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스미는 사이 사각사각 (시절)
김종완 외 지음 / 시절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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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책 #하리뷰 #단편소설




아름다움과 슬픔이 공존하는 네 편의 가을 소설


#빛이스미는사이

#사각사각

#계절소설

#시절출판사


사각사각 시리즈는 3년전 전주북페어, 책쾌에서 처음 만났다. 시절출판사 부스에서 봄 소설<송이 송이 따다 드리리>를 구매하고 얼마 후에 가을을, 그러다 겨울을 구매했던 것 같다. 바람결에 가을이 묻어나는 요즘, 가을소설을 읽어본다.


모든 게 선명하고 반짝이며 빛나던 여름을 지나 가을이 훌쩍 다가왔다. 무더웠던 여름빛 아래에서 산책하던 시간보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 하늘을 마주하며 걷는 시간이 참 좋다. 그러면서도 어쩐지 마음 한 구석이 아릿해져오는 건 가을이라 그런거라고. 그리움의 계절, 가을이다.


#김현

소 설 | 우리가 기계와 처음 섹스한 것은

에세이 | 가을을 위한 소네트


제목이 강렬한 이 단편! 

미래에는 기계와도 사랑하게 되는 순간이 오겠지. 성별과 인종, 환경 모든 배경이 사라지려나. 그럼에도 역시 인간의 마음은 딱딱해지지 않을 것이고 변함없이 사랑을 갈구할 것이다. 여전히 사랑으로 인해 기뻐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하고 어려워하겠지.


P. 19 동원은 애써 모른 척하고 있던 자신 안의 결락이 오랜 연애와 무관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한땐 찬란했고 한땐 어두웠으며 결국 어느 한때의 추억 때문에 이어가고 있는 연애가 이미 끊어진 선이었다는 사실을, 자신들이 서로의 유령이라는 것을 인정하기로 하자 다시 울음이 터졌다.

P.22 우리가 인생에서 배워야 할 가장 소중한 것은 타인을 내 안으로 들이는 법이리라.


#김종완

소 설 | 맑은 밤

에세이 | 달리기


첫문장이 잔잔하니 좋았다. 

“맑은 밤이다. 까만 하늘에 구름도 없이, 덩그러니 달만 떠 있다. 쌀쌀하고 건조한 바람이 불어왔다.” (37)

가을은 걷기 좋은 계절이다, 라고 생각했는데 이 단편을 읽고 나니 달리기에도 좋은 계절인 것 같다.(달리지는 않을 것이다) 마음이 시끄러울 때, 몸을 움직여야만 잡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저 달리는 일, 걷는 일, 대청소와 같은 일. 지나간 기억들을 뒤로 흘려보내며.


P. 49~50 “그래서 달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네?”

“달리면 마음이 편해지니까. 그래서.”

“맞아. 달리면……. 저도 몸 생각해서 달리는 것보다는 마음이 시끄러워서 달리는 것 같아요.”

소윤이 말했다.

“마음이 시끄러워서.”

“그냥 가끔씩 그래요. 자책하는 말들.”



#이종산

소 설 | 가을 소풍

에세이 | 가을 편지


소풍하면 가을이지. 가을은 쓸쓸하면서도 평온해지는 요상한 기분이 들게 한다. 조용히 혼자서 산책하는 시간. 계절이 흐르는 것이 아쉬운 순간이 가을이니까. 더 애틋하게 느껴지는 가을을 더 깊숙이 들여다봐야겠다.


P. 75 참 좋구나.

그런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복잡하고 어지러운 생각 같은 건 하나도 나지 않았다. 바깥세상과 숲이 아예 다른 세계처럼 분리되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숲에 들어오기 전에 내가 누구였는지, 숲 바깥세상에서 내가 무엇이었는지 아득해질 정도였다.


P.84 가을이 흐르고 있다. 시간이 흐른다. 사람이 계절 속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계절이 강처럼 사람들을 풍덩 빠트려 놓고 흘러간다. 가을이 또 한 바퀴 흐르고 있다. 


