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티사
존 파울즈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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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전히 작가 이름만 보고 고른 책이다. 현재 품절. 헌책방에서 샀다. 대박.
 그러나, 이 책은 나처럼 읽는 즐거움을 누릴 목적으로 독서를 하는 일반 독자보다는 스스로 작가가 되려하는 문학 지망생들이 읽어볼 만할 것 같다. 이리 “것 같다”라고 비겁하게 말하는 이유? 나야말로 완전 아마추어 독자라 자신 있게 얘기하지 못하기 때문.
 주인공은 ‘마일스 그린’이란 이름의 작가, 라고 추정되는 인간. 현재 모종의 사고로 인해 얼굴이 형편없이 망가져 두꺼비처럼 변했고 급기야 수목드라마의 단골 메뉴인 기억상실증까지 겹친 환자. 이이는 자기 이름이 정말로 마일스 그린인지, 마일스 데이비스인지도 모르고, 자기 아내라고 주장하는 클레어라는 이름의 여성의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나도 들어보지 못한 책 <피크윅 페이퍼스>를 찰스 디킨스가 썼고, <한겨울밤의 꿈>이 <한여름밤의 꿈>을 잘못 이야기한 것이란 것도 알고 그 작품에서 보텀과 티타니아가 등장하는 줄도 안다. 현재 런던 최고의 시설을 갖췄다고 하는 센트럴 병원에서도 방음장치가 완벽하게 된, 창 없는 회갈색 독실에서 기억을 회복하기 위하여 Dr. A. Delfie, 델피 박사와 서인도제도 출신의 가무잡잡한 피부를 갖고 있는 코리 간호사의 치료를 받고 있다. 그림 그려지시지?
 여기까지는 아무 문제없다. 숱한 매체를 통해 많이 본 그림이니까. 그러나 곧바로 독자를 당황시키는 장면이 등장한다. 난 이 ‘독자를 당황시키는 장면’을 통근 버스에서 하필 내 옆자리에 스물세 살 먹은 신입사원이 타고 있던 날 읽었는데, 신입사원이 여직원이었으며, 언제부터인가 젊은 여직원 옆에 앉게 되면 내 몸을 최대한으로 슈링크, 축소시켜 될 수 있는 한 직원과 닿는 면적을 줄이려고 노력하는 습성이 있는 바, 혹시라도 그녀가 회사 인사팀에 달려가, 저 인간이 일부러 접촉을 시도했다는 얘기를 할지 모르는 일이며, 만일(즉, 만 가지 경우 가운데 하나의 확률로) 그렇다면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회사 대표 꼰대로서 여간 난처하고 민망한 일이 아닐 것이 번한 이치인데, 거기서 한 술 더 떠, 델피 박사, 코리 간호사, 그린 씨, 세 명이 벌이는 다중 ‘섹스 치료’ 장면이 거의 포르노 수준에 이를 만큼 노골적으로 묘사되는 책갈피를 신입 여직원이 흘낏 넘겨다 읽기라도 하면, 그것 가지고도 얼마든지 성희롱으로 엮을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까지는 하지 않더라도, 자기 아버지보다 더 늙은 직원이 통근버스에서 여직원을 옆에 두고 그딴 걸 읽더라고 소문이라도 내면 그 쪽팔림이 가히 하늘을 찌를 것이 아닌가 말이다. 아, 그런 장면은 방에서 혼자 읽어야 제 맛인데! 드뷔시를 들으면서말야. 한 번 생각해보시라. 몸을 잔뜩 웅크리고 창 쪽에 바짝 붙어 책을 될 수 있는 대로 조금만 열고 짜릿하게 야한 장면을 읽는 중늙은이의 모습을. 지금도 당시 내 모습을 생각하면 아이고, 얼굴이, 귓불까지 다 붉어진다.
 무슨 이유로 이 장면을 묘사했는가 하면, “두뇌의 기억 신경중추는 생식 활동을 제어하는 신경중추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생식 활동을 제어하는 신경중추가 정상적으로 기능을 발휘하고 있는지 확인해 봐야“한단다. (27~28쪽) 마일스는 완전한 나체로 침대 위에 놓여 있는 상태. 두 여자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고, 애정관계도 아닌 완벽한 타인이고, 아까 얘기를 들으니 자기는 클레어란 여자와 부부사이인데 어떻게 관계를 할 수 있는가. 그러나 걱정도 팔자. 의료진은 그냥 그린 씨가 달고 다니는 기쁨의 열쇠(<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조르바의 대사 인용)가 흉기로 변할 수 있는지만 확인하면 된단다. 이런 경우, 대부분의 남성들의 마음은 어떨까. 여성들은 모를 걸? 대부분의 남자들은 이런 경우에(자기가 의도하지 않고 타인들의 필요에 의해) 기쁨의 열쇠가 흉기로 변하는 자체를 대단히 창피스러워할 거 같다. 그린 씨 역시 마찬가지라 코리 간호사와 델피 박사가 얼른 흉기로 변하라고 죽자 사자 주물러대는데도 탁월한 마인드 컨트롤을 발휘, 그냥 축 처진 상태를 유지하는데 성공한다. 물론 당분간은. 이어서 어떻게 되느냐고? 그건 알려드리면 안 되지. 진도를 더 이상 빼면 내 서재가 유해 음란 매체로 찍힐 우려가 있어서 이 정도에서 생략. 제위의 양해 바람.
 그럼 이 세 명의 등장인물이 누구냐고? 말 그대로 등장인물이다. 그린 씨는 작가 존 파울즈가 만든 작가라는 직업의 등장인물이고, 델피 박사는 그리스 출신으로 한 오천 살 정도 먹은 5급 여신 정도의 레벨을 가진 ‘에라토.’ 에라토가 뭐냐 하면, 음반 만드는 프랑스 레이블을 칭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책에선 사랑과 서정시와 음악의 여신. 그리스 시대니까 유피테르가 아니라 제우스, 신의 시대에 있어 가장 난잡한 난봉꾼이기도 했던 제우스가 우라노스와 가이아의 딸 므네모시네와 아홉 날에 걸쳐 사랑을 나눈 끝에 나온 아홉 명의 쌍둥이 뮤즈 가운데 하나. 이 델피 박사로 변장한 뮤즈 에라토와, 에라토가 만든 등장인물이 또 서인도제도 출신의 유색인 간호사 코리. 그러니까 작가 존 파울즈는 마일스 그린을 만들고, 마일스 그린은 델피 박사로 등장했던 뮤즈 에라토를 만들고, 에라토는 델피 간호사를 만드는 셈이다. 이를 일컬어 해설에선 복잡하게 메타 픽션이라고 하는 모양인데, 굳이 따지자면 메타 메타 메타 픽션이지만, 그딴 건 일반 독자는 몰라도 충분하다. 솔직히 메타 픽션이란 게 내가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걸 말하는지도 모른다. 해설은 그냥 아주, 아주 대충 훑어봤을 뿐이라서. 이게 독자의 권리다.
