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금요일 밤이면 KBS에서는 ‘이하나의 페퍼민트’를 방송한다.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를 시초로 ‘이소라의 프로포즈’, ‘윤도현의 러브레터’에 이어지는 음악토크쇼이다. 늦은 시간에 방송을 해서 꼬박꼬박 챙겨보지는 못하지만 잠이 안 오거나 관심 가는 가수들이 나오면 즐겨보곤 한다.

  지난 금요일 밤에는 역대 진행자들 중 노영심과 이소라가 출연해서 뜻밖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노영심의 시골아이 같은 표정은 여전했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말을 거는 듯 경쾌한 피아노 선율을 들려주고는 바로 그 자리에서 ‘페퍼민트 워킹’이라는 예쁜 곡명을 짓는다. 순간 내가 직접 음악 선물을 받기라도 한 것처럼 기분이 환해졌다. 그녀가 만든 ‘별걸 다 기억하는 남자’와 ‘그리움만 쌓이네’는 한때 나의 노래방 애창곡이었다. 학창 시절 내 기억 속 노영심은 머리 좋고 피아노 잘 치는 대학생 언니이자, 빨강머리 앤의 주제곡 마냥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운 피아니스트였다.

  그리고 이소라. 나는 사춘기의 한 시절을 ‘이소라의 음악도시’를 들으면서 보냈다. 쉬는 시간에는 친구들과 함께 그녀의 느릿느릿 굵직한 목소리를 흉내 내며 지난밤 들었던 음악도시를 재현하기도 했다. 안 그래도 궁금하던 차에 머리를 짧게 자른 채 7집을 들고 나온 그녀. 눈을 감고 노래를 부를 때는 오래된 카페의 베테랑 재즈 가수처럼 보이는데 인터뷰를 할 때의 모습은 음악도시 DJ 시절의 그 모습이다. 그녀는 짐짓 엉뚱하고 둔감해 보인다. 하지만 근래의 무식한 아이들이 너도나도 표방하는 무개념과 무배려의 4차원이 아니다.

  분위기가 뭔가 어색해지면 그것은 나 때문일 거라고 말하는 그녀. 꽃분홍색을 입고 나오고 싶었지만 오늘도 검정색 옷을 입고 나왔다며 하고 싶지만, 할 수 있는 것은 제한되어 있다고 말한다. 본인의 진행 솜씨에 대해 걱정하는 이하나에게는 그것이 노래든, 연기든, 진행이든, 기다리면 저절로 되는 때가 있다고 조언한다. 진행자의 말을 주의 깊게 경청하면서 솔직하되, 세심한 배려를 가득 담아 대답하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주변이 맑게 환기되는 느낌이었다. 오래 고독하고 깊게 상처 받았던 이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초연함, 그럼에도 울퉁불퉁 옹이진 마음 없이 착한 웃음소리를 간직한 그녀. 이소라는 의젓하게도, 오직 자신의 노래 속에서만 운다.

  금요일 밤을 불면으로 보낸 것이 만족스러웠던 것은 이 두 여인 때문이다. 특히 세월이 흐를수록 초라해지기는커녕 노래는 무르익고 마음은 깊어지는 진짜 뮤지션, 이소라와 재회한 것이 반갑고 기뻤다. 마음이 쉬이 늙어버린 사람은 누군가를 위해 페퍼민트 워킹이라는 고운 음악을 선물할 수 없다. 또한 각자 가슴 깊숙한 곳에 감추어둔 그리움을 끌어올리는 절절한 노래를 부를 수도 없다.

  사랑에 대해 묻는 이하나에게, 내게 이제 사랑은 유리 같다, 집에서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고 말하기까지 이소라, 그녀가 지나온 시간은 어떠했을까 나 혼자 상상이 되어 마음이 조금 아팠다. 사치스러운 고독이 판을 치는 작금의 세태에 단연 돋보이는 리얼 고독이다. 난 새롭거나 모나지 않은 말 주워 좀 외롭거나 생각이 많은 날 누워 내 음을 실어 내 말을 빌어서 부른다 Track 5의 가사다. 이소라는 외롭고, 참 착한 뮤지션이다. 사랑과 일과 음악에 있어 내내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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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9-02-08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녀를 매일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만납니다..^^
M본부 FM에서 DJ 하고 있지요..^^

깐따삐야 2009-02-10 15:02   좋아요 0 | URL
앗! 근데 여기는 그 시간대에 지방방송 하거든요. 흑흑.

Mephistopheles 2009-02-10 15:04   좋아요 0 | URL
안타깝군요....정말 재미있게 방송하는데..^^

노이에자이트 2009-02-08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하나 누나...노래도 잘하고 목소리도 이쁘고 몸매도 이쁘고...다 이쁜 누나...

