삐야님...고향별로 귀환하신 줄 알았습니다..^^

비연 2006-10-28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멋, 어디 갔다가 오셨나요? 반갑습니다!^^

부리 2006-10-29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넘 오래 글을 쉬셨네요... 반갑습니다. 우울증에서 벗어나시길! 날씨가 넘 좋자나요!

깐따삐야 2006-10-30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님, 정말 그러도고 싶었으나... 쿡쿡. ^^

비연님, 이제야 조금 여유를 찾았습니다. 저도 반가워요. ^^

부리님, 날짜를 헤아려보니 그렇더군요. 우울증까지는 아니었구요. 요즘 날씨도 좋고 기분도 괜찮습니다. 고맙습니다. ^^

개츠비 2006-11-02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깐따삐야님이 부럽습니다. 아직 20대의 자락에서 방황하고 계시군요..^^ 그러나 기초가 든든한 방황은 그 자체로 여유있고, 아름다운거 아닙니까..? 20대의 남은 시간들을 보물처럼 잘 사용하셔요. 30대는 기성이란 냄새가 너무 강합니다. T.T

깐따삐야 2006-11-06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retre7님, 항상 사람은 지나간 시간을 후회하는 것 같아요. 그 땐 왜 몰랐을까, 그 땐 왜 그 정도 뿐이었을까, 하구요. 인생에 허영심이 많은 저같은 사람은 더욱 더 그런 것 같습니다. 현재를 제대로 살아내는 대신, 언제나 지나간 시간을 그리워하거나 후회하고 다가올 시간을 기대하거나 두려워하며, 그러며 살지요. 어리석게도 말예요.
 

  예전에는 꿈도 많았더랬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는 이선희 같은 가수나 9시 뉴스를 진행하는 아나운서가 되고 싶었고 초등학교 때에는 <수사반장>이니 <경찰청 사람들>이니 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심취해 강력계 형사가 되고 싶었다. 중학생 무렵에는 릴케와 헤세를 읽으며 시인이 되고 싶었고 고등학생이 되자 불현듯 사회부 기자가 되고 싶었다. 교생실습을 다녀와서는 막연하게나마 이 길이 맞나보다, 라고 믿었었다. 금방 기억나는 것들만 굵직굵직하게 나열해서 그렇지 사실은 어디 이것 뿐이겠는가. 테레사 수녀는 열두 살에 자신이 무슨 일을 해야 할지 깨닫고 열여덟의 나이에 모국을 떠나 인도로 갔다는데 그저 범인에 그칠 수 밖에 없는 나는 지금까지도 방황 중이다. 이 얼마나 안정적이냐, 황송하다가도 네가 언제부터 안정적인 것이 전부였더냐. 그 얼마나 배부른 방황이냐, 송구스럽다가도 네가 언제부터 배부른 것이 전부였더냐, 로 거만과 비아냥의 색조를 띠는 의문들이 마음 속을 둥둥 떠다닌다. 그리고 그런 의문들은 어김없이 죄책감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저도 사람인걸요, 라고 함부로 주장할 수 없는 나는 교사이니까.

  내가 아이들의 머리 모양에 대해서 그다지 터치를 하지 않는 이유는 왜 그러한 머리 모양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가에 대해 타당한 이유를 제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교칙이니까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 말고 이러이러한 점 때문에 그런 머리 모양을 하면 안된다고 누군가 나에게 일러주면 차라리 좋겠다. 그 이유가 납득이 가면 아이들을 부지런히 설득해 볼 요량도 있다. 그러나 각 학급마다 명령조의 공지사항만 게시될 뿐 왜 그래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 결국 며칠 전 아침, 정해진 규정대로 머리를 깎지 않은 채 등교한 우리반 몇몇 아이들이 운동장을 돌고 있었다. 너 머리 안 깎을거니. 네. 안 깎고 오면 매일 운동장을 돌아야 할텐데. 그래야 한다면 매일 돌 거에요. 아침부터 땀 빼는 거 힘들다. 머리 깎는 것보단 나아요... 뭔가 더 말을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사실은 딱히 떠오르는 말도 없었다. 점심시간 무렵에 학생부 선생님이 나를 찾아오셨다. 우리반 아이들 몇 명을 지목하며 머리 모양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셨고 얼마전 엄마를 잃은 K에 대해서도 요주의 학생이라는 점을 언급하시며, 그 어법이 비록 완곡하긴 했지만 당신은 아이들에게 도통 관심이 없는 교사군요, 라는 엄한 딱지를 내 이마에 붙여주셨다. 무고한 나를 누군가가 모함이라도 했다는 듯 의뭉스럽게 표현하긴 했지만 결국 이야기의 골자는 당신은 아이들한테 관심도 없고 노력도 안하면서 수당은 잘도 받아가네요, 였다. 누가 그런 말을 하던가요. 다른 누구처럼 열심히 하는 척 밖으로 생색을 내지 않아 그렇지 저도 아이들한테 잘할 땐 잘한답니다. 선생님은 살짝 당황하시더니 머리 모양과 K에 대해 거듭 당부하며 돌아가셨다.

