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티사
존 파울즈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5월
평점 :
품절


 

 

 

 완전히 작가 이름만 보고 고른 책이다. 현재 품절. 헌책방에서 샀다. 대박.
 그러나, 이 책은 나처럼 읽는 즐거움을 누릴 목적으로 독서를 하는 일반 독자보다는 스스로 작가가 되려하는 문학 지망생들이 읽어볼 만할 것 같다. 이리 “것 같다”라고 비겁하게 말하는 이유? 나야말로 완전 아마추어 독자라 자신 있게 얘기하지 못하기 때문.
 주인공은 ‘마일스 그린’이란 이름의 작가, 라고 추정되는 인간. 현재 모종의 사고로 인해 얼굴이 형편없이 망가져 두꺼비처럼 변했고 급기야 수목드라마의 단골 메뉴인 기억상실증까지 겹친 환자. 이이는 자기 이름이 정말로 마일스 그린인지, 마일스 데이비스인지도 모르고, 자기 아내라고 주장하는 클레어라는 이름의 여성의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나도 들어보지 못한 책 <피크윅 페이퍼스>를 찰스 디킨스가 썼고, <한겨울밤의 꿈>이 <한여름밤의 꿈>을 잘못 이야기한 것이란 것도 알고 그 작품에서 보텀과 티타니아가 등장하는 줄도 안다. 현재 런던 최고의 시설을 갖췄다고 하는 센트럴 병원에서도 방음장치가 완벽하게 된, 창 없는 회갈색 독실에서 기억을 회복하기 위하여 Dr. A. Delfie, 델피 박사와 서인도제도 출신의 가무잡잡한 피부를 갖고 있는 코리 간호사의 치료를 받고 있다. 그림 그려지시지?
 여기까지는 아무 문제없다. 숱한 매체를 통해 많이 본 그림이니까. 그러나 곧바로 독자를 당황시키는 장면이 등장한다. 난 이 ‘독자를 당황시키는 장면’을 통근 버스에서 하필 내 옆자리에 스물세 살 먹은 신입사원이 타고 있던 날 읽었는데, 신입사원이 여직원이었으며, 언제부터인가 젊은 여직원 옆에 앉게 되면 내 몸을 최대한으로 슈링크, 축소시켜 될 수 있는 한 직원과 닿는 면적을 줄이려고 노력하는 습성이 있는 바, 혹시라도 그녀가 회사 인사팀에 달려가, 저 인간이 일부러 접촉을 시도했다는 얘기를 할지 모르는 일이며, 만일(즉, 만 가지 경우 가운데 하나의 확률로) 그렇다면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회사 대표 꼰대로서 여간 난처하고 민망한 일이 아닐 것이 번한 이치인데, 거기서 한 술 더 떠, 델피 박사, 코리 간호사, 그린 씨, 세 명이 벌이는 다중 ‘섹스 치료’ 장면이 거의 포르노 수준에 이를 만큼 노골적으로 묘사되는 책갈피를 신입 여직원이 흘낏 넘겨다 읽기라도 하면, 그것 가지고도 얼마든지 성희롱으로 엮을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까지는 하지 않더라도, 자기 아버지보다 더 늙은 직원이 통근버스에서 여직원을 옆에 두고 그딴 걸 읽더라고 소문이라도 내면 그 쪽팔림이 가히 하늘을 찌를 것이 아닌가 말이다. 아, 그런 장면은 방에서 혼자 읽어야 제 맛인데! 드뷔시를 들으면서말야. 한 번 생각해보시라. 몸을 잔뜩 웅크리고 창 쪽에 바짝 붙어 책을 될 수 있는 대로 조금만 열고 짜릿하게 야한 장면을 읽는 중늙은이의 모습을. 지금도 당시 내 모습을 생각하면 아이고, 얼굴이, 귓불까지 다 붉어진다.