깐따삐야 2009-02-10 15:03   좋아요 0 | URL
맞아요. 노이에자이트님에겐 이하나 누나야말로 착한 누나네염.^^

프레이야 2009-02-08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랜만에 봤어요. 이하나가 노래부를 때 찬찬히 얼굴을 살피며 최대한 배려하며
피아노를 연주하는 노영심, 여전히 착하더군요. 이소라도 오랜만에 티비에서 반가웠구요.
삐야님도 이소라 팬이군요. 그런데 전 그녀가 노래할 때 어찌나 지독한지(고독한지) 그만
다 듣지 못하고 티비를 꺼버렸네요.

깐따삐야 2009-02-10 15:07   좋아요 0 | URL
혜경님도 보셨군요! 노영심은 어디 한 구석 예쁘지 않은데도 참 예뻐 보이더라구요. 그녀의 연주 속에 따듯하고 섬세한 마음씀이 드러나서 그렇겠죠? ^^

티비를 꺼버리신 그 심정 알 것 같아요. 그날 노래하는 이소라의 모습은 검고 지독한 고독, 그 자체였어요. 잠이 확 달아나는 것 같았어요.

웽스북스 2009-02-09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이소라의 프로포즈가 처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전에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가 있었지요. 그랬지요 ^_^ 전 이하나 좋아해요. (이건 연애시대에서 깐따삐야님 동생으로 나왔을 때부터 ㅋ) 페퍼민트를 본 적은 없지만, 진행을 잘 못한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진행을 꼭 잘해야되나 싶어요. 출연자들에게 적절한 말을 건네며 빛나게 해줄 수 있는. 그게 이하나의 매력이 아닐까 싶어요. (한번도 안봐놓고 잘도 말한다는 ㅋ)

깐따삐야 2009-02-10 15:12   좋아요 0 | URL
연애시대의 이하나는 정말 엽기였죠. 참하게 생겨가지고는 꼬물꼬물 발가락 만지던 손으로 뭐 먹고.ㅋㅋ 페퍼민트 진행자로서는 저도 좋은 점수 못 주겠어요. 큰 키가 부끄러운 듯 너무 겸손하게 진행을 해서 좀 안쓰럽더라구요. 연기할 때 보여주던 톡톡 튀는 발랄함과 엉뚱함은 다 어디로 갔는지.
그래도 신선한 마스크에 노래도 잘하고 재주 많은 츠자라서 기대를 갖고 있어요.^^

레와 2009-02-09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욕심이 강하게 생겼어요!
가수든 배우든 알라디너든(^^) 할 것 없이,
'아.. 저 사람, 사람냄새 나서 참 좋다.
언제한번 만나서 밥도 좋고 술도 좋고 차도 좋고..
마주 앉아보고 싶다..'라는.. 요런 생각이 왕왕 들어요.

깐따삐야님 글속에 가수 이소라도 그렇고, 깐따삐야님도 그렇고.. ^^

깐따삐야 2009-02-10 15:15   좋아요 0 | URL
이런이런 레와님! 제가 오늘 딱 그 기분이어요. 가까이 살면 전화해가지고 낮술 한잔 어때염? 막 이러고 싶다니깐요. 레와님이 카메라 안 들고 오신다는 조건 하에 막 꼬장 부리고 싶은. ㅋㅋ ^^

레와 2009-02-11 21:42   좋아요 0 | URL
아... 아깝다..;; ㅎㅎ
 


  얼마 전에 <한반도의 공룡>이라는 EBS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약육강식의 공룡 세계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점박이’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였다. CG와 시나리오가 훌륭해서 웬만한 영화보다도 훨씬 나았다. 돌이켜보면 인상에 남는 다큐들이 꽤 있다. EBS의 <명의>도 좋았고 MBC의 <타샤의 정원>도 좋았다. 우리나라 방송사들은 다큐멘터리만큼은 참 잘 만든다는 생각이 든다.

  커피를 사느라 상영시간에 딱 맞추다시피 입장했는데 예상보다 관객이 많아 깜짝 놀랐다. 극장 맨 구석의 비좁은 개봉관으로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old partner를 보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었다. <체인질링>이나 <워낭소리>를 볼 때 곁에 앉은 관객들은 서로 은밀한 공모라도 한 것처럼 반갑다.

  이 다큐에 대해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삶 그 자체로 말을 거는 작품에 대해서는 그저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아픈 머리를 싸매고 불편한 다리를 끌면서도 소 먹일 꼴을 베러 가는 할아버지, 9남매를 공부시키고도 모자라서 일어서지 못하는 그날까지 노부부를 위해 땔감을 잔뜩 실어다 준 소, 그리고 그 둘 사이를 질투하고 염려하면서도 할아버지 없으면 못 산다고 고백하는 할머니. 그렇게 동고동락한 40년의 세월 앞에서는 가타부타 어떤 말도 나오지 않는다.

