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한가운데 - 개정판
주얼 지음 / 이스트엔드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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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한가운데, 주얼




봄의 길목에서 <여름의 한가운데>를 읽었다. 설레고 두근거렸던 우리가 여름의 한가운데를 지나 다시 겨울을 맞이하고 그렇게 계절이 흐르듯 우리도 흘러간다. 지나가버린 과거를 애틋하게 바라보는 소설이었다.

매일 필사로 단편마다 필사해서 올렸고 마음에 와닿았던 문장마다 생각조각을 이어붙였다. 그 조각들을 모아서 올려본다.




🏷  우리는 조용하게 내리는 비를, 그리고 그 비가 만들어 내는 왠지 모르게 우리를 위로해 주는 것 같은 고요하고 평온한 풍경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렇게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니 문득 우리가 함께 있는 시간과 공간이 먼 과거의 어느 순간으로 바뀐 듯 했다. 스무 살이었던 그때, 불어오는 눅진한 바람에 비 냄새가 가득했던 그 여름밤의 바닷가로.


✒️ 비 내리는 풍경을 좋아한다. 비가 내리기 시작할 때 그 흙냄새와 점점 짙어지는 풍경, 빗소리가 가득해지는 그 순간을 사랑한다. 그렇게 어떤 풍경은 우리를 과거로 돌려보낸다. 당신과 함께 있다면 더. 우리는 지금 여기에 있지만 여기에 없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고 있지만 서로를 보고있지 않다. 계절이 흐르고 시간이 지나도 그때 그 순간으로 다시 돌아가는 풍경이 있는 것이다.




🏷  어쩌면 폭풍우가 지나간 뒤에도 옅은 바람이 머물듯 그때의 감정도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채 여전히 선 주변을 서성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감정은 옅어진다. 강렬했던 기억은 점점 옅어져 어느 순간에는 사라진 것만 같다. 그러나 나는 안다. 기억은 그렇게 순순히 물러나지 않다는 것을. 바람이 분다. 폭풍우가 아니어도, 옅은 바람에도 흐릿했던 흔적은 순식간에 선명해진다.




🏷  비록 너무 많은 시간이 흐르긴 했지만 우리에겐 지금보단 서툴렀고 어색했던, 그래도 분명 알 수 없는 두근거림이 가득했던 눈이 시릴 정도의 파란 여름이 있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오래되어 버린 계절이 빛을 바래고 멀리 밀려났을지언정 우리가 잊지는 않고 있음을. 이제는 그 계절이 비록 어떠한 의미도 가지지 못한다 할지라도.


✒️ 그때 우리의 시간을 기억하는지. 계절이 흐르듯 우리도 이미 흘러가버렸지만, 그때 그 순간과 그 마음이 불현듯 떠오른다. 여름의 한가운데 있었던 것만 같은 뜨거웠던 순간이 누구에게나 있겠다. 잔잔하고 감성적이 문장들에 마음 속에 불이 났다. 오늘은 비까지 내린다. 어떤 의미도 가지지 못한다 할지라도, 쓸데없이 후회만 한다 하더라도 그 순간과 그 마음을 오래오래 생각한다.





🔖 계절이든 계절이든 시간이든 추억이든 모든 건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고, 희미해지며, 결국 저 멀리 기억의 그림자 저편에서 잊히고 마는 법이니까.


✒️ 모든 건 지나간다는 단순한 사실을 지나고나야 깨닫게 된다. 지금 당장 내가 아프고 힘들고 어려운 순간은 영원처럼 지속될 것만 같으니까. 그러나 시간이 지나지 않아도 영원같던 시간은 결국 아무것도 아니라고 믿게 되는 순간이 오히려 아프다. 기대하지도 바라지도 않는 거니까.





🔖 내 인생을 즐기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회사업무와 사람과의 관계에 이리저리 치이면서 자주 무기력증에 빠지곤 하는 내가 어떤 때는 초라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 지혜는 동아리선배의 결혼식에서 대학시절 남자친구를 다시 마주칠지도 모르는 생각에 시간이 많이 흘렀음에도 지고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초라해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 나는 충분히 잘 살고 있다고 보여주고 싶은 마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사회적 시선이나 부여받은 역할에서 벗어난 나를 드러내는 것이 불편할 때가 있다. 나는 나 자신으로 살아가고 있을 뿐인데. 어쩔 수 없이 씁쓸해지는 순간이 올 때면 공작처럼 화려한 날개를 펼쳐보이고 싶은건지도 모르겠다.




🔖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바로 편한 운동화를 사자고, 그래서 내 발에 맞는 편한 신발을 신고 편한 걸음으로 지금부터라도 나를 위한 시간을 가져보자고 생각했다. 남의 시선이 아닌 나 자신을 위해 이토록 멋진 하루를 온전히 마음을 다해 즐겨보자고 다짐했다.


