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호의 문학터치 2.0 - 21세기 젊은 문학에 관한 발칙한 보고서
손민호 지음 / 민음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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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손민호의 문학터치 2.0』을 재미있게 읽고 있다. 먼저 읽은 신형철의『몰락의 에티카』가 다소 현학적이었던 탓일까. 신문기자가 쓴 단문일색의 발랄한 작가론을 읽고 있자니 마음이 살랑살랑 가벼워지는 느낌. 두 작자는 주석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신형철의 주석은 주석에도 새로운 주석이 필요할 법 한데 손민호의 주석은 작가들에 관한 뒷담화 일색이다. 때로 촌철살인의 엉뚱한 직관이 성실한 통찰보다 구미에 더 맞을 때가 있다.

  손민호는 이 책에서 김연수, 김중혁, 김애란, 권여선 등 동시대 문단에서 주목받고 있는 서른 명의 젊은 작가들을 다루고 있다. 관상쟁이마냥 꼼꼼하게 그들의 외모부터 훑고, 공들여 작품을 읽고, 같이 만나 술도 한잔 하고, 요즘 잘 안 풀리는 건 건 뭔가 속내도 나누고. 그러한 과정을 지켜보는 일이 어묵꼬치에서 서로 다른 색깔의 어묵을 쏙쏙 빼먹듯 따끈따끈하고 이색적이다. 그의 친화력은 박민규의 주옥같은 말도 건진다. 소설을 읽고서 한참 뒤 만났을 때 나는 왜 하필 기린이냐고 물었다. 박민규는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자본주의가 가장 어쩔 수 없는 동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40) 그래서 문단의 기린아인가. 여하간 그 문단의 기린아 박민규가 둘도 없는 공처가란다. 무릎을 꿇고 예쁘게 운동화끈을 매주는, 잠자리안경을 쓴 장발의 남편이라니. 어딘가 그로테스크하다.

  중간 중간 분홍색 페이지에 젊지 않은(?) 작가들, 김훈이나 마광수를 언급하는 대목도 좋았다. 마광수의 박사 학위 주제는 뜻밖에도 윤동주 연구였다고. 내가 아는 교수님 중에도 뜻밖에 오스카 와일드로 학위를 받은 분이 계셨는데 우리는 모여서 그건 말도 안 된다는 식으로 떠든 적이 있었다. 그런데 마광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역시 사람은 알다가도 모르고 겉만 보고 함부로 판단해선 안 된다는 상식의 재확인. 이처럼 작자가 책상물림이 아니라 그런지 한껏 귀를 열어놓고 편견을 비트는 에피소드들 역시 흥미롭다.

  한편 손민호 기자도 한때는 문학청년이었다는데 글에서 비춰지는 그의 모습은 문학에 끝끝내 목을 매기엔 너무 영리하고 혈기왕성한 것 같다. 원룸의 모니터 앞에 앉아 소설의 스토리를 구상하는 것보다는 해장국집에서 작가들과 술을 마시며 그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구상하는 편이 훨씬 더 제격인 듯. 아니면 기자생활을 하면서 그렇게 변해간 것일까. 어쨌거나 요즘의 젊은 작가들을 바라보는 시종일관 진솔하고 따듯한 시선이 좋았다. 나 역시 이제는 읽을 만한 것이 없다, 세월을 견뎌낸 고전만한 게 없다, 를 주장할 때도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 보수적인 시각을 완전히 버리지 못했지만 “여기의 젊은 작가들이 한참 세월이 흐른 뒤에도 부지런히 암송되고 있기를 바란다.”(12)는 작가의 바람에는 전적으로 동감한다. 아직 젊고, 살아가야 할 세월과 써야 할 글들이 많은 그들에게 엄격한 비판은 필요하겠지만 섣부른 비난은 말 그대로 섣부를 테니 말이다.

  이번 독서는 뒤통수를 쨍하니 때리는 새로움이 있었다기보다 그 스타일이 마음에 든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저런 얘기까지 여기에 써도 되나 싶을 만큼 낱낱이 까발리되, 그 까발림이 홀딱 벗기기가 아니라 도리어 본래의 색을 찾아주려는 노력과도 같은 글쓰기. 문학과, 문학을 하는 이들을 향한 애정이 뒷받침되지 않고는 자칫 잡설로 비칠 수도 있었으리라. 특히 신문기사를 쓰는 기자들만이 구사할 수 있는 깔끔하고도 생생한 문체가 매력이었다. 필요한 엑기스만 감칠맛 나게 살려놓은 듯한, 구경미나 백가흠을 읽지 않은 독자라도 마치 그들을 사겨본 것 같은 착각이 들게 만드는, 친화력 있는 글쓰기는 단연 압권이었다. 손민호 기자는 김훈을 글쓰기의 전범으로 삼고 있다는데 나는 김훈보다 손민호 기자의 글이 더 재미있었다. 앞으로도 뜨거운 가슴과 부지런한 발로 문학인들과, 문학을 즐기는 독자들의 메신저가 되어 주십사 하는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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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9-02-03 0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우와 재밌을 것 같아요. 흐흐흐~

깐따삐야 2009-02-03 23:34   좋아요 0 | URL
동시대 젊은 문인들이 대거 출연해서 읽는 내내 반갑고 즐거웠어요.^^

Mephistopheles 2009-02-03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약간 삐딱하게 보면 문학계의 김구리인건가요..ㅋㅋ

깐따삐야 2009-02-03 23:36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아들 동현이를 바라보는 김구라인 거죠. 아들에 관해 말할 때도 가차없이 객관적인데 어딘가 새록새록 애정이 묻어나는. 아빠 김구라.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