  어릴 적에 우리 집에서도 소를 키웠었다. 중3때까지 살았던 고향집. 정면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편으로 우리 집이 있었고, 가운데 마당에는 누렁이집, 오른편에 외양간이 있었다. 외양간 안에는 조그맣게 토끼장이 있었고 그 옆으로 여물을 써는 작두와 사료포대들이 있었다. 그리고 안으로 좀 더 들어가면 큰 눈을 껌벅거리며 밥 달라고 음메 거리는 소들이 보인다.

  그때는 소를 키운다고 하지 않고 ‘소를 먹인다’는 표현을 썼다. 그 집은 소를 몇 마리나 먹여? 동네에 일소로 직접 논이나 밭을 가는 할아버지도 계셨지만 대부분의 집은 목돈을 마련할 목적으로 소를 먹였다. 암소는 송아지를 낳게 할 목적으로, 황소는 잘 먹여서 내다 팔 목적으로 키우곤 했던 것이다. 부모님이 집에 안 계신 날이면 학교에서 돌아와 점심을 챙겨 먹기 전에 소밥부터 주었던 기억도 난다. 어렸지만 어렴풋이나마 소가 얼마나 중요한 구성원인지 느꼈었나 보다.

  낮부터 긴장된 분위기가 감돌고 합기도장을 운영하던 아저씨가 우리 집에 오는 날이면 소가 송아지를 낳았다. 다큐 속 할머니처럼 우리 엄마도 소가 황송아지를 낳으면 더 좋아하셨다. 노루 새끼처럼 연약해 보이는 송아지는 몇 번 비틀거리다가는 벌떡 일어선다. 어미 소는 송아지를 핥아주며 모두를 경계하고 엄마는 솥에 정성껏 국을 끓이셨다. 동네 아저씨들이 마실을 왔다가 외양간에 들러 송아지를 구경했고 그땐 나도 왠지 뿌듯한 기분이었다. 그 송아지가 자라 어디론가 팔려가고 외양간의 한 자리가 텅 비었을 땐 막연히 슬프고 아쉽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올해가 마침 소띠해다. 돌아가신 할아버지도 소띠였다. <워낭소리>의 할아버지처럼 우리 할아버지도 평생 손에서 일을 놓지 않으셨다. 막걸리를 마시며 힘을 내는 소처럼 할아버지도 술기운으로 고된 농사일을 견뎌내시곤 했다. 내가 할아버지, 하고 부르면 항상 네가 선희냐? 하셨는데 할아버지는 물론 내가 선희가 아니란 걸 알고 계셨다. 선희는 나와 자주 다투던 이웃집 여자애였다. 할아버지식 애정표현이었다. 할아버지, 점심 드시고 하세요, 라고 말하면 먹고 싶어도 먹을 새가 없다, 라며 바쁘게 일하시던 모습. <워낭소리>의 할아버지가 머리가 아파 힘들어 하시는 모습을 보니 우리 할아버지가 떠올라서 조금 짠했다. 나는 사실 살아생전 할아버지의 모든 면을 다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쉼 없이 참 성실히 사신 분이라는 것은 잘 안다. 그리고 어른이 되고 난 지금, 그 무던한 성실함이 할아버지의 특별했던 손재주나 유머감각보다 훨씬 더 큰 재능이자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이 한 편의 엉성한 다큐는 이렇듯 나를 유년기로 천천히 몰고 가더니 가슴에 송아지 눈망울 같은 물여울을 하나 만들었다. 

  그나저나 소식을 듣자하니 다큐 속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찾아가 괴롭히는 몰상식한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하여간 요즘처럼 타인에 대한 배려나 죄의식이 없었던 시절도 드물 것이다. 무턱대고 남의 터전에 쳐들어가서는 말 시키고 사진 찍고. 그리고는 뭐 느리게 살자는 둥 식상한 수다를 늘어놓겠지. 제 손으로 폭우에 쓰러진 벼 한번 묶어보지도, 뙤약볕 아래서 콩밭 한번 매 보지도 않은 것들이 살아보지도 않은 삶에 대해 함부로 지껄이며 쌩쇼를 하는 것이다. 그렇듯 개인적으로 지분대는 것을 넘어서 이런저런 언론사가 작당을 해서 범국민적 지분댐으로 나아가면 그만한 꼴불견도 없을 것이다. 있는 듯 없는 듯 자연에 순응하며 열심히 사시는 분들을 괴롭힐 게 아니라, 사흘이 멀다 하고 열받게 하는 그치들한테나 가서 카메라를 들이대고 캐물어라. 왜 그렇게 사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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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9-02-05 2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만든 다큐 하나는 열 블럭버스터 부럽지 않는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준 다큐였어요..^^