#송재은

소 설 | 우연의 용기

에세이 | 우연을 이끌기


육아휴직으로 권고사직 당한 우연. 우연은 부당하게 해고되었지만 임신과 출산, 육아를 하며 느낄 수 있는 기쁨 또한 컸다. 아이를 키우며 자신을 잃어버린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또다른 성취가 필요했던 우연은 블로그를 시작하며 육아 블로그에서 최고등급 배지를 받고 많은 협찬과 체험단 제안을 받았다. 그러면서 무분별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스스로 정한 기준에 따라 블로그를 운영하며 자신만의 자부심이 있었다. 아이들이 어느정도 성장하자 새롭게 일을 시작했고 그곳에서 만난 현희는 아이없는 기혼자였다. 현희와 미묘하게 어긋나는 지점들이 발생하는데 인간이 가진 결핍이나 작은 질투였으리라고 작가는 말한다. 임신, 출산, 육아, 육아휴직, 기혼자인 여성의 고민과 현실을 잘 그려냈다. 가을이라고 느낄만한 부분은 없었던 것 같은데 뒷에 실린 에세이를 읽어보니 소설 속 비 내리는 시기가 가을장마라고 한다. 


P. 107 둘째가 생겼다는 걸 알고 나서 우연은 얼마간은 안도했고, 얼마간은 막막했다. 돌아갈 곳이 없으니 이 상태에 더 머물 이유를 찾고 싶었는데, 어딘가로 돌아가고 싶기도 했다. 그 길을 막아버린 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지원은 당장 돈이 모자란 것도 아닌데 걱정 말라곤 했지만, 우연은 아이를 키우는 일 말고, 자신만의 뭔가를 계속 키워나가고 싶다는 갈증을 느꼈다. 다른 성취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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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지도의 뒷면에서
아이자키 유 지음, 김진환 옮김 / 하빌리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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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책 #하리뷰 #장편소설



 

“앞으로 나는 평범함과는 거리가 먼 인생을 보내게 될 것이다.”

 

제36회 소설 스바루 신인상 화제의 수상작!

 

#올바른지도의뒷면에서

#아이자키유 장편소설

#김진환 옮김

#하빌리스

#니들북

 

“오늘로부터 나는 얼마나 오래 도망칠 수 있을까?”

 

강렬한 핑크색 띠지도 눈에 띄는데 문장도 궁금증을 불러온다. 주인공은 왜 도망치는 걸까?

 

고등학생 코이치로는 가난과 무관심 속에 아버지와 단둘이 살아간다. 술과 도박에 빠져 모든 것을 놓아버린 아버지 그리고 그런 아버지를 향한 억눌린 분노는 어느 날 폭발하고, 코이치로는 쓰러진 아버지가 눈에 파묻혀 죽기를 바라며 방치한다. 그리고 기혹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 길로 도망쳐버린다. #줄거리

 

아버지를 죽이고 도망자의 삶을 살게 된 코이치로. 코이치로의 수중에 가진 돈은 2만엔도 채 되지 않는다. 미성년자인데다 범죄를 저지르고 도망치는 신세가 되었다. 코이치로는 그저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을 뿐이었다. 대단히 거창한 꿈도 아니었는데 이룰 수 없는 꿈이 되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코이치로는 삶의 의지를 놓지 않는다. 고철 수거, 일용직, 노점상 등 쉬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발버둥친다. 이렇게 살아가는 코이치로의 삶은 결국 어떻게 될까? 하루하루 어디에 의지하거나 기댈 수도 없고 외롭게 살아가는 코이치로지만 그의 곁에도 사람을 만나 작은 온기를 얻게 된다. 그들 역시 사회에서 배제된 이들이었다. 코이치로의 처지가 너무 안타까워서 눈물이 날 것 같다가도 이렇게도 성실하고 끈질기게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는 코이치로의 모습이 기특해서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이 솟아난다.