 난 <만티사>를 읽으며 엉뚱하게 <고도를 기다리며>가 생각났다. 고도는 어디 있을까. 오기는 오는 걸까?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분명히 오늘도 목 빠지게 고도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는 어디서 우울한 걸음을 옮기고 있을까. 혹시 <고도를 기다리며>를 쓴 사람이 사무엘 베케트가 아니라 고도 아닐까? 고도가 베케트로 하여금 희곡을 쓰게 하고, 베케트는 또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을 만들었으며, 동시에 세상의 모든 인간들이 그의 책에 등장해 책 <고도를 기다리며>를 읽는 건 아냐? 그래서 내가 지금 한 인격으로 나의 삶을 사는 게 아니라 고도가 쓴 드라마의 한 등장인물? 아주 가끔, 정말 아주 가끔, 책장을 바라볼 때, 책과 영상물 속에 들어 있는 무수한 인격들, 한도 없이 많은 등장인물들은 아직도 주어진 배역에 충실하고만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인물을 만드는 행위는 함부로 하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오랜 생각. 그래 독후감 첫머리에 일반 독자보다 작가 지망생들이 읽으면 더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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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들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68
앙리 드 몽테를랑 지음, 유정애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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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5년 부르주아 출신 아버지와 귀족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한 도련님 출신 작가의 교육과정을 들여다보면, 열 살 때 장송 드 사이 중·고등학교에 들어가 일 년 다니다가 성직자 개인교사에게 집에서 또 한 일 년 지도받고, 열두 살에 생피에르 학교로 옮겨 2년 동안 배운다. 열네 살이 되어 할머니와 남불 투르드 여행에 나서 투우를 보고 이에 흠뻑 빠져 열다섯 살엔 스페인으로 가서 진짜로 투우를 배운다. 열여섯 살에 바칼로레아 1차 시험에 합격하고 생트그루아 드 뇌이 콜레주의 철학반에 입학해 이 년 후배 필리프 지켈과 ‘특별한 우정’을 나누었다는 이유로 퇴학을 당한다.
 책의 주요 무대는 파리 오퇴유 몽모랑시 대로에 있는 에콜 노트르담 콜레주. 이 학교는 정원이 아름다워 노트르담 뒤 파르크, 즉 ‘정원의 노트르담’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프랑스의 학제는 일학년이 가장 나이가 많고, 아래로 오학년까지 갈수록 한 살씩 어려진다고 한다. 책의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인 똑똑한 청년이자 철학 아카데미에서 자기 본인을 제외한 만장일치로 회장에 당선한 열여섯 살 반 먹은 알방 드 브리쿨. 이 소년은 학생 신분일 때는 부르주아와 귀족 자제들 사이에서 평등한 지위, 나아가 일반 시민계급이란 상대적 열등성에 대한 반동으로 같은 학생들과 교사, 원장 신부 등의 사제들로부터 약간의 우대를 받지만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다시 일반 노무자로 계급으로 전락하고 마는 ‘시민 출신’의 2년 후배 세르주 수플리에와의 ‘특별한 우정’에 빠져 콜레주에서 퇴학당한다. 또한 부활절 미사를 투우 방식을 빗대 묘사하는 등 자신의 경험이 상당한 부분 들어 있다고 해야 하겠다. 근데 이게 자기 이야기? 몽테를랑은 심장 비대증으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고자 했으나 거절당하고, 전쟁의 막바지에야 자진해서 참전하는데, 알방은 정치적으로 무관심하기 때문에 참전하지 않는 것으로 표현되는 것도 비슷하지만, 작가는 전문 거짓말 꾼인 소설가이다. 이 작품 <소년들>을 자전적 고백이라고 말 할 이유는 아무것도 없다.
 책에서 나오는 아름다운 야만의 동산인 노트르담 뒤 파르크 콜레주는 열두 살부터 열일곱 정도의 남학생들만 다니는, 반은 기숙생활을 하고, 반은 통학을 하는 가톨릭 계열의 고급 중·고등학교다. 남학생들만 다니는 학교에도 커플이 생긴다. 책에서 등장하는 커플도 주인공 알방-세르주 커플 말고도 몇이 더 있고, 학생들도 이를 요새 말하는 CC 정도로 인정하는 뉘앙스를 풍긴다. 등장인물들이 나하고 한 60년 정도 차이가 난다. 예전의 젊은이들이 요새 젊은이들보다 더 성숙했다고 가정하자. 평균수명이 짧았으니 더 조숙해야 뭔 일을 이루어도 이루었지 않겠느냐는 의미에서. 아무리 그래도 1910년대에 남학생들만 다니는 학교에서 커플이 하나도 아니고 동시에 여럿이 생길 수 있었을까? 나도 중, 고등학교를 남학생들만 다녔고, 대학도 간호학과와 가정교육과를 포함해 여학생이 전체 학생 수의 5%에 불과한 학교를 다녔지만(옛날 얘기고, 지금은 성비가 50% 정도란다), 남학생 커플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있을 수 있었겠지. 커밍아웃이 거의 불가능한 시절이라서 드러나지 않아서 그랬을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아무리 몇몇이 숨긴다고 해도 결코 가려지지 않는 것이 있으니 그걸 우리는 ‘소문’이라고 하지 않는가. 난 한 번도 소문조차 들어본 적이 없다. 원래 이 소문이라는 것이 사람 죽이는 거다. 희대의 천재를 자랑했던 로시니가 그의 대표작 <세비야의 이발사>에서 소문에 관한 기가 막힌 베이스 아리아 하나를 만들었다. 한 번 듣고 가자.

