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불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체사레 파베세 지음, 김운찬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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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탈리아 쿠네오 지방의 산토스테파노벨보(Santo Stefano Belbo)에서 1908년에 태어난 소설가, 시인, 역자, 문학평론가. 고향에서 초등학교를 마치고 이후 교육은 서부 알프스 남부를 면한 토리노의 마시모 다젤리오 고등학교에서 받았는데, 특히 영문학에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된다. 월터 휘트먼의 시에 관한 논문을 써서 토리노 대학을 졸업한다.

  1908년생이 20대를 맞으면 1930년대. 이탈리아는 일 두체, 무솔리니가 집권하여 반도 전체에 검은 티셔츠를 입은 파시스트들이 창궐한다. 파베세 주변에는 파시즘에 반대하는 동료들이 많았다. 비정치적인 성향의 파베세도 반파시즘 서클에 가입했을 지경인데, 1935년에 정치범의 편지를 가지고 있다는 죄목으로 체포당해 잠깐 형무소 구경을 하고 남쪽으로 유배 비슷한 confine(유배, 추방) 당하기도 했다. 이후 파시스트 군대에 소집되었으나 천생 약골인 파베세는 마침 천식이 도져 군병원에서 반년 동안 천식만 다스리고 돌아온 꼴이 되었으니, 이걸 뭐라 그래? 맞다. 새옹지마塞翁之馬. 다시 토리노에 돌아오니 그곳엔 벌써 독일군이 점령하고 있었고, 친구들 대부분은 항 독일 파르티잔을 꾸려 산으로 들어갔다. 파베세는 마음은 굴뚝이지만 차마 파르티잔까지는 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토리노에 남아 있으면서 독일군에 협조하지 않을 수 없을 터이니 북부 이탈리아 시골의 한 언덕에 몸을 숨긴다.

  전쟁이 끝난 후에 파베세는 이탈리아 공산당에 입당해 당의 신문인 <루니타>에서 일했다. 종전이 1945년이고 파베세의 몰년이 1950년이니 이 기간은 그리 길지 못했다. 신문사에 근무하던 때가 그가 가장 활발하게 글을 쓰고, 책을 발간한 시기였단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자신의 고향인 피에몬테의 랑게 지방을 자주 방문했다고 한다. 당연히 출생지인 산토스테파노벨보 지역을 중심으로 주변을 돌아보았을 것이다. <달과 불>을 감안하면 그렇다는 말이다. 가족이 다 고향을 떠 대도시에 살았으면서도 해마다 파베세와 파베세의 아버지가 태어난 산토스테파노벨보에서 여름을 지내는 걸 행사처럼 했던 모양이니.

  이후 파베세는 여배우 콘스탄스 다울링과 짧지만 격렬한 연애를 시도했다가 장렬하게 걷어 채이고, 그래서 우울증이 조금 도졌나 싶은데, 정치적 환멸까지 덮치는 바람에 엣다 모르겠다 싶어 안정제, 바르브투르산염을 한 주먹 꿀떡 삼키고 그 길로 천국의 안녕을 찾아갔으니 그의 나이 마흔둘, 한반도에선 낙동강 전투가 한참이던 1950년 8월이었다.


  <달과 불>의 무대는 파베세가 태를 묻은 땅 산토스테파노벨보 마을이다. 화자는 이곳에서 태어나 세상을 둘러보고 재산을 불린 상태로 일년에 한 번 정도 고향에 돌아와 여름을 지내는 ‘나’. 얼핏 생각하면 ‘나’가 작가 체사레 파베세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아니다. 이 책은 픽션. 그래도 작가가 외부에서 얻은 경험이 없었더라면 작품을 이렇게 쓸 수 없었을 터이니 당연히 작가의 흔적이 여기저기 드러난다.

  ‘나’는 어디서 태어났는지 모른다.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고, 심지어 어머니 얼굴 한 번 본 적 없다. 당연히 산토스테파노벨보, 즉 살토 마을에 집도 없다. ‘나’는 살토 마을의 알바 성당 계단에 버려졌다. 서양에서는 사생아를 낳기는 했는데 키울 자신이 없으면 대개 성당이나 교회 계단 앞에 바구니에 넣어 버리는 모양이다. 우중충한 소설 <리틀 라이프>에서도 주인공 주드 역시 교회인가 성당 옆 쓰레기더미 위에 발가벗겨진 상태로 발견된 거 기억하시지? 이런 아이들이 크면 다 주인공 한다니까?