 

과연, 코이치로는 어떻게 되었을까? 성장소설이 아름다운 이유는 모든 걸 읽어버리고 궂은 역경과 고난을 겪지만 삶을 포기하지 않는 소년의 모습이 뭉클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서평단에 당첨되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정말 돌아갈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어둑어둑하던 길이 순식간에 암흑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길거리를 떠돌게 될 줄 알았다면……. 그런 후회가 잠깐 스치긴 했지만, 선을 넘어버린 아버지를 용서할 수는 없었기에, 결국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고 스스로를 다그쳤다. 하지만 지갑 안에 든 잔금을 계산할 때마다 비참한 마음이 들었고, 남은 인생에 비해 너무 큰 죄를 범한 건 아닌가 하는 초조함이 점점 더해졌다. 이것만큼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 P41

"네가 잘못했다는 건 아니야. 사정이야 있겠지. 하지만 자진해서 노숙자가 되려는 건 좀 아니잖아. 우릴 무시하는 것 같아서 화가 난다고. 우리는 노숙자가 되고 싶어서 된 게 아니야. 미성년자라고 했지? 미안하지만, 앞으로 뭐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어린 네가 우리 같은 인간한테 의지하려 드는 것 자체가 불쾌한 거야. 여기서 사는 녀석들은 다들 착해. 어제는 모두 친절한 마음으로 너를 재워주자고 뜻을 모았던 거고.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널 돌봐주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어." - P70

"처음엔 솔직히 음습하고 가혹한 밑바닥 인생에 떨어진 줄 알았는데 코이치 군이 그렇게 사는 걸 보니까, 육체노동이 힘들다는 것 빼고는 여기 생활도 제법 귀중한 체험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신기했어."

몇 마리의 동료가 함께 움직이다가 문득 한 마리가 제자리에 멈춰 섰다. 그 이변을 느낀 다른 개가 돌아보니, 멈춰선 개는 어딘가 먼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지금 A군은 멈춰선 개의 표정을 짓고 있다. 어둑어둑한 영화관, 희미한 빛 아래 비친 A군의 목소리에서 그런 느낌이 전해졌다.

"그래서 비관하지 않을 수 있었어. 적어도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지옥은 아닌 것 같았거든." - 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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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일기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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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책 #하리뷰 #에세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길,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런 문장이다


계엄과 탄핵, 슬픔과 분노, 다정함과 고마움

따뜻한 빛처럼 위로가 되는 황정은의 작고 단단한 기록들


#작은일기

#황정은

#창비


황정은의 문장을 소설로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세상은 황정은에게 소설쓰기를 멈추게 했다. 2024년 12월 4일, 전국민에게 또다시 잊지 못한 하루를 만들어냈다. 권력에 미친 한 인간의 선택, 비상계엄이라는 황당하면서 두려움에 떨게 했는 그 결정의 날을 우리는 잊지 못할 것이다.

<작은 일기>는 소설가 황정은이 현직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라는 초유의 사태 이후에 대해 써내려간 글이다. 12월 3일 이후로 매일의 삶을 기록하며 광장에 나가 구호를 외치기도 하고 집안에서, 거리에서 보고 느꼈던 것을 기록했다. 함께 분노했고 불안과 두려움을 동반한 피로감에도 광장으로 나갔다. 감히, 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던 시간들. 우리가 모두 한마음이지 않다는 사실이 처참하면서도 매일 쏟아지는 뉴스에 지쳐버리기도 했다. 어떻게 법원에 쳐들어갈 수 있는지, 탄핵을 반대할 수 있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폭설에도 밤새 자리를 지키는 키세스단이나 응원봉을 들고 거리로 나섰던 시민들의 모습에 우리는 모두 놀랐고 감동했으며 고마웠다. 극단적이면서 폭력적인 극우세력의 모습 앞에서 다른 의미로 놀라웠고 극우세력과 함께하는 언론, 정치인, 사법기관의 행태에는 씁쓸함을 넘어 참담하고 슬프기까지 했다.


그러나 우리가 이렇게 참담함을 딛고 평온함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아직 1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그 사이 무모하고 끔찍했던 대통령은 탄핵되었고 우리는 새로운 대통령을 맞이했다. 여전히 사건은 해결되지 않았고 윤씨의 태도는 꼴도 보기 싫지만 분명 우리에게 정의로운 결말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그에 동조했던 인간들의 이름들을 잊지 않을 것이다. 


P. 188 윤석열, 한덕수, 최상목, 심우정, 지귀연, 조희대

(더많은 인간들이 있겠지만)



P. 10 번역서 두권을 주문하는 김에 귤을 샀다. 지난달에 백두대간수목원을 방문하고 들은 이야기도 곧 원고로 정리해야 한다. 오늘은 원고지 다섯매를 썼는데 밤에 한번 더 보면서 다듬고 싶다.
오후 열시 이십삼분
계엄.