깐따삐야 2009-02-06 17:08   좋아요 0 | URL
메피님 말씀이 아주 딱입니다요! ^^

L.SHIN 2009-02-07 0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전에 우연히 EBS의 공룡, '점박이'의 다큐를 재밌게 보았습니다.
이 영화의 제목이 <워낭소리> 였군요. 왜 제목이 워낭소리일까는 나중에 보면 알겠죠.
전에 이 영화가 제작되고 개봉된다, 내용은 이렇다..라고 들었을 때 눈물이 날 것 같았죠.
왠지 저는 보면 많이 울 것 같습니다. (웃음)

깐따삐야 2009-02-08 14:31   좋아요 0 | URL
'한반도의 공룡' 보셨군요. 참 잘 만들었더라구요. 한층 업그레이드 된 라이온 킹의 공룡 버전이랄까. 아주 흥미진진하게 봤습니다.

왜 워낭소리인지는...^^ 직접 보세요. 형님은 분명 우실 거에요. 저도 숨을 못 쉬었어요. 잠시.

순오기 2009-02-13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집 가까운 극장에서는 이런 영화를 안 걸어요~ ㅠㅜ

깐따삐야 2009-02-16 00:07   좋아요 0 | URL
안타까워요. 순오기님도 정말 좋아하실 영화인데 말이죠.ㅠ
 

  절기는 못 속인다고 입춘다운 날씨였다. 아침에 짙은 안개가 끼었지만 정오 무렵 안개가 걷히기 시작하자 하늘은 온화한 푸른색을 띄었다. 좀 더 가까이서 봄기운을 느끼고 싶어 근처 산성에 갔다. 평일인데도 산악회 사람들이 곳곳에 많이 보였다. 고사를 지내는 모습도 보이고 호일에 싸온 김밥을 먹는 모녀도 있었다. 등산 모자 아래 알록달록 곱게 화장한 할머니들이 남편과 나를 빤히 쳐다보며 지나갔다.

  남편은 자주 넘어지는 내게 걷는 법부터 가르쳐 주었다. 발끝으로 걷지 말고 뒤꿈치가 먼저 닿도록 또박또박 걸으라고 했다. 안개를 품은 능선과 산에 걸린 구름에 감탄하자 언젠가 지리산 노고단에 한번 가자고 했다. 구름이 내 발 아래서 휘몰아치고 다시 그 구름이 산봉우리에 부딪치며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모습을 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하얀거탑’ 이후로 다른 드라마들이 시시해졌듯 지리산을 한번 다녀오고 나면 다른 산들에 쉽게 마음을 줄 수가 없단다. 딴지를 걸 틈도 없이 지리산에 가고 싶어졌다.

  봄을 기다리는 산성은 고요하고 아늑했다. 내 목소리만 너무 큰 건 아닐까 싶어 목소리를 조금 낮추어야 했다. 명색이 산인데 아직 추울 거라 생각하고 챙겨 입었던 파카는 조금 덥게 느껴졌다. 평소 추위를 많이 타는 편인데 등에 땀이 솟고 두 발이 더워지는 느낌이 참 좋았다. 코끝에 은은히 스미는 솔잎 향과 부드럽게 내리쬐는 햇볕이 나와 내 주변을 공평하게 품어주고 있었다.

  운동 부족으로 내리막길에선 자연스럽게 후들거리며 게다리춤을 추었고 남편은 손을 잡아주었지만 나는 그런 내가 재밌어 계속 게다리춤을 추며 내려왔다. 호젓한 숲속에 웃음소리가 퍼졌다. 입을 꼭 다문 봉오리들이 가냘픈 나뭇가지에 단단히 매달려 있는 것을 보고 너희들은 참 조용하고 성실하구나 싶었다. 그렇듯 단단하고 조용하고 성실한 것을 볼 때면 숙연해진다. 자연이 불러일으키는 당연한 심상인데도 요즘은 어째 더욱 그렇다.

  오랜만의 외식. 얼큰한 육수에 쑥갓향이 좋은 칼국수. 테이블엔 밥맛없는 중앙일보가 놓여 있고 보나마나 글들 참 자알 쓴다. 세계김치연구소 까지는 좋은데 이명박 아이디어라고 굵은 글씨로 박아놓았다. 하여간 툭툭 던지긴 잘한다. 새로운 것도 좋지만 당장 하라는 거나 잘했으면 좋겠다. 강호순이 사이코패스의 전형이라는데 우리나라 대통령은 자수성가한 아집쟁이의 전형을 보여준다. 둘 다 연구 대상이기는 매한가지이다.

