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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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 깊은 애정과 투명한 미움이 복잡하게 얽힐 때
한 시절 내가 건네받은 사랑을 뒤늦게 알아차리게 될 때
스스로의 몫을 고민하며 온 마음으로 써내려가는 7편의 긴 편지

최은영 작가를 좋아한다. <쇼코의 미소>부터 지금까지 울지 않은 책이 없다. 엉엉 울기보다 읽다보면 눈물이 고이곤 하는 잔잔하면서 단단한 문체가 좋다. 물 흐르듯 자연스레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는 늘 가볍지 않은 우리 사회의 문제들을 녹여내고 있다. 여성 인권, 비정규직, 정치적 사건, 소수자가 우리 삶 속에 이렇게 있다고, 보지 않고 듣지 않고 모른 체해도 이렇게나 만연해있다고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전하고 있는 것이다. 과격한 표현이나 폭력과 잔인한 묘사가 없어도 모든 게 강렬하게 드러난다. 그래서 마음이 저리고 따끔하고 아프고, 결국 슬퍼지고 마는 것이다.

최은영 소설 속 인물은 대부분 여성이다. 인간의 삶 속 관계를 이렇게 섬세하게 잘 풀어내는 작가는 최은영이 독보적이다, 같은 여성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 일하는 여성, 엄마, 할머니, 이모 등 다양한 역할의 여성의 삶을 엿볼 수 있다. 그 안에 나의 모습이 없을 수는 없다. 관계는 한결같이 매끄럽게 이어질 수 없고 갈등과 상처를 반복하며 부서지기도 한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후에 다시 되돌아보기도 한다. 만남과 헤어짐이 이어지고 결국엔 나 자신을 들여다보게 하는, 그리고 지난 날의 당신들을 떠올리게 하는 소설이다. 리뷰를 간단히 쓰기 어려워 단편별로 정리해봐야겠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에서 비정규직 은행원으로 일하다 뒤늦게 대학에 입학한 희원. 희원은 영문과 전공수업에서 만난 ‘그녀’의 수업을 통해 자극을 받고 글쓰기와 공부에 대한 열망을 품게 된다. 시간이 흘러 ‘그녀’를 만날 수 없게 된 후에 그 때 ‘그녀’를 따라가고 싶었다고, 계속 나아갈 수 있다는 알려주는 빛을 보고 싶었다고 생각한다. 더 가보고 싶게 하는 마음. 먼저 간 사람으로 뒤따라오는 사람에게 빛이 되어주는 존재. 우리는 그런 존재를 찾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단편에 용산이 자주 등장하는데 용산이라는 단어에서 이미 그 당시의 참사가 떠오르는 걸 보면 어떤 사건들은 그저 지나간 일이 될 수는 없는 것 같다. 최은영은 이렇게 개인의 서사에 사회의 문제를 자연스레 녹여 우리가 잊고 지나가지 말아야 할 것들을, 작고 사소하다고 느끼면 안되는 문제들을 담담한 문체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몫>은 미메시스 테이크아웃 시리즈 이미 단행본이 나온 작품이다. 대학 편집부에서 만난 해진과 희영, 정윤의 이야기를 통해 여성인권이 단순한 개인의 문제로 치부당했던 그 당시의 사회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 읽기 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글을 쓰고 싶다던 해진. 그저 쓰는 것만으로 어느 정도 내 몫은 했다고 부채감을 털어버리고 사라는 사람이 되기 싫었다는 희영. 글쓰기에 누구보다 재능이 있고 해진이 쓰고싶었던 읽기 전의 자신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는 글을 쓰던 정윤. 결국 쓰는 사람이 된 건 해진이었다. 울면서 글을 쓰고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들의 마음에 마음이 붙을 수 있다는 걸 알아차렸던 해진이었다. 글쓰기는 어렵고, 괴롭고, 지치고 부끄러워 때때로 스스로에 대한 모멸감밖에 느낄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것을 극복하게 하는 것 또한 글쓰기라는 사실이 해진의 마음을 빼앗았다.(p.75)
희영은 여성문제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것은 편집부 안에서 주제로 선정하는 것에서부터 가로막힌 권력이 벽이 존재했다. 기지촌 여성, 맞고 사는 아내, 성폭력에 노출된 여자. 여전히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문제들이지만 그당시에 더더욱 당연시되는 일이기도 했다. 그때로부터 우리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생각하면 씁쓸해지는 건 여전히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 때문이겠다.

??애정이 상처로 돌아올 때 사람은 상대에게 따져묻곤 하니까. 그러나 어떤 기대도, 미련도 없는 사람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마음을 걸어잠근다. p.119

??다희와 주고받았던 이야기들 속에서만 제 모습을 드러내던 마음이 있었으니까. 아무리 누추한 마음이라 하더라도 서로를 마주볼 때면 더는 누추한 채로만 남지 않았으니까. 그때, 둘의 이야기들은 서로를 비췄다. p.123

<일 년>

지수는 회사에서 은근한 따돌림을 당했었고 이제는 자연스레 잘 지내고 있다.(표면적으로는) 그 안에서 외롭게 지내던 지수에게 다희는 서서히 스며들었다. 최소한의 사회적인 관계를 위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했던 말들이 어른이 되고 나서 그녀가 나눈 대화의 전부(p.101)였던 지수는 다희를 만나면서 마음을 내보이는 대화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회사라는 공간과 정규직원과 계약직 인턴이라는 차이는 관계의 균열을 만들어낸다. 관계는 이어지고 부서지기를 반복하고 그로 인해 생겨나는 마음들은 시간이 지나도 마음을 일렁이게 한다.

누추한 마음이라도 서로를 마주할 때면 누추해지지 않는 사이. 서로를 비추는 빛. 당신과 나의 사이에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마음이 가닿을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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