  발끈하여 말은 저렇게 했지만 속으로는 마음이 무척 아팠고 반성을 많이 했다. 교사가 아이들한테 잘하는 게 당연하지 뭐하러 잘할 땐 잘한다고 말했니. 치사스럽다. 네가 평소에 어떻게 했으면 선배 선생님이 저렇게까지 말을 하겠니. 망신스럽다. 억울한 마음이 드는 한 편, 학교생활에 흠뻑 빠져 지내지 못하는 스스로를 생각하니 쓸쓸해졌다. 아직 신출내기인만큼 선배 교사들의 지시에 열심히 응해주면서 아이들을 제대로 통솔하기라도 하던가, 아니면 일찌감치 승진의 발판을 닦고 차근차근 준비라도 해나가던가. 여러모로 나란 사람은 사회부적응자, 학교부적응자가 아닐 수 없었다. 물론 학창시절부터 선배들에게 그다지 착한 후배는 아니었다. 중학교 때는 지나갈 때 선배한테 인사를 안한다고 불려갔다가 반말로 들이댄 적이 있었고 대학 때는 한 여자선배의 심기를 건드려서 연거푸 권해오는 소주 때문에 애를 먹었던 적이 있었다. 어리석고 치기 어린 과거지만, 권위는 위에서 아래로 강요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닐 뿐더러 그렇게 얻은 권위는 쓰레기에 불과하다는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K에 대해 되도록 많은 걸 알아내라는 학생부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며 얼마 전 K와 K의 여자친구를 불러내어 저녁을 먹던 장면을 떠올렸다. 나는 너희들 이 고기 다 먹고 가야한다고 말했고 K는 나중에 스무 살이 되면 선생님께 고기를 사드리겠다고 했다. 나란히 서서 커플룩을 자랑해 보이길래 예쁘다고 칭찬해 주었고 K가 갑자기 내 어깨에 팔을 턱, 걸치길래 속으론 흠칫 놀랐지만 미남이 팔을 다 얹어주니 기쁘기 그지 없다면서 같이 웃었다. 그게 전부였다. 아마 학생부 선생님이라면 똑같은 시간 동안 많은 걸 알아내셨으리라. 노련하지도 못한데다 아직 어머니도 되어보지 못한 나는 K가 나를 누나 쯤으로 생각하면서 외로움을 조금이라도 해소할 수 있다면 좋겠고 머리모양을 마음대로 하면서 스트레스가 좀 풀린다면 그마저 다행이지 싶다. 밥은 먹었니, 라고 묻고 싶다가도 밥도 못 챙겨주면서, 란 생각이 들어서 무뚝뚝해지고 마는 나의 성품은 다소 우습지만 그렇다고 해서 밥은 먹었니, 란 말을 남발하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생각이 든다. 내 생각이 있는데 그것을 남에게 이해받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쩌면 더불어 살아가는 데 있어선 예의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그렇듯 한동안 마음이 복잡해 있었는데 그 마음을 알 길 없는 아이들이 심한 장난을 쳤다. 5교시였고 한창 졸음이 몰려오고 지루해질만한 시간대이니 다른 때 같았으면 이해를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날은 내 마음이 그렇게 되어주질 않았다. 너희들은 권위 앞에선 꼼짝 못하는 주제에 나 따위는 이리저리 갖고 놀아도 상관없다 이거구나. 마음 한 켠에서 얼음장 깨지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고 더운 날씨였음에도 몸의 온도가 한없이 낮아지는 것을 느꼈다. 분위기가 얼추 정리된 후, 창 밖 한 번 바라보다 교과서 한 번 바라보다 칠판 한 번 바라보다 해가며 수업을 진행했다. 무겁고 냉랭했다. 아이들의 눈을 바라보기가 싫었다. 아이들은 결국 담임선생님께 벌을 받아야 했고 수업 태도는 사뭇 달라져 있었다. 재작년에 담임을 맡았던 W는 죄송하다는 말을 담은 편지까지 가져왔다. 착한데 너희들은 철이 좀 없었구나. 나는 철도 없고 착하지도 못하단다. 한 시간 동안 내 눈치만 살펴야 하는 아이들이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도 무뚝뚝한 나는 편지를 준 W를 향해 제대로 한 번 웃어보이지도 못한 채, 45분을 빠듯이 수동태를 설명하는 데 써버렸다. 교실을 나오는데 머리 뒤꼭지가 서늘하고 쓸쓸했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하냐. 내 그릇의 크기가 의심스러웠다. 그리고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어쩌면 아이들에게 더 도움이 되는 것은 이렇듯 변덕스런 애정보다는 일관된 권위일 수도 있다는 생각.

