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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
로알드 달 지음, 정영목 옮김 / 강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표지가 재밌다. 제멋대로 잔을 박차고 나와 춤추는 와인끝에는 통통한 신사가 술병을 들고 있고, 기울어진 잔 옆에는 새초롬한 할머니가 서있다. 아무곳에나 배치한듯한 소도구들은 언제라도 벌어지는 이야기판에 몸을 던질 준비를 하고 있다. 로알드 달의 단편은 그렇다. 아무렇지도 않게 시작한 평범한 이야기가 어느샌가 춤을 추며 가지를 뻗어나가고, 툭 던지듯 놓아둔 장치들이 어느 새 아귀가 딱 맞아서 감탄을 자아낸다.
이 책은 표제를 장식한 <맛>을 비롯하여 총 10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목사로 가장하고 골동품을 사러다니는 보기스씨에게 벌어지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그린 <목사의 기쁨>이나, 외도를 한 빅스비 부인이 당하는 기막힌 사연의 <빅스비 부인과 대령의 외투>, 시간에 대한 강박관념을 가진 부인의 이야기를 그린 <하늘로 가는 길>등.. 모든 단편들이 하나같이 평범하지 않다.
아무리 심사숙고 계획을 짜도 인간사 어디선가는 어긋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이 이야기들 속에는 유머가 있고, 인생이 있다. 내기에 이기고 싶어하던 보티볼씨에게 닥친 불행을 그린 <항해거리>, 카사노바 뺨치는 오스왈드씨에게 일어나는 섬찟한 이야기인 <손님>, 손가락 자르기 내기를 좋아하는 <남쪽남자> 등등 그들에게 벌어지는 반전들은 인생사 참 오묘하다는 생각을 절로 나게 한다.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로알드 달은 방심하고 있는 독자의 뒤통수를 치는 엄청난 결말로 단편을 완성시킨다. "오 헨리, 모파상, 서머셋 몸이 함께 들어있다"는 광고 문안이 가슴에 와닿는다. 몇 장 되지 않는 짤막한 이야기들을 그는 어떻게 이토록 생기넘치게 만들 수 있을까...
재밌다. 많은 사람들이 재밌다고 했지만, 거기에 나도 한마디 보태야겠다. 정말 재밌다. 장마라 밖에도 못나가 심심하다고? 이 책을 읽으라.. 무료함을 확 날려버리는 반전이 거기 숨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