✒️ 발에 맞지 않는 불편한 구두와 한껏 꾸민 지혜는 동아리 동기를 만나고 태윤의 이야기를 전해들으면서 왠지 모두가 자신의 비웃고 놀리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낀다. 중요한 건 나 자신이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롯이 나 자신을 위해 살아가고 싶다. 그래야 나만의 멋진 하루를 보낼 수 있다.




🔖 좋아하는 것과 살아가기 위해 하는 것. 모두 자신은 해당 없는 아득히 먼 세계의 말처럼 느껴졌다. 자신은 좋아하는 게 있었나? 지금은 무얼하고 있지?


✒️ 좋아하는 것을 일로 하다하면 그 일이 일상이 되고 그러다 지쳐버리는 일이 생겼다. 살아가기 위해 하는 것은 그저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거라면 그건 그것대로 지치는 일이었다. 좋아서 책을 읽고 필사를 하고 글을 쓴다. 이것도 일이 되면 지칠까. 요즘은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





🔖 다들 지금은 어떤 모습으로 변해있을까? 이제는 사회생활을 어느 정도 했을 그들의 모습이 수겸은 궁금했다. 별일 없이 잘산다는 건 과연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사는 것인지, 자신은 별일 없이 잘살고 있는 건지 수겸은 알 수 없었다.


✒️ 지나버린 과거는 그저 머물러 있는 어떤 순간들이라 과거의 그 순간순간들로 되돌아가 다른 미래를 상상해본다. 별일 없이 잘 살고 있는건가, 고민이 들때면 나 역시도 별일 없이 잘 사는 게 뭔지 모르겠고 나의 지나간 시간과 인연에 대해 생각하면 어쩐지 쓸쓸해진다. 그렇다고 과거를 되돌리고 싶지도 않다. 별일 없이, 지루한 하루하루가 흘러가고 있다.




🔖 어쩌면 누군가는 그저 반복되는 나날을 무심히 살아갔고, 그 사이 누군가는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먼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누군가는 고요함 속에 우두커니 앉아 돌아오지 않는 누군가를 끝없이 그리워했다.


✒️ 환절기를 아프게 지나고 나면 계절이 흐르는구나 느낀다. 흐르는 계절는 자꾸만 나를 두고 먼저 가는 기분이다. 나만 저멀리 겨울에 머물러있구나. 부지런히 따라가는 게 어려운 나는 뒤늦은 계절을 앓느라 여전히 제자리다. 그리워하는 건 봄인지 당신인지.





🔖 "바다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편안해지는 게 느껴져요. 그래서 마음이 어수선하거나, 복잡하거나.괜히 이유 없이 우울할 때면 인적 드문 해변을 찾아가 가만히 바라봐요.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를요. 그러면, 말로는 정확히 표현하기 어려운데, 마치 위로받는 것 같은기분이 들어요. 다시 마음을 다잡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게끔 절응원하는 것같기도 하고요.

그녀는 사진을 응시한채 테이블 위의 따듯한 술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나중에 기회가 되면 꼭 동해나 남해 그 어디라도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 그 곳에서 작은 식당이나 카페를 운영하며 느리고 조용하게 사는삶이 자신이 꿈꾸는 삶이라며.


✒️ 바다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장소다. 바다가 없는 곳에서 자랐고 지금도 그렇다. 누군가에게 바다는 시원하고 한여름 해수욕장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바다는 깊고 푸른 바다. 멀리 수평선이 보이는 사람은 없는 평온한 바다. 평온한 바다를 사랑한다. 바다는 보고 있는 것만으로 마음이 편안해진다. 윤슬이 반짝이는 바다. 파도에 하얗게 부서지는 바다. 빗방울이 쏟아지는 흐린 바다. 파도소리만 들리는 까만 밤바다. 해가 지며 붉은 색이 보라색으로 변해가는 바다. 바다도 매일 보면 질릴까. 그럴리 없겠지만 질리게 될 때까지 바다를 보고싶다. 바닷가 작은 카페, 작은 서점. 그녀의 꿈처럼 나도 꿈꾸는 그런 미래.





🔖 소윌길의 산책로를 따라 이어진 벗나무는 가지마다 연분홍 꽃이 만발해 장관을 이루었다. 무성한 벗꽃이 만들어내는 풍경에서 한없이 부드럽고 따스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녀와 손을 잡고 그 풍경 속을 천천히 걷던 중 그녀에게 윤종신의 노래가 왜 그렇게 좋은지 물었다. 그녀는 잠시 시간을 들여 생각했다. 마치 자신이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에 대해 신중하게 말하고 싶은 것처럼.

