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문 테이크아웃 10
최진영 지음, 변영근 그림 / 미메시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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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문, 최진영

금도는 동생 신우를 잃었다. 신우는 자살했다. 금도는 그 이유를 알지 못해 내내 괴로워했고 그 이유를 찾고 싶었다.

자살은 주변인에게 죄책감과 원망을 함께 남긴다. 그런 죽음이 또 있을까. p.10

신우의 자살은 누구에게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그 이유를 댈 수 있는 사람은 한 명은 없었다. 금도와 반지는 신우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생각한다. 왜 신우가 자살했는지. 금도를 괴롭게 하는 것은 신우의 마음을 알았다고 해도 위로를 하고 도움을 줄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다. 금도는 신우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궁금하지도 않았던 자신이 슬퍼하고 분노하는 게 우습고 가소로웠다. 그렇게 자책하고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다가도 죽어버린 신우가 원망스럽기도 하고 죽지말라고 애원하기도 하면서 동생의 죽음을 애도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삶이란 무엇이고 죽음은 또 무엇일까. 태어났으니 살고 죽을 때가 되니 죽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람마다 시력이 다르듯 존재의 어둡고 습한 부분을 유독 잘 보는 사람이 있을(p.17) 거라는 문장이 눈에 띄었다. 인간의 생각이 모두 똑같다면 세상은 진작에 망했을테니까. 신우의 죽음이후에야 신우는 금도가 보지 못한 것을 보고, 듣지 못한 것을 듣고, 듣지 않은 것까지 알았을 것라고 깨닫게 된다. 어둡고 습한 부분을, 작은 얼룩을, 작은 소리를, 그래서 더 괴로울 수밖에 없는 신우에 대해 생각한다.

자살이 어때서. 자기를 죽이는 게 뭐 어때서. 다들 조금씩은 자기를 죽이면서 살지 않나? 자기 인격과 자존심과 진심을 파괴하고 때로는 없는 사람처럼, 죽은 사람처럼, 그렇지 않나? 그렇게 사는 게 죽는 것보다 끔찍할 수 있다. 그럼 죽을 수 있지. 죽는 게 뭐 이상해. 자살이라고 달라? 남을 위해 죽을 수 있다면 자기를 위해 죽을 수도 있지. 자기를 구원하는 방법이 죽음뿐인 사람도 있지.
괴로운 마음을 누르려고 이런 생각을 할 때도 있다. 기만이라는 것을 잘 알고, 그런 기만으로 나를 보호하려는 내가 끔찍하다. 나는 영영 최신우의 자살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p.48

죽고 싶다와 살고 싶지 않다.
죽고 싶다기보다 살 이유를 찾지 못했던 건 아닌가, 라고 반지는 생각한다. 이유가 필요하냐는 사람과 이유가 중요한 사람이 있다. 겁이 많아서, 누구도 죽일 수 없어서 결국 자기를 죽이는 사람과 세상을 원망하며 누군가를 죽이는 사람이 있다. 비가 오면 우산을 씌워주는 사람과 같이 비를 맞아주는 사람이 있다.

같이 비를 맞아주더라고. 혼자 맞는 것보다는 덜 쪽팔리잖아, 그러면서.
비를? 왜? 우산이 없었어?
.....
말을 제대로 해봐.
됐어. 혼자만 알고 싶은 것도 있는 거야.
그럼 결국 아무도 모르는 게 되잖아.
말로 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되어 버리는 게 있다고. 내겐 빛나는데 남들한텐 아무것도 아닌 그런 거. p.65

누군가 슬플 때 울지 말라고,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보다 그저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순간이 있다. 같이 비를 맞아주는 것도 비슷한 순간이겠지. 내겐 빛나는 그 순간. 남들에겐 아무것도 아닐지라도. 그 순간순간이 모여 살아갈 이유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닐까.

살고 싶지 않은 날들이 있었다. 죽고 싶다기보다 살고 싶지 않은. 그건 누군가가 필요했던 게 아니었을까. 내 옆을 지켜줄 사람. 다들 행복하려고 안달난 게 끔찍했던 신우에게도 그런 순간이 필요했을 거라고. 인간이 징그럽고 자신에게 엄격했던 신우는 어쩌면 세상을 증오하기보다 사랑했던 것은 아닐까라고. 삶과 죽음의 경계는 한끗차이인 것 같다. 끔찍하고 징그러운, 그래서 미래가 뻔히 보이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살아가라고 일으켜세우고 싶다. 여전히 이해할 수 없고 아직도 모르는 것 투성이더라도. 일어나라고 채찍질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주저앉아 있기도 하고 같이 비를 맞기도 하면서.

나이 들면 괜찮아질까 덜 넘어질까 기대했는데, 나이 들수록 더 깊이 넘어지고 일어날 때마다 겸연쩍다. 삶과 죽음 말고 다른 것은 없는가 중얼거리면서 시스템 종료 대신 다시 시작을 누르는 순간들. 매일 생각한다. 매우 사랑하면서도 겁내는 것이다. 이 삶을.
_최진영 인터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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