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Dreamer'를 보고 난 후 K와 함께.



- 쭈꾸미 샤브샤브를 먹고 난 후 식당 근처에서 E, S와 함께.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함께 나온 20년지기 고향 친구들이다. 17 삐리리를 만드는 유업 회사에 다니는 친구 K, 목사님 딸내미로 교회 일을 보면서 피아노 학원을 하는 E, 학교 급식 영양사인 S. 제각기 서로 다른 일을 하며 바쁘게 지내던 중에 이번 주말 K가 사는 도시에서 뭉쳤다. 손바닥만한 시골 동네에서 낮과 밤을 거의 함께 하다시피 하며 어린시절을 보냈던 친구들. 서로 가장 어설펐을 때를 함께 보고 겪고 느껴온 친구들이라 그런지 언제 만나도 부담 제로. 참 즐겁고도 편안한 시간이었다.

K는 체격 조건이 나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짝궁을 했었다. K는 하여간에 성격이 무지하게 좋아서 남자 아이들은 누나처럼 따르고 여자 아이들은 언니처럼 따랐던 친구다. 반면에 K가 기억하는 나는 상당히 예민하고 까칠하고 도도했단다. 그 성격 다 어디갔는지 지금은 척 보기에도 부드럽고 털털해진 것 같다며 반가워했다. 옛날 그 성격 그대로 가지고 살았으면 너 스스로도 겁나 피곤했을 거라고. OTL. 다른 아이들은 선생님이 뭘 시키면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시키는대로 하는데 나는 혼자 불만에 싸여서 씩씩거리고 반항하고 했던 모습이 기억 난단다. "그래서 그 업보를 고스란히 받고 있잖냐." "응, 그려도 싸. 헤헤." K는 그다지 깨끗하지 못했던 나의 성격을 묵묵히 참아주고 이해해주던 고마운 친구다. 다시 돌아봐도, 뭐든지 왠만하면 양보를 했고 뭐든지 왠만하면 그냥 참고 넘어갔다. 사사건건 짜증투성이였던 나와는 아주 대조적인 그런 넉넉한 사람이었다. 현재는 공익근무요원인 덩치 좋고 잘생긴 남동생과 함께 살고 있는데 어릴 때는 쬐그만했던 게 몰라보게 자라서 K의 오빠라고 해도 믿을 정도이다. 아, K를 보며 나도 갑자기 남동생이 있었음 좋겠다는 생각. 복스러운 덩치에서 간지러운 애교가 퐁당퐁당 떨어지는 앙증맞은 남동생. 흐흐.

E는 교회 목사님의 딸내미란 경건한 타이틀에도 불구하고 늘 장이 좋지 않아서 냄새를 풍기고 다니던 엽기발랄한 아이였다. 때가 되면 그녀는 일단 신호를 보낸다. 엄지 손가락을 세우는 것. 누군가 엄지 손가락을 꾹 눌러 접어주면 그 때서 스컹크마냥 폴폴 냄새를 피우고는 저 길고 냉정한 얼굴로 크크크... 웃곤 했다. 그런 그녀가 주일만 되면 참하디 참한 표정으로 피아노 앞에 앉아 아름다운 목소리로 찬송가를 부르곤 했다니. 두근두근 뛰는 가슴 붙들고 컨닝을 하고는 진짜 우등상이라도 받으면 어쩌나 노심초사했다는 그녀. 우리는 E를 볼 때마다 인생의 아이러니를 실감하곤 한다. E는 항상 다른 사람 앞에 설 때마다 그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고 싶다는 사명을 느낀다고 한다. 아무래도 어딘가 코메디언의 피가 흐르는 것 같다고. 실제로 그녀는 참 재미있다. 수선스럽고 호들갑스런 재미가 아니라 아주 잔잔한 가운데 이따금씩 폭발적으로 용솟음치는 그런 유머감각. 차분한 목소리로 "니들 보험은 다 들어놨지?"라고 묻고나서 보여주는 그녀의 운전솜씨는 또 어찌나 위험천만하고 스릴 넘치던지. 양파처럼 알면 알수록 새로운 매력이 느껴지는 친구다.

