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잘 헤어지는 법이란 게 있을까. 오늘 친구 S와 동료 E가 연인과의 이별 소식을 전해왔다. 대개 무더운 여름에 헤어지고 추워지기 시작하는 가을에 만남을 시작하려 한다는데 꼭 그런 것만도 아닌가 보다. 과정이야 어쨌든 내가 아는 누군가가 이별했다는 사실은 결코 희소식은 아니다. 결과적으로 잘된 일이라고 해도 그건 말 그대로 결과일 뿐. 훌훌 털어내든 끙끙 견뎌내든 당사자의 몫은 고스란히 남는 거니까.

  친구 S의 경우는 서로 한동안 계속 삐걱였다. 몇 차례 헤어졌다 다시 만나기를 반복했고 결국 남자 쪽에서 '우리는 인연이 아닌가봐' 라는 흔해빠진 말로 이별을 전했다. 너무 뻔해서 마치 이별법전 1조 1항에 나오는 말 같다. 꼭 결혼으로까지 골인해야만 인연이었던 것은 아닐텐데.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하지 않는가. 너희 집이 가난해서 싫어, 네가 너무 뚱뚱해서 싫어. 만약 우리가 이렇듯 손에 잡히는 구체적인 이유를 상대방에게 말한다면 상대방은 더 깊게 상처를 입을까, 아니면 더 시원하게 서로를 잊게 될까. 나란 사람은 이별 장면에서 예를 갖추는 사람을 싫어하면서도 나 자신은 예를 깍듯이 갖추는 식이었다. 네가 너무 아이같아서 짜증나, 내가 네 엄마냐? 라고 말하면 될 것을 너와 맞춰가기엔 내가 너무 부족한 것 같아, 라는 말로 순화하는 식이었다. 반면에 상대방은 보다 강력하고 충격적인 언사로 나를 짓밟아주었으면 하는 묘한 바람이 있었다. 그래, 이해해. 우리는 인연이 아닌가봐... 같은 말이 아니라, 엄마인 척 하다가 지금서 내빼는 이유가 뭔데? 너 정말 이중적이고 재수없는 애였구나, 이런 말로 내 가슴에 풍덩풍덩 돌팔매질을 해주길 바랬다. 당시엔 몰랐지만 되돌아보면 상당히 이기적인 계산이 깔린 포즈였다. 

  동료 E는 사람에 따라서 가장 맥 빠지는 방법으로 헤어진 케이스였다. 박스 안에 갖가지 초콜릿과 빼빼로를 포장해서 가지고 간 것이 엊그제였는데 전화를 했더니 없는 전화번호라는 안내가 나오더란다. 참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상황이었다. 감질나게 건네주는 젤리니 초콜릿을 받아먹으며 누구는 좋겠다며 여러 사람이 모여 함께 너스레를 떨던 시각에 남자는 한숨을 한 번 쉰 다음 조용히 전화번호를 바꾸고 친구를 만나, 어쩌면 혼자서 술잔을 기울이며 E와의 이별을 준비했을 거라고 생각하니 기가 막혔다. 아침에 소식을 전해듣고 내가 맨 처음 했던 말은 안타깝게도 야, 참 영화같다...가 아니라 야, 참 그지같다...였다. 뭐 그런 그지같은 경우가 다 있단 말인가.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남자 편에서 E를 부담스러워 했고 생활형편도 좋지 않아 미안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다. 쉽게 바꾸기 힘든 어떤 피치 못할 상황이나 남자로써의 자존심 등을 십분 이해하면서도 하루 아침에 조카의 차지가 되어버린 빨간색 초컬릿 상자를 떠올리니 야속하고 착잡하기 그지없었다. E는 다시 와도 절대로 안 받아줄거라고 했지만 어쩐지 다시 오면 받아줄지도 모르겠단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아마도 E의 그 남자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한 가지 아이러니한 것은, E에 비해 한없이 작게만 느껴졌던 그 남자가 오늘은 한없이 크게만 보였다는 것이다. E가 어쩌면 아주 괜찮은 남자 하나를 놓치고 있는건 아닐까 하는 해괴망측한 생각까지 들면서.

  오늘 컴퓨터 앞에 앉으면서 문득 떠올렸던 생각은 연애로부터 점점 초연해지고 있다, 혹은 초연해진 척 한다, 초연해지면 안된다? 였다. 뭘까, 진상은. 그냥 아직 혼자여서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혼자여서 쓸쓸한 것이 아니라 참 다행이라는. 이별 소식을 들은 날이었고 이별이 두렵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다. 만나는 법과 헤어지는 법까지 공식화 되어가고 있는 현실에서 저만치 비껴 서서 넋두리나 할 수 있다는 점이 왠지 여유만만하게 느껴졌다. 하늘까지 치솟았다가 바닥까지 추락하는 감정의 파고를 겪는 일은 더 이상 재미있지 않다. 예전에 나는 사랑에 빠지는 일이 재미있었다. 기뻐도 좋고 슬퍼도 좋았다. 기쁨이 최고조에 올랐을 때 알싸하게 느껴지는 공허라든가, 슬픔이 최정상에 다다랐을 때 뜨겁게 가슴을 덥히는 감흥과도 같은 그런 묘하고 야릇한 느낌들을 사랑했다. 결국 내가 사랑이라고 믿었던 것은, 대상에 대한 애정이 아니라 그러한 느낌들에 대한 취미였을지도.

  이런 깨달음들이 나를 더 행복하게 해줄지 결국 나를 더 외롭게 할지는 잘 모르겠다. 몰라서 용감한 게 좋은걸까, 알고나니 조심스러운 게 더 좋은걸까. 알고나서도 여전히 용감한 게 어쩌면 제일 좋은 건지도 모르겠다. 그 경지에 오르면 정말 멋지고 쿨한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나에겐 아직 겁나먼 이야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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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14 0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깐따삐야 2006-11-14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어차피 똑같은 사이클의 반복일 뿐인데 다채로운 비유에 기대어 살아가는 걸까요. 그냥 요즘은 문득문득, 아직 혼자여서 다행이란 생각만 들어요.

Mephistopheles 2006-11-14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번도 이별을 통보한 적은 없었지만 그 이별을 통보하는 입장에서도 전전긍긍할것
같은 느낌일것 같아요..^^

깐따삐야 2006-11-14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님, 아마 그렇겠죠. 그래도 일방적으로 전화번호를 바꾸어 버리는 것은, 먹다 떨어뜨린 아이스크림처럼 먹먹하고도 신경질 나는 일이에요.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