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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어른 (장수탕 에디션, 양장)
이옥선 지음 / 이야기장수 / 2024년 9월
평점 :
품절
#오늘의책 #하리뷰 #도서제공 #에세이
어른이 되어 무거워진 몸과 마음의 묵은 때를 때밀이 타올처럼
시원하게 벗겨주는 이‘까칠한 할머니’의 농담과 지혜를 보라!
#즐거운어른
#이옥선
#이야기장수
요즘 SNS를 보고 있으면 정말 다양한 인간군상을 볼 수 있다. 누구나 다 휴대폰을 가지고 자기만의 콘텐츠를 생산해 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중에서 중년 이상의 영상을 볼 때면 그들의 열정과 에너지에 놀라곤 한다. 한동안 핫했던(물론 지금도!) 박막례 할머니는 47년생 100만 유튜버이다. 그렇게 할머니든, 할아버지든, 아이든, 어른이든 멋지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세상이다.
여기에 즐거운 어른이라며 나타난 멋진 할머니를 만났다. 76세의 이옥선 작가의 거침없는 글빨(!)에 큭큭거리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을 읽었다. (평범한 할머니라고 하기엔 교사 출신에 평생 방대한 독서를 하셨다. 무려 육아일기로 <빅토리 노트>라는 책도 내셨고 그 딸은 김하나라는 유명 작가인 데다 온갖 지식인들의 치부를 다 알고 계시고! 유언을 말할 때 나카스 카잔차키스와 마르크스의 묘비명을 말하고! 꿈의 풀이가 궁금하여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읽는 분을 평범하다고 하긴 어려울 것 같지만) 역시 76년 내공 엄청납니다!
그동안 지나치게 남성 편향적인 세상이었다며 이제 새 판을 짜야 한다는 이옥선 작가의 말이 통쾌하다. 가부장적인 사회를 견디며 살아온 여성의 입장에서 앞으로 살아갈 여성들의 삶을 응원하는 목소리가 무척이나 든든하다. 직접 경험했고 견뎌왔던 70년 이상의 세월을 토로하는 작가의 이야기에 토를 달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옥선 작가는 삶의 마지막 순간에 간절히 원하게 될 것이 있다면 지금 당장 그것을 해야 한다는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말에 간절히 원하는 것도 없을 것 같다며 아이스크림이나 먹을까? 라고 말한다. 지금이야말로 골든에이지를 살고 있으며 아주 만족하며 산다는 작가는 심장마비로 고독사하고 싶다는 어찌 보면 충격적인 소원을 말한다. 현대의학기술의 발달로 이제는 편히 집에서 자연사하는 일은 거의 없다. 평균수명은 늘었지만 노화는 막지 못했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는 일 또한 힘들어졌다. 이러니 작가는 세상에서 죽음의 위기에서 살아나 간병을 받으며 완전히 회복되기도 어려운 상태로 살고 싶지 않으니 죽는 순간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냉정한 판단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가족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을 테고 자유의지로 평화롭게 죽고 싶다는 마음도 이해가 된다. 죽음과 유언에 관해 이야기를 하며 죽기 직전에 대단히 중요한 비밀을 털어놓는 것도 아닌데(예를 들어, 너는 사실 친아버지가 따로 있으니) 유언을 꼭 죽기 직전에 해야 할 필요가 있냐며 의문을 드러낸다. 그래서 자신도 생각난 김에 이야기를 해보겠다며 라는 꼭지에 유언이라고 할 만한 글을 썼다.