S는 서로 집이 가까워서 거의 항상 등하교를 같이 하던 친구였다. 아직도 생각나는 추억 하나는, 하교 길에 다람쥐가 모아놓은 밤을 훔쳐 먹었던 것. 우리 눈앞으로 다람쥐 한 마리가 쪼루루 사라졌고 S는 갑자기 눈이 번쩍 뜨인다는 듯 다람쥐 뒤꽁무니를 따라서 숲속으로 들어갔고 얼마 후에 밤을 한 움큼 가지고 나타났다. 다들 농사가 기반인 시골에서 자랐지만 S만큼 순수토종 시골 아이, 시골의 삶에 대해서 빠삭한 아이도 드물었다. 생각해보면 그녀는 늘 먹거리에 관심이 많긴 했다. 방학이 되면 찐 옥수수나 집에서 빚은 김치만두를 가지고 우리집에 놀러왔고 학교에서 가사실습을 할 때도 늘 앞장 서서 칼질을 하고 간을 맞추며 즐거워 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별명은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때까지 일관성 있게 '푼수'였다. 먹거리와 관련된 이외의 일에 대해서는 대체로 무심하다보니 4차원의 정신세계를 지닌 것처럼 보였고 목소리와 말투 또한 매우 독특해서 어린 것이 술 취했냐는 소리를 간간히 들을 정도였으니까. 물론 지금은 아주 멋쟁이가 되었고, 네가 세상에서 젤루 예쁘다고 말해주는 성실한 남자친구한테 땍땍거리며 튕기기를 밥먹듯이 하는 도도한 처자로 거듭났다. K의 말을 빌리자면 왕푼수가 어찌어찌 용됐다나. 어찌 되었든 S는 친구들 중에서도 내가 매우 각별하게 생각하는 친구이다. 고향,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얼굴과 이름이 그 친구의 것이니까.

세월이 우리를 조금씩 변하게는 했지만 세월이 우리를 갈라놓진 않은 것 같다. 언제 봐도 반갑고 다시 봐도 즐거운 친구들. 사회에 나와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더 많은 숫자의 사람들과 마주치며 살아가고 있지만 아무런 부담도, 경계도 없이 나를 활짝 열어보일 수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기에 이렇듯 오래 묵은 된장처럼 구수하고 믿음직한 친구들이 곁에 있다는 것이 감사하게 느껴진다. 그녀들의 일과 사랑과 삶이 모두 술술 풀리기를, 언제나 옛날 그 시절의 순수한 웃음을 잃지 않기를, 마음 속 깊이 바란다. 다음엔 내가 사는 동네에서 뭉치기로 했다. 친구들과 노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왜케 재밌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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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6-04-23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쿤요. 전 세월이 친구지간을 갈라놓고, 그 세월과 맞서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한 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뭐, 님 생각은 다를 수도 있지요^^ 근데 다람쥐가 밤을 빼앗긴 건 정말 마음이 아픈데요^^

BRINY 2006-04-23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람쥐가 한겨울 먹을 양식을 다 먹어버리신 건 아니겠죠-..-

미미달 2006-04-23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좋은 친구가 있다는 것 만으로도 얼마나 가슴 든든하고 행복한 건지...
다시 한번 느끼게 되네요. ^^

깐따삐야 2006-04-24 0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세월과 맞서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저절로 유지되는 관계란 없는 것 같아요. 아무리 허물 없는 소꿉친구라고 해도 말이에요.
그리고 네... 전 지금도 다람쥐나 청솔모를 보면 숙연해지곤 합니다.;;

BRINY님, 저를 때려 주세요. ㅜ.ㅜ

미미달님, 처음 뵙는 거지요? 반갑습니다. ^^ 예전엔 오히려 잘 몰랐는데 요즘은 어린 시절 친구들이 참 고맙고 소중하게 느껴지네요.
 

"ooo, 밥 먹고 또 튀네."

식사를 마치고 식판을 들고 일어서는 내 뒤통수를 향해 날아드는 한 마디. 또 튀네. 공공연히 나를 예비 며느리로, 당신을 예비 시아버지로 명명하고 계신 한oo 선생님. 제 밥 다 먹으면 밥상머리 걷어차고 냅다 튀는 며느리를 원하시는 건지 원. 화제집중이다. 다른 선생님들도 한 마디씩 거든다.

"밥 차암... 빨리 드시네요."

"오아... 수저가 안 보이더라구."

"우리 막내가 밥을 먹을 때 한 손으로 음식을 가리고 먹거든. 누가 뺏어 먹을까봐. 난 우리 막내만 보면 ooo샘이 떠올라. 키득키득. "

"밥 먹을 때 ooo샘한테 말 시키지 마요. 맞을지도 몰라. 까르르~ 쩝쩝."