'음, 뭐랄까, 정확히 설명하기는 어려운데, 무엇보다 가사가 참 좋아. 화려하지 않고 담담하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은 가사가. 가만히 듣고 있으면 어떤 풍경이 떠오르거든. 거기엔 흘러가는 일상과 계절이 있어. 사람들은 그 안에서 서로 사랑을 하고, 때론 외로워하고, 또 때론 이별도 해. 그리고 후회를 하고. 그러한 장면이 그의 목소리를 통해 하나하나 펼쳐지는 거야. 난 그게 참 좋아."


✒️ 음악을 좋아하지만 시끄러운 것에 예민해서 오래 듣지는 못한다. 장거리 운전을 할 때나 잠이 오지 않는 새벽, 마음이 심란한 밤이면 음악을 듣곤 한다. 어릴 때 카세트테이프나 CD플레이어로 음악을 듣던 시절이 있었지. 그땐 한 가수의 음반을 오래도록 듣곤 했었다.(아이돌도 좋아하기도 했지만 자우림을 꽤 좋아했었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윤아언니 사랑해요) 카페에 가는 것을 좋아하는데 음악이 TOP100일 경우 그 카페와 마음이 멀어지기도 한다. 일단 시끄러우니까. 이젠 아이돌이나 트로트뿐인 차트가 듣기 버겁다. 가사가 좋은 노래를 특히 좋아한다. 가사가 한 편의 시이기도 하니까. 가사를 듣다보면 어떤 시간이나 풍경을 떠오르게 한다. 함께 들었던 노래일수도 있고 우리의 마음을 노래하기도 한다. 윤종신을 매우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의 말처럼 윤종신의 가사에는 우리의 일상과 계절이 있다. 그래서 노래를 들으면 설레기도 하고 아파하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우울해지기도 하겠지. 


좋아하는 노래는 주간심송으로 열심히 필사하고 있습니다!




🔖 냉정히 생각해 보면 굳이 다툴 필요가 없는 상황이었다. 물론 서운함을 느낄 수도 있었고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그러한 상황이 초래된 게 고의가 아니었다는걸 분명 모르지 않았기에 서로 충분히 이해하고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와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자신의 처지를 이해해 주지 않는 상대방이 서운했고 답답했다. 결국, 따갑게 내리쬐는 햇별 아래서 우리는 서로를 향해 눈에 보이지 않는 가시를 맹렬하게 세우곤 했다. 그리고 끝내 상대방에게 상처가 될 수 있는 말을 입밖으로 밸어내기도 했다. 예를 들면, 난 너의 그 고집스러운 취향을 도저히 이해 못 하겠어, 와 같은.


🔖 그녀와 나는 분명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문제와 갈등의 원인을 진지하게 바라보고 그것을 해결하려는 시도를 부담스러워했다. 어쩌면 귀찮아했는지도 몰랐다. 우리는 서로에게 입힌 상처를 적극적으로 치료해 주기보다는, 그저 애써 모른 척하며 시간이 흘러 상처 위에 딱지가 앉아 그 아래에서 자극에 무뎌진 새살이 돋아나기만 기다릴 뿐이었다.


✒️ 처음 만나 설레고 행복하던 순간이 있었을텐데 마음이라는 것은 종잡을 수 없고 점점 서운함이나 답답함이 자리잡기 시작한다. 분명 이해할 수 있는 문제였을텐데, 좀 더 마음을 들여다보고 모른 척하거나 숨기지 않고 솔직했다면 달랐을까. 문제 앞에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는 건 어릴 때나 지금이나 너무 어려운 일이다. 상처는 한쪽만 받는 건 아니었다. 다만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다고, 서툴고 무서워서 그저 회피하고 숨기기에만 급급했었다고 지나고나서야 아프게 받아들일 뿐이다. 




🔖 "특별한 이유란 게 있을까. 그냥, 시간이 흘렀고, 변하지 않는 건 없으니까."


✒️ 월간 윤종신은 마지막까지 쓸쓸했다. 둘의 생일이 있었던 겨울을 다시 맞이하지 못한 채 특별한 이유없이 변해버린 마음을 어찌해야 할까. 월간 윤종신을 들으면 떠오르게 되는 풍경들. 사랑은 사라졌어도 그 때의 풍경을 되살아난다. 그게 음악의 치유이자 벌이기도 하겠다. 시간이 흘러서 그 마음이 처음과 같을 순 없어도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건 욕심이려나. 계절과 함께 기억도 흘러간다. 그렇게 선명했던 기억도 점차 흐릿해지겠지. 작가의 말에서 말했듯 지나간 시간이나 기억을 그리워하는, 현재보다는 과거를 떠올리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래서 아련하고 애틋한 소설이었다. 누구에게나 지나간 추억이 있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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