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키이라 나이틀리 분)

햇볕 따듯했지만 바람은 찼던 어제. 소심한 청년과 함께 이 영화를 보았다. 영화는 그 청년을 닮아 있었다. 스토리는 매우 단순하지만 세심했으며 등장인물은 제각기 귀엽고 매력적이었다. 크고 검은 눈동자 속에 지성과 장난기를 함께 머금은 엘리자베스(키이라 나이틀리 분)는 아름답고 싱그러웠으며, 오만한 남자의 진실, 무뚝뚝한 남자의 로망이 뭔지를 보여주겠다는 듯 영화 시작부터 엔딩까지 진지한 모습을 잃지 않았던 다아시(매튜 맥파든 분)는 의젓하고도 어쩐지 귀여웠다. 미스터 다아시처럼 악의가 없는 채로 겉과 속이 영 딴판인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어딘지 수줍고 귀여운 데가 있다. 멋진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다시 영화 속 다아시의 표정과 마주친다면 쿡, 하고 웃음이 터질 것만 같다.

부유하고 명망 있는 집안으로 다섯 딸들을 시집 보내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삶고 있는 수선스런 어머니와 딸을 조용하고 너그럽게 사랑하는 아버지. 그리고 저마다 다른 개성을 지닌 자매들과 함께 북적거리며 살고 있는 엘리자베스는 사랑의 아름다움을 믿고 늘 당당하게 자존심을 지키며 사는 낭만적이고도 총명한 아가씨다. 아무런 특별한 일도 일어나지 않는 조용하고 지루한 시골 마을에 어느 날 '빙리'라는 신사와 그의 친구 '다아시'가 여름 동안 저택에 머물게 되고 댄스파티에서 마주친 빙리와 엘리자베스의 언니는 첫눈에 호감을 갖게 된다. 반면에 다아시로부터 함께 춤을 추자는 제안을 거절당한 엘리자베스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게 되고 그에게 이끌리면서도 그를 멀리하려고 한다. 두 사람의 거리는 좁혀질 듯 좁혀지지 않고 빙리와 언니를 헤어지게 만든 장본인이 다아시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다아시에 대한 엘리자베스의 반감은 더욱 커지기만 한다. 두 집안의 수준 차이 때문에 결혼을 반대할 수 밖에 없었다고 솔직히 말하는 다아시를 엘리자베스는 오만에 찬 속물로 여기고 거부하지만, 이후 동생의 결혼을 도와주고 빙리와 언니를 다시 맺어주려고 노력하는 다아시의 모습을 보면서 엘리자베스는 스스로가 다아시에 대해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음을 깨닫게 되고 조금씩 그의 진실을 향해 마음을 연다. 이렇듯 몇 차례의 우여곡절을 거쳐서 결국 극성스런 어머니의 바람대로 빙리는 언니와, 다아시는 엘리자베스와 맺어지게 된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 나왔던 '마크 다아시' 또한 '다아시'였는데 그 다아시 또한 처음에는 브리짓에게 무관심했고 퉁명스러웠다. 마치 처음 보는 여자에게는 무심한 듯 불친절하게 대하는 것이 진실한 남자의 징표이기라도 한 것처럼. 물론 그들이 지닌 태생적, 본래적 고지식함은 고귀한 것이다. 요즘 세상엔 사람의 환심을 사기 위해 일부러 고지식한 척 하는 사람들도 많지 않은가. 물론 고지식하고 무뚝뚝한 그들이 그 고지식함과 무뚝뚝함 때문에 사랑받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외연에 불과할 뿐, 내포는 역시 진실일테니깐. 게다가 브리짓처럼, 엘리자베스처럼, 처음에 대개는 그런 사람들로부터 상처 받기 십상이다. 대학 새내기 시절. 나도 어떤 고지식한 예비역으로부터 빌어먹을(!) 상처를 받은 기억이 있다. 조별로 토론을 거친 다음 결과물을 제출해야 하는 수업이었는데 시간은 자꾸만 흘러가고 서로 낯설었던 조원들은 다들 본숭만숭. 결국 성질머리 급한 내가 "서로 이름부터 소개하면 좋지 않을까요?"라고 운을 띄우자 가장 연세 지긋해 뵈는 예비역 어르신이 팔짱을 풀며 하던 말, "계속 모일 것도 아닌데 꼭 이름을 알 필요가 있습니까?" 지금같았으면 어이, 노땅, 너 잘났다 뿡! 해버리면 그만인데 순진무구한(?) 새내기였던 당시의 나는 약간 민망한 분위기인 건 감지했으면서도 여전히 분위기 파악 못하고 고집을 부려대며 그래도 이름을 알아야 어쩌구... 하고 앉아있고 옆에 있던 친구 내 팔뚝을 쿡 찌르며 귓속말로 "야, 저 XX 재수 없다. 고만둬." 결국 그 날의 토론은 흐지부지 그만두게 되었고 교재와 머릿속을 오가며 대충 퍼즐 맞추듯 짜집기한 내용으로 레포트를 내고 했던 것 같다. 그 때의 기억이 오롯하게 기억이 나는 걸 보면 퉁명스런 남자의 매력까진 모르겠고 평균적인 수준보다 좀더 퉁명스런 남자가 뇌리에 확실히 각인되는 것 만큼은 분명한 사실인 것 같다.   

결혼을 향한 지점까지 서로 자존심 대결을 벌이며 갖가지 오해와 편견 속에서 아웅다웅 하는 양상은 19세기나 지금이나 그다지 달라진 점이 없어 보인다. 그렇듯 서로 다른 타인이 우연히 만나서 이리저리 부딪치고 끊임없이 상처를 주고받으면서도 헤어지지 않고 평생 같이 살아야 하는 결혼까지 하는 것을 보면 사랑의 에너지가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결혼이라는 제도가 예나 지금이나 사회 안에서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지 새삼 재확인하게 된다. 물론 현실의 삶들이 죄다 영화처럼 서로의 진실에 반해 사랑하고 결혼해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해피앤딩은 아니지만 영화를 보고 소설을 읽으면서도 "이건 픽션일 뿐인데."라고 냉소하지 않고 유쾌하고도 따뜻해지는 느낌을 갖게 되는 걸 보면 어떤 현실을 살고 있든, 현실이 진실이든 페인트 모션이든, 역시 사람들이 그리워하고 추구하고자 하는 삶은 다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진실에 반하고 싶고 진실에 반해 사랑하고 싶고 손톱 끝 발톱 끝까지 그 사람 앞에서 진실하고 싶은 것. 오만과 편견의 긴장과 스트레스에서 해방되고 싶은 그런 것. 사랑하고 싶어서 사랑하기 위해서 이만치 열렬히 싸우는 무리들은 오직 인간밖에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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