"가만 보니 씹지 않고 꿀떡꿀떡 삼키는 것 같더구만 그랴. 그러고도 소화가 되나?"

"ooo샘이 밥만 빨리 먹는 줄 알어요. 일도 무지하게 빨리 해요. 후딱후딱."

점심 시간. 다들 할 말 끊겨서 괜히 분위기 싸해지면 꼬옥 열심히 먹고 있는 나를 걸고 넘어진다. 그나마 자율 배식이고 식판 배식이길 다행이지 반찬 가운데 놓고 나랑 한 상에서 밥 먹었음 큰일났겠다. 아주! 그나마 마지막 말씀으로 위안(?)을 했다. 정말로 그런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정말로 그렇다고 하더라도 밥에 대한 소화 능력과 일에 대한 소화 능력은 어째 좀 다른 것도 같다. 흐흐. 어찌 되었든 과속은 나쁜 건데 대체 내 식도 아래엔 뭐가 숨어 있길래 음식물을 그렇게 빠른 스피드와 강력한 파워로 마구마구 빨아당기는 것일까. 좀 뷰티풀하고 럭셔리하면서도 엘레강스한 무엇인가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면 안되겠니. 제발이지 이런 거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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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04-20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엑스레이를 찍으시면 식도에도 치아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깐따삐야 2006-04-20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예~ ㅡㅡ;;;

Mephistopheles 2006-04-20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죄송합니다...썰렁했습니다.....흑흑..

깐따삐야 2006-04-20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 아래 페이퍼에도 썼듯 저는 누가 우는 것이 가장 무섭슴다... 뚝!

비로그인 2006-04-21 0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한정없이 느리게, 아주 깨작거리며 먹는지라 깐따삐야 님이 심하게 부럽습니다. 특히, 맛있게 먹는 사람을 보면 정말 부러워요. 나도 맛있어서 먹는데, 남들은 다들 `맛없어?' 이 말을 들을 때는..흐흑.

깐따삐야 2006-04-21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Jude님, 군대 갔다 온 거 아니냐는 말을 들어보세요. 과연 부럽기만 할 것인지...;;;
 

지난 주말 대학 후배 J가 내가 사는 동네에 놀러왔었다. 영어학원에서 강사 일을 하고 있는 후배인데 혈색 좋고 토실토실한 나에 비해 40킬로그램도 채 나가지 않는 아주 왜소하고 가냘픈 사람이다. J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엄마는 그녀의 자그마한 체구에 안타까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시더니 이튿날 그녀가 돌아간 다음 난생 처음으로 나의 튼실함에 대해 안도하셨다.

J와는 어떻게 친해졌는지 뚜렷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대학 시절, 내가 살던 자취방 근처에서 그녀도 자취를하고 있어서 가끔 캠퍼스 주변의 놀이터에 나와 커피를 마시거나 아이스크림을 먹곤 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 J는 학교생활을 매우 힘들어하고 있었다. 함께 자취하는 친구와의 불화 때문에도 그러했고 교생실습 기간 중에는 담당 학급 학생들과 사이가 좋지 않아 늘 우울한 얼굴을 하고 다녔다. 교생이란 타이틀이 주는 특혜가 으레 그러하듯 실습생들은 대개 New Face란 이유 하나로 아이들로부터 대대적인 환영을 받기 마련이어서 실습 기간 내내 다들 물 만난 물고기처럼 들떠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그녀의 경험은 매우 생소하고도 안타까운 것이었다. 그 때 나는 그녀의 사연을 듣고 나서 그저 운이 나쁜 정도로 여기라고, 사소한 경험에 구애받지 말고 네 갈 길 계속 열심히 가라고, 방송용어 같은 식상한 충고만 해줬더랬다. 비슷한 길을 가고 있던 우리들은 대개 코앞에 닥친 시험에 반쯤 미쳐 있다시피 했고 진로에 대한 회의나 불안을 다시 끄집어낼 여유가 없었다. 나는 더욱이 물리적인 조건의 안정이 심리적인 행복을 가져올 수 있다는 믿음에 의지하고 있었다. 현재의 불안과 미혹은 졸업 이후 진로가 확실히 결정되고 나면 저절로 해소되리라고. 그 시간을 지나온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니긴 하다. 사는 것이 그렇게 단순명료하다면 무엇이 고민이겠는가.