P. 13 국회의원이든 시민이든 그 자리에 모인 사람 중에 절박하지 않은 이가 있었을까. 나도 계엄에 반대하고 윤석열의 탄핵과 구속을 간절히 바라며 서 있었지만, 윤석열과 그가 초래한 국가 상태를 묘사하려고 ‘정상‘과 ‘비정상‘을 반복해 말하는 몇몇 연설은 집중해 듣기가 어려웠다. 이사회의 정상성 기준으로 불편과 부당을 겪는 사람들, 소수자들도 여기 있는데 별 조심성 없이 그 말들이 사용되고 있었다. 선 자리가 따끔했고, 뒤쪽 눈치가 보였다. 하지만 지금 이 불편함을 말할 수 있을까, 지금은 그래도 되는 시간일까. 2016년 광화문에서 한 생각을 2024년 국회 앞에서도했다. 스스로를 비겁하다고 느꼈다.

P. 38-39 12월 3일, 국회가 계엄을 해제하고 새벽 네시 삼십분에 이를 때까지, 그리고 이후로 주말까지, 특수요원들을 동원한 국지전 위험이 있었다는 뉴스 보도가 며칠째 이어지고 있다. 국지전을 일으켜 계엄을 정당화하고 장기 집권으로.
2024년 12월 둘째 주, 지금으로선 이름도 붙이지 못할 이 기간의 불안과 울분을 어떻게 기록해야 할까.
감히.
혼란이 어느 정도 가시고 나니 이 말만 입속에 줄곧 서 있다. 감히.

P. 43 나도 겪곤 하니까. 그 무서운 일을 내게 너무나 중요한 그것이 당신에겐 중요하지 않다는 걸 목격하는 일, 사람의 무언가를 야금야금 무너뜨리는 그 일을.

P. 58 그 추운 밤을 그 자리에서 보낸 사람들도 놀랍고, 그들에게 난방 버스며 음식이며, 바람 넘는 고개에서 버티는 데 도움이 되는 물품들을 즉시 보낸 사람들도 놀랍다. 그건 나라에서 받은 것이 없어도 위기가 닥치면 들불같이 일어난다는 어느 민족의 성격 같은 것이라기보다는 남의 곤경과 고립을 모르는 척 내버려두거나 차마 두고 갈 수는 없는 마음들 아닐까. 남의 고통을 돌아보고, 서로 돌볼 줄 아는 마음들.

P. 64-65 사람들의 악함을 마음에 들여 되짚고 생각해보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니다. 내게도 그 싹이 무성하게 있으니까. 그런 것이 자신에겐 없을 거라고 믿는 얼굴 앞에 서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 내게는 그런 입장 역시 악함의 기반이 되는 약함으로 보인다. 그런데 사람들의 약함에 내가 얼마나 분노할 수 있을까. 누군가의 약함은 어느 정도 그의 탓일까. 그리고 권력 가진 이들의 혼돈 그 자체인 악함도 약함에서 그 탓을 찾을 수 있을까.

P. 85 누가 그랬나. 케이팝과 응원봉의 물결을 보며 축제 같다고.
그런 면도 물론 있지만 이 집회의 가장 깊은 근원을 나는 그 순간에 본 것 같았다. 슬픔. 저마다 지닌 것 중에 가장 빛나는 것을 가지고 나간다는 그 자리에 내가 바로 그것을 쥐고 나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의 무사를 바라며 앉아 있었다.
사람들이 그 자리에 남아 밤샘 집회를 하고 있다.
눈 내린다.
파주에도 서울에도.