  교육방송 청취를 위해 컴퓨터실을 자유롭게 개방하자는 교장 선생님의 말씀은 바람직하다. 게임을 위해 컴퓨터실을 애용하는 학생들을 일일이 체크하고 사이버 학습을 할 수 있도록 꾸준히 선도해야 한다는 말씀은 정말이지 이상적이다. 문제는 나에게 있다. 내가 그러한 종류의 이상을 믿지 않게 되었다는 데 있다. 나는 못된 아이가 선한 어른보다도 더 착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못된 아이를 착하게 변화시킬 마음도 없고 능력도 없다. 변할 때가 되면 자연히 변하게 될 것이고 변하지 않으면 그 성품 그대로 어딘가 맞는 역할이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교사로서 할 일이라면 그나마 몇 년 더 산 인생선배로 다양한 길을 일러주고 조언해주는 것 정도. 네멋대로 하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 안된다는 것을 주지시켜 주는 정도일 뿐. 아이들은 새파란 감각으로 시대를 매순간 느끼며 산다. 하루에 여덟 시간씩 학교에 감금시켜 둔다고 해서 알 걸 모르고 모를 걸 알게 되진 않는다. 이제는 학교보다 더 많은 걸 보여주고 가르쳐 주는 매력적인 매체들이 도처에 널려 있기에 스스로 변화하고 스스로 커간다. 타인이 아닌 자신에게 자생적 권위를 심어줄 줄도 안다. 어른들이 주조해 놓은 비인간적 매트릭스 안에서 그들 나름대로 살아갈 방도를 궁리, 탐색하고 있는 것이다. 학교는 자꾸 권위를 지키려고 하고 학생은 자꾸 권위로부터 벗어나려고 한다. 학교에서는 따가운 눈총을 받는 머리 모양이 인터넷에서는 뜨거운 호응을 얻는다. 못된 것도 개성이 되고 선한 것이 바보가 되는 시대의 흐름을 아이들은 제대로 읽어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기본적 미덕은 영원하다는 것을 가르쳐야 하는 곳이 학교이지만 가르치고 일러주되, 곧바로 변화시킬 수는 없다. 깨달아야 한다. 어느 순간 혼자서. 내가 그랬고 누군가의 강요로 깨닫는 척 했던 것보다 훨씬 더 절절하게 와 닿았던 순간이 있었다.

  동상이몽(同狀異夢)이란 말이 척 들어맞지 않을까. 오늘 내 글에 출연한 사람들을 비롯해서 우리 사회 전반의 분위기 역시 말이다. 같은 교실 안에 있는데 나는 아이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다. 왜냐하면 나는 다른 꿈을 꾸고 있기 때문에. 같은 교무실 안에 있는데 나는 다른 선생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다. 왜냐하면 나는 다른 잠꼬대를 할 것이기 때문에. 무능한데 착한 선생님이 되고싶다. 그리하여 시대를 거스르고 싶다. 무능한 건 맞으니 착해지는 일만 남았다. 어려운 일. 역시 시대는 아무나 거스르는 것이 아닌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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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6-09-03 0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희들은 권위 앞에선 꼼짝 못하는 주제에 나 따위는 이리저리 갖고 놀아도 상관없다 이거구나. 라고 하셨죠. 저도 동감이여요. 애들이 교사도 인간이라는 사실을 좀 알아줬으면 할 때가 있어요. 지들 아쉬운 때는 어리광부릴 만한 교사에게만 어리광과 억지 실컷 부리다가, 그거 받아주면 또 만만한 사람이라고 요구의 강도만 높아가고 말이죠. 두발 재검사를 앞두고 히스테리 한번 부렸더니, 좋은 말 할 때는 머리 안 자르다가 그제서야 자르고 오는 애들. 정말이지 그 애들도, 히스테리 부리는 저도 싫어요.

깐따삐야 2006-09-03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RINY님, 역시 같은 교사이다보니 겹치는 부분이 많네요. 아이들은 권위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하면서도 권위에 쉽사리 복종합니다. 그리고는 권위라는 것이 아직 제대로 체화되지 못한 저같은 초짜 교사들에게 긴장을 해소하며 어리광을 부리는 거죠. 마치 밖에서는 굽실거리다가 집에만 돌아오면 생떼를 쓰는 가엾은 샐러리맨을 보는 것 같아요. 하지만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하듯 그러한 아이들을 탓해 보았자 누워서 침 뱉는 격이란 생각도 듭니다. 아이들 앞에서 뭐 하나 똑부러지게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말을 하지 않고 그러기도 싫어하는 저같은 소심한 회의주의자보다는 기간을 두고 아이들이 변화할 때까지 주야장천 호령을 해대는 열정적 권위주의자가 더 좋은 것인지도 몰라요. 아이들의 성장을 위해서나 교단에서의 만족감을 위해서나 말이죠.

치니 2006-09-03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 내세요 ^-^

깐따삐야 2006-09-04 0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니님,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