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을 비는 마음
김혜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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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을 비는 마음, 김혜진




섣부른 이해보단 솔직한 오해를

집에 관한 이야기이자 집을 둘러싼 마음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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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관한 이야기이다. 우리에게 집이란 과연 어떤 곳일까? 부동산이 아니라 집이라고 하는 공간. 인간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의식주를 가능하게 하는 게 집일 것이다. 집이라는 공간을 둘러싼 다양한 인간들이 모습이 평화롭고 행복하지 않고 안타깝고 씁쓸하다.


삶에 기대를 품는 작은 희망조차 가지지 않으려고 애써야 하는 미애, 딸 혜민과 함께 살 집 하나 얻기가 어려운 절박한 상황의 미애. (#미애)재개발이 되기만을 기다리면 낡은 빌라 하나를 팔지 못하고 버티는 만옥.(#목화맨션) 기대와 두려움으로 부동산투자를 위해 이곳저곳 물건을 보러다녔고 오래된 오피스텔에는 월세를 내지 않고 연락도 받지 않는 세입자때문에 애가 타는 남우사모님, 장사장 대신 밀린 월세를 받아내면서 세입자 관리를 하는 호수엄마.


재개발과 부동산 투기, 전세 사기, 미분양 등 집과 관련된 이야기들 중 행운과 기쁨에 대한 이야기들이 없다. 절박하고 남루하고 퍽퍽한 인생이 덕지덕지 묻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 속 인물들은 희망을 붙들고 있다. 헛된 희망같아보여도 그 작은 희망을 버팀목삼아 현실을 살아가는 것이다.


입주청소업체에서 일하는 인선이 축복을 비는 마음으로 청소를 한다고 했을 때 경옥은 경악했다. 그러나 집이라는 공간은 그런 것이다. 살게 될 사람에게 축복을 빌어주는 곳이지 않을까. 


주변 어딘가에도 있을 그런 집에 관한 이야기들이 너무 사실적이라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책 속 인물들에게 축복을 빌어주고 싶은 심정이다. 





모든 게 지나치게 정답 같은 질문들과 대답들. 옳은 것이 분명한 이야기들. 좋은 사람이라면 마땅히 추구해야 하는 가치들. 당연히 해야 하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일들. 어쩌면 자신도, 해민도 살면서 그런 것들을 한 번쯤 꿈꿔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였다.

그건 희망의 모습과 비슷했다.

삶에 기대를 품는 것이 번번이 자신을 망친다는 결론에 이른 뒤로 미애는 가능한 한 희망을 가지지 않으려고 애쓰며 살았다. 노력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다만 자신의 삶은 언제나 남들보다 더 많은 노력을 쏟아부어야만 했고, 그래서 희망을 부풀리는 능력이 불필요하게 발달한 거라고, 자칫하다간 눈덩이처럼 커진 희망 아래 깔려 죽을지도 모른다고 자신에게 수시로 경고하는 것만은 잊지 않으려고 했다.  p.19 #미애


그건 기대였고 우려였고, 가능성이자 두려움이었다. 그것은 방향을 조금만 틀면 완전히 달라 보이는 홀로그램처럼 밤새 그녀의 내면에서 반짝거렸다. 아니, 그건 그녀가 도무지 짐작할 수 없고, 예상할 수 없던 자신의 미래였는지도 몰랐다.  P. 113 


누구를 용서한다고요? 뭘 용서하는데요?

그녀가 물었고 남자가 답했다.

홍 사장님요. 제가 다 용서했다고요.

홍 사장이 왜 용서를 받아요? 그 사람이 무슨 잘못을 했어요?

그녀는 알고 싶었다. 허름한 주택들에 걸었던 기대를 일찍 철회하지 못했던 게 그의 잘못이었는지, 호재니 기회니 하는 말에 번번이 이끌렸던 게 그의 잘못이었는지, 그것이 이 남자에게 용서를 받아야 하는 종류의 일인지도. 그러나 그 말을 하지는 못했다. 입 밖으로 꺼내고 나면 모든 비극적인 결말이 자신을 향할 것 같았다. p.131 #이남터미널


멀리 집이 보이기 시작하면 그녀를 채근하던 조바심이 기대감으로 바뀐다. 그 순간, 그녀의 집은 잿빛 담벼락 너머에 자리한 수많은 주택 중 하나가 아니다. 오랜 세월, 권태와 지루함을 견디며 낡아가는 그렇고 그런 주택도 아니다. 그 집엔 서로를 향한 두 사람의 순수한 애정과 진실한 마음이 머물러 있다. 이 순간, 그녀의 집은 특별하고 유일한 장소다. 매일 새로운 서사가 탄생하고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움트는 공간이다. p.227 #사랑하는미래


인선은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고 믿었다. 언제 어디서나 최선을 다하는 사람. 다른 사람의 처지를 먼저 헤아리고 배려하는 사람. 곤경에 처한 이를 돕는 사람. 나쁜 것보다 좋은 것을 먼저 볼 줄 아는 사람.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생각을 잃지 않는 사람.

그러나 그렇게 하다가는 몸이 남아나지 않는다는 것을 인선은 몸으로 배웠다. P. 246 


경옥은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 집을 청소할 땐 마음이 너무 불행해지지 않으냐고 물었다. 받는 돈은 똑같은데 몇 배나 더 일해야 하는 상황이 억울하지 않으냐는 거였다.

축복을 비는 마음으로 하는 거죠, 뭐.

인선이 답했고 경옥이 물었다.

축복요? 무슨 축복요?

깨끗하게 청소해드리는 만큼 좋은 일 많이 생기시라고 빌어주는 거죠. p.270 축복을비는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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