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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의 시대 ㅣ 창비시선 495
장이지 지음 / 창비 / 2023년 12월
평점 :
편지의 시대, 장이지
편지는 나에게 마음이다.
편지를 쓸 때면 어쩐지 마음을 당신에게 가고 있는 것만 같다.
그래서 나의 편지들이 당신들의 서랍에서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나의 마음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라진 나의 편지에 애도를 보낸다.
그러나 그 편지는 내 안에 있으므로 괜찮다.
당신은 나의 마음을 버렸어도 내 안에는 남아 있으므로.
외워버린 편지
편지를 태우기 전 거듭 읽는다 당신이 부탁한 대로 거듭
읽어 외운다 편지는 불타고 재와 연기가 난무한다 매캐한
위치에서 홀로 나는 당신을 이해해보려 하지만 당신은 내
곁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 오, 나의 당신, 귀 안에 느껴지는
당신의 필압(筆壓), 나는 당신의 편지를 거의 외우다시피 한
다 타버린 편지는 난분분히 어두운 목소리 되어 창백한 해
를 살라먹는다 이 얻두워가는 세계로 당신은 삼켜진다 귀
안으로 흘러드는 잉크, 귀 안의 독, 귀 안의 잇자국, 나는 당
신 목소리만큼 무거운 당신의 필압을 느낀다 곁이 아니라
당신은 내 안에 있다 심장을 누르는 보라색 필기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