 

오케스트라가 반주를 해야 제맛인데, 자막이 있는 관계로 골랐음


그래 책에서 묘사하는 거의 반(半) 동성애적의 ‘특별한 우정’이 그것도 복잡하게 발생하는 장면에서 그만 책의 재미가 뚝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동성애 또는 ‘특별한 우정’ 혹은 ‘특별한 사제관계’라고해서 삼각, 사각 관계가 없을 수는 없겠지만.
 내 경우에 이런 주요한 스토리 라인보다 더 흥미를 끄는 것이 있었다.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가톨릭 신부 드 프라츠. 아, 그러고 보니 책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남자의 이름 앞에는 귀족 출신임을 알리는 관사 ‘드’, ‘뒤’ 같은 것이 붙어 있다. 관사가 달리지 않는 성을 가진 일반 시민 계급들은 어째 하나같이 좀 찌질하고, 날마다 지적당하고, 공부도 못하며, 벌점을 하도 먹어 품행점수가 0(zero)에 가깝다. 좀 적당히 하지 말이야. 하여간 드 프라츠 신부가 말하기를 가톨릭 신부 가운데서도 종교를 부정하는 사제가 적어도 한 30%쯤 된단다. 이건 작가의 의견일 것이다. 이 구절을 읽자마자 서울 신x동에서 주임신부 하고 있는 내 친구 최xx에게 “넌 정말 하느님이 있어서 우리를 창조했다고 믿는 거냐, 아니면 인간들이 자기들 필요에 의해서 하느님을 만들어냈다고 믿는 거냐.” 라고 물어보려다가 그가 70%에 드는 정상적 사제이건, 30%에 포함되는 사제이건 간에 어떤 경우라도 좋은 대답은 못 듣겠다는 현명한 판단을 내려 전화해보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이건 매우 특별한 일이다. 20세기 초 벨에포크 시대의 전성기에 젊음을 보낸 작가가 이런 선언을 했다는 것이.
 이 책은 가톨릭 재단이 만든 중등교육과정인 콜레주를 무대로 하는 소년들의 성장소설이며, 자연스럽게 가톨릭 적 종교소설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어딘가 고집스럽고, 폐쇄적이며, 유아독존적이기도 한 드 프라츠 신부의 비종교적 신념은, 세월이 흐르면서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2차 세계대전이 터지는 시점까지 분명히 변화를 겪는데, 물론 어떤 변화인지 밝힌다면 틀림없는 스포일러로 작용할 것이라 여기다 쓸 수는 없지만, 그게 어느 작품보다 설득력 있게 다가와 읽기에 좋았다.
 전반적으로 읽는 재미는 있었지만 위에서 이야기한 것 때문에 주요 스토리에 대해서는 김이 샌 상태라 아쉬웠다.


 그래도 잊을 수 없는 명언 하나는 찾았다. 내가 고르는 명언이 다 그렇지 뭐. 큰 기대 하지 마시고 한 번 음미해보시라. 앞으로 자주 써먹을 예정.


