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눈 떠서 제일 먼저 한 일은, 그저께 빌려온 만화책 마저 읽기, 그 다음 생각한 일은, 회사 가서 일하기 싫다였다.

요즘은 정말 일하기가 싫어서 미치겠다. 이건 귀차니즘의 궁극에 귀결하는 수준이다. 혹자는, 아니, 요즘같은 불경기에 일이 있는데, 월급을 준다는데 무슨 배부른 소리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맞다. 배부른 소리다. 하지만 오늘 내일 언제 돈이 끊어질 지도 모르고(최근 몇달은 정말 바닥이다) 돈 달라는 데는 많아서 수시로 걸려오는 독촉 전화에 피가 마를 지경이라면 지경인데다가 결정적으로 내 마음은 이미 콩밭에 가 있으니 문제이다. 미뤄놓은 일은 태산인데 일이 도무지 하기가 싫으나 그 일이 목이 걸린 가시처럼 콕 걸려서 마음 편히 놀수도 없고 그저 우울하고 피곤하다. 만사가 귀찮고 심지어 밥 먹는 것도 배가 고프니 그저 배를 채우는 수준일뿐 배가 고프지 않으면 먹고 싶지도 않다. 이 정도면 나태의 독도 골수에 단단히 박힌 꼴이다.

그렇게 개기다가 조만간 일 낼줄 나도 알았다. 결국 오늘 사장님께 불려가서 단단히 혼이 났다. 좀 굴욕적이긴 했으나 내가 자초한 일이니 어쩌겠는가, 무조건 잘못했습니다 하는 수밖에. 문제는 불똥이 다른 여직원에게 튀어서 그 여직원도 불려와 자기 일도 아닌 일로 한 소리를 듣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사장님이 하시는 말씀은 다 나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지만, 그 동생은 졸지간에 불려와 엉겁결에 한소리 들었으니 그 동생에게 정말 미안해 죽겠다. 나 한 사람 일 안하는 것은 상관없으나 그 일로 인해 다른 이가 피해를 입는 것만큼은 나도 절대 사양하고 싶은 일이므로,

결국 이번 주말도 반납하고 어린이날 오기 전까지 죽은 듯이 일해야 하리라. 프랑스 다녀와서 할말도 줄것도 많은 친구에게 잠시 약속을 미루자고 하면 실망하겠지만 어쩔 수 없다.

 

잠깐 동안, 그냥 죽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별로 살고 싶지가 않았더랬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자살을 하는구나 싶었다. 사는 게 재미없고 하고 싶은 일도 별로 없고(난 딱 한가지 있지만 오늘은 그것도 귀찮게 생각될 정도였다) 아무런 의욕도 없는 상태. 나같은 식충이가 먹는 것도 귀찮아지는 상태. 살아서 숨쉬는 것도 귀찮아질 것 같은 상태.  이럴 때 다른 사람들은 무슨 생각할까. 한번쯤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아, 벌써 졸립다. 잠이 온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Laika 2005-05-02 0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늦게 읽었네요..지금쯤은 기분이 나아지셨길.....조금만 참으시면 되잖아요..^^

무탄트 2005-05-02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이걸 뭐라고 할까요? 월말 증후군 같은 게 있어요. 돈줄 타듯 똥줄이 타는...후후후
물론 지금도 여전히 일을 하기 싫지만, 그래도 많이 나아졌습니다. 님 덕분에 월요일 아침 힘을 내 봅니다. 라이카님, 고마워요. ^^
 

엄마의 우울한 목소리가 나를 슬프게 한다.

몸에서 힘이란 힘은 모조리 빠진 듯한 목소리. 당신의 삶에서 낙이란 오로지 자식 뿐이라는 듯, 막내딸의 후두염 걸린 목을 내내 걱정하신다. 네 건강은 네가 알아서 챙기거라. 네가 언니이니 동생 잘 챙기고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렴.

도대체 무슨 일이실까. 아버지께서 또 엄마 마음 상하는 소릴 하신걸까. 가시방석이다.

요즘 부쩍 엄마가 우울해하시고, 가끔 몹시 외로운 얼굴을 하고 계실 땐 정말이지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솔직히 아버지의 기분은 우리에게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엄마의 기분은 우리에게 치명적일 만큼 영향을 미친다. 엄마가 행복하면 나도 행복하고 엄마가 힘들어하시면 나도 힘들다. 아버지 고집을 이길 수도, 어찌할 수도 없으니 힘들다.

엄마, 건강하세요. 행복하세요. 제가 바라는 건 오직 그것뿐이예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랑프리에르의 사전/로렌스 노포크 저/두산동아/1996년10월

라 로셸[La Rochelle]

프랑스의 대표적인 항구도시. 루이 13세때 재상 리슐리외는 1628년 라로셸을 근거지로 한 신교도의 마지막반란을 평정하였다. 라 로셸이 절대왕정시기에 신교도들의 본거지였단 말이렷다.

