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대학 후배 J가 내가 사는 동네에 놀러왔었다. 영어학원에서 강사 일을 하고 있는 후배인데 혈색 좋고 토실토실한 나에 비해 40킬로그램도 채 나가지 않는 아주 왜소하고 가냘픈 사람이다. J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엄마는 그녀의 자그마한 체구에 안타까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시더니 이튿날 그녀가 돌아간 다음 난생 처음으로 나의 튼실함에 대해 안도하셨다.

J와는 어떻게 친해졌는지 뚜렷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대학 시절, 내가 살던 자취방 근처에서 그녀도 자취를하고 있어서 가끔 캠퍼스 주변의 놀이터에 나와 커피를 마시거나 아이스크림을 먹곤 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 J는 학교생활을 매우 힘들어하고 있었다. 함께 자취하는 친구와의 불화 때문에도 그러했고 교생실습 기간 중에는 담당 학급 학생들과 사이가 좋지 않아 늘 우울한 얼굴을 하고 다녔다. 교생이란 타이틀이 주는 특혜가 으레 그러하듯 실습생들은 대개 New Face란 이유 하나로 아이들로부터 대대적인 환영을 받기 마련이어서 실습 기간 내내 다들 물 만난 물고기처럼 들떠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그녀의 경험은 매우 생소하고도 안타까운 것이었다. 그 때 나는 그녀의 사연을 듣고 나서 그저 운이 나쁜 정도로 여기라고, 사소한 경험에 구애받지 말고 네 갈 길 계속 열심히 가라고, 방송용어 같은 식상한 충고만 해줬더랬다. 비슷한 길을 가고 있던 우리들은 대개 코앞에 닥친 시험에 반쯤 미쳐 있다시피 했고 진로에 대한 회의나 불안을 다시 끄집어낼 여유가 없었다. 나는 더욱이 물리적인 조건의 안정이 심리적인 행복을 가져올 수 있다는 믿음에 의지하고 있었다. 현재의 불안과 미혹은 졸업 이후 진로가 확실히 결정되고 나면 저절로 해소되리라고. 그 시간을 지나온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니긴 하다. 사는 것이 그렇게 단순명료하다면 무엇이 고민이겠는가.

어쨌든 졸업을 하고 J와 나는 서로 다른 지방에서 각자의 생활을 시작했다. 그 해 봄 즈음해서 J가 먼저 연락을 취해 왔고 예전처럼 무엇인가로 아주 힘들어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각자 사회에 나온 이후 다시 만난 그녀는 학부 시절에 비해 몰라보게 여위어 있었고 나이든 사람의 눈빛을 하고 있었다. 일견 차분해 보이지만 눈동자에는 원망과 오기 비슷한 것이 서려 있었고 학원 아이들이 지어주었다는 별명인 '살인미수'처럼 그녀의 미소는 좋아서 웃는 그런 단순한 미소가 아니었다. 냉소와 체념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미끄러져 나오는 웃음이랄까. 화창했던 봄날 오후 시내의 한 카페에서 주말의 들뜬 분위기를 한참 즐기고 있던 사람들 틈에서 나는 그녀가 그렇게 웃고 우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다. J 주변에는 온통 그녀에게 짐을 지우는 사람, 상처를 주는 사람들로 그득한 것처럼 보였고 그녀는 힘에 부치고 고독해서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는 듯 굵다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 우는 사람이란 걸 그 때 알았다. 남자들이 여자의 눈물에 약하다고들 하는데 나란 사람은 남자든 여자든 일단 우는 사람 앞에서는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속수무책이 되곤 한다. 얼른 울음을 그쳤으면 좋겠다는, 얼른 울음을 그치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마구마구 드는 것이다. 이것은 아이들 앞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내게 화를 내거나 대드는 아이는 무섭지 않은데 내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아이는 정말이지 감당이 안 된다. 그 날 오후의 느낌도 그랬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얼마나 힘들었으면 멀리 사는 내게 와서 눈물까지 보일까 싶어서 그 날 저녁 늦도록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버스표를 끊어서 집에 보냈더랬다. 그 이후로도 우리는 이따금씩 주말이나 휴일에 만나서 영화를 보기도 하고 식사를 하기도 했다. J는 주기적으로 나를 찾았고 나를 보고 싶어 했다. 나는 그녀가 내 마음에 들고 안 들고를 떠나서 내 앞에서 자기 속내를 다 보여주고 눈물까지 보였다는 것 때문에라도 그녀와 매우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코니 팔멘의 소설, <자명한 이치>에 '플라톤적인 창녀'라는 말이 나오는데 나도 어쩌면 그런 사람일지 모른다. 일전에 엄마에게 그런 말을 했더니 아주 적확한 표현이라는 듯 공감하며 말씀하시길, 몸이 헤픈 것보다 가슴이 헤픈 것이 더 큰 문제라고 하셨다. 엄마가 보기에 나는 똥인지 된장인지 가리지 못하고 호기심 만땅에 마음만 너무 좋은 가슴이 헤픈 여자였다. 막말로 겁대가X 없이 마구잡이로 사람들과 친해져 버리는. 엄마, 나란 사람은 인덕이 없나봐. 네년이 사람 볼 줄을 몰라서 그렇지. 누구나 깊숙이 알고 보면 다들 착하지 않나? 시간도 많다, 깊숙이 알게. 상대는 네가 백퍼센트 에너지를 다 쓰면서 충실할 때 십퍼센트도 쓰지 않는데 그래도 좋더냐?