 “원하지 않는 건 제공되고, 죽도록 원하는 건 잔인하게 거절된다. - 인간사 불변의 법칙” (4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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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의 고독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4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조구호 옮김 / 민음사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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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들어 시도하기 시작한 재독再讀 프로젝트의 두 번째 작품. 첫 번째는 설 전에 독후감 쓴 <그리스인 조르바>였다. 앞으로 생각을 해두고 있는 것으로,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개선문>, 시어도어 드라이저의 <시스터 캐리>, 나지브 마흐푸즈의 <우리 동네 아이들>, 이탈로 스베보의 <제노의 의식>, 미하일 불가코프의 <거장과 마르가리타> 등이 있(었)다. 근데 정말로 읽을지, 안 읽을지는 아직 모르겠다. <개선문>과 <시스터 캐리>는 읽어본지 하도 오래되어 당시 기억으로 소위 ‘인생책’ 레벨이었는데 영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시스터 캐리> 같은 경우는 딱 맞춤하게 인터넷 지인께서 서평을 올려주시어 읽어보니 훤하게 그림이 그려져 일단 제외하려고 한다. <우리 동네 아이들>과 <제노의 의식>은 이번에 읽은 <백년의 고독>과 마찬가지로 중역본을 읽어서 이제 직역본이 나와 다시 읽어야 하나 궁리중이며,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걸작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읽은 책이 어딘가 좀 미흡한 거 같아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책을 읽어볼까,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정말로 다시 읽을지는 모르겠다. 하여간 이번에 <....조르바>와 <백년의 고독>은 먼저 읽어버렸다.
 전에 읽은 <백년의 고독>은 90년대 초반 문학사상사에서 안정효 번역으로 낸 것이다. 지금도 책꽂이 어딘가 꽂혀 있을 텐데 이중으로 쌓아놓은 책 더미를 헤쳐야 찾을 수 있기 때문에 확인절차는 생략한다. 이번엔 민음사에서 조구호의 번역으로 된 두 권짜리를 선택했다. <백년의 고독> 검색해보시라. 두 권으로 간행한 건 <민음사> 딱 한 경우다. 나도 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합해서 본문 600쪽 가량, 해설과 작가 연보로 20쪽 좀 넘으니 합하면 630쪽이면 충분한데.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거장과 마르가리타>가 696쪽, <에마>는 728쪽. <에덴의 동쪽 2>도 660쪽. 책장 얼핏 둘러보니까 이 정도라, 암만해도 두 권 편집은 아쉽다.
 그런데.
 누가 만일 <백년의 고독>을 읽어보고 싶다고 한다면, 아직까지는 민음사 두 권짜리를 권한다. 지금 책이 내 앞에 있고, 다른 책, 예컨대 내 책장 저 깊숙이 숨어 있는 문학사상사의 안정효 역 <백년 동안의 고독>을 ‘미리보기’ 기능을 써서 비교해보니, 안 된다, 비교가. 아주 어렸을 때,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그때 담임선생이 잘 내준 숙제가 교과서 몇 페이지부터 몇 페이지까지 공책에 베껴오라는 거였다. 그 지겨운 숙제를 누가 곧이곧대로 하나. 먼저 왼 손바닥을 펴고, 오른 손바닥을 세워 칼날 모습을 만든 다음 손칼로, 빠른 동작으로, 왼 손목 쪽을 한 번 치고 이어서 손가락이 시작하는 부분을 또 한 번 친다. 무슨 뜻이냐 하면, 첫 부분과 마지막 부분 정도만 열심히 베끼고, 중간 부분은 그냥 떼어 먹든지 문단을 솎아 띄엄띄엄 쓰자는 신호였다.
 안정효라면 우리나라에서 문장가로이름이 높은 이다. 이번에 마르케스를 다시 읽으면서 새삼스레 느낀 건 이렇다. ① 마르케스 문학의 가장 특징적인 것은, 당연히 내가 라틴 아메리카 특유의 ‘아몰랑주의’라고 일컫는 환상문학적 상상력이겠지만, 이에 못하지 않는 것으로 마르케스 특유의 문장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안정효에 비하면 한참 후배인 조구호는, 나는 당연히 스페인 언어를 전혀 모르는 인간으로 번역의 질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사용한 또는 번역한 문장으로 미루어 얼마나 원문에 가깝게 실감나는 우리말로 번역을 했느냐를 이야기하는 바, 마르케스만이 낼 수 있는 문장의 감칠맛을 제대로 전달해주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한 것처럼 보인다. 마르케스 특유의 만연체 문장을 편의대로 자르지 않고 우리말로도 같은 한 문장으로 만드는 것, 그게 그리 쉽지는 않다는 걸 나는 콧대만 높고 우리말 실력은 별 볼일 없는 역자 몇 명을 통해 알고 있다. 특히 허먼 멜빌이나 마르셀 프루스트, 윌리엄 포크너 같이 긴 문장을 어렵게 쓰는 작품의 경우, 뜻을 효과적으로 전하면서도 긴 호흡을 그대로 유지해주는 번역이 나올 때, 역자의 노고에 경탄을 할 수밖에 없다. 읽는 사람도 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 ② 안정효는 조구호 번역의 묘사와 많이 다른 의미로 해 놓은 것이 눈에 띈다. 예를 들어보자.


 “그가 발굴해 냈던 것이라고는 녹이 잔뜩 슬어 각 부분이 하나로 이어져 있는 것 같은 15세기 갑옷뿐이었는데, 그 안에서는 돌이 가득 담긴 거대한 호리병에서 나는 것과 같은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와 그의 탐험대의 남자 넷이 그 갑옷을 뜯었는데, 그 안에는 여자의 곱슬 머리카락에 매단 구리 로킷을 목에 건, 석회처럼 변한 해골 하나가 들어 있었다.” 조구호 역, 민음사 <백년의 고독 1> 13쪽.


 “그러나 그가 마술 쇠붙이로 찾은 것이라곤 돌멩이로 가득 찬, 15세기에 쓰던 큰 투구뿐이었다. 녹이 잔뜩 슨 그 투구를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와 그의 조수 네 명이 뜯었더니, 그 속에서는 여자 머리카락이 든 구리 로켓 다 썩어 푸석푸석한 해골만 나왔다.” 안정효 역, 문학사상사 <백 년 동안의 고독> 6쪽


 이와 같은 이유로 문학사상사를 비롯한 많은 출판사에서 간행한 <백년(동안)의 고독>들은 해설을 포함해 500쪽 미만으로 줄여 쓸 수 있었지만, 조구호는 기어이 600쪽을 넘겨버리고 말게 되는 건 아니었을까. 이미 우리나라 문학계에서 문장가로 높은 성가를 지니고 있는 분께 죄송한 말씀이지만, 과거 이이는 외국문학을 원서로, 아니면 번역한 영어로 읽지 못하는 우매한 한국 독자를 우습게 알고 있던 거다. 그냥 뜻과 대강의 스토리만 제대로 얘기해주면 끝났다고 생각했던 건 아닐까. 내가 이렇게 침을 튀는 이유를 짧게 이야기하자면,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혀서 그렇다. 안정효는 한 시절 <시장과 전장>이란 제목으로 실천문학지에 연재를 했던 <하얀 전쟁>부터 <헐리웃 키드의 생애>를 이어 작품이 나오는 족족 찾아 읽었던 추억이 있다. 그토록 오랜 세월 그의 문장을 좋아했는데 말이지. 생각할수록 짜증난다. (하긴 자기가 번역한 건 미국말로 된 책이라고 하면 또 그냥 넘어가겠지.) 유명한 소설가들이 번역한 작품 대부분이 영어 작품이 아닌 비 영어권 문학의 중역이란 것도 매우 생각해볼 만하다.
 민음사가 세계문학전집을 내는 취지, 번역 역시 세대를 달리하면 다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은 진리다. 과거의 올바르지 못한 번역으로 나는 그동안 <백년의 고독>을 얼마나 낮게 평가했나. 실제로 그간 누가 마르케스 이야기를 하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는 했다.
 “마르케스 하면 쉽게 <백년의 고독>을 이야기하지만, 내가 읽어보니 <콜레라 시대의 사랑>이 오히려 더 좋던데.”

