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들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68
앙리 드 몽테를랑 지음, 유정애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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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5년 부르주아 출신 아버지와 귀족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한 도련님 출신 작가의 교육과정을 들여다보면, 열 살 때 장송 드 사이 중·고등학교에 들어가 일 년 다니다가 성직자 개인교사에게 집에서 또 한 일 년 지도받고, 열두 살에 생피에르 학교로 옮겨 2년 동안 배운다. 열네 살이 되어 할머니와 남불 투르드 여행에 나서 투우를 보고 이에 흠뻑 빠져 열다섯 살엔 스페인으로 가서 진짜로 투우를 배운다. 열여섯 살에 바칼로레아 1차 시험에 합격하고 생트그루아 드 뇌이 콜레주의 철학반에 입학해 이 년 후배 필리프 지켈과 ‘특별한 우정’을 나누었다는 이유로 퇴학을 당한다.
 책의 주요 무대는 파리 오퇴유 몽모랑시 대로에 있는 에콜 노트르담 콜레주. 이 학교는 정원이 아름다워 노트르담 뒤 파르크, 즉 ‘정원의 노트르담’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프랑스의 학제는 일학년이 가장 나이가 많고, 아래로 오학년까지 갈수록 한 살씩 어려진다고 한다. 책의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인 똑똑한 청년이자 철학 아카데미에서 자기 본인을 제외한 만장일치로 회장에 당선한 열여섯 살 반 먹은 알방 드 브리쿨. 이 소년은 학생 신분일 때는 부르주아와 귀족 자제들 사이에서 평등한 지위, 나아가 일반 시민계급이란 상대적 열등성에 대한 반동으로 같은 학생들과 교사, 원장 신부 등의 사제들로부터 약간의 우대를 받지만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다시 일반 노무자로 계급으로 전락하고 마는 ‘시민 출신’의 2년 후배 세르주 수플리에와의 ‘특별한 우정’에 빠져 콜레주에서 퇴학당한다. 또한 부활절 미사를 투우 방식을 빗대 묘사하는 등 자신의 경험이 상당한 부분 들어 있다고 해야 하겠다. 근데 이게 자기 이야기? 몽테를랑은 심장 비대증으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고자 했으나 거절당하고, 전쟁의 막바지에야 자진해서 참전하는데, 알방은 정치적으로 무관심하기 때문에 참전하지 않는 것으로 표현되는 것도 비슷하지만, 작가는 전문 거짓말 꾼인 소설가이다. 이 작품 <소년들>을 자전적 고백이라고 말 할 이유는 아무것도 없다.
 책에서 나오는 아름다운 야만의 동산인 노트르담 뒤 파르크 콜레주는 열두 살부터 열일곱 정도의 남학생들만 다니는, 반은 기숙생활을 하고, 반은 통학을 하는 가톨릭 계열의 고급 중·고등학교다. 남학생들만 다니는 학교에도 커플이 생긴다. 책에서 등장하는 커플도 주인공 알방-세르주 커플 말고도 몇이 더 있고, 학생들도 이를 요새 말하는 CC 정도로 인정하는 뉘앙스를 풍긴다. 등장인물들이 나하고 한 60년 정도 차이가 난다. 예전의 젊은이들이 요새 젊은이들보다 더 성숙했다고 가정하자. 평균수명이 짧았으니 더 조숙해야 뭔 일을 이루어도 이루었지 않겠느냐는 의미에서. 아무리 그래도 1910년대에 남학생들만 다니는 학교에서 커플이 하나도 아니고 동시에 여럿이 생길 수 있었을까? 나도 중, 고등학교를 남학생들만 다녔고, 대학도 간호학과와 가정교육과를 포함해 여학생이 전체 학생 수의 5%에 불과한 학교를 다녔지만(옛날 얘기고, 지금은 성비가 50% 정도란다), 남학생 커플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있을 수 있었겠지. 커밍아웃이 거의 불가능한 시절이라서 드러나지 않아서 그랬을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아무리 몇몇이 숨긴다고 해도 결코 가려지지 않는 것이 있으니 그걸 우리는 ‘소문’이라고 하지 않는가. 난 한 번도 소문조차 들어본 적이 없다. 원래 이 소문이라는 것이 사람 죽이는 거다. 희대의 천재를 자랑했던 로시니가 그의 대표작 <세비야의 이발사>에서 소문에 관한 기가 막힌 베이스 아리아 하나를 만들었다. 한 번 듣고 가자.

 

오케스트라가 반주를 해야 제맛인데, 자막이 있는 관계로 골랐음


그래 책에서 묘사하는 거의 반(半) 동성애적의 ‘특별한 우정’이 그것도 복잡하게 발생하는 장면에서 그만 책의 재미가 뚝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동성애 또는 ‘특별한 우정’ 혹은 ‘특별한 사제관계’라고해서 삼각, 사각 관계가 없을 수는 없겠지만.
 내 경우에 이런 주요한 스토리 라인보다 더 흥미를 끄는 것이 있었다.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가톨릭 신부 드 프라츠. 아, 그러고 보니 책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남자의 이름 앞에는 귀족 출신임을 알리는 관사 ‘드’, ‘뒤’ 같은 것이 붙어 있다. 관사가 달리지 않는 성을 가진 일반 시민 계급들은 어째 하나같이 좀 찌질하고, 날마다 지적당하고, 공부도 못하며, 벌점을 하도 먹어 품행점수가 0(zero)에 가깝다. 좀 적당히 하지 말이야. 하여간 드 프라츠 신부가 말하기를 가톨릭 신부 가운데서도 종교를 부정하는 사제가 적어도 한 30%쯤 된단다. 이건 작가의 의견일 것이다. 이 구절을 읽자마자 서울 신x동에서 주임신부 하고 있는 내 친구 최xx에게 “넌 정말 하느님이 있어서 우리를 창조했다고 믿는 거냐, 아니면 인간들이 자기들 필요에 의해서 하느님을 만들어냈다고 믿는 거냐.” 라고 물어보려다가 그가 70%에 드는 정상적 사제이건, 30%에 포함되는 사제이건 간에 어떤 경우라도 좋은 대답은 못 듣겠다는 현명한 판단을 내려 전화해보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이건 매우 특별한 일이다. 20세기 초 벨에포크 시대의 전성기에 젊음을 보낸 작가가 이런 선언을 했다는 것이.
 이 책은 가톨릭 재단이 만든 중등교육과정인 콜레주를 무대로 하는 소년들의 성장소설이며, 자연스럽게 가톨릭 적 종교소설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어딘가 고집스럽고, 폐쇄적이며, 유아독존적이기도 한 드 프라츠 신부의 비종교적 신념은, 세월이 흐르면서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2차 세계대전이 터지는 시점까지 분명히 변화를 겪는데, 물론 어떤 변화인지 밝힌다면 틀림없는 스포일러로 작용할 것이라 여기다 쓸 수는 없지만, 그게 어느 작품보다 설득력 있게 다가와 읽기에 좋았다.
 전반적으로 읽는 재미는 있었지만 위에서 이야기한 것 때문에 주요 스토리에 대해서는 김이 샌 상태라 아쉬웠다.


 그래도 잊을 수 없는 명언 하나는 찾았다. 내가 고르는 명언이 다 그렇지 뭐. 큰 기대 하지 마시고 한 번 음미해보시라. 앞으로 자주 써먹을 예정.


 “원하지 않는 건 제공되고, 죽도록 원하는 건 잔인하게 거절된다. - 인간사 불변의 법칙” (4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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