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없어. 자식을 향한 모성애, <소나기>같은 소설에 나오는 수줍은 풋사랑. 그거 이외에 사랑이란 없어."
웃풍이 찼던 자취방, 뿌연 형광등 아래서 Y가 했던 말이다. 당시에 그녀는 휴학 중이었다. 늘 지나치던 가게가 있었는데 가게 주인으로 뵈는 서른 즈음의 남자가 어느 날 그녀에게 데이트 신청을 한 모양이었다. 심심하던 차에 수작에 응해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는 이야길 하며 그녀는 뜬금없이 저런 말을 했었다. 애송이 아니면 조로. 그 때 나는 그녀를 그렇게 판단했었다. 그리고 그녀를 좋아했었다.
이틀 학교를 나가면 하루는 쉬어줘야 할 정도로 심신이 약했던 Y의 행방은 지금도 묘연하다. 그녀를 찾아볼 길이 없어 답답해 하던 하루는 인터넷 검색창에 그녀의 이름 석 자를 처 넣고 모든 링크들을 클릭했었다. 소용 없는 일이었지만 그렇게라도 그리움을 표현하는 게 그녀와 나를 향한 예의일 듯 싶었다. 이제 내게 남아있는 건 Y의 이름 석 자, 정리되지 못한 채 아무렇게나 꽂혀 있는 자잘한 메모들, 그리고 위에 쓴 말 뿐이다.
그녀의 친구 E는 얼마전 떠나가려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한테 헤어지자는 말 하지 마. 너무 마음 아프니까.
처음엔 발라드를 좋아하다가 팝을 듣게 되고 이후 락을 찾게 되더니 곧이어 재즈에 맛 들이고 결국 클래식에 눈을 뜬 다음엔 전통가요로 귀환하는, 세상과 점점 한통속이 되어가는 통속적인 일상 속에서 문득문득 떠오르는 Y는 신기루와도 같다. 속여도 좋고 속아도 좋아, 외롭지만 않다면. Y는 어디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