 이게 얼마나 큰 착각이었던지.​
 이번에 조구호(나는 이 역자와 아무 관계도 없다. 그 흔한 학연, 지연 같은 것도 없고 심지어 돈 천 원이라도 꿔준 적 없다.) 덕분에 <백년의 고독>이 이렇게 재미있는 작품이었고, 마르케스가 이토록 맛있는 문장을, 멋있게 만들어내는 연금술사인지, 이제야, 너무 늦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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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02-08 16: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무래도 원전을 바로 번역한 것과 2차, 3차 텍스트로 옮겨가면서 의역한 것과는 차이가 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

Falstaff 2019-02-08 16:30   좋아요 1 | URL
아이고 그럼요. 그러니 같은 텍스트를 또 읽는 것 아니겠습니까. ^^

카알벨루치 2019-02-08 16:45   좋아요 1 | URL
제목부터가 <백년동안의 고독>보다 <백년의 고독>이 더 훅하고 다가옵니다 제목도 어떻게 그렇게 지었나 싶어요 ㅎㅎ

Falstaff 2019-02-08 17:20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제목 짓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하던데요.
작품 속 주인공들은 또 얼마나 오래 사는지, ㅋㅋ, 대단들 합니다.
 
바다와 독약 창비세계문학 28
엔도 슈사쿠 지음, 박유미 옮김 / 창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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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깊은 강>에 이어 두 번째 읽은 엔도 슈사쿠. 가톨릭 신자로 평생 종교적 사색에 깊이 잠겼다는 건, 나 같은 유물론자로 하여금 작가와 작품에 거리를 두게 만드는 효과적인 광고방법이다. <깊은 강>에도 물론 종교적 사유가 깊게 밴 작품이긴 하지만 그래도 사람의 쓸쓸한 갖가지 삶의 여정을 차분히 써내려가서 마음에 들었던 기억이다. ‘갖가지 삶의 여정’이라고 하면 그건 개별적으로 불행한 사람들의 모습을 그렸다는 뜻. 행복한 사람들은 서로 비슷비슷하니까. 하여간 <깊은 강>을 읽고 나서, 엔도 슈사쿠의 이름을 기억해놓았다가, 창비 세계문학에서 이이의 다른 작품을 간행한 걸 알자마자 곧바로 보관함에 넣었다가 이제야 읽었다.
 패전 후 재건에 나선 일본. 수요가 많았던 못 도매상에서 일하는 평범한 봉급쟁이 화자 ‘나’는 비싸지 않은 집을 찾아 아직 도로포장을 하지 않아 차가 지날 때마다 풀썩 풀썩 먼지투성이가 되는 도쿄 외곽지대의 작은 주택가로 이사를 했다. 여기서 만나는 사람들. 내과 의사, 양복점 주인, 주유소 사장 기타 등등. ‘나’도 역시 중국 침공 전쟁과 태평양 전쟁에 참전을 했지만 당시가 전쟁의 막바지여서 전투 한 번 하지 않고 퇴역을 한 처지. ‘나’는 화물차가 달릴 때마다 고운 황토 먼지가 간판이며, 창틀이며, 사람들 콧구멍이며, 눈썹에까지 뽀얗게 앉아버리는 변두리 길거리를 구성하고 있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알고 보면 불과 몇 년 전엔 중국여인들을 윤간하고 중국 남자들을 기둥에 묶어놓은 채 돌격 연습을 했거나(주유소 사장), 남경 사변의 주인공인 헌병 출신으로 학살의 중요한 일원이었다(양복점 주인). 그들이 악인이어서? 아니, 아니. 지금 이이들이 도쿄 변두리에서 그냥 보통의 삶을 이어나가고 있듯이 전쟁 전에도 보통의 청년이었을 것이다. 그러다 세월, 특히 전쟁과 학살과 고문과 윤간의 독약에 취해 자신들이 저지르려 하는 짓이 최악의 범죄인줄 알면서도 그냥 저질러버리게 되던 거였다.
 이들 가운데 아리송한 인물. 내과 의사 스구로. ‘나’는 허파 기흉氣胸으로 흉부내과에서 정기적으로 공기(산소)를 주입하는 주사를 맞아야 하는 만성 질환자. 이상하지? 흉막에 공기가 차서 폐에 압박을 주는 기흉 환자에게, 주사를 통해 공기(산소)를 넣어주면 폐가 더 찌그러지지는 않을까? 그래서 검색해봤다. 그래야 한단다. 의학 지식을 설명할 만큼 소양이 없는 관계로 이유는 생략. 하여간 도쿄에 살 때는 건물 옥상에 올라가서 작은 돌멩이를 던지면 내과 의사가 맞았지만, 변두리에선 병원이라고는 스구로 의사가 운영하는 내과병원 하나밖에 없었다. 그래 이이에게 흉막 안을 주사하는 처치를 받아야 하는 신세가 되었고, ‘나’는 이게 결코 즐겁지 않다. 불친절할뿐더러 흰 가운gown에 작고 검붉은 핏자국이 하나 찍혀 있는 것이 영 께름칙하고, 두꺼운 손가락의 손톱 밑에 때가 새까맣게 끼어 있는 것도 모자라, 주사바늘을 삽입하기 위해 늑골 사이를 더듬는 손길이 싸늘하니 매우 불길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었다. 주유소 사장 말에 의하면 솜씨도 괜찮은데다가 돈 없는 시골 농부들한테 무료로 진료도 해주고 약도 지어주며, 심지어 자신한테도 작년에 진료한 비용을 아직까지 청구하지 않은 호인이란다. 물론 좀 이상한 구석이 있기는 하지만. ‘나’는 도쿄에서도 유명한 의사한테 주사 처치도 많이 받아봤지만, 이 스구로라고 하는 ‘이상한 구석이 있는’ 의사만큼 정확하게, 고통 없이, 능숙하게 처치를 하는 흉부내과 의사를 만나본 적이 없다. 여기서 말한 ‘이상한 구석’은 희한하게도 이이가 경상도 사투리를 쓴다는 점도 포함한다.
