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나와 비슷한 시기에 아기를 낳은 친구가 미니홈피 방명록에 글을 남겼다. 누군가 말하기를, 아기 낳기 전에는 흑백으로 보였던 TV가 아기를 낳은 후 컬러로 보이는 것 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고. 엄마가 되었으니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내게 아마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정신이 없어질 거라고도 했다. 맞는 말이다.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오늘이 며칠인지, 어떤 새로운 뉴스가 있는지, 누가 일부러 말을 안 해주면 신경조차 쓸 겨를이 없다.

 

  한 가지 또 다른 변화는 나 자신에 관한 것. 오해였을까. 나는 내가 꽤 엄한 엄마가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전혀, 전혀 아니다. 나처럼 관대하고, 무한 허용적인 엄마가 또 있을까 싶다. 아기가 울려고 찡긋할 때쯤이면 반짝반짝 안아드는 내게 친정엄마는 그렇게 우는 것을 못 봐서 나중에 어떻게 할 거냐고 하신다. 나도 그랬듯 아이는 커가는 과정에서 시위하느라 밥을 안 먹을 수도 있고, 학교에 안 간다고 떼를 쓸 수도 있고, 며칠씩 울며불며 원하는 것을 해내라고 할 수도 있을 텐데. 그때마다 나는 아이와의 신경전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그래야만 할 텐데 지금 같아서는 채 한 나절도 되기 전에 기권을 해버릴 것 같다. 자고 일어나서 조금만 핼쑥해진 것 같아도 걱정이고, 목욕시킬 때 우는 것도 안쓰러워 미칠 지경이니 이런 나를 어떡하면 좋을까. 

  돌아보면 엄마는 나를 키우면서 참 여러 번 이를 깨물고 숱하게 참으셨던 것 같다. 절대 안 되는 몇 가지에 관해서, 인생의 굵직굵직한 결정에 관해서, 내가 한사코 고집을 부려도 끝까지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였다. 그때는 엄마가 원망스러웠지만 지금은 참 고맙다. 그런데 나는 결코 엄마처럼은 못할 것 같다. 교사 입장에서 매사 아이한테 질질 끌려 다니는 엄마들에 대해 고운 눈을 뜨고 쳐다보기 힘들었는데 나 역시 그런 엄마가 될 날이 머지않았다. 
 

  끝까지 뱃속에 똑바로 서 있던 우리 딸은 근래의 행동으로 보건데 고집이면 고집, 성질이면 성질, 나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 할 것 같지는 않다. 신생아답지 않은 체력과 활기를 보여주고 있는 그녀에게 엄마는 원래 이름을 놔두고 ‘영달이’라는 별칭을 지어주셨다. 내가 봐도 우리 딸은 발길질하며, 울음소리하며, 고상하고 여성스러운 이름을 갖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씩씩한 것 같다. 그래도 오늘은 아바의 I have a dream을 들려주었더니 무릎 위에서 우아하게 잠이 들었다. 마음 약한 엄마를 오늘 하루도 쥐락펴락하는 재미에 사는 우리 딸, 나는 끝까지 만만한 엄마로 살테니 너는 만만한 사람이 되지 말거라.

 

태어난 지 한 달을 채워갈 무렵 즈음. 제 아빠를 많이 닮았다.  

성격을 닮으랬더니 외모만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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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0-05-06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똘망똘망한 영달이~~ 축하해요~~
끝까지 똑바로 서있고 태어나서도 잠 안자고 하루종일 설치며
엄마를 괴롭히던 큰딸, 지금은 고2가 된 우리집 그녀가 생각나는 페이퍼에요.
무한 안아주기해도 나쁘지 않겠지요. 힘들어도 즐거우신거죠^^

깐따삐야 2010-05-06 16:58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의 그 의젓한 따님이 우리 영달이 같았다구요?
듣던 중 반가운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프레이야님 같은 훌륭한 엄마가 될 수 없으니 어쩌나요.ㅠ
무한 안아주기 때문에 손목과 무릎이 정상이 아닌데 그래도 즐거우니 제가 지금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요.^^

조선인 2010-05-06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달이란 영특한 달아이란 뜻이겠지요?
그러나 부디 조금만 더 마음 강하게 먹으시길.
지금 고집 싸움에서 이겨두지 않으면, 휴가 복귀가 어려워요.

깐따삐야 2010-05-08 09:27   좋아요 0 | URL
영달이에게 그렇게 깊은 뜻이.^^
저는 이미 우리 아기에게 여러 번 졌답니다. 나중이 더 문제인데 요즘 반은 넋이 나간 상태라 아기를 이길 힘이 없네요. 어쩜 좋을지요.ㅠ

무해한모리군 2010-05-06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정말 똘망하네요 ^^
아가와 온전히 둘이 있는 소중한 시간을 마음껏 즐기시를 바래봅니다.