  저녁엔 엄마가 끓여주신 냉이된장국을 가지고 왔다. 냉이국을 끓이고 달래무침을 하고 봄동으로 겉절이를 만들기 시작하면 봄은 시작된 것이다. 냉이, 달래, 봄동... 봄을 알리는 귀여운 이름들. 새삼 우리말이 참 예쁘단 생각을 한다. 이렇듯 귀엽고 예쁘고 좋은 것만 생각하기에도 하루가 짧고 계절 또한 순식간에 바뀌어 간다고 생각하니 아쉬운 마음. 자연은 인간이 깝치지 않는 한 항상 무자극의 위안을 준다. 잠깐 산에 다녀온 것뿐인데도 심신이 조금은 맑아진 기분이다. 이 기분이, 오래 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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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02-04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입을 꼭 다문 단단한 봉우리들이 곧 화알짝~~ 벌어지겠죠.
아름다운 신혼일기, 산행일기 되시것습니다~ ^^

깐따삐야 2009-02-05 19:33   좋아요 0 | URL
꽃이 피면 한번 더 가려구요. 한 시간 남짓한 코스라 걷기에 딱 좋더라구요.^^

Mephistopheles 2009-02-04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말라야를 가보는 겁니다 아자! 거기 가면 세게 어느 산도 다 시시해진다고 합니다.

깐따삐야 2009-02-05 19:33   좋아요 0 | URL
어랏. 그렇군요!

turnleft 2009-02-05 0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 본 사람들은 또 히말라야보다는 킬리만자로가 제 맛이라고..;;

깐따삐야 2009-02-05 19:33   좋아요 0 | URL
아이고. 그렇군요!! ㅋㅋ

레와 2009-02-05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먼지쌓인 배낭이랑 스틱을 꺼내놓고, 산에 갈 준비를 시작하렵니다!^^

봄동 겉절이 하나면 밥 한솥은 거뜬(?)하게 해치우는데..아항~ ㅎㅎ

깐따삐야 2009-02-05 19:35   좋아요 0 | URL
저는 깜빡하고 카메라를 안 들고 갔는데 레와님은 산에 가시면 좋은 사진 많이 찍어 오세요.^^

한솥이란 말에서 따듯한 유대감을 느낍니다. 쿡쿡~
 

  MBC 토크쇼에 나온 부활의 김태원이 그런 말을 했다. “학생 시절에 한 번도 차여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곡을 쓸 수 없습니다.” 3등은 괜찮지만 3류는 안 된다고 말해서 탄성을 지르게 만들던 김태원. 그는 노래만 잘 만드는 게 아니라 말도 참 잘한다. 이번에도 그의 말은 옳다. 네버엔딩 스토리 같은 명곡을 쓰지 못하는 범인들도 한 번 차여보지 않고 어른이 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있다 하더라도 별로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다.

  나와 남편은 목에 마구 힘줘가면서 소개팅만 나가면 백전백승이었다느니,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나한테 대쉬한 사람들이 수두룩하다느니, 한 번도 차여보지 않은 것처럼 구라를 치는 일이 빈번한데 물론 서로 그것을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는다. 남편은 성격 상 호되게 차였어도 조용히 집에 돌아와 발 뻗고 주무실 타입이고 나는 한 며칠 자학하다가 다른 사랑을 찾아 헤매는 타입. 듣자하니 그는 일찍이 대학 동기한테 차였었고 나는 동아리 선배한테 차였었다. 최초의 차임이었다.

  D선배. 과거에 좋아했던 사람을 떠올리면 얼굴이 훅훅 달아오르며 내가 왜 그런 사람을 좋아했을까 의문이 들 때가 있는데 그 선배만큼은 군계일학이다. 가끔은 그를 좋아했다는 사실이 뿌듯할 때까지 있다. 나의 안목은 그때가 최상급이 아니었을까. 남편은 내가 만나보았던 남자 중에 가장 착한 남자고 그 착함은 미덕이지만 갓 스물을 넘긴 그때. 내게 착해빠진 남자는 물에 빠진 남자만도 못했다. 닿을 수 없는 것들에 이끌리던 나이였다.