 마침내 ‘나’의 처제가 일본의 경상도 F시 출신 남자와 결혼을 하게 되어, F시로 가는 기회가 생긴다. 거기서 한 의사를 알게 되고, 그 의사에게, 선생, 혹시 F 의과대학에 다녔으면 스구로라고 하는 자와 동창 아니슈? 자연스럽게 질문을 했으며, 생각한 것보다 의아한 대답을 들어 그것을 확인해보기 위해 지역 신문사까지 일차 왕림, 기어이 스구로의 ‘잊고 싶어 하는’ 과거를 듣게 된다. 1945년 5월. 패전이 거의 확실한 일본 땅을 향해 미국의 B29기는 쉴 새 없이 폭격을 퍼붓고, 이 와중에 몇 대는 격추당하거나 재수 없이 이륙 전에 연료 확인을 하지 않아 일본 땅에 불시착을 한 열두 명의 미군이 포로로 잡힌다. 이중에서 여덟 명이 재판도 없이 사형선고를 받았는데, 규슈 의과대학에서 그냥 죽이느니 인류의 건강과 전쟁 의학의 발달을 위해 생체 해부를 해보자고 제안을 했고, 군부가 이를 바람직한 일로 받아들여 기어이 생체 실험을 하기에 이르는데, 스구로는 당시 말단 훈련의로 전후 2년 형을 받은 것으로 밝혀진다.
 슈사쿠가 이런 역사적 사실에 입각해서 쓴 소설. 여기까지가 책의 1부다.
 2부와 3부에는 이 모든 사실을 밝혀낸 주인공 ‘나’가 증발해버리고, 생체 해부에 참여했던 몇 명이 화자로 등장해 당시 자신들이 처해 있던 개인적 삶의 모습과 생체 해부에 참석할 수밖에 없었던 (별 시답지 않은) 핑계, 같은 것들이 적혀있다. 2부와 3부를 읽으면서, 같은 패전국이고, 비슷하게 침략 중 대량 학살을 저질렀으면서도 완전하게 다른 독일과 일본의 행동양식을 조금은 이해하게 됐다. 천 년을 걸쳐 유구하게 흘러온 일본인들의 혈관에는 아주 독특한 DNA가 흐른다. 여기서 말한 ‘천 년’은 일본 무신정권을 말한다. 무신정권과 사무라이의 지배 아래 목숨을 이어가야 했던 일본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죄의식이 아니라 어떤 수를 쓰더라도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것이었다. 자기보다 강한 계급에게 폐를 끼치는 것은 곧바로 죽음을 의미했으니까. 근데 이건 일반 백성들의 모습이었다가, 점점 개화되어 백성들의 마음속에도 자신 역시 무사 계급과 유사해지려는 마음이 강해지고 (조선시대 말기에는 백성들 거의 다 양반이었듯이) 그리하여 가장 고급한 가치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 것’으로 변질된다. 죄 같은 것을 지었더라도 그것이 밝혀져 수치스러운 처지로 떨어지지만 않으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유전자가 일본인은 천 년에 걸쳐 고착되어 있던 것이라고, 슈사쿠는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수치’라는 단어는 내가 머리를 굴려 발견한 것이 아니라 책 뒤쪽 역자해설에 맞춤한 단어로 내 생각을 설명하고 있어서 거기서 따온 것임을 밝힌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생체 해부를 시행했던 (스구로를 제외한)나머지 인간들 역시, 도쿄 외곽 신흥주택가의 주유소 사장, 양복점 주인, 목욕탕 사장처럼 그냥 평범하게 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이 저질렀던 패륜적 범죄를 누가 알아내 자신들을 수치로 몰아가지 않는 한, 그들은 죄의식 없이 한 평생을 잘 먹고 잘 살 수 있었으리라. 그러니 아베 총리가 미쳤냐, 힘 센 중국은 모르겠고, 비벼볼만한 한국한테 사과를 하게.
 짧은 소설이다. 재미도 있고. 한 번 읽어보셔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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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을
 지난 1월 1일. 서른 살이 된 큰 아이가 집에 들렀다. 어미가 끓여준 떡만둣국을 맛나게 먹더라. 소위 말하는 엄마 손 맛? 웃겨. 내 입엔 이게 떡만둣국이냐? 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새해 벽두부터 쌍코피 터질 필요가 없어 그냥 조용히 넘어갔다. 하여간 잘 먹더니 시원하게 물 한 컵을 들이켠 다음 하는 말이, 아버지, 할 말이 있는데. 앞니를 빼고 인공 이를 심었더니 영 칠칠치 못하게 자꾸 음식을 흘린다. 아무래도 내 이가 아니라서 그런 모양이다. 그래 휴지로 식탁 앞에 떨어진 떡국 찌꺼기를 닦고 있던 내가 무심하게 곧바로 이를 받았다. 물론 완전한 농담이었다. 왜, 임신했니? 그랬더니 돌아오는 말이 ‘응.’ 속으로는 염통이 뚝, 떨어지는 느낌. 그러나 쪽팔리게 그런 거 갖고 티 낼 수 있나. 그래 또 물었다. 몇 주? 이제 겨우 두 주 됐단다. 작년 8월에 청혼을 하고 승낙을 받고, 요새 아이들 영악해서 신부가 한 살 많아 지들 생각에 소위 노산인가 싶어 둘이 손잡고 산부인과 갔더니 의사 하는 말이 여자는 전혀 문제없는데, 남자 쪽 정자의 운동성이 정상 바로 아래쪽이라고, 이제부터라도 결혼할 관계라면 피임을 하지 말라고 권하더란다. 그래 넉 달 만에 아이가 생긴 것. 나는 계속 맛대가리 하나도 없는 떡만둣국을 입에 떠 넣으며 (아무리 유명한 주방장이 조리를 했더라도 그 상황에서 내가 맛을 알겠어?) 소주 한 잔을 꿀꺽 마셨다. 매년 1월 1일 아침 떡국을 먹을 때 아이들이 따라주는 소주 한 잔씩 마시는 건 벌써 이십년이 넘는 내가 만든 일종의 ‘아름다운’ 가풍이자 미풍양속이다. 혼인이 두 집안 사이의 행사에서 그냥 한 쌍의 삶으로 바뀐 지 이미 오래. 그래라. 아이 이름은 내 벌써 지어놓은 거 알지? 아들이건 딸이건 관계없이 그냥 ‘하을’이라 해라. 노을 하, 새 을. 한문으로 쓰면 霞乙. 글씨가 작아 잘 안 보이시지? 크게 쓰면 이렇다.
 霞乙
 무슨 뜻이냐고? 그림으로 말하자면 이렇다.
 

