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꿈도 많았더랬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는 이선희 같은 가수나 9시 뉴스를 진행하는 아나운서가 되고 싶었고 초등학교 때에는 <수사반장>이니 <경찰청 사람들>이니 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심취해 강력계 형사가 되고 싶었다. 중학생 무렵에는 릴케와 헤세를 읽으며 시인이 되고 싶었고 고등학생이 되자 불현듯 사회부 기자가 되고 싶었다. 교생실습을 다녀와서는 막연하게나마 이 길이 맞나보다, 라고 믿었었다. 금방 기억나는 것들만 굵직굵직하게 나열해서 그렇지 사실은 어디 이것 뿐이겠는가. 테레사 수녀는 열두 살에 자신이 무슨 일을 해야 할지 깨닫고 열여덟의 나이에 모국을 떠나 인도로 갔다는데 그저 범인에 그칠 수 밖에 없는 나는 지금까지도 방황 중이다. 이 얼마나 안정적이냐, 황송하다가도 네가 언제부터 안정적인 것이 전부였더냐. 그 얼마나 배부른 방황이냐, 송구스럽다가도 네가 언제부터 배부른 것이 전부였더냐, 로 거만과 비아냥의 색조를 띠는 의문들이 마음 속을 둥둥 떠다닌다. 그리고 그런 의문들은 어김없이 죄책감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저도 사람인걸요, 라고 함부로 주장할 수 없는 나는 교사이니까.

  내가 아이들의 머리 모양에 대해서 그다지 터치를 하지 않는 이유는 왜 그러한 머리 모양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가에 대해 타당한 이유를 제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교칙이니까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 말고 이러이러한 점 때문에 그런 머리 모양을 하면 안된다고 누군가 나에게 일러주면 차라리 좋겠다. 그 이유가 납득이 가면 아이들을 부지런히 설득해 볼 요량도 있다. 그러나 각 학급마다 명령조의 공지사항만 게시될 뿐 왜 그래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 결국 며칠 전 아침, 정해진 규정대로 머리를 깎지 않은 채 등교한 우리반 몇몇 아이들이 운동장을 돌고 있었다. 너 머리 안 깎을거니. 네. 안 깎고 오면 매일 운동장을 돌아야 할텐데. 그래야 한다면 매일 돌 거에요. 아침부터 땀 빼는 거 힘들다. 머리 깎는 것보단 나아요... 뭔가 더 말을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사실은 딱히 떠오르는 말도 없었다. 점심시간 무렵에 학생부 선생님이 나를 찾아오셨다. 우리반 아이들 몇 명을 지목하며 머리 모양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셨고 얼마전 엄마를 잃은 K에 대해서도 요주의 학생이라는 점을 언급하시며, 그 어법이 비록 완곡하긴 했지만 당신은 아이들에게 도통 관심이 없는 교사군요, 라는 엄한 딱지를 내 이마에 붙여주셨다. 무고한 나를 누군가가 모함이라도 했다는 듯 의뭉스럽게 표현하긴 했지만 결국 이야기의 골자는 당신은 아이들한테 관심도 없고 노력도 안하면서 수당은 잘도 받아가네요, 였다. 누가 그런 말을 하던가요. 다른 누구처럼 열심히 하는 척 밖으로 생색을 내지 않아 그렇지 저도 아이들한테 잘할 땐 잘한답니다. 선생님은 살짝 당황하시더니 머리 모양과 K에 대해 거듭 당부하며 돌아가셨다.