P. 102 현장에서 체포된 사람 중 절반 이상이 이삼십대 남성이라는 뉴스 보도가 있었다. 같은 세대 여성들이 이 나라 민주주의와 헌법을 지키려고 추운 날 거리를 돌아다니고 서로를 돌보며 밤을 새우고는 할 때, 저들은 비틀린 세계인식과 자아 인식으로 국가기관인 사법부에서 난동을 부렸다. 대가를 치를 것이다. 동시에 이 광경을 봐야 하는 사회구성원들도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누가 그들에게 그렇게 해도 된다고 가르쳐온 걸까. 1월 19일 새벽, 우리 사회가 그간 육성해온 일부가 크게 자라나 이 괴상망측한 열매를 거뒀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다, 이것도 과정이지, 결과도 아닐 것이다. - P102

P.102 젊은 남성들의 이 고집스러운 고립이 징그럽다. 뭘 어떻게 하면 좋을까. 냉소와 혐오와 자기연민과 기만으로 가득한그들이 놀이 삼아 자신과 타인의 삶을 조롱하고 위험에 빠뜨리는 일은 이제 더 보고 싶지 않다. 불법 계엄이라는 국가폭력이 그들과 너무도 매끄럽게 연결되어 있다. 스펙트럼으로 이 내란을 보면 윤석열이 그들의 일면이기도 할 테니까. - P102

P. 112 2월 27일 목요일 오후 여덟시 오분
지난 2월 25일.
헌법재판소에서 윤석열 탄핵 재판의 최후 변론이 있었다. 국회 측 대리인인 장순욱 변호사의 최후 변론이 내게무척 아름다웠다. "오염"이라는 말로 내 상처의 원인을 부드럽게 짚어주는 것 같았다. 말헌법의 오염. 바로 그것을 내가 견디기 어려웠다. 정확한 말이 건네는 위안을 받았다. - P112

"존경하는 재판관님, 피청구인은 자유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언동을 하면서 자유민주주의의 수호를 말했습니다. 헌법을 파괴하는 순간에도 헌법 수호를 말했습니다. 이것은 아름다운 헌법의 말, 헌법의 풍경을 오염시킨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노래 가사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 이 노랫말처럼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고 우리도하루 빨리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저는 그 첫 단추가 권력자가 오염시킨 헌법의 말들을 그 말들이 가지는 원래의 숭고한 의미로 돌려놓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국민과 함께 이 사건 탄핵 결정문에서피청구인이 오염시킨 헌법의 말과 헌법의 풍경이 제자리를찾는 모습을 꼭 보고 싶습니다." -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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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머니는 맑고 강풍
최진영 지음 / 핀드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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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책 #하리뷰 #창작노트




🔖최진영이 소설을 쓸 때

‘최진영이라는 소설’도 함께 휘몰아친다!


🔖사랑이 필요한 순간 꺼내 읽는

최진영의 날카로운 통찰, 눈부신 사랑


#내주머니는맑고강풍

#최진영

#핀드


최진영이라는 이름만으로도 이 책을 사야할 이유가 충분했다. 나에게 최진영은 그런 작가다.

프롤로그를 읽자마자 알았다. 역시 나는 최진영을 사랑한다. 


#프롤로그 전문을 옮겨적어본다.


🔖매일 글을 쓴다.


앞의 문장은 나의 기도이며 다짐이다. 나의 상태이자 정의이다. 하루가 아무리 엉망이었더라도 글을 썼으면 됐다. 외로우면 외로운, 슬프면 슬픈, 우울하면 우울한, 화가 나면 화를 내는, 평온하면 평온한 글을 쓰고 싶다. 딱 그 정도만 해도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그게 어렵다.

생각을 문장에 담으면 어긋난다. 어떤 문장은 내가 신기에는 너무 큰 신발 같고 어떤 문장은 다리를 펴고 누울 수 없는 좁은 방 같다. 그래도 나는 문장에 나를 구겨넣는다. 무거운 신발을 질질 끌며 걷는다. 왜냐하면 글은 나를 떠나지 않으니까. 글은 언제나 내 곁에 있다. 비겁하고 치사한 나를, 옹졸한 겁쟁이인 나를, 괴팍하고 까다로운 나를 다 받아준다.


책과 노트와 펜만 있으면 나는 계속 살아갈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사람에게는 절반만 의지하고 책과 글에 절반을 의탁하면서, 의젓하고 담대한 존재를 꿈꾸며 조용히 살아갈 수 있다.


여기 노트와 펜이 있다.

오늘을 쓸 수 있다.

하루를 살 수 있다.

언젠가 내가 쓴 글이 나를 일으켜 세울 것이다.


먼저 손을 내밀지는 않겠지만, 이제 다시 걸어보자고 말을 걸진 않겠지만, 늘 거기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일어나도록 만들 것이다.