 

 할아비 권한으로 첫 아이 이름은 내가 짓는다. 둘째는 외할아버지가 짓든지, 네가 직접 짓든지 그건 너 좋을 대로 해라. 맏이 이름은 양보 않겠다. 라고 도장 찍었다. 아, 무식한 마누라. 하필이면 이름으로 노을이 뭐냐, 새벽이면 새벽이지. 그리고 갑이 좋지, 왜 을이냐. 요 지랄을 한다. 그런 생각이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이름이 ‘귀복’이게? 귀할 귀, 복 복. 혹은 요샛말로 ‘대박’이? 왜, 아예 ‘예수’라고 하지. 그건 서른세 살까지밖에 못 살까봐 안 된단다. 하여튼 새해 아침에 난 손주가 생겼음을 알았고, 아이에게 ‘하을’이란 이름을 지어주었다. 여태까지 지내온 새해 첫날 가운데 제일 좋은 선물을 받았다. 그래 다른 해엔 소주 한 병이었는데 올해엔 두 병 마시고 아침부터 고꾸라져 잤다.




서재
 내 취미는 책 읽고, 음악 듣고. 책 읽은 느낌을 독후감으로 쓰고, 쓴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알라딘 서재에 업로드 하는 일. 근데 더 즐거운 취미, 내가 아는 최고의 취미여서, 이미 약한 중독 증상까지 보이는 건 바로 알코올 흡수하기. 예를 들어 2019년 1월, 나는 스무 권의 책을 읽었고, 서른 병의 소주를 마셨다. 위스키 한 병, 와인 한 병, 맥주가 글쎄 한 5천 밀리리터쯤, 중국 백주가 한 병. 이런 건 세지도 않는다. 오직 소주 서른 병. 그러니 내 일상생활이란 것이 책을 읽지 않으면 술에 취해 있다. 이쯤에서 서재 친구들의 양해를 구해야 한다. 소위 말하는 서재 운영, 또는 서재 생활을 잘 하고 있지 못해서. 나는 다른 분들의 서재에 자주 방문하지 못한다. 더구나 댓글을 다는 경우도 매우 드물다. 읽다가 주둥이가 근지러워 참지 못할 정도가 돼야 그냥 한 마디 하는 수준이다. 이런 바람직하지 못한 상태로 벌써 몇 년을 버티는지 모르겠다. 서재 친구들을 자주 방문하고, 함께 웃고, 떠들고, 이러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이지만, 그럴 시간이 없다. 1월에 읽은 책 스무 권. 이렇게 세는 건 바람직하지 못하다. 얇은 책도 있고, 두꺼운 책도 있으니. 페이지 수로 한 달에 6,501쪽이다. 다른 해보다 한 800쪽 이상 적게 읽은 편이다. 해가 갈수록 책을 읽는 것도 알코올의 방해를 심하게 받는다. 서재 친구분들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말밖에 안 나온다. 정독하는 것 같은데 독서량도 어마어마하고, 그분들이 쓰는 건 나같이 독후감이 아니라 말 그대로 ‘서평’이다. 하긴 책 읽고 느낌을 적는 수준으로 충분히 만족하고 사는 내가 (훨씬)더 행복한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내 능력으로는 읽고, 독후감 쓰고, 술 마시고, 기분나면 음악 듣고, 이런 몇 가지만 가지고도 다른 여유가 없다. 그러니 친구분들, 내가 자주 방문하지도 않고, 댓글도 없을 수밖에 없는 걸, 조금만 더 용서해주시기 바란다.




상품권
 내 지갑 속엔 신세계 상품권과 SK 상품권이 합해서 50만원어치가 있다. 다 회사에서 받은 거다. 백만 원어치 상품권 한 장 사려면 얼마나 드는 줄 아시나? 딱 백만 원 든다. 안 깎아준다. 곧바로 현금만큼의 구매력을 가지고 있는 (유사)유가증권이니 깎아줄 이유가 없다. 그래 상품권은 협력회사가 발주회사에 가져다 바치는 뇌물로 작용한다. 현금 준 건 아니니까. 나도 한 때는 많이 받아봤다. 20세기에. 그땐 의례 명절마다 총력을 다해 상품권을 수집해서 팀장한테 가져다 바치면, 팀장이 이를 수거해 다른 부서에 할당을 하고, 우리 부서원들에겐 조금 더 많이 주고, 뭐 그래서 일종의 직장 에티켓 정도로 치부되고는 했다. 물론 이제 시대가 변해 그런 거 전혀 없다. (다른 회사는 모르겠다.) 문제는 (예를 들어) 신세계 상품권으로 뭐든지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 난 상품권으로 책을 좀 더 사고 싶은데 아무리 뒤져봐도 신세계 상품권으로 인터넷 서점에선 단 한 권의 책을 살 수가 없다.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왜 상품권을 주지? 어차피 그것도 전 직원에게 일정 액수에 해당하는 금액의 복리후생비 계정과목으로 주기 때문에 소득세를 물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러려면 차라리 돈을 주지 왜 상품권이냐고. 어제 집에 가서 지갑의 상품권 다섯 장을 뽑아 마누라 브래지어 속에 쑥 집어넣어 줬다. 에이그, 쭈그렁바가지 같으니라고. 상품권 50만 원어치 받고 헤헤 웃는 마누라 뽕 브라 속에 그럴 듯한 건 아무 것도 없더라.