어쨌든 졸업을 하고 J와 나는 서로 다른 지방에서 각자의 생활을 시작했다. 그 해 봄 즈음해서 J가 먼저 연락을 취해 왔고 예전처럼 무엇인가로 아주 힘들어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각자 사회에 나온 이후 다시 만난 그녀는 학부 시절에 비해 몰라보게 여위어 있었고 나이든 사람의 눈빛을 하고 있었다. 일견 차분해 보이지만 눈동자에는 원망과 오기 비슷한 것이 서려 있었고 학원 아이들이 지어주었다는 별명인 '살인미수'처럼 그녀의 미소는 좋아서 웃는 그런 단순한 미소가 아니었다. 냉소와 체념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미끄러져 나오는 웃음이랄까. 화창했던 봄날 오후 시내의 한 카페에서 주말의 들뜬 분위기를 한참 즐기고 있던 사람들 틈에서 나는 그녀가 그렇게 웃고 우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다. J 주변에는 온통 그녀에게 짐을 지우는 사람, 상처를 주는 사람들로 그득한 것처럼 보였고 그녀는 힘에 부치고 고독해서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는 듯 굵다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 우는 사람이란 걸 그 때 알았다. 남자들이 여자의 눈물에 약하다고들 하는데 나란 사람은 남자든 여자든 일단 우는 사람 앞에서는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속수무책이 되곤 한다. 얼른 울음을 그쳤으면 좋겠다는, 얼른 울음을 그치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마구마구 드는 것이다. 이것은 아이들 앞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내게 화를 내거나 대드는 아이는 무섭지 않은데 내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아이는 정말이지 감당이 안 된다. 그 날 오후의 느낌도 그랬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얼마나 힘들었으면 멀리 사는 내게 와서 눈물까지 보일까 싶어서 그 날 저녁 늦도록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버스표를 끊어서 집에 보냈더랬다. 그 이후로도 우리는 이따금씩 주말이나 휴일에 만나서 영화를 보기도 하고 식사를 하기도 했다. J는 주기적으로 나를 찾았고 나를 보고 싶어 했다. 나는 그녀가 내 마음에 들고 안 들고를 떠나서 내 앞에서 자기 속내를 다 보여주고 눈물까지 보였다는 것 때문에라도 그녀와 매우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코니 팔멘의 소설, <자명한 이치>에 '플라톤적인 창녀'라는 말이 나오는데 나도 어쩌면 그런 사람일지 모른다. 일전에 엄마에게 그런 말을 했더니 아주 적확한 표현이라는 듯 공감하며 말씀하시길, 몸이 헤픈 것보다 가슴이 헤픈 것이 더 큰 문제라고 하셨다. 엄마가 보기에 나는 똥인지 된장인지 가리지 못하고 호기심 만땅에 마음만 너무 좋은 가슴이 헤픈 여자였다. 막말로 겁대가X 없이 마구잡이로 사람들과 친해져 버리는. 엄마, 나란 사람은 인덕이 없나봐. 네년이 사람 볼 줄을 몰라서 그렇지. 누구나 깊숙이 알고 보면 다들 착하지 않나? 시간도 많다, 깊숙이 알게. 상대는 네가 백퍼센트 에너지를 다 쓰면서 충실할 때 십퍼센트도 쓰지 않는데 그래도 좋더냐?