이번에 J를 만나서는 근처 국립공원의 사찰에 다녀왔다. 산책로를 함께 걸으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J는 나에게 수녀나 비구니가 되고 싶었던 적이 있냐고 물었다. 예전에 아주 절망적이었을 때. 저는 평소에도 그런 생각을 해요. 만약 정말 그렇게 된다면 너희 부모님이 너무 마음 아프지 않을까? 그래도 제 삶이잖아요. 그야 그렇지. J는 사람들이 너무 현실적인 것 같다고 말했다. 현실에만 너무 천착해서 산다고. 나란 사람도 시계추처럼 현실과 이상 사이를 갈팡질팡 하는 것이 말 속에서 드러난다고 했다. 어떨 때는 소녀처럼 순수했다가 어떨 때 보면 지극히 현실적이라고. 사람들은 다 그러고 살지 않니. 현실과 이상을 갈팡질팡 하면서 말야. 저는 지나치게 현실적인 것이 싫어요. 왜 사람들은 그렇게 이기적이고 속물적인지 모르겠어요. 아무리 그렇더라도 사람은 누구한테나 배울 점이 한 가지씩은 있잖아. 나는 예전에 속물적인 삶을 경멸하면서도 그와 같은 삶을 은근히 동경했었어. 속물적인 삶이야 말로 지상의 행복을 그야말로 온전히 누리는 삶이라고 생각했거든. 같이 일하던 언니가 이런 저를 보면 답답해 미치겠다고, 그렇게 살지 말라고 했어요. 헐, 무슨 이유로 그렇게 함부로 말하냐고 물어보고 냅다 싸워보지 그랬어. 저는 싸우지 않아요. 싸워야 겹치는 부분을 찾든 절충점을 찾든 영영 안보고 지내든 결단이 나지. 저는 그냥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해버려요. 기분이 좋진 않지만 싸우고 싶진 않아요. 그 언니가 저보다 나이는 많지만 정신적인 나이는 저보다 어리다고 생각해요. 사회에 나와 대학 때 보던 모습보다는 많이 성숙해졌지만 그래도 자기밖에 모르고 사람을 겉만 본다는 점에서는 역시나 어려요. 솔직히 그걸 다 말해보지 그랬어.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그럼 그냥 그러고 마는거야? 연애를  한 번 해보는 건 어때. 남자를 만날 기회도 없고 제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기도 어려워요. 하지만 저는 제 마음에 드는 남자가 나타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성공시킬 자신이 있어요. 그런데 일단 만나보고 교제를 해봐야 마음에 드는지 안 드는지를 알지. 별로 그런 노력은 하고 싶지 않아요. 나타날 사람이면 나타나겠지요.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모름지기 즐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울해하기 위해서, 슬퍼하기 위해서, 누군가를 일부러 만나고 다니는 사람은 없다. J가 말한 것들을 나는 부메랑처럼 그녀에게 되돌려 보내주고 싶었다. 아마 내가 변한 탓도 있을 것이다. J가 불편한 것은. 그녀가 나를 계속해서 찾는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보았다. 현실과 이상을 갈팡질팡 하며 저 자신 하나 추스리지 못하고 사는 나에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으러 이렇게 먼 곳까지 찾아오는 까닭이 뭘까. 어차피 사방으로부터 귀를 막고 살며 자신과는 다른 사람을 내치기만 하는 그녀가 나를 만나 다행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뭘까. 나는 왜 그녀를 위해 시간을 내고 그녀를 계속 만나왔던 것일까. 어둡고 우울한 그녀와 이야기를 하고 나면 온몸의 에너지가 몽땅 소진되는 느낌을 받으면서도 왜 번번히 약속을 잡고 만남을 이어왔던 것일까.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정신을 팔고 다니는 플라톤적인 창녀라서? <자명한 이치>의 마리는 남성 편력을 통해 정신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그러면 나는? J와 함께 했던 주말, 나는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다. 홀로 고상한 사람보다는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로 반짝반짝 구두를 닦을 줄 아는 사람이 훨씬 더 멋있는 사람 아닐까. 나는 J가 세상을 향해 무작정 고집와 오기를 부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이 그렇듯 한 가지 틀로 움직이는 것은 아닐텐데. 나는 그녀가 그녀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싸웠으면 좋겠다. 그러면서 눈물을 흘리고 가슴에 피를 흘리고 무릎을 꿇고 꽝꽝 가슴을 쳐 봤으면 좋겠다. 겁대가X 없이 사람들과 친해지고 그들로부터 상처 받고 그러다가 진짜로 친해지는 경험을 해 봤으면 좋겠다. 백 명 중에 딱 한 명 건지는 싸움이라고 해도 멀찌감치 서서 관조만 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박진감 넘치고 다이나믹한 삶이 되지 않을까. J를 보면서 삶 앞에서 보다 겸손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삶의 방식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내치지는 않았는지, 알려고 노력해보지도 않고 누군가를 함부로 깎아내리진 않았는지. 나는 사람들도 굴광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밝고 낙천적인 사람들 편으로 모이는 습성. 똑같이 배당받은 시간을 누군가는 즐겁게 보내고 누군가는 우울하게 보낸다.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어떤 똑같은 비판을 하고 있다면, 하나 둘 씩 내 곁을 떠나가고 있다면 그 사람들을 원망하며 우울해 할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삶을 돌아봐야 할 것이다. 그렇듯 인생의 기본기에 충실한 것이 정말로 순수한 것 아닐까. J가 귀를 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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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20 09: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깐따삐야 2006-04-20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든든한 방공호도 못되면서 쉽게 틈을 내주었던 저 자신에게 책임이 큰 것 같습니다. 네 앞가림이나 잘하라는 어른들의 충고가 가슴에 콕, 하니 와 박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