한라봉과 낑깡
 그제 일인데 아이들한테 카톡이 왔다. 큰 아이, 작은 아이 다. 엄마가 한라봉을 한 박스씩 보내줬는데 새콤달콤하고 시원한 게 그리 맛이 있다고. 어미한테는 며느리(후보)한테도 카톡이 왔단다. 맛있다고, 잘 먹겠다고, 아기는 잘 크고 있다고. 어쨌거나. 아참. 이 이야기 나왔으니 상견례 얘기도 해볼까. 한식집에서 상견례를 했다. 사돈이 나보다 한 살 위인데, 내가 생일이 빨라 같은 학년으로 학교를 다녔다. 이리저리 따져보니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 바로 옆에 있는 초등학교를 졸업했단다. 딱 나만큼의 머리숱, 딱 나만큼의 흰 수염, 딱 나만큼의 덩지. 근데 모든 운동을 다 잘한단다. 그이는 덩지가 다 근육이고, 난 이 덩지가 전부 지방이다. 그거 하나 차이가 난다. 그래 둘이서 주거니 받거니, 예단은 무슨 예단, 우리 그런 거 없기로 합시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아이들 예물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가 저희들 결혼반지 줬습니다. 그걸 다시 세팅을 하든지 그냥 쓰든지 지들 알아서 하라고 했습니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양식 결혼 하면서 폐백이란 것도 그거 웃긴 겁니다. 우린 폐백 안 할 겁니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이리저리 설왕설래, 하면서, 소주병을 기울였는데, 참이슬도 그냥 참이슬이 아니고 뚜껑 색깔이 빨간 진한 도수의 소주를 둘이서 여섯 병 깠다. 아, 그 영감. 술 참 장하게 하더라. 하마터면 골로 보내려다가 내가 골로 갈 뻔했다. 역시 운동으로 다져진 몸이라 세긴 세다. 한라봉으로 돌아와, 카톡을 보니 흠, 오늘 집에 가면 나도 한라봉 맛을 볼 수 있겠군. 이랬다. 그거 뭐 먹으나 마나 무슨 특별한 거 있나. 있으면 먹는 거고, 없으면 없는 거지. 그렇지? 근데, 아니더라. 집에 갔더니, 없다. 마누라가 아이들한테 한 박스씩 보내고, 나한텐 딱 두 개, 뭘 주느냐 하면, 낑깡 두 알을 주더라. 그림 한 번 보자.

 

 

왼쪽이 한라봉. 가운데가 귤. 오른쪽이 낑깡. 내가 가운데 ‘귤’ 수준이었으면 그래도 좀 덜 했을 텐데 (여기서, 정말? 이라고 묻지 마시라) 애들한텐 한라봉 먹으라 하고, 한라봉 사 줄 돈 벌어다준 나는 낑깡 두 알 먹으라고? 이게 마누라야, 웬수야. 이러니 내 알코올 섭취량이 늘겠어, 안 늘겠어. 생각들 해보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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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02-01 10: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팔스타프님 설명절 잘 보내시고 손주가 생기신거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하을이 이름 이쁘네요 ㅎㅎ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Falstaff 2019-02-01 10:46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벨루치 님도 즐거운 설 연휴 보내세요. 복도 많이 받으시고, 돈도 많이 버세요. ^^

카알벨루치 2019-02-01 10:55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감사합니다~

잠자냥 2019-02-01 11: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을이 이름 참 예쁘네요. 딸, 아들 다 어울릴 이름이고요- 폴스타프 님 독후감도 재미나지만 이런 소소한 글도 자주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설연휴, 소주와 책과 함께 즐겁게 보내시고요.

Falstaff 2019-02-01 12:37   좋아요 0 | URL
하하하, 고맙습니다.
여기가 책 가게 서재라 이런 잡글 올리기가 부담이 되는 건 사실입지요. 그래도 이번엔 용감하게 한 번 써봤습니다.
연휴 잘 보내세요. 집에 계시지 말고, 일단 떠나셔요!!!! ㅋㅋㅋ

syo 2019-02-01 11: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노을 사진보다 하을이가 훨씬 더 어여쁜 아이로 태어날거예요!! 축하드립니다 ㅎㅎㅎㅎ

Falstaff 2019-02-01 12:37   좋아요 0 | URL
아이고, 고맙습니다.
사이오님도 축하드릴 일이 곧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hnine 2019-02-01 1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팔스타프님 이렇게 글을 재미있게 잘 쓰시는군요. 단숨에 읽었습니다.
하을이란 이름은 어떻게 지으셨는지 궁금해요.
사모님께서는 혹시 그나마 낑깡도 못드시고 다 가족들 주신건 아닐지. 가재는 게 편이라고 여기서 또 사모님 편을 들고 있습니다. 용서해주세요 =3=3=3

Falstaff 2019-02-01 12:39   좋아요 0 | URL
윽. 재미 있으셨습니까. 고맙습니다.
‘하을‘은 그냥 떠오른 겁니다. 어느 날 멍때리고 있는데 갑자기 떠오른 이름.
전에도 그런 이름이 하나 있었습니다. ‘담원‘ 딸 낳으면 담원이라고 지으려 했더니 둘째도 아들이 나와서 조카딸한테 준 이름입니다.
마누라는 타파 통에 낑깡 가득 담아 스카이 캐슬 보면서 그걸 한 통 다 먹던걸요!!! ㅋㅋ

coolcat329 2019-07-24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늦었지만 손주 축하드립니다. 이름도 참 좋구요... 이런 글도 쓰시는지 이제 알았는데 너무 재밌습니다. ㅋ야심한 밤이라 두 번 입을 틀어 막았네요.

Falstaff 2019-07-25 09:12   좋아요 1 | URL
잘 읽으셨다니 기쁩니다. 벌써 시간이 흘러 다음 달 말쯤엔 손녀딸이 나온다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