거듭 넘어질 나를 위해 매일 글을 쓴다. p.9


소설을 쓰는 동안에 행복했다는 최진영. 스스로를 잘못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최진영. 소설쓰기 이외에는 서툴기만 한 최진영. 사랑을 모르고도 사랑을 한다는 최진영.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안다면 모두 떠날 거라고 믿었던 최진영.


🔖비겁하고 치사한 나를, 옹졸한 겁쟁이인 나를, 괴팍하고 까다로운 나를 다 받아준다. p.8


자주 비틀거리고 종종 우울했으며 가끔 기뻤던 나는 나 자신을 예뻐할 수가 없었다. 최진영이 스스로의 약한 부분을 드러내는 문장을 만날 때면 그렇게 위로가 됐다. 그래서 자꾸만 울컥하는 마음이 다잡으면 읽곤 했다. 최진영은 스스로 약하고 서툴고 부족한 부분들을 여과없이 드러내면서도 전혀 약해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강한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을 썼고, 또 썼고 계속 썼으니까. 쓰는 일이 괴로운 시간일 때도 있었겠지만 결국 최진영은 쓰는 사람이었다. 매일 쓰는 일이 매일 기쁘기만 했을까. 소설을 여러 권 출간한 작가임에에도 소설이 써지지 않아 고군분투했던 시간, 홀로 견뎠을 그 시간, 그렇게 최진영의 창작노트는 뭉클하고 애틋하게 다가왔다. 


거듭 넘어질 나를 위해 매일 쓴다는 최진영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맑고 강풍이 함께 할 수 있을까 싶다가도 생각해보면 마음 속은 언제나 맑음과 소용돌이가 공존했었다. 연약함과 강인함은 별개의 마음이 아니다. 주머니에 담아둔 마음을 꼬옥 안아본다. 그렇게 맑았다가 강풍이 풀었다가 비가 왔다가 다시 맑았지고, 그러다보면 넘어지고도 씩씩하게 일어서게 될 날이 올 것이다.


🔖P. 23 사랑하는 사람이 외로워하면 미안하다고 말하자. 미안해. 내가 너와 다른 사람이어서 정말 미안해. 하지만 너와 내가 다르기에 우리는 사랑할 수 있어.

사랑이 자취를 감추면 기다리자. 사랑도 지겨워져 바깥으로 나가고 싶을 때가 있겠지. 고치는 대신 새로운 에피소드를 쓰고 싶을 때가.


🔖P. 145 나에게는 그 세계가 있으니까 현실에서 쓸쓸해도, 이해받지 못해도 상관없었다. 현실의 인물과 상황에 상처받거나 외면당하더라도 소설로 돌아갈 수 있었다. 나만 알고 있는, 내가 쓰고있는 소설이 나를 안아주는 것만 같았다. 그래, 돌아갈 곳이 있었다. 소설이 나의 집이었다. 그 감각이 그립다. 그런데 나의 집은 어디로 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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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 읽고 매일 필사하는 #하리의서재 📚

✒️ 읽고 필사한 후 늦은 리뷰를 써요.

📖 오늘 당신은 어떤 책을 읽고 있나요.

📓 책에 밑줄을 긋고 문장을 수집합니다.

✨️ 당신에게 책과 문장을 배달합니다.


#필사하리 #하리그라피 #하리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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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너머의 지식 - 9가지 질문으로 읽는 숨겨진 세계
윤수용 지음 / 북플레저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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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책 #하리뷰 #도서제공




당신이 보고 있는 세상은 작은 조각에 불과하다

세상을 둘러싼 껍질을 벗겨내라!

9가지 질문으로 읽는 숨겨진 세계

#시선너머의지식

#용수용

#용두사미

#북플레져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지식의 깊이는 더욱 깊어진다. 우리가 바라보는 세계의 모습은 일부분이다. 수없이 많은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는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지적 호기심을 충분히 충족하고 있다고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알고리즘에 따라 치우친 정보에 휘둘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시야를 더욱 넓혀 줄 책이 나타났다!