  동아리 현동인 중 최고학번이었던 D선배. 사실 그는 나를 아기 보듯 했었다. 문제는 나를 귀엽게 바라보던 그 눈빛을 내가 사랑으로 착각했다는 데 있었다. 나중에 깨달은 건데, 착각은 자유지만 그 자유에 매몰될 지경에까지 이르면 안 된다. 늘 스스로를 냉동실에 건냉보관 해두었다가 잠시잠깐 외출을 한 것처럼 보이던 그가 내게 시종일관 따듯한 태도를 보였을 때, 나의 므흣한 상상력은 무한정 나래를 펴기 시작했다. 그때는 그 설렘만으로도 벅차서 선배에게 닿기까지의 절차를 생각하거나 계획할 수조차 없었다. 별별 생각을 다하다가도 마주치는 순간 얼음! 하고 굳어버렸다. 결국 싹튼 연정을 되새김질만 하다가 선배가 졸업과 동시에 이 도시를 떠나고 나서야 고백이란 걸 했다.

  정확히 일주일 후 선배는 아주 공들여 쓴 메일을 보내왔다. 작품성 높은 거절 편지. 그는 장문의 메일 속에서 오히려 나의 생뚱맞은 고백을 칭찬해주고 있었다. 그 나이 땐 그래야 한다고. 다 쏟아버리는 것도 좋다고. 젠틀하게 차는 방법을 아는 남자였다. 내가 울지 않도록 여기저기 당의정을 발라놓아서 이런 메일을 받고 차였다는 것을 동네방네 떠들고 싶을 정도였다. 그는 나를 많이 아껴주었는데 그 글 속에서도 여전히 아끼고 있었다. 그 느낌이 전해져 오자 나는 나의 급작스런 고백이 오히려 미안해졌다. 그래도 거절은 거절이고 차인 건 차인 거고 아픈 건 아픈 거였다. 상처 입은 나는 읽고 난 즉시 메일을 삭제했다. 거절 편지는 작품성과 상관없이 소장가치가 없는 글 중 하나다.

  그 이후 몇 차례 그의 홈피를 들락거리고 휴대폰을 쏘아본 적은 있지만 단 한 번의 연락도 하지 않고 깨끗이 돌아섰다. 돌아서지 않으면 어쩌라고. 조바심이 날 때마다 스스로를 윽박지르며 위협했다. 네가 그만두지 않으면 어쩔 건데. 얼마 후 먼저 연락을 취해온 것은 선배였고 그 후로는 고백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착각의 자유가 함께 한 추억까지 매몰시키지 않아 다행이었다. 하지만 아픔은 깊어 한동안 오래도록 아무도 좋아할 수 없었다. 지금은 가까스로 안도의 한숨을 쉰다. 그쯤에서 그치길 잘했다. 짝사랑의 추억이 스토킹 전과로 변질되는 건 순간이다.

  가수 이소라는 실연 이후에 앨범을 한 장 씩 발표한다고 들었다. 김태원은 첫사랑의 기억을 떠올리며 ‘사랑할수록’을 썼단다. 나는 예술가가 아닌 탓에 수많은 일기를 쓰고 동아리에 나가 어줍은 시들을 발표했다. 친구들에게 가차없는 연애 상담도 해줬다. 절대 먼저 고백하지 마. 그리고 아니라고 생각되는 순간 깨끗이 돌아서. 그렇듯 뻣뻣하게 곧추세우기엔 목도 허리도 예전 같지 않지만 지금도 비슷하게 충고한다. 웬만하면 먼저 고백하지는 마. 그리고 아니라고 생각되는 순간 웬만하면 그냥 돌아서. 자존심도 뭣도 아니다. 정답도 아니다. 임상경험에 비춘 나름의 조언이다. 더욱이 내가 하라고 해도 안 할 사람은 안 하고 하지 말라고 해도 할 사람은 하고야 만다. 다만, 추해지면 안 된다. 자칫하면 내성이 생겨 습관된다.    

P.S. 이쯤에서 김석기 씨에게도 한 마디. 그렇게 뭉개고 있으니 추하다 못해 너절해지는 거다. 마치 부모 빽 믿고 돈으로 사랑도 살 수 있다며 징징거리는 막장 드라마 속 찌질녀 같다. 내가 차여본 사람으로서 충고하는데 국민들이 좋은 말로 거절할 때 떠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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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9-02-04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참, 본문은 아릿해서 좋고, P.S는 의외의 반전을 주어서 좋잖아요. 첫 차임이 언제인가 생각할새도 없이, 고2때... -_- 그땐 제가 왜 그랬나 모릅니다. 내가 그녀였어도 나를 찰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근데, 나중에 친구로 지냈는데, 그땐 그 아이가 여자로 보이지 않았어요. 고2때 스스로 많이 힘들었고나, 생각했어요.

"남편은 성격 상 호되게 차였어도 조용히 집에 돌아와 발 뻗고 주무실 타입이고 나는 한 며칠 자학하다가 다른 사랑을 찾아 헤매는 타입" 요고요고. 깐따삐야님이 어찌하고 있을지 막 떠올라요.