이 소설은 1628년 이 때의 사건을 주 모티브로 루이 16세 프랑스 혁명 직전까지의 분위기를 잘 묘사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프랑스 역사를 잘 모르니 그때 분위기를 자세히 알 순 없지만, 숨막힐 듯한 혁명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직전의 어수선하고 혼란스럽고 뭔가 뜨거운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듯한 분위기가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생생하게 손에 잡힐 듯 묘사되어 있다는 것쯤은 알겠다. 1628년 라로셸의 신교도들의 반란 사건에서 살아남은 사람들과 영국의 동인도회사가 관련이 있다는 설정하에 주인공의 신화학적 상상력을 당시 현실사건과 교묘하게 교차시키며 흥미를 불러일으키는데, 평소에 그리스로마신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어느 정도 숙지하고 있어야 그 신화와 소설 속 현실 사건들을 비교,대응시키는 재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모르면 재미없게 느껴질 수도)

다만 아쉬운 점은 어두운 베일에 싸여있어 시종일관 그 정체를 궁금하게 만들었던 비밀집회(라로셸과 동인도회사의 공통분모) 의 우두머리의 캐릭터가 마지막엔 너무도 싱겁고 단순하게 그려지고, 그의 궁극적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뭔가 좀더 그럴싸하고 멋지구리한 이유와 설명이 필요할 것 같은데 그 부분이 다소 미진하다.  아, 마지막의 실제 소용돌이 속으로 배들이 빨려들어가는 장면만큼은 선명하고 박진감있게 묘사되어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더라.

그리고 이야기가 어리버리한 주인공의 관점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사람들의 생각과 관점에서도 서술되어 같은 상황이라도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다르게 재구성되는 것을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런 게 의식의 흐름 기법이라고 하는 것 같던데 모르겠다) 

암튼 이 책을 읽으면서 츠바이크의 마리 앙투와네트 이후에 다시 한번 부분적으로나마 프랑스 역사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특히 이 책의 주요 배경이 되는 16,17세기 절대왕정시기 구교도와 신교도의 반목과 리슐리외의 라로셸 신교도 반란진압 사건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 프랑스 코스에 라로셸을 넣기로 한 것은 순전히 이 책때문이다.

라 로셸에 대해서 자료를 찾다보니 리슐리외에 대해서 관심을 넓히게 되고, 그러다보니 리슐리외가 중요한 조연으로 나오는 뒤마의 <삼총사>와 얽히게 되더라. 이렇게 하나씩 넓혀가는 재미가 있어 책을 읽는 게 아닐까.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나 관념적 이상주의자

그녀 실질적 현실주의자

나는 현실에 안주하지 못하고 달아나지 못해 안달인 반면

그녀는 현실에 부딪히고 거기에 맞추어 자신을 꾸미고 만들어나간다.

내가 과거에 연연하는 동안

그녀는 과거의 껍질을 벗고 현실의 나비가 되어 미래를 향해 날아가고 있다.

난 구체적이지도 현실적이지도 못한 인물

나는 꿈을 먹고 산다.

지금은 현실이 꿈을 이겼다.

나중은...

꿈이 현실을 이길 날이, 아니 꿈이 현실이 될 날이 올 것인가.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Laika 2005-04-26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상주의자도 못되는 "현실도피자" 같습니다. 스스로의 틀에 갇힌....

무탄트 2005-04-26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교를 하다보니 그렇게 됐는데요, 저도 사실은 '현실도피자'에 가깝다고 볼 수 있을 것 같군요. 요즘 특히 그렇게 생각됩니다. 자꾸만 더 넓은 세상으로 뛰쳐나가고 싶은 욕구를 느끼는, 우물안 개구리 같아서... 한편 넓은 세상에서 밟혀죽지나 않을까 걱정되기도 하구요. ㅋㅋㅋ
 

토요일에 인사동에 갔었다.

L이랑 만나고 다시 J랑 만나서 빛깔이 고운 장미 꽃바구니 하나 들고 어느 갤러리에 갔다.

수미란 이름의, 내겐 그리운 수미란 이름을 가진 그 화가의 그림은

화사한 색감이 붉은 피가 되어 흘렀다.

앞이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 위에서

위태위태하게 외줄을 타고 있는 날개달린 아이.

그 그림이 마치 지금 내 자신을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떤 사람은 그 그림을 보고 울었다고 했다.

커다란 눈동자에서 피 눈물이 흐른다.

내 마음에서 흐르는 피눈물 같아서

내 머리 속이, 내 허파가 갈갈이 해부되는 느낌.

 

그녀를 만났다.

놀이공원에서 풍선과 솜사탕을 들고 대전차를 타고 싶어하는 사람

어느 시골 읍내의 허름한 캬바레,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떠올리게 하는 늙은 가수와 드러머가 있을 법한 그곳에 가고 싶다는 사람, 난 저물어 가는 정선의 어느 도시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녀는 움직이는 포크레인의 포크 속에 앉아보고 싶다고 했다. 그를 떠올렸다.

개심사의 해우소, 낙엽이 쌓여있는 똥통을 들여다 본다.

정선, 어느 산비탈의 허물어져 가는 폐가,

그 속에서 난 무엇을 보았던가. 

쓸쓸함이 감도는 그 곳에서.

저물어가는 태양이 비추는 아름다운 폐허. 마음 속의 폐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