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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마음을 위한 미술관 - 불완전한 삶을 품어주는 그림들
정희주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6년 9월
평점 :
#하리뷰 #도서제공
❝그림을 보는 것은 흩어진 마음의 조각들을 모으는 과정이다❞
흔들리는 마음을 위한 미술관
정희주
랜덤하우스코리아
나에겐 늘 가까이하고 싶지만 어쩐지 어렵기만 한 것이 있는데, 그게 바로 그림이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림을 보고 느끼는 일도 낯설고 어렵다. 그저 보는 것뿐인데도 말이다. 언젠가 견딜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운 일이 생겼을 때, 차마 말하지 못할 괴로운 일이 닥쳤을 때, 몸도 마음도 다쳐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되는 시간이 있었다. 그 시간은 오래도록 지속되기도 했고 며칠간 이어지기도 했고 금세 잊히기도 했다. 그런 시간을 보낼 때 활자는 전혀 읽지 않았다. 그저 눈 앞의 풍경을 마주했을 뿐이었다. 정희주 작가가 그림을 보는 일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흔들리는 마음을 위한 미술관이라는 제목이 마음에 훅 들어왔다. 그림을 잘 모르고 미술관에 자주 가지도 않지만 그림은 내게 짝사랑 같은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불완전한 삶을 풀어주는 그림들 이라는❜ 부제도 마음에 들었다. 나는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을 좋아하니까.
에곤 실레, 수잔 발라동, 에드바르 뭉크부터 빈센트 반고흐, 앙리 루소, 호아킨 소로야까지
정희주 작가 덕분에 명화 125점 속에 담긴 이야기를 만나고 왔다. 램브란트의 자화상을 보며 자기 자신을 마주하는 힘을 배운다. 브론치노를 통해 완벽한 사람이 아닌 불완전한 사람이어도 괜찮다는 마음을 얻는다. 워터하우스에게선 일희일비하지 않고 주어진 날들을 담대하게 맞이하는 법을 배운다. 에곤 실레를 보며 자신의 욕망을 제대로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만난다. 내가 감추고 싶거나 마주하고 싶지 않는 마음을 없애려는 게 아니라 그것들과 함께 살아갈 용기를. 고야를 통해 나의 그림자는 무엇인지 생각해보았고 수잔의 자화상을 보면서 남들이 보는 나가 아니라 진짜 나를 찾자고, 오늘의 나를 만나보자고 다짐했다.
운명을 사랑한다는 것은 곧 삶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오늘 내게 주어진 삶을 소중히 여기고 잘 가꾸어가는 것이다. 사랑하는 이를 만나는 마음으로 일상에서도 가슴이 뛰는 순간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렇게 지금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에 쉽게 취하지 않으며, 슬픔에 지레 겁먹지 않는다. 나는 이렇게 주어진 날들을 담대하게 맞이하며 사랑하고 싶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나의 운명이다. 56
운명 :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
_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샬롯의 여인>
무엇보다 욕망의 고통은 책임을 동반한다.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지금의 삶에 만족하며 살기 어려워진다. 자신의 욕망을 알게 된 순간부터는 그것을 외면할 것인지, 좇을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그래서 욕망을 긍정한다는 것은 단순히 ‘하고 싶은 대로 산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결핍과 두려움을 포함한 진자 나의 모습을 긍정하는다는 의미이다. 65
욕망: 미칠 듯이 끌리지만, 죽도록 도망치고 싶은 마음
_ 에곤 실레, 〈자화상〉
피카소, 고흐, 모네 같은 익숙한 이름의 화가들도 있었지만 생소한 화가도 많았다. 남들이 좋다고 해서 관심을 가졌던 화가는 에곤 실레, 윌리엄 터너, 프리다 칼로였다. (좋아하는 화가 하나쯤은 있어야 멋있어보이는 줄 알았던 어린 날이었다. 좋아하던 누군가가 터너를 좋아한다고 해서 터너의 엽서집을 사기도 했었다. 취향은 그렇게 타인에 대한 호감과 애정에서 이어지기도 했다.)
전부터 궁금했던 화가는 소로야였고 새롭게 알게된 화가는 펠릭스 발로통이었다.
발로통의 그림을 보며 외로움과 고독, 결핍에 대해 오래오래 생각했다. 외로움에 휩싸였던 시간이 길었다. 나의 이십대는 결핍과 외로움으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단단해지지는 않았지만 외로움보다는 고독을 즐기는 삶을 살게 되었다. 일과 사람이 없더라도 홀로 서 있는 일이 두렵지 않도록 나를 보살피면서.
소로야의 바다는 아름다웠다. 나에게 바다는 늘 꿈꾸던 곳이므로. 소로야가 늘 바다를 그리워했던 것처럼. 내 삶 속에 바다는 찰나의 순간이다. 그리워하는 시간이 더 길 것이다. 그렇게 바다는 영원히 아름다울 것이다.
그림을 바라보는 일은 나를 바라보는 일이었다. 흔들리지 않게 해주는 방법이 아니라 흔들림 속에서도 나만의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해주었다. 어쩌면 누구나 해줄 수 있는 말들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아무나 그 누구나가 될 수 없다. 듣고 싶은 말을 해줄 수 있는 누구나는 흔치 않다. 밑줄로 가득한 이 책을 들고 미술관을 가는 날을 기대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