깐따삐야 2009-02-04 20:22   좋아요 0 | URL
저도요. 그땐 왜 그랬나 싶고 제가 선배였어도 저를 거절할 수밖에 없었을 거에요. 나중에 다시 만났을 땐 그 선배가 남자로 보이지 않더라구요.^^

흐음? 대체 막 뭘 떠올리신 거죠!!

Mephistopheles 2009-02-04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그러니까 본격적으로 연애를 하는 연인이였다가 차인게 아니였군요.
그럼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할까요. 연인으로 잘 지내다가 갑자스런 절교선언..한달 고생하고 새출발 아자 했더니..너만한 애 없다며 다시 시작하자는...하지만 방긋 웃으며 한달 (델고 놀다) 장렬하게 뻥 차버린....

음...난 그냥 24부작 장편소설 써볼까해요..ㅋㅋ

깐따삐야 2009-02-04 19:57   좋아요 0 | URL
일년을 선후배로만 지내다가 사겨보지도 못하고 차인 경우죠. 흑!
저런저런. 메피님의 차임은 마치 삽질의 추억처럼 들립니다. 사랑하는 여인에게 만큼은 약하디 약한, 로맨틱한 마당쇠, 우리 메피님.^^

모든 것은 지나가고 과거는 아름다운 거에요. 정말 한번 써보세요!

Mephistopheles 2009-02-04 23:13   좋아요 0 | URL
저기...저기 장렬하게 뻥 차버린 사람이 전데요..

깐따삐야 2009-02-04 23:32   좋아요 0 | URL
헉! 메피님이 그래서 지금 마당쇠로 쐬빠지게 고생하고 계신 거여요. 세상은 공평한 거죠.

Mephistopheles 2009-02-05 09:40   좋아요 0 | URL
어머 깐따삐야님..제 연애사관은 '낙장불입'입니다. 지가 싫어 떠났다가 아쉬워서 돌아온다고 받아주진 않아요.^^

깐따삐야 2009-02-05 19:36   좋아요 0 | URL
델고 놀다, 델고 놀다, 델고 놀다... 그건 너무하잖아욧. ㅠㅠ

Mephistopheles 2009-02-06 02:18   좋아요 0 | URL
뿌린 대로 거두는 겁니다....^^(델고 놀다란 표현을 쓰긴 했지만..정확히 말하면 굉장히 무신경하게 대했다가 맞을 것 같네요..^^)

깐따삐야 2009-02-06 17:11   좋아요 0 | URL
음... 그렇다면 이해가 되요. 매우 진심으로 잘못했다고 해도 받아줄까 말까인데 너만한 애 없다며 다시 시작하자니. 그건 쫌 너무하네요. 감히 우리 메피님을 물로 보고 말이죠. 중얼중얼.

레와 2009-02-04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곤노곤 몽실몽실 홍홍 거리며 읽어 내려오다가,
PS에서 푸하하하하하 박장대소 했습니다!!
(저에겐 웃을 타이밍이였으니, 쌩뚱맞는 웃음이라 머라하기 없기. ^^;)


그래서 제가 마음이 힘들때는 가사있는 음악을 안들어요. ㅋ

깐따삐야 2009-02-04 20:25   좋아요 0 | URL
썩소 맞죠? ㅋㅋ

그쵸. 평소엔 들리지도 않던 가사들이 아주 콕콕 가슴을 후벼파죠. 가사를 못 알아듣는 샹송을 들어도 내 얘기로 자동 번안되어 들리는 신기한 경험. 크... 괴로워요.

순오기 2009-02-04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런 페이퍼는 막 추천해야 돼요. 피에스 너 때문이야~ ㅋㅋ

깐따삐야 2009-02-05 19:37   좋아요 0 | URL
강호순은 무섭고 김석기는 싫어요. 정말 싫어욧!
 
손민호의 문학터치 2.0 - 21세기 젊은 문학에 관한 발칙한 보고서
손민호 지음 / 민음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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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손민호의 문학터치 2.0』을 재미있게 읽고 있다. 먼저 읽은 신형철의『몰락의 에티카』가 다소 현학적이었던 탓일까. 신문기자가 쓴 단문일색의 발랄한 작가론을 읽고 있자니 마음이 살랑살랑 가벼워지는 느낌. 두 작자는 주석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신형철의 주석은 주석에도 새로운 주석이 필요할 법 한데 손민호의 주석은 작가들에 관한 뒷담화 일색이다. 때로 촌철살인의 엉뚱한 직관이 성실한 통찰보다 구미에 더 맞을 때가 있다.

