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 일기
서윤후 지음 / 샘터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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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책 #하리뷰 #도서제공




<들키고 싶은 어둠 하나쯤 켜두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전하는

쓰기에 관한 시인 서윤후의 고백 일기>


#쓰기일기

#서윤후

#샘터사




일기를 쓸 때도 솔직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나 자신이 독자인 일기조차도. 쓰는 것이 두려웠다. '이 작은 불꽃에 관한 보고서를 들키고 싶은 어둠 하나쯤 켜두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다'는 시인의 말에 먹먹해지고 말았다. 숨고 싶었으나 들키고 싶었고 따뜻한 곁을 원했으나 오롯이 혼자를 바라는 마음을. 그 마음을 들킨 것 같아 얼굴이 붉어지기도 했지만 일그러진 나의 얼굴또한 나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고 이해받게 되었다.


시인의 산문집이 주는 감동은 남다르다. 시인의 시를 읽을 때도 외로운 망망대해, 작은 빛줄기같은 기분을 느꼈다. 슬플수록 분명하게 자라는 게 있다고, 벼랑에서 서로의 난간이 되어주는 그런 시인의 시처럼 산문집 역시 시인의 언어로, 시인의 문장으로 마음 안에 가득찼다.


길을 잃은 것만 같은 기분이 들 때. 영원에 걸려 넘어졌을 때. 어떤 균열을 지나며 상처를 투사하는 시간을 만날 때. 마음에 커다란 구멍을 내고 싶을 때. 시인의 순간순간을 함께 지나오며 작품을 빗물 고인 웅덩이 삼아 나의 얼굴을 드리우고(p.150) 싶었다. 삶의 영감이나 생할의 아름다움에 쓰는 일로 반응(p.151)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시인의 일기를 읽을 때면 밤이 좋았다. 밤에서 새벽으로 지나가는 그 시간에 시인의 일기를 읽고 그 일기속에 파묻혔다. 시를 쓰며 기다리는 쪽이 되었다던 시인. 기다리면 무엇이든 찾아온다는 시인의 말을 마음에 담는다. 장대가 되어 넘어설지는 모르겠지만. 갯벌처럼 질척이는 바닥에 박혀버린 나를 조금은 꺼내어볼 수도 있겠다.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쓴다. 그렇게 '무언가를 쓰게 되고 그게 시가 되고, 일기가 되고,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다'(p.138) 하더라도.





쓰게 되었으니, 쓰기로 한다. p.153



<책속 문장필사>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나는 없지만 시는 여전히 여기에 있을 것이기에.

우리는 없지만 우리의 시가 거기에 그대로 있을 것이기에. - P91

어떤 글을 쓸 때면 나는 항상 원점으로 돌아간다. 원점은 내가 되기 전이나 내가 기억하고 싶은 선별된 순간이 아니라 내 안에서 일어난 균열의 자리이다. 어떤 균열은 손댈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고, 어떤 균열은 끝끝내 무너지지 않고 버티고 있으며, 어떤 균열은 아름답게 미장되어 있다. 그 과정에서 나의 상처를 투시하는 시간이 필요했고, 그 시간은 꽤 고통스러웠지만 그것을 건너는 동안 나의 어떤 흠은 채워졌고, 낡고 견고한 것들 사이에서 더 아름답게 빛났다. 상처는 단 한 번도 같은 모습으로 생겨나지 않았고, 제각기 다른 형태로 아물어갔다. - P122

문학의 작동 방식을 생각하면 한 인간이 가진 상흔이 어떤 형태로 삶을 끌어안고 지탱하며 살아가는지 헤아리게 된다. 상처 없이 말끔한 영혼도 문학을 펼칠 수 있겠지만, 내가 만나온 그동안의 문학 속 이야기는 상처가 상처를 지나는 이야기였다. 상처 다음에 무엇이 올 것인지 그 질문이 다른 상처에게로 닿아서 대답을 흉터로 짊어질 때 문학은 아름답고 성실해 보이기도 했다. p.122 - P122

어떤 기분을 따라가다가 길을 잃은 느낌이 든다. 이건 무슨 느낌일까,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그런 기분의 출처를 따라가다 보면 내가 보이지 않는 것 같다. 나를 분명히 보려고 가는 길이지만. 그래서 무언가를 쓰게 되고 그게 시가 되고, 일기가 되고,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다. p.138 - P138

우리가 우리를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서로 시작할 수 있는 이름이 다를 것이다. 우리가 우리를 다시 그릴 수 없다면 각자 간직한 얼굴로 영원히 왜곡하는 것이 시의 운명이라 여기지기도 한다. p.141 - P141

시를 쓰면서 나는 자주 기다리는 쪽이 되었다. 무엇이든 찾아오니까. 희망을 넘어서도 된다는 듯이. 나는 장대가 되어 시를 기다린다. 얼마든지 넘어설 수 있게 해주겠다는 각오로. p.158

-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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