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의 일 (양장)
이현 지음 / 창비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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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의 일, 이현

내 마음은 얼어붙은 호수와 같아 나는 몹시 안전했지만, 봄이 오는 일은 내가 어쩔 수 없는 게 아니었다.
마음은 호수와 같아. p.358

청소년 소설이라고 해서 가볍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오랜 기간 청소년들과 함께해와서인지 청소년 소설을 자주 접하고 읽어왔는데 마음을 두드리고 보듬어주고 위로해주는 책들도 많았다. <푸른 사자 와니니>로 유명하기도 하지만 아주 오랜전에 <우리들의 스캔들>이라는 책을 통해 알게 된 이현 작가님. 이 책은 친구가 호정이를 보며 내 생각이 났다고 해서 읽게 되었는데 오랜만에 만난 작가님의 소설은 역시 좋았다.

호정이는 어린 시절 사업이 망한 부모와 떨어져 외할머니와 함께 지냈다. 누군가에겐 별 것 아닌 일일지 몰라도 호정의 기억 속엔 상처로 남았고 그 마음들은 얼어붙은 호수 아래 가라앉아 있었다.

다들 가족의 문제 앞에서 엄마, 아빠도 처음이라고, 사는 일이 팍팍했다고, 가족을 위해 희생하며 살아내느라 작은 마음을 뒤로 한 채 살아간다. 처음이 아닌 인생이 어디 있던가. 어리다고 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해맑기만 하고 외롭고 슬픈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호정이는 외롭고 슬픈 마음들을 말보다 마음으로 먼저 알았던 아이였다. 자신의 마음이 왜 그런지도 모르고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마음을 어찌하지 못해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아이였다. 그것은 평화로워 보였지만 쓸쓸했다. 그리고 안전했다. 상처받을 일이 없으므로.

그런 호정이 자신과 비슷한 정의할 수 없는 그 마음,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 외로움을 가진 은기를 만나면서 마음을 열고 사랑하게 된다. 은기의 손이, 은기의 웃음이 따뜻하고 기뻤고 힘이 되었다.

서로의 아픔과 외로움을 치유하기도 했지만 상처 앞에서 무너지기도 하고 그것을 극복해나가는 모습을 보며 참 마음 아팠다. 호정이가 은기를 만나고 나래와 지후라는 든든한 친구가 있어서 다행이다.

누군가에겐 대단치도 않은 슬픔, 상처, 외로움일지라도 한 사람에겐 무엇보다 큰 고통이 되기도 한다. 기억은 제멋대로라서 기억하는 사람에 따라 왜곡이 일어나고 좋은 기억이 되기도 아픈 기억이 되기도 한다. 방황하고 혼란스러운 청소년기의 시절, 누구보다 예민했고 감정을 표현하고 그것을 풀어내는 데 서툴렀던 어린 나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 그 때 이 책을 읽었다면 나는 좀 더 따뜻한 인간이 되었을까? 제대로 사랑할 줄 아는 인간이 되었을까? 삶은 만약에라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상상해본다면 지금보다는 나았을 것이다.

작가의 말이 참 좋았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흠뻑 슬퍼하고, 마음껏 기뻐하고, 힘껏 헤엄쳐 갈 수 있기를. 어느샌가 기슭에 닿아 있을테니.

우리는 슬픔에서 자라난다. 기쁨에서 자라나는 일은 없다. 그러나 행복한 기억이 있어 우리는 슬픔에 침몰하지 않을 수 있다. 태양의 기억으로 달이 빛나는 것처럼. 그러므로 흠뻑 슬프기를, 마음껏 기쁘기를, 힘껏 헤엄쳐 가기를, 발이 닿지 않는 호수를 건너는 일은 언제나 두렵지만 믿건대, 어느 호수에나 기슭이 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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