  손민호는 이 책에서 김연수, 김중혁, 김애란, 권여선 등 동시대 문단에서 주목받고 있는 서른 명의 젊은 작가들을 다루고 있다. 관상쟁이마냥 꼼꼼하게 그들의 외모부터 훑고, 공들여 작품을 읽고, 같이 만나 술도 한잔 하고, 요즘 잘 안 풀리는 건 건 뭔가 속내도 나누고. 그러한 과정을 지켜보는 일이 어묵꼬치에서 서로 다른 색깔의 어묵을 쏙쏙 빼먹듯 따끈따끈하고 이색적이다. 그의 친화력은 박민규의 주옥같은 말도 건진다. 소설을 읽고서 한참 뒤 만났을 때 나는 왜 하필 기린이냐고 물었다. 박민규는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자본주의가 가장 어쩔 수 없는 동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40) 그래서 문단의 기린아인가. 여하간 그 문단의 기린아 박민규가 둘도 없는 공처가란다. 무릎을 꿇고 예쁘게 운동화끈을 매주는, 잠자리안경을 쓴 장발의 남편이라니. 어딘가 그로테스크하다.

  중간 중간 분홍색 페이지에 젊지 않은(?) 작가들, 김훈이나 마광수를 언급하는 대목도 좋았다. 마광수의 박사 학위 주제는 뜻밖에도 윤동주 연구였다고. 내가 아는 교수님 중에도 뜻밖에 오스카 와일드로 학위를 받은 분이 계셨는데 우리는 모여서 그건 말도 안 된다는 식으로 떠든 적이 있었다. 그런데 마광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역시 사람은 알다가도 모르고 겉만 보고 함부로 판단해선 안 된다는 상식의 재확인. 이처럼 작자가 책상물림이 아니라 그런지 한껏 귀를 열어놓고 편견을 비트는 에피소드들 역시 흥미롭다.

  한편 손민호 기자도 한때는 문학청년이었다는데 글에서 비춰지는 그의 모습은 문학에 끝끝내 목을 매기엔 너무 영리하고 혈기왕성한 것 같다. 원룸의 모니터 앞에 앉아 소설의 스토리를 구상하는 것보다는 해장국집에서 작가들과 술을 마시며 그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구상하는 편이 훨씬 더 제격인 듯. 아니면 기자생활을 하면서 그렇게 변해간 것일까. 어쨌거나 요즘의 젊은 작가들을 바라보는 시종일관 진솔하고 따듯한 시선이 좋았다. 나 역시 이제는 읽을 만한 것이 없다, 세월을 견뎌낸 고전만한 게 없다, 를 주장할 때도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 보수적인 시각을 완전히 버리지 못했지만 “여기의 젊은 작가들이 한참 세월이 흐른 뒤에도 부지런히 암송되고 있기를 바란다.”(12)는 작가의 바람에는 전적으로 동감한다. 아직 젊고, 살아가야 할 세월과 써야 할 글들이 많은 그들에게 엄격한 비판은 필요하겠지만 섣부른 비난은 말 그대로 섣부를 테니 말이다.

  이번 독서는 뒤통수를 쨍하니 때리는 새로움이 있었다기보다 그 스타일이 마음에 든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저런 얘기까지 여기에 써도 되나 싶을 만큼 낱낱이 까발리되, 그 까발림이 홀딱 벗기기가 아니라 도리어 본래의 색을 찾아주려는 노력과도 같은 글쓰기. 문학과, 문학을 하는 이들을 향한 애정이 뒷받침되지 않고는 자칫 잡설로 비칠 수도 있었으리라. 특히 신문기사를 쓰는 기자들만이 구사할 수 있는 깔끔하고도 생생한 문체가 매력이었다. 필요한 엑기스만 감칠맛 나게 살려놓은 듯한, 구경미나 백가흠을 읽지 않은 독자라도 마치 그들을 사겨본 것 같은 착각이 들게 만드는, 친화력 있는 글쓰기는 단연 압권이었다. 손민호 기자는 김훈을 글쓰기의 전범으로 삼고 있다는데 나는 김훈보다 손민호 기자의 글이 더 재미있었다. 앞으로도 뜨거운 가슴과 부지런한 발로 문학인들과, 문학을 즐기는 독자들의 메신저가 되어 주십사 하는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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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9-02-03 0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우와 재밌을 것 같아요. 흐흐흐~

깐따삐야 2009-02-03 23:34   좋아요 0 | URL
동시대 젊은 문인들이 대거 출연해서 읽는 내내 반갑고 즐거웠어요.^^

Mephistopheles 2009-02-03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약간 삐딱하게 보면 문학계의 김구리인건가요..ㅋㅋ

깐따삐야 2009-02-03 23:36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아들 동현이를 바라보는 김구라인 거죠. 아들에 관해 말할 때도 가차없이 객관적인데 어딘가 새록새록 애정이 묻어나는. 아빠 김구라.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