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 쉽게 오는 사람에게 문학동네 시인선 105
이사라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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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쉽게 오는 사람에게, 이사라

#시인의말
늘 해질 무렵이었다.

새살이 돋아야 했던 기억들

항상 그때였다.

상처가 있는데 안 아프다고
상처가 없는데 아프다고

생각이 물들 때까지
참 오래 걸렸다.

이제 가볍게 집으로 간다,

2018년 5월
이사라

이사라 시인의 시는 편안하다. 읽다가 응? 이게 소리야? 싶은 시가 없어서 읽기가 부담스럽지 않아 좋다. 가볍게 읽히면서 가볍지 않고 마음을 울리는 시들이 있다. 사람에 대해, 슬픔에 대해, 가족에 대해, 죽음에 대해. 어머니의 죽음 이후의 일들을 시가 되었다. 누군가의 죽음은 상실감과 슬픔, 죄책감, 슬픔과도 같은 감정들의 소용돌이 휘말리게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 떠난 가슴에 사람은 어떻게 새길을 내는지(p.20) 알 수 없고, 너와 내가 지나온 세상이 부서지고나서야 웃게(p.40) 된다는 사실, 아무리 못났어도 인연이기에 이제 우리가 헤어질 것(p.91)이라는 사실. 잃어버리고나서야 그리워(p.110)하겠지.

보이지 않는 것들이 뒤엉켜 켜켜이 함께 살아가고 있을
그 세상에서
네가 찾은 황무지가 나이기를
#황무지

사람이라서
더 크게 울 수 있는 사람이라서
여기까지 빗방울을 뭉쳐왔을가

사랑하는 사람들 떠난 가슴에
사람은 어떻게
어렵사리 새길을 내나
#사람은어떻게

내 눈 속에서
너와 내가 지나온 세상이 부서지며
웃는다
#웃는다

내 몸에서
네 마음이 쏙 빠져나갔다

너를 보내고도
내가 남아서
웃는다
#이제는웃는다

어떤 위로로도
멈추는 법을 모르는 너는 몰라
이렇게 부서지며 오는 너를
나는 왜 짧은 저항으로 끝내지 못했을까

나의 얼굴을 계속 지워버리는 너를
나 대신 누가 더 사랑할까

파도 같은 마음들 사이에 내 마음도 있네
#파도같은

귓속 멍멍한 채로
나는 시간을 다 쓴 사람처럼
들을 수 없는 사람으로 그냥 산다

한세상 보내도록
그래도 내가 사라지지 않으니

내 귀에서는 드디어
물에 젖은 귓속말이 풍성하다
슬플 일이 없을 것 같다
#이명(耳鳴)

마음이 한 장 한 장
유리창처럼 부서져
너의 사방을 위험하게 할 뿐

곁에서 어쩔 줄 모를 뿐

마지막 사랑 가지고도
닿을 수 없는
네 곁에서
내가 살아간다
#곁에서

우리가 아무리 못났어도 인연이기에
이제 우리는 헤어질 것이다

지금 여기 꽃이 피고 지고 바람이 불고 사그라지고
마음이 몇 번씩 닿았다가 무너진 인연이기에

이승 아닌 곳에서 다시 봉인될 것이다
#이승에서의날들

두서없는 시간들 사이로
황망한 빗방울이 쏟아지기 시작하고
어디선가 내 가방 젖어가고
내 사사로운 것들 흠뻑 젖어갈 것이고

나는 잃어버리고서야 그리워한다
손때 묻은 관계처럼
#잃어버린가방의존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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