  알바 성당의 주임신부는 ‘나’를 바르질리아와 파르디노에게 키우라고 했는데, 이 부부는 벌써 두 딸 안졸리나와 줄리아를 둔 지독하게 가난한 농부였다. 훗날 생각해보니 혹시 ‘나’를 거둔 이유가 내 덕분에 빈민구제원에서 매달 5리라씩 나오는 양육비 지원금을 받기 위해 그랬던 것이 아니었나 싶기는 했다. 당시 맡겨진 사생아를 기르는 유일한 사람/계급은 가난한 (주로)농부 부부로 그나마 현금을 만져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농부 파르디노는 ‘나’가 좀 더 자라면 여기 ‘가미넬라 오두막’을 떠서 더 큰 농가로 이사해 ‘나’와 함께 일하면서 더 잘 살아보고 싶은 마음에 키우려 했던 듯하다. 바르질리아와 파르디노는 결코 ‘나’에게 티가 날 만큼 못되게 굴지 않았고, 두 딸 역시 친형제만큼은 아니겠지만 그 정도면 합리적인 남매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깝게 지낸 듯하다. 그러나 그건 희망사항일 뿐, ‘나’가 열두서너 살에 이르자 바르질리아가 병들어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파르디노는 가미넬라 집을 팔아 두 딸을 데리고 코사노로 이사했다. 나는 가미넬라 오두막에 비해 무척 큰 모라 농장의 하인으로 보내 버리고. 알고보니 파르디노 역시 코사노의 농장 하인으로 들어간 거였다. 나중에 나오는데, 두 딸 모두 결혼했지만, 동생 줄리아는 결혼하자마자 들판에서 일하다 번개를 맞아 즉사했으며, 안졸리나는 아이를 일곱인가 줄줄이 낳고 없는 살림에 엉망으로 살았던 모양이다. 파르디노는 사위들한테 핍박을 받으면서 나중에는 코사노 마을의 성당 부근에서 동냥을 하다가 거리에서 죽었나? 하여간 비슷하게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나’는 모라 농장에 하인으로 들어갔지만 그곳에서 당당한 성인으로 자라 관리인도 함부로 소리치거나 채찍을 들지 못하는 지위를 얻는다. 농장 주인 마테오 씨는 먼저 세상을 뜬 첫 아내와의 사이에 다 큰 두 딸, 이레네와 실비아를 두었고, 두번째 결혼하여 얻은 계모 사이에 작고 예쁜 딸 산티나를 낳았다. 이곳에서 온전하게 사춘기를 보낸 ‘나’는 당연히 농장주의 두 딸 이레네와 실비아에게 상당한 관심을 쏟을 수밖에 없었는데, 내가 보기에 이런 과정을 지극히 무난하게 거쳤다. 좋은 가정에서 태어나 공부를 했더라면 잘 했을 거 같다. 사춘기의 폭격을 잘 다스리기가 쉬운 게 아니거든. 특히 어린 수컷들 말이지. 근데 이레네와 실비아는 지금이 딱 십대 말부터 이십대 초기이니 어찌 혼담과 연애담이 오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모라 농장에 피어난 두 꽃을 따기 위해 탐욕스런 벌과 나비들이 몰려들고, 꽃송이 둘 가운데 적어도 하나는 꽃 모가지가 부러질 수도 있는 거 아닐까? 불행한 생각은 들어맞는 경우가 많다. 좀 더 분방한 실비아는, 동네에서 1번은 아니더라도 꽤 있는 집의 음전한 처녀지만 아비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아이를 뱄고, 자기 딸이 이런 신세가 됐다는 걸 안 마테오 씨가 충격을 받아서 그랬는지 아니면 재수없게 딱 시기가 맞아서 그랬는지, 이 사실을 알자마자 뇌졸중이 발생해 반신불수가 되어 버린다. 실비아는 자기 일이니 자기가 처리한다고 독한 마음을 먹고 당연히 무면허 산파를 찾아가 중절수술을 해버렸는데, 다음 날 돌아와 매트를 피범벅으로 만들더니 그 길로 죽어버렸다.