이번에 J를 만나서는 근처 국립공원의 사찰에 다녀왔다. 산책로를 함께 걸으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J는 나에게 수녀나 비구니가 되고 싶었던 적이 있냐고 물었다. 예전에 아주 절망적이었을 때. 저는 평소에도 그런 생각을 해요. 만약 정말 그렇게 된다면 너희 부모님이 너무 마음 아프지 않을까? 그래도 제 삶이잖아요. 그야 그렇지. J는 사람들이 너무 현실적인 것 같다고 말했다. 현실에만 너무 천착해서 산다고. 나란 사람도 시계추처럼 현실과 이상 사이를 갈팡질팡 하는 것이 말 속에서 드러난다고 했다. 어떨 때는 소녀처럼 순수했다가 어떨 때 보면 지극히 현실적이라고. 사람들은 다 그러고 살지 않니. 현실과 이상을 갈팡질팡 하면서 말야. 저는 지나치게 현실적인 것이 싫어요. 왜 사람들은 그렇게 이기적이고 속물적인지 모르겠어요. 아무리 그렇더라도 사람은 누구한테나 배울 점이 한 가지씩은 있잖아. 나는 예전에 속물적인 삶을 경멸하면서도 그와 같은 삶을 은근히 동경했었어. 속물적인 삶이야 말로 지상의 행복을 그야말로 온전히 누리는 삶이라고 생각했거든. 같이 일하던 언니가 이런 저를 보면 답답해 미치겠다고, 그렇게 살지 말라고 했어요. 헐, 무슨 이유로 그렇게 함부로 말하냐고 물어보고 냅다 싸워보지 그랬어. 저는 싸우지 않아요. 싸워야 겹치는 부분을 찾든 절충점을 찾든 영영 안보고 지내든 결단이 나지. 저는 그냥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해버려요. 기분이 좋진 않지만 싸우고 싶진 않아요. 그 언니가 저보다 나이는 많지만 정신적인 나이는 저보다 어리다고 생각해요. 사회에 나와 대학 때 보던 모습보다는 많이 성숙해졌지만 그래도 자기밖에 모르고 사람을 겉만 본다는 점에서는 역시나 어려요. 솔직히 그걸 다 말해보지 그랬어.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그럼 그냥 그러고 마는거야? 연애를  한 번 해보는 건 어때. 남자를 만날 기회도 없고 제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기도 어려워요. 하지만 저는 제 마음에 드는 남자가 나타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성공시킬 자신이 있어요. 그런데 일단 만나보고 교제를 해봐야 마음에 드는지 안 드는지를 알지. 별로 그런 노력은 하고 싶지 않아요. 나타날 사람이면 나타나겠지요.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모름지기 즐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울해하기 위해서, 슬퍼하기 위해서, 누군가를 일부러 만나고 다니는 사람은 없다. J가 말한 것들을 나는 부메랑처럼 그녀에게 되돌려 보내주고 싶었다. 아마 내가 변한 탓도 있을 것이다. J가 불편한 것은. 그녀가 나를 계속해서 찾는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보았다. 현실과 이상을 갈팡질팡 하며 저 자신 하나 추스리지 못하고 사는 나에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으러 이렇게 먼 곳까지 찾아오는 까닭이 뭘까. 어차피 사방으로부터 귀를 막고 살며 자신과는 다른 사람을 내치기만 하는 그녀가 나를 만나 다행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뭘까. 나는 왜 그녀를 위해 시간을 내고 그녀를 계속 만나왔던 것일까. 어둡고 우울한 그녀와 이야기를 하고 나면 온몸의 에너지가 몽땅 소진되는 느낌을 받으면서도 왜 번번히 약속을 잡고 만남을 이어왔던 것일까.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정신을 팔고 다니는 플라톤적인 창녀라서? <자명한 이치>의 마리는 남성 편력을 통해 정신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그러면 나는? J와 함께 했던 주말, 나는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다. 홀로 고상한 사람보다는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로 반짝반짝 구두를 닦을 줄 아는 사람이 훨씬 더 멋있는 사람 아닐까. 나는 J가 세상을 향해 무작정 고집와 오기를 부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이 그렇듯 한 가지 틀로 움직이는 것은 아닐텐데. 나는 그녀가 그녀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싸웠으면 좋겠다. 그러면서 눈물을 흘리고 가슴에 피를 흘리고 무릎을 꿇고 꽝꽝 가슴을 쳐 봤으면 좋겠다. 겁대가X 없이 사람들과 친해지고 그들로부터 상처 받고 그러다가 진짜로 친해지는 경험을 해 봤으면 좋겠다. 백 명 중에 딱 한 명 건지는 싸움이라고 해도 멀찌감치 서서 관조만 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박진감 넘치고 다이나믹한 삶이 되지 않을까. J를 보면서 삶 앞에서 보다 겸손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삶의 방식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내치지는 않았는지, 알려고 노력해보지도 않고 누군가를 함부로 깎아내리진 않았는지. 나는 사람들도 굴광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밝고 낙천적인 사람들 편으로 모이는 습성. 똑같이 배당받은 시간을 누군가는 즐겁게 보내고 누군가는 우울하게 보낸다.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어떤 똑같은 비판을 하고 있다면, 하나 둘 씩 내 곁을 떠나가고 있다면 그 사람들을 원망하며 우울해 할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삶을 돌아봐야 할 것이다. 그렇듯 인생의 기본기에 충실한 것이 정말로 순수한 것 아닐까. J가 귀를 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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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20 09: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깐따삐야 2006-04-20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든든한 방공호도 못되면서 쉽게 틈을 내주었던 저 자신에게 책임이 큰 것 같습니다. 네 앞가림이나 잘하라는 어른들의 충고가 가슴에 콕, 하니 와 박힙니다.
 