깐따삐야 2010-05-08 09:50   좋아요 0 | URL
고집부릴 때의 눈빛은 삼십대인 저보다 더 영악하다는.^^
언제쯤 마음껏 '즐길' 수 있을까요.

비로그인 2010-05-06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러나 저러나 엄마가 행복해야 아기도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관계는 변해요. 나도 변하죠. 변하지 않으면 오히려 계속 함께 살아갈 수 없어요.

깐따삐야 2010-05-08 09:52   좋아요 0 | URL
Jude님 말씀처럼 저부터 행복해야 아기도 행복한 것일텐데. 아기를 보면 예쁘고 즐겁다가도 문득문득 기분이 이상해집니다. 호르몬 탓일까요.ㅠ

웽스북스 2010-05-06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달 모양 눈에 눈썹 자리도 아주 예쁜데요. 코도 반듯하고, 앙다문 입도 야무지고.
영달이 짱이에요~

깐따삐야 2010-05-08 09:55   좋아요 0 | URL
웬디 이모의 칭찬을 전해야겠군요.
속도 야무진 아이로 자라야 할텐데 말이죠.^^

L.SHIN 2010-05-06 1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하하핫, 아기 표정, 뭐랄까 아기 공룡같은.^^
'오옹~ 왜에~?' 하고 말하는 듯 합니다.(웃음) 귀여워요.

그나저나 깐따님, 오랜만입니다! 육아 때문에 힘들겠지만, 이렇게 가끔은 얼굴 좀 비춰..;
그런데 정말, '만만한 엄마' 되면 안 됩니다. 요즘 아이들 버릇 없는게 다 그런 탓..;;
아이를 위해서는 모질게 되야 합니다.

깐따삐야 2010-05-08 09:58   좋아요 0 | URL
공룡처럼 포악할 때도 많답니다.ㅠ

그러게요. 버릇 없는 아이들 옆엔 항상 몰상식한 부모가 있기 마련인데 저도 한걱정이에요. 독하게 마음 먹어야 하는데 말이죠.

Alicia 2010-05-06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정말 이뻐요! 태어난지 한달밖에 안된 아기가 이렇게 똘망똘망할 수 있나요? ㅎㅎ
녀석 나중에 크면 제법 야무질 것 같아요. 나중에 딸 낳으면 제 딸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얼굴은 아빨 많이 닮았나봐요 그래도 계속 얼굴은 변하고 스무살 넘으면 엄마 얼굴도 나오고 하더라구요~
페이퍼에는 사랑이 담뿍 묻어나 있네요. 꼭 엄마가 딸한테 쓰는 연애편지 같잖아요. 이렇게 흐뭇한 연애편지는 첨 읽어봅니다 ㅎㅎㅎ 아기 덕분에 하루하루 즐거운 시간 보내시는 것 같아 저도 기분이 좋아요. ^^

깐따삐야 2010-05-08 10:04   좋아요 0 | URL
태동이 심상찮더라니 뱃속에서 이미 많은 걸 궁리하고 나온 아기 같아요. 알리샤님의 아기도 언젠가 알라딘에서 만날 수 있겠죠? ^^
저는 그저 어떻게 할 줄을 몰라 아기의 비위만 맞춰주는 엄마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원래 계획은 이게 아니었는데 말예요.ㅠ

레와 2010-05-06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어쩜어쩜어쩜!!! +_+ !!!

저, 계속 느낌표만 찍고 있어요! 혹시 눈치채셨어요??
대체 어떤 말을 해야 한단 말입니까!! ㅎ

모쪼록 몸조리 잘 하시고, 엄마가 건강해야 아기도 건강합니다.
^^

깐따삐야 2010-05-08 10:08   좋아요 0 | URL
레와님처럼 솜씨와 감각이 있으면 아기 사진도 더 예쁘게 찍어줄 수 있을텐데 아기 낳고 보니 그 점이 아쉬워요.

안그래도 지난 한달을 너무 고되게 보내서 심신이 정상이 아니긴 합니다. 이제부터라도 몸조리 좀 해야겠어요.^^

비연 2010-05-07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전 이뻐요. 이 얼굴을 보고 어떻게 엄해질 수 있을런지요..ㅜㅜ

깐따삐야 2010-05-08 10:10   좋아요 0 | URL
땀을 삐질삐질 흘리다가도 생긋, 한번 웃어주면 없던 기운도 생긴다죠. 어떨 땐 희롱당하는 느낌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