 무슨 이유로 이 장면을 묘사했는가 하면, “두뇌의 기억 신경중추는 생식 활동을 제어하는 신경중추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생식 활동을 제어하는 신경중추가 정상적으로 기능을 발휘하고 있는지 확인해 봐야“한단다. (27~28쪽) 마일스는 완전한 나체로 침대 위에 놓여 있는 상태. 두 여자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고, 애정관계도 아닌 완벽한 타인이고, 아까 얘기를 들으니 자기는 클레어란 여자와 부부사이인데 어떻게 관계를 할 수 있는가. 그러나 걱정도 팔자. 의료진은 그냥 그린 씨가 달고 다니는 기쁨의 열쇠(<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조르바의 대사 인용)가 흉기로 변할 수 있는지만 확인하면 된단다. 이런 경우, 대부분의 남성들의 마음은 어떨까. 여성들은 모를 걸? 대부분의 남자들은 이런 경우에(자기가 의도하지 않고 타인들의 필요에 의해) 기쁨의 열쇠가 흉기로 변하는 자체를 대단히 창피스러워할 거 같다. 그린 씨 역시 마찬가지라 코리 간호사와 델피 박사가 얼른 흉기로 변하라고 죽자 사자 주물러대는데도 탁월한 마인드 컨트롤을 발휘, 그냥 축 처진 상태를 유지하는데 성공한다. 물론 당분간은. 이어서 어떻게 되느냐고? 그건 알려드리면 안 되지. 진도를 더 이상 빼면 내 서재가 유해 음란 매체로 찍힐 우려가 있어서 이 정도에서 생략. 제위의 양해 바람.
 그럼 이 세 명의 등장인물이 누구냐고? 말 그대로 등장인물이다. 그린 씨는 작가 존 파울즈가 만든 작가라는 직업의 등장인물이고, 델피 박사는 그리스 출신으로 한 오천 살 정도 먹은 5급 여신 정도의 레벨을 가진 ‘에라토.’ 에라토가 뭐냐 하면, 음반 만드는 프랑스 레이블을 칭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책에선 사랑과 서정시와 음악의 여신. 그리스 시대니까 유피테르가 아니라 제우스, 신의 시대에 있어 가장 난잡한 난봉꾼이기도 했던 제우스가 우라노스와 가이아의 딸 므네모시네와 아홉 날에 걸쳐 사랑을 나눈 끝에 나온 아홉 명의 쌍둥이 뮤즈 가운데 하나. 이 델피 박사로 변장한 뮤즈 에라토와, 에라토가 만든 등장인물이 또 서인도제도 출신의 유색인 간호사 코리. 그러니까 작가 존 파울즈는 마일스 그린을 만들고, 마일스 그린은 델피 박사로 등장했던 뮤즈 에라토를 만들고, 에라토는 델피 간호사를 만드는 셈이다. 이를 일컬어 해설에선 복잡하게 메타 픽션이라고 하는 모양인데, 굳이 따지자면 메타 메타 메타 픽션이지만, 그딴 건 일반 독자는 몰라도 충분하다. 솔직히 메타 픽션이란 게 내가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걸 말하는지도 모른다. 해설은 그냥 아주, 아주 대충 훑어봤을 뿐이라서. 이게 독자의 권리다.
 난 <만티사>를 읽으며 엉뚱하게 <고도를 기다리며>가 생각났다. 고도는 어디 있을까. 오기는 오는 걸까?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분명히 오늘도 목 빠지게 고도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는 어디서 우울한 걸음을 옮기고 있을까. 혹시 <고도를 기다리며>를 쓴 사람이 사무엘 베케트가 아니라 고도 아닐까? 고도가 베케트로 하여금 희곡을 쓰게 하고, 베케트는 또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을 만들었으며, 동시에 세상의 모든 인간들이 그의 책에 등장해 책 <고도를 기다리며>를 읽는 건 아냐? 그래서 내가 지금 한 인격으로 나의 삶을 사는 게 아니라 고도가 쓴 드라마의 한 등장인물? 아주 가끔, 정말 아주 가끔, 책장을 바라볼 때, 책과 영상물 속에 들어 있는 무수한 인격들, 한도 없이 많은 등장인물들은 아직도 주어진 배역에 충실하고만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인물을 만드는 행위는 함부로 하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오랜 생각. 그래 독후감 첫머리에 일반 독자보다 작가 지망생들이 읽으면 더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아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