인터넷 서핑을 하던 중 마음에 드는 가방을 발견한 나.

"엄마, 나 요즘 왜 이런 걸 보면 사고 싶지?"

"이제서야 정신을 차린 게지."

"이게 어떻게 정신을 차린 거야. 자꾸 돈을 쓰는 사태만 불러오는데."

"그래도 그 사태보다는 이 사태가 낫지."

그 사태(실속 없는 연애질) < 이 사태(그나마 물건은 남는 쇼핑질)

엄마의 마음에 쏘옥 드는 딸이 되고싶다.

언젠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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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6-04-18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실족 없는 연애질(?) 잘 합니다. ㅡㅡ;;;;

Kitty 2006-04-19 0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족 없는 연애질은 어떤 연애질인가요 히히

비로그인 2006-04-19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핫 그럼 저는..흐흑

Mephistopheles 2006-04-19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죄송합니다 뒤늦게 들어와서는 제목만 보고 아롱사태를 생각했군요..
금육을 해야 겠습니다...

깐따삐야 2006-04-19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 그러고보니 연애란 건 실족을 하는 일이랑 비슷한 것 같아요. ^^

Kitty님, 안녕하세요. 제 서재에서는 첨 뵙는 것 같네요. 반갑습니다!

Jude님, 님의 빼어난 안목만 같으면 저희 어머니도 저런 반응을 보이시진 않을 거에요. 저 자신조차 사람이나 물건을 보는 제 안목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있으니 말 다했지요. ㅜ.ㅜ

메피스토님, 금육이라니요. 그 사태나 이 사태가 아롱사태처럼 맛있기만 하다면야 뭐가 걱정이겠습니까. ㅋㅋ
 


엘리자베스(키이라 나이틀리 분)

햇볕 따듯했지만 바람은 찼던 어제. 소심한 청년과 함께 이 영화를 보았다. 영화는 그 청년을 닮아 있었다. 스토리는 매우 단순하지만 세심했으며 등장인물은 제각기 귀엽고 매력적이었다. 크고 검은 눈동자 속에 지성과 장난기를 함께 머금은 엘리자베스(키이라 나이틀리 분)는 아름답고 싱그러웠으며, 오만한 남자의 진실, 무뚝뚝한 남자의 로망이 뭔지를 보여주겠다는 듯 영화 시작부터 엔딩까지 진지한 모습을 잃지 않았던 다아시(매튜 맥파든 분)는 의젓하고도 어쩐지 귀여웠다. 미스터 다아시처럼 악의가 없는 채로 겉과 속이 영 딴판인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어딘지 수줍고 귀여운 데가 있다. 멋진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다시 영화 속 다아시의 표정과 마주친다면 쿡, 하고 웃음이 터질 것만 같다.