  발끈하여 말은 저렇게 했지만 속으로는 마음이 무척 아팠고 반성을 많이 했다. 교사가 아이들한테 잘하는 게 당연하지 뭐하러 잘할 땐 잘한다고 말했니. 치사스럽다. 네가 평소에 어떻게 했으면 선배 선생님이 저렇게까지 말을 하겠니. 망신스럽다. 억울한 마음이 드는 한 편, 학교생활에 흠뻑 빠져 지내지 못하는 스스로를 생각하니 쓸쓸해졌다. 아직 신출내기인만큼 선배 교사들의 지시에 열심히 응해주면서 아이들을 제대로 통솔하기라도 하던가, 아니면 일찌감치 승진의 발판을 닦고 차근차근 준비라도 해나가던가. 여러모로 나란 사람은 사회부적응자, 학교부적응자가 아닐 수 없었다. 물론 학창시절부터 선배들에게 그다지 착한 후배는 아니었다. 중학교 때는 지나갈 때 선배한테 인사를 안한다고 불려갔다가 반말로 들이댄 적이 있었고 대학 때는 한 여자선배의 심기를 건드려서 연거푸 권해오는 소주 때문에 애를 먹었던 적이 있었다. 어리석고 치기 어린 과거지만, 권위는 위에서 아래로 강요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닐 뿐더러 그렇게 얻은 권위는 쓰레기에 불과하다는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K에 대해 되도록 많은 걸 알아내라는 학생부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며 얼마 전 K와 K의 여자친구를 불러내어 저녁을 먹던 장면을 떠올렸다. 나는 너희들 이 고기 다 먹고 가야한다고 말했고 K는 나중에 스무 살이 되면 선생님께 고기를 사드리겠다고 했다. 나란히 서서 커플룩을 자랑해 보이길래 예쁘다고 칭찬해 주었고 K가 갑자기 내 어깨에 팔을 턱, 걸치길래 속으론 흠칫 놀랐지만 미남이 팔을 다 얹어주니 기쁘기 그지 없다면서 같이 웃었다. 그게 전부였다. 아마 학생부 선생님이라면 똑같은 시간 동안 많은 걸 알아내셨으리라. 노련하지도 못한데다 아직 어머니도 되어보지 못한 나는 K가 나를 누나 쯤으로 생각하면서 외로움을 조금이라도 해소할 수 있다면 좋겠고 머리모양을 마음대로 하면서 스트레스가 좀 풀린다면 그마저 다행이지 싶다. 밥은 먹었니, 라고 묻고 싶다가도 밥도 못 챙겨주면서, 란 생각이 들어서 무뚝뚝해지고 마는 나의 성품은 다소 우습지만 그렇다고 해서 밥은 먹었니, 란 말을 남발하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생각이 든다. 내 생각이 있는데 그것을 남에게 이해받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쩌면 더불어 살아가는 데 있어선 예의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그렇듯 한동안 마음이 복잡해 있었는데 그 마음을 알 길 없는 아이들이 심한 장난을 쳤다. 5교시였고 한창 졸음이 몰려오고 지루해질만한 시간대이니 다른 때 같았으면 이해를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날은 내 마음이 그렇게 되어주질 않았다. 너희들은 권위 앞에선 꼼짝 못하는 주제에 나 따위는 이리저리 갖고 놀아도 상관없다 이거구나. 마음 한 켠에서 얼음장 깨지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고 더운 날씨였음에도 몸의 온도가 한없이 낮아지는 것을 느꼈다. 분위기가 얼추 정리된 후, 창 밖 한 번 바라보다 교과서 한 번 바라보다 칠판 한 번 바라보다 해가며 수업을 진행했다. 무겁고 냉랭했다. 아이들의 눈을 바라보기가 싫었다. 아이들은 결국 담임선생님께 벌을 받아야 했고 수업 태도는 사뭇 달라져 있었다. 재작년에 담임을 맡았던 W는 죄송하다는 말을 담은 편지까지 가져왔다. 착한데 너희들은 철이 좀 없었구나. 나는 철도 없고 착하지도 못하단다. 한 시간 동안 내 눈치만 살펴야 하는 아이들이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도 무뚝뚝한 나는 편지를 준 W를 향해 제대로 한 번 웃어보이지도 못한 채, 45분을 빠듯이 수동태를 설명하는 데 써버렸다. 교실을 나오는데 머리 뒤꼭지가 서늘하고 쓸쓸했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하냐. 내 그릇의 크기가 의심스러웠다. 그리고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어쩌면 아이들에게 더 도움이 되는 것은 이렇듯 변덕스런 애정보다는 일관된 권위일 수도 있다는 생각.