역사, 사회, 문화, 자본을 아우르는 다양하고 깊이있는 지식의 세계로 가보자!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바라보지 않고, 익숙한 시선이 아니라 시선 너머의 지식을 보게 하는 책을 만났다. 용두사미라는 유튜브채널은 모르지만 이 책을 일고나니 용두사미가 궁금해질 지경. 내가 아는 세계가 전부가 아니구나. 왜? 라는 질문이나 궁금증, 호기심이 사라진 것만 같은 요즘, 사소해보이지만 그 안에 엄청난 이야기가 담겨있는 9가지 질문을 들여다보았다.


싱가포르 뉴스에는 왜 이렇게 자주 무례한 행동이 보도되고 있을까? 아이슬란드에는 맥도날드가 없다고? 일본방송에는 어째서 서양인뿐일까? 존경받던 프랑스 흙수저 총리는 왜 권총으로 자살을 했을까?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은 어쩌다 물질만능주의에 빠져버린건지?


흥미진진한 질문들을 눈길을 끈다. 왜라는 물음표가 자꾸만 떠오른다.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생각했던 국가들의 숨은 이면을 들여다 볼 기회다. 




이것이 바로 《시선 너머의 지식》이 던지는 질문입니다. “누가 우리를 평가하고, 우리는 왜 그 평가를 내면화하는가?”, “선진국이라는 기준은 누구의 시선에서 만들어진 것인가?” 그 시선을 넘어설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 자신을 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시선을 낯설게 바라보게 합니다. 표면적인 평가와 이미지를 넘어, 그 이면의 역사적 맥락과 본질을 파악하려는 태도를 제안합니다. 이를 통해 나와 세계를 새롭게 연결하고, 우리가 속한 공동체를 돌아보는 깊은 통찰을 이끌어냅니다. 동시에 지식이란 단순한 정보의 축적이 아니라 세계를 인식하고 해석하는 틀이며, 기존의 인식 구조를 재구성하는 힘임을 다시금 일깨워줍니다. 

#프롤로그

웡 전 부총리가 말한 이 대목은 왠지 키아수로 상징되는 싱가포르 사회 문제의 핵심을 찌르는 것 같이 들립니다. 하지만 "성공에 대한 마인드셋을 바꿀 필요가 있다"며 내뱉은 허울 좋은 말들은, 이미 깊숙이 뿌리박힌 무한 경쟁사회를 살아가는 싱가포르 국민들에게는 그저 허공을 맴도는 말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웡 전 부총리가 속해 있는 인민행동당이야말로 그런 무한 경쟁의 마인드셋을 싱가포르에 이식한 장본인들이니 말이지요. - P80

맥도날드라는 프랜차이즈 하나가 없어졌다고 해서 이런 아이슬란드가 선진국에서 탈락되는 것도 아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슬란드는 오랜 시간 지배당하며 타자화 되어온 역사와 더 강한 국가들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이 맞물린 나머지 ‘맥도날드가 없는 국가들’ 대열에 합류한 것에 불안과 상실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아이슬란드의 맥도날드 부재를 바라보는 시선은 다소 아이러니합니다. - P171

프로그램은 일본 문화에 감탄하는 미국인의 시선을 통해 일본인의 자긍심을 확인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으며, 이는 일본 사회에 깊숙이 내재한 서구 중심적 콤플렉스를 보여주는 단면일 수 있습니다. 결국 지금의 ‘일본적인 것’은, 사라진 정신적 정체성을 메우기 위해 외부로부터 차용되고 구성된 이미지에 가깝습니다. 국체로 표상되던 과거의 일본 정신은 군국주의의 패망과 함께 매장되었지만, 그에 대한 반성의 기회를 제대로 갖지 못한 채 ‘착한 국민’이라는 프레임 속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강요받았습니다. - P219

오늘날 프랑스는 혁명 정신의 본산임에도 불구하고, ‘법 앞의 평등’을 내세우는 공화국이라는 이상과 실제 사회구조 간의 괴리 속에서 울부짖고 있습니다. 자유, 평등, 박애라는 구호는 여전히 국가의 상징으로 남아 있지만, 그 이상이 상류층의 문화와 제도에 의해 독점되는 현실은, 프랑스가 아직도 구 제제의 모순이 완전히 소멸되지 않은 상태라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엘리트주의라는 이름의 새로운 봉건제도를 떠안고 있는 한, 프랑스 사회는 과연 그 슬픈 반복의 운명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을까요? -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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