부유하고 명망 있는 집안으로 다섯 딸들을 시집 보내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삶고 있는 수선스런 어머니와 딸을 조용하고 너그럽게 사랑하는 아버지. 그리고 저마다 다른 개성을 지닌 자매들과 함께 북적거리며 살고 있는 엘리자베스는 사랑의 아름다움을 믿고 늘 당당하게 자존심을 지키며 사는 낭만적이고도 총명한 아가씨다. 아무런 특별한 일도 일어나지 않는 조용하고 지루한 시골 마을에 어느 날 '빙리'라는 신사와 그의 친구 '다아시'가 여름 동안 저택에 머물게 되고 댄스파티에서 마주친 빙리와 엘리자베스의 언니는 첫눈에 호감을 갖게 된다. 반면에 다아시로부터 함께 춤을 추자는 제안을 거절당한 엘리자베스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게 되고 그에게 이끌리면서도 그를 멀리하려고 한다. 두 사람의 거리는 좁혀질 듯 좁혀지지 않고 빙리와 언니를 헤어지게 만든 장본인이 다아시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다아시에 대한 엘리자베스의 반감은 더욱 커지기만 한다. 두 집안의 수준 차이 때문에 결혼을 반대할 수 밖에 없었다고 솔직히 말하는 다아시를 엘리자베스는 오만에 찬 속물로 여기고 거부하지만, 이후 동생의 결혼을 도와주고 빙리와 언니를 다시 맺어주려고 노력하는 다아시의 모습을 보면서 엘리자베스는 스스로가 다아시에 대해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음을 깨닫게 되고 조금씩 그의 진실을 향해 마음을 연다. 이렇듯 몇 차례의 우여곡절을 거쳐서 결국 극성스런 어머니의 바람대로 빙리는 언니와, 다아시는 엘리자베스와 맺어지게 된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 나왔던 '마크 다아시' 또한 '다아시'였는데 그 다아시 또한 처음에는 브리짓에게 무관심했고 퉁명스러웠다. 마치 처음 보는 여자에게는 무심한 듯 불친절하게 대하는 것이 진실한 남자의 징표이기라도 한 것처럼. 물론 그들이 지닌 태생적, 본래적 고지식함은 고귀한 것이다. 요즘 세상엔 사람의 환심을 사기 위해 일부러 고지식한 척 하는 사람들도 많지 않은가. 물론 고지식하고 무뚝뚝한 그들이 그 고지식함과 무뚝뚝함 때문에 사랑받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외연에 불과할 뿐, 내포는 역시 진실일테니깐. 게다가 브리짓처럼, 엘리자베스처럼, 처음에 대개는 그런 사람들로부터 상처 받기 십상이다. 대학 새내기 시절. 나도 어떤 고지식한 예비역으로부터 빌어먹을(!) 상처를 받은 기억이 있다. 조별로 토론을 거친 다음 결과물을 제출해야 하는 수업이었는데 시간은 자꾸만 흘러가고 서로 낯설었던 조원들은 다들 본숭만숭. 결국 성질머리 급한 내가 "서로 이름부터 소개하면 좋지 않을까요?"라고 운을 띄우자 가장 연세 지긋해 뵈는 예비역 어르신이 팔짱을 풀며 하던 말, "계속 모일 것도 아닌데 꼭 이름을 알 필요가 있습니까?" 지금같았으면 어이, 노땅, 너 잘났다 뿡! 해버리면 그만인데 순진무구한(?) 새내기였던 당시의 나는 약간 민망한 분위기인 건 감지했으면서도 여전히 분위기 파악 못하고 고집을 부려대며 그래도 이름을 알아야 어쩌구... 하고 앉아있고 옆에 있던 친구 내 팔뚝을 쿡 찌르며 귓속말로 "야, 저 XX 재수 없다. 고만둬." 결국 그 날의 토론은 흐지부지 그만두게 되었고 교재와 머릿속을 오가며 대충 퍼즐 맞추듯 짜집기한 내용으로 레포트를 내고 했던 것 같다. 그 때의 기억이 오롯하게 기억이 나는 걸 보면 퉁명스런 남자의 매력까진 모르겠고 평균적인 수준보다 좀더 퉁명스런 남자가 뇌리에 확실히 각인되는 것 만큼은 분명한 사실인 것 같다.   

결혼을 향한 지점까지 서로 자존심 대결을 벌이며 갖가지 오해와 편견 속에서 아웅다웅 하는 양상은 19세기나 지금이나 그다지 달라진 점이 없어 보인다. 그렇듯 서로 다른 타인이 우연히 만나서 이리저리 부딪치고 끊임없이 상처를 주고받으면서도 헤어지지 않고 평생 같이 살아야 하는 결혼까지 하는 것을 보면 사랑의 에너지가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결혼이라는 제도가 예나 지금이나 사회 안에서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지 새삼 재확인하게 된다. 물론 현실의 삶들이 죄다 영화처럼 서로의 진실에 반해 사랑하고 결혼해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해피앤딩은 아니지만 영화를 보고 소설을 읽으면서도 "이건 픽션일 뿐인데."라고 냉소하지 않고 유쾌하고도 따뜻해지는 느낌을 갖게 되는 걸 보면 어떤 현실을 살고 있든, 현실이 진실이든 페인트 모션이든, 역시 사람들이 그리워하고 추구하고자 하는 삶은 다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진실에 반하고 싶고 진실에 반해 사랑하고 싶고 손톱 끝 발톱 끝까지 그 사람 앞에서 진실하고 싶은 것. 오만과 편견의 긴장과 스트레스에서 해방되고 싶은 그런 것. 사랑하고 싶어서 사랑하기 위해서 이만치 열렬히 싸우는 무리들은 오직 인간밖에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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