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금요일 밤이면 KBS에서는 ‘이하나의 페퍼민트’를 방송한다.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를 시초로 ‘이소라의 프로포즈’, ‘윤도현의 러브레터’에 이어지는 음악토크쇼이다. 늦은 시간에 방송을 해서 꼬박꼬박 챙겨보지는 못하지만 잠이 안 오거나 관심 가는 가수들이 나오면 즐겨보곤 한다.
지난 금요일 밤에는 역대 진행자들 중 노영심과 이소라가 출연해서 뜻밖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노영심의 시골아이 같은 표정은 여전했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말을 거는 듯 경쾌한 피아노 선율을 들려주고는 바로 그 자리에서 ‘페퍼민트 워킹’이라는 예쁜 곡명을 짓는다. 순간 내가 직접 음악 선물을 받기라도 한 것처럼 기분이 환해졌다. 그녀가 만든 ‘별걸 다 기억하는 남자’와 ‘그리움만 쌓이네’는 한때 나의 노래방 애창곡이었다. 학창 시절 내 기억 속 노영심은 머리 좋고 피아노 잘 치는 대학생 언니이자, 빨강머리 앤의 주제곡 마냥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운 피아니스트였다.
그리고 이소라. 나는 사춘기의 한 시절을 ‘이소라의 음악도시’를 들으면서 보냈다. 쉬는 시간에는 친구들과 함께 그녀의 느릿느릿 굵직한 목소리를 흉내 내며 지난밤 들었던 음악도시를 재현하기도 했다. 안 그래도 궁금하던 차에 머리를 짧게 자른 채 7집을 들고 나온 그녀. 눈을 감고 노래를 부를 때는 오래된 카페의 베테랑 재즈 가수처럼 보이는데 인터뷰를 할 때의 모습은 음악도시 DJ 시절의 그 모습이다. 그녀는 짐짓 엉뚱하고 둔감해 보인다. 하지만 근래의 무식한 아이들이 너도나도 표방하는 무개념과 무배려의 4차원이 아니다.
분위기가 뭔가 어색해지면 그것은 나 때문일 거라고 말하는 그녀. 꽃분홍색을 입고 나오고 싶었지만 오늘도 검정색 옷을 입고 나왔다며 하고 싶지만, 할 수 있는 것은 제한되어 있다고 말한다. 본인의 진행 솜씨에 대해 걱정하는 이하나에게는 그것이 노래든, 연기든, 진행이든, 기다리면 저절로 되는 때가 있다고 조언한다. 진행자의 말을 주의 깊게 경청하면서 솔직하되, 세심한 배려를 가득 담아 대답하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주변이 맑게 환기되는 느낌이었다. 오래 고독하고 깊게 상처 받았던 이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초연함, 그럼에도 울퉁불퉁 옹이진 마음 없이 착한 웃음소리를 간직한 그녀. 이소라는 의젓하게도, 오직 자신의 노래 속에서만 운다.
금요일 밤을 불면으로 보낸 것이 만족스러웠던 것은 이 두 여인 때문이다. 특히 세월이 흐를수록 초라해지기는커녕 노래는 무르익고 마음은 깊어지는 진짜 뮤지션, 이소라와 재회한 것이 반갑고 기뻤다. 마음이 쉬이 늙어버린 사람은 누군가를 위해 페퍼민트 워킹이라는 고운 음악을 선물할 수 없다. 또한 각자 가슴 깊숙한 곳에 감추어둔 그리움을 끌어올리는 절절한 노래를 부를 수도 없다.
사랑에 대해 묻는 이하나에게, 내게 이제 사랑은 유리 같다, 집에서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고 말하기까지 이소라, 그녀가 지나온 시간은 어떠했을까 나 혼자 상상이 되어 마음이 조금 아팠다. 사치스러운 고독이 판을 치는 작금의 세태에 단연 돋보이는 리얼 고독이다. 난 새롭거나 모나지 않은 말 주워 좀 외롭거나 생각이 많은 날 누워 내 음을 실어 내 말을 빌어서 부른다 Track 5의 가사다. 이소라는 외롭고, 참 착한 뮤지션이다. 사랑과 일과 음악에 있어 내내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