  이레네는 집안이 이렇게 어지러워지자 어쩔 수 없이 동네에 좀 사는 집 건달 아르투로와 결혼했다. 집 재산의 절반을 뚝 잘라 지참금으로 만들어서. 결혼하자마자 아르투로는 농장으로 들이닥쳐 이레네 소유의 모든 부동산을 팔아버리고 토리노로 이사한다. 워낙 술과 도박에 일가견이 있는 사위 아르투로는 금세, 정말 눈 깜빡 할 새에 이레네의 지참금을 날려 버리고, 이제 이레네를 들들 볶기 시작한다. 아무리 볶아도 이젠 평소 얌전하고 착한 심성에 피아노까지 잘 치는 이레네를 눈에 가시처럼 싫어한 계모한테 5리라짜리 지폐 한 장 얻어내지 못하자, 아르투로는 작품이 끝날 때까지 숨이 넘어가지 않는 이레네를 때리기 시작한다. 이레네, 조금만 참아라. 세월은 빨리 갈 것이고, 술 처먹고 도박하는 네 남편이 너보다 훨씬 먼저 약해질 터이니 그 때가 오면 마음 단단히 먹고 복수할지어다.


  한편, 젊은 시절의 동네 악사이자 ‘나’의 가장 친한 친구 누토. 행사나 축제, 무도회가 있으면 그곳이 벨보강 인근의 지역사회이기만 하면 악단을 꾸려 달려가 밤새도록 몇 날 며칠 동안 클라리넷 불고, 트럼펫 불고, 술 한 잔 마시고, 또 연주하고, 술과 고기 먹고, 다시 연주하고, 춤추고, 포도주 마시고, 연주하고, 술과 고기 먹고, 새벽놀이 지고, 춤꾼들이 전부 뻗어버리는 것을 보고난 다음에, 식당 옆 아무 곳에서나 악단들과 찌그러져 자다가 변변치 않은 수고료를 받으면 단원들끼리 또다시 포도주와 걸진 고기를 먹고 비틀비틀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지상 최대의 낙으로 삼았다.

  그래도 머리가 깨어 일찍 글자 읽는 법과 쓰는 법을 배워, 하여간 활자가 찍힌 종이가 눈에 띄었다면 무조건 읽고 보는 성격이라 아는 게 많았다. 특히 유산자와 무산자, 재산의 생성과 분배, 그리고 계급에 관해서는 아주 빠삭해 훗날 공산주의자가 될 충분한 자질을 쌓았다.

  음악을 연주하면 신나고 좋기는 하지만 집에 가져가는 것이 거의 없는 걸 깨달았다. 나이가 들었다는 뜻이다. 이제 인생을 탕진하는 것이 지겨워졌고 그래서 아버지한테 가업인 목수일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손재주가 여간 좋은 게 아니라 하나를 배우면 열을 안다. 음악이 좋기는 하지만 음악은 자기를 지배하는 나쁜 주인이란다. 인생을 탕진하는 악습만 붙여주는 주인. 누토의 아버지는 그런 아들에게 음악 대신 차라리 여자한테 빠지는 것이 낫겠다고 말하고는 했다.

  누토는 ‘나’에게 달과 불에 관한 미신을 말해준다. 예컨대 보름달이 떴을 때 소나무를 자르면 벌레들이 다 먹어버릴 것이라는. 나무통은 초승달이 떴을 때 씻어야 하고, 접붙이기도 초승달 무렵에 하지 않으면 잘 붙지 않는다는 미신. “만약 달과 불이라는 미신을 이용해 농부들을 강탈하고 무시 속에 머물게 한다면, 바로 그가 무지한 자이며, 그를 광장에서 쏘아 죽여야 한다.”고 즉 미신을 퍼뜨려 가난한 농부나 생산자를 강탈하는 계급, 부르주아 계급을 척결해야 한다는 누토의 공산주의적 생각이다. 이 작품은 공산주의자며 공산당 기관신문을 만드는 직업을 가진 작가가 쓴 작품인 것을 읽는 내내 감안하는 것이 좋다.


