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한반도의 공룡>이라는 EBS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약육강식의 공룡 세계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점박이’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였다. CG와 시나리오가 훌륭해서 웬만한 영화보다도 훨씬 나았다. 돌이켜보면 인상에 남는 다큐들이 꽤 있다. EBS의 <명의>도 좋았고 MBC의 <타샤의 정원>도 좋았다. 우리나라 방송사들은 다큐멘터리만큼은 참 잘 만든다는 생각이 든다.
커피를 사느라 상영시간에 딱 맞추다시피 입장했는데 예상보다 관객이 많아 깜짝 놀랐다. 극장 맨 구석의 비좁은 개봉관으로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old partner를 보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었다. <체인질링>이나 <워낭소리>를 볼 때 곁에 앉은 관객들은 서로 은밀한 공모라도 한 것처럼 반갑다.
이 다큐에 대해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삶 그 자체로 말을 거는 작품에 대해서는 그저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아픈 머리를 싸매고 불편한 다리를 끌면서도 소 먹일 꼴을 베러 가는 할아버지, 9남매를 공부시키고도 모자라서 일어서지 못하는 그날까지 노부부를 위해 땔감을 잔뜩 실어다 준 소, 그리고 그 둘 사이를 질투하고 염려하면서도 할아버지 없으면 못 산다고 고백하는 할머니. 그렇게 동고동락한 40년의 세월 앞에서는 가타부타 어떤 말도 나오지 않는다.
어릴 적에 우리 집에서도 소를 키웠었다. 중3때까지 살았던 고향집. 정면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편으로 우리 집이 있었고, 가운데 마당에는 누렁이집, 오른편에 외양간이 있었다. 외양간 안에는 조그맣게 토끼장이 있었고 그 옆으로 여물을 써는 작두와 사료포대들이 있었다. 그리고 안으로 좀 더 들어가면 큰 눈을 껌벅거리며 밥 달라고 음메 거리는 소들이 보인다.
그때는 소를 키운다고 하지 않고 ‘소를 먹인다’는 표현을 썼다. 그 집은 소를 몇 마리나 먹여? 동네에 일소로 직접 논이나 밭을 가는 할아버지도 계셨지만 대부분의 집은 목돈을 마련할 목적으로 소를 먹였다. 암소는 송아지를 낳게 할 목적으로, 황소는 잘 먹여서 내다 팔 목적으로 키우곤 했던 것이다. 부모님이 집에 안 계신 날이면 학교에서 돌아와 점심을 챙겨 먹기 전에 소밥부터 주었던 기억도 난다. 어렸지만 어렴풋이나마 소가 얼마나 중요한 구성원인지 느꼈었나 보다.
낮부터 긴장된 분위기가 감돌고 합기도장을 운영하던 아저씨가 우리 집에 오는 날이면 소가 송아지를 낳았다. 다큐 속 할머니처럼 우리 엄마도 소가 황송아지를 낳으면 더 좋아하셨다. 노루 새끼처럼 연약해 보이는 송아지는 몇 번 비틀거리다가는 벌떡 일어선다. 어미 소는 송아지를 핥아주며 모두를 경계하고 엄마는 솥에 정성껏 국을 끓이셨다. 동네 아저씨들이 마실을 왔다가 외양간에 들러 송아지를 구경했고 그땐 나도 왠지 뿌듯한 기분이었다. 그 송아지가 자라 어디론가 팔려가고 외양간의 한 자리가 텅 비었을 땐 막연히 슬프고 아쉽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올해가 마침 소띠해다. 돌아가신 할아버지도 소띠였다. <워낭소리>의 할아버지처럼 우리 할아버지도 평생 손에서 일을 놓지 않으셨다. 막걸리를 마시며 힘을 내는 소처럼 할아버지도 술기운으로 고된 농사일을 견뎌내시곤 했다. 내가 할아버지, 하고 부르면 항상 네가 선희냐? 하셨는데 할아버지는 물론 내가 선희가 아니란 걸 알고 계셨다. 선희는 나와 자주 다투던 이웃집 여자애였다. 할아버지식 애정표현이었다. 할아버지, 점심 드시고 하세요, 라고 말하면 먹고 싶어도 먹을 새가 없다, 라며 바쁘게 일하시던 모습. <워낭소리>의 할아버지가 머리가 아파 힘들어 하시는 모습을 보니 우리 할아버지가 떠올라서 조금 짠했다. 나는 사실 살아생전 할아버지의 모든 면을 다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쉼 없이 참 성실히 사신 분이라는 것은 잘 안다. 그리고 어른이 되고 난 지금, 그 무던한 성실함이 할아버지의 특별했던 손재주나 유머감각보다 훨씬 더 큰 재능이자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이 한 편의 엉성한 다큐는 이렇듯 나를 유년기로 천천히 몰고 가더니 가슴에 송아지 눈망울 같은 물여울을 하나 만들었다.
그나저나 소식을 듣자하니 다큐 속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찾아가 괴롭히는 몰상식한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하여간 요즘처럼 타인에 대한 배려나 죄의식이 없었던 시절도 드물 것이다. 무턱대고 남의 터전에 쳐들어가서는 말 시키고 사진 찍고. 그리고는 뭐 느리게 살자는 둥 식상한 수다를 늘어놓겠지. 제 손으로 폭우에 쓰러진 벼 한번 묶어보지도, 뙤약볕 아래서 콩밭 한번 매 보지도 않은 것들이 살아보지도 않은 삶에 대해 함부로 지껄이며 쌩쇼를 하는 것이다. 그렇듯 개인적으로 지분대는 것을 넘어서 이런저런 언론사가 작당을 해서 범국민적 지분댐으로 나아가면 그만한 꼴불견도 없을 것이다. 있는 듯 없는 듯 자연에 순응하며 열심히 사시는 분들을 괴롭힐 게 아니라, 사흘이 멀다 하고 열받게 하는 그치들한테나 가서 카메라를 들이대고 캐물어라. 왜 그렇게 사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