그냥 나도 생각난 김에 한마디 하자면, 나는 내가 인생에서 해야 할 숙제는 다 했고(남편의 장례식을 끝낸 것, 뒷정리를 다한 것이 나의 제일 큰 숙제였다) 이제까지 대충 즐겁게 잘살아왔다고 생각한다. 너희도 너무 애쓰지 말고 대충(이것이 중요하다) 살고, 쾌락을 좇는다고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뭔가 불편한 것이 있으면 이것부터 해결하는 방법으로 살면 소소하게 행복할 것이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건강을 잃으면 행복하기 어렵다) 한 종목의 운동을 늙어서까지 꾸준히 할 것이며 너무 복잡한 건 생각하지 말고 단순하게 살도록 해라. 다행히도 재산이 많지 않아 문제될 것이 없다고 본다. 아들딸 며느리 손자 손녀 너희들이 있어서 행복했고 너희는 내가 지금도 씩씩하고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원천이다. 나의 장례는 그 시기의 일반적인 방법으로 할 것이며 화장해서 유골은 너희 아빠를 장사 지낸 것처럼 하고, 제사는 지내지 말고 그날 시간이 나면 너희끼리 좋은 장소에 모여서 맛있는 밥을 먹도록 해라. 또하나 바라는 게 있다면 너희 아빠는 꽃 피는 봄에 돌아가셨으니 나는 단풍 드는 가을에 떠나면 좋겠네. 그러면 너희는 봄가을 좋은 계절에 만날 수 있을 테니. 끝. ( 73~74쪽, ‘유언에 대하여’)
방비하더라도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올 일은 오고야 마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라고 하셨다. 인생살에서 보통 정도의 수준을 유지하면서 선량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제일 좋지 않냐고 하셨다. 나이를 이만큼 먹고 곰곰 생각해 보니 모든 것은 이미 지나갔거나 지나가고 있거나 지나갈 것이라고, 그러니 인간끼리의 관계를 너무 심각해하지 말고 가뿐하게 생각하고 유연한 마음으로 서로를 대하는 게 좋지 않겠냐고도 하셨다.
할머니는 76세니까 일어날 일은 일어나니 전전긍긍하지 않을 수 있고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고 알게 되셨겠지요? 엉엉. 저는 여전히 다 별일이고 지나가길 기다리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게 너무 어려워요. 인간은 왜 이리 어려운 걸까요?
작가님을 붙들고 하소연하고 싶을 만큼 나는 여전히(20대 청춘도 아닌데) 어렵고 심각하고 복잡한 것투성이다. 그런데 76세의 할머니인 작가님조차 여전히 책을 읽고 유튜브로 세상을 공부하며 매일 요가를 하고 목욕탕을 간다. 솔직하게 요즘 젊은 세대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아파서 오래 살기 싫다는 친구에게 "아니야, 나는 좀더 오래 살고 싶어. 내가 두고 보아야 할 사안이나 인물들이 얼마나 많은데, 나는 그것들을 다 구경하고 싶어. 그러니 좀더 오래 살기 위해서 건강에 힘을 쏟아야겠다." 214쪽 '76세' 라고 말하기도 한다. 인간이 나이가 많다고 늙는 게 아닌 것 같다. 76세에도 배우고 싶은 것이 있고 건강을 지키며 즐겁게 살 수 있다. 징징대고 자꾸만 나약한 소리를 하던 나를 반성한다.
이토록 멋진 즐거운 어른을 만나서 반가웠다. 이옥선 작가와 같은 멋진 어른이 앞서서 걷고 있다면 그 든든한 등을 바라보며 뒤따라 걸을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러니 새로운 판을 짜야 옳다. 한국의 여자들은 너무 똑똑하고 교육도 다 잘 받았다. 사태 파악이 빨라 비혼자도 늘었다(남자 잘못 만나 인생 망한 여자는 있어도 안 만나서 망한 여자는 없단다). 더러 남자들도 비혼을 선호하고, 결혼하고도 아이 없이 사는 풍조도 늘어간다. 출생률이 세계에서 제일 낮다는 것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지구의 부담을 줄여주는 일이니까. 인구 정책을 논의하는 사람들은 안 봐도 알 것 같은데, 50대 중반을 넘은 고위직 남자거나 남성적 돌파력으로 그 자리까지 올라간 여성일 것 같다. 아이 하나 낳는 데 돈 얼마를 지급하겠다는 얄팍한 정책 가지곤 먹혀들지 않는다. 제도적 결혼 안에서만 인구를 늘리려는 생각으로는 절대로 인구가 늘지 않는다에 500원 건다. 아니 5천 원 건다. 26~27쪽, ‘새판을 짜야 할 때가 왔다’
나는 인류에 공헌하겠다거나 다른 인간의 발전을 위하여 노력하겠다는 인간을 신뢰하지 않는다. 뭔가 더 발전해봐야 지구만 망가진다. 모두 다 저 잘난 맛에 자기의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살아왔고, 부수적으로 인류에게 도움이 되었거나 또 감당할 만큼만 살아왔다고 본다. (...) 나이를 이만큼 먹고 곰곰 생각해보니 모든 것은 이미 지나갔거나 지나가고 있거나 지나갈 것들이다. 그러니 인간끼리의 관계를 너무 심각해하지 말고 가뿐하게 생각하고 유연한 마음으로 서로를 대하는 게 좋지 않겠나 싶다. 242~244쪽, ‘다 지나간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도서협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