  교육방송 청취를 위해 컴퓨터실을 자유롭게 개방하자는 교장 선생님의 말씀은 바람직하다. 게임을 위해 컴퓨터실을 애용하는 학생들을 일일이 체크하고 사이버 학습을 할 수 있도록 꾸준히 선도해야 한다는 말씀은 정말이지 이상적이다. 문제는 나에게 있다. 내가 그러한 종류의 이상을 믿지 않게 되었다는 데 있다. 나는 못된 아이가 선한 어른보다도 더 착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못된 아이를 착하게 변화시킬 마음도 없고 능력도 없다. 변할 때가 되면 자연히 변하게 될 것이고 변하지 않으면 그 성품 그대로 어딘가 맞는 역할이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교사로서 할 일이라면 그나마 몇 년 더 산 인생선배로 다양한 길을 일러주고 조언해주는 것 정도. 네멋대로 하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 안된다는 것을 주지시켜 주는 정도일 뿐. 아이들은 새파란 감각으로 시대를 매순간 느끼며 산다. 하루에 여덟 시간씩 학교에 감금시켜 둔다고 해서 알 걸 모르고 모를 걸 알게 되진 않는다. 이제는 학교보다 더 많은 걸 보여주고 가르쳐 주는 매력적인 매체들이 도처에 널려 있기에 스스로 변화하고 스스로 커간다. 타인이 아닌 자신에게 자생적 권위를 심어줄 줄도 안다. 어른들이 주조해 놓은 비인간적 매트릭스 안에서 그들 나름대로 살아갈 방도를 궁리, 탐색하고 있는 것이다. 학교는 자꾸 권위를 지키려고 하고 학생은 자꾸 권위로부터 벗어나려고 한다. 학교에서는 따가운 눈총을 받는 머리 모양이 인터넷에서는 뜨거운 호응을 얻는다. 못된 것도 개성이 되고 선한 것이 바보가 되는 시대의 흐름을 아이들은 제대로 읽어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기본적 미덕은 영원하다는 것을 가르쳐야 하는 곳이 학교이지만 가르치고 일러주되, 곧바로 변화시킬 수는 없다. 깨달아야 한다. 어느 순간 혼자서. 내가 그랬고 누군가의 강요로 깨닫는 척 했던 것보다 훨씬 더 절절하게 와 닿았던 순간이 있었다.

  동상이몽(同狀異夢)이란 말이 척 들어맞지 않을까. 오늘 내 글에 출연한 사람들을 비롯해서 우리 사회 전반의 분위기 역시 말이다. 같은 교실 안에 있는데 나는 아이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다. 왜냐하면 나는 다른 꿈을 꾸고 있기 때문에. 같은 교무실 안에 있는데 나는 다른 선생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다. 왜냐하면 나는 다른 잠꼬대를 할 것이기 때문에. 무능한데 착한 선생님이 되고싶다. 그리하여 시대를 거스르고 싶다. 무능한 건 맞으니 착해지는 일만 남았다. 어려운 일. 역시 시대는 아무나 거스르는 것이 아닌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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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6-09-03 0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희들은 권위 앞에선 꼼짝 못하는 주제에 나 따위는 이리저리 갖고 놀아도 상관없다 이거구나. 라고 하셨죠. 저도 동감이여요. 애들이 교사도 인간이라는 사실을 좀 알아줬으면 할 때가 있어요. 지들 아쉬운 때는 어리광부릴 만한 교사에게만 어리광과 억지 실컷 부리다가, 그거 받아주면 또 만만한 사람이라고 요구의 강도만 높아가고 말이죠. 두발 재검사를 앞두고 히스테리 한번 부렸더니, 좋은 말 할 때는 머리 안 자르다가 그제서야 자르고 오는 애들. 정말이지 그 애들도, 히스테리 부리는 저도 싫어요.

깐따삐야 2006-09-03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RINY님, 역시 같은 교사이다보니 겹치는 부분이 많네요. 아이들은 권위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하면서도 권위에 쉽사리 복종합니다. 그리고는 권위라는 것이 아직 제대로 체화되지 못한 저같은 초짜 교사들에게 긴장을 해소하며 어리광을 부리는 거죠. 마치 밖에서는 굽실거리다가 집에만 돌아오면 생떼를 쓰는 가엾은 샐러리맨을 보는 것 같아요. 하지만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하듯 그러한 아이들을 탓해 보았자 누워서 침 뱉는 격이란 생각도 듭니다. 아이들 앞에서 뭐 하나 똑부러지게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말을 하지 않고 그러기도 싫어하는 저같은 소심한 회의주의자보다는 기간을 두고 아이들이 변화할 때까지 주야장천 호령을 해대는 열정적 권위주의자가 더 좋은 것인지도 몰라요. 아이들의 성장을 위해서나 교단에서의 만족감을 위해서나 말이죠.

치니 2006-09-03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 내세요 ^-^

깐따삐야 2006-09-04 0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니님,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