  ‘나’는 전쟁 전에 군대에서 제대를 하고, 밀라노에서 일을 하다, 미국으로 건너가 전쟁 기간 중에 제법 돈을 만진 다음, 다시 밀라노로 돌아와 큰 돈을 일구었다. 작가 체사레 파베세가 그랬듯이 작품 속 주인공 ‘나’는 작년부터 8월 중에 그래도 ‘나’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유일한 고장 산토스테파노벨보에 와, 광장에 있는 안젤로 여관에서 두 주일 정도 묵었다. 이 기간 동안 성모승천대축일, 8월 15일도 끼어 있어 옛 생각을 하며 가톨릭 축제와 무도회에 참석하지는 않지만 구경할 수는 있다. 예전 친구 누토가 미친듯 클라리넷을 연주하던. 가톨릭 믿는 사람들은 해마다 광복절이 되면 시가행진, 축구시합, 가면무도회 등 시끌벅적한 축제를 벌인다. 성모승천대축일. 성모가 승천했다니까 죽었다는 얘긴데 성모 마리아가 죽은 게 그리 기뻐서 축제를 연다. 그들이 말하는 죽음은 우리가 아는 죽음이 아니라, 성모니까 성자 즉 그리스도와 성부聖父이자 성부聖夫인 하느님 가까이 곁으로 가는 길이니 축하하지 않을 수 없는 일.

  올해도 ‘나’는 고향에 왔다. 마흔이 넘었고, 떠나기 전보다 더 커진 몸을 가진 건장한 사내. 사람들은 ‘나’가 집을 사러 돌아왔다고 생각하며 ‘아메리카노’라고 부르면서, 자기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부자일 것이라 여겨 자기 딸들을 인사시키는 데 여념이 없다.

  ‘나’는 고향을 둘러보기 원한다. 벽돌 하나, 나무 하나하나, 포도밭과 염소, 개울, 수풀, 밀밭 등등. 다 자신의 흔적이 묻은 곳. 그리고 가미넬리 오두막과 모라 농장의 변한 모습과 그 안에 살던 사람들을 향한 일종의 그리움과 회한과 이젠 흐려져 없어지고 만 언짢음. 특히 당시 자기보다 조금 더 위, 그리고 또래나 약간 작은 나이의 아가씨들은 어떻게 됐을까?

  공산주의자 친구 누토와 함께 ‘나’는 고향 살토 마을 인근을 걸으며 만나고, 보고, 듣는다. 이탈리아 작가들의 심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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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의 모든 것
백수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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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2년 인천생. 가정사는 소개하지 않겠다. 201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현재 한신대 문예창작과 교수. 이 책이 다섯 번째 소설집인 것 같다. 말로만 백수린, 백수린 하는 걸 들었지 여태 한 권도 읽어보지 않은 게 좀 뒤늦은 것 같기도 하고 진작 읽어볼 걸, 후회도 되고 그렇다.

  재미있는 것이, 정말로 재미있다는 얘기는 아니고, 1982년생이면 지금 마흔셋 정도. 그럼에도 나이든 노인이 연이어 등장한다는 점. 읽으면서, 조금 위험한데, 싶은 골목길이 자주 눈에 띄었다. 책에 실은 작품은 마흔 앞뒤로 쓴 것이 터, 노인의 심리상태를 포착해 추리할 수 있을 뿐 그들의 관점을, 그들이 납득할 수 있게 표현할 수 있는가, 하는 점에는 의문을 표할 수밖에 없다. 거꾸로 말하자면 지금부터 20여 년 전, 작품 속 등장인물이 20대 초반이던 시절에, 지금 세대가 아닌 20년 전 세대들의 행동이나 사고방식에 관해서는 적절하게 묘사할 수 있겠지. 자기도 한 때는 스무살이었으니까. 그리하여 나는 책 속의 작품들을 읽으며, 빼어난 감수성과 섬세한 문장에도 불구하고, 전적으로 서재에 앉아 책상 위에서 쓴 글이라 단정했다. 그런데 딱 이 순간, 이런 문장이 눈에 띈다.


  “스무 살 때 다혜는 자신이 언젠가는 늙을 것이라는 사실을 조금도 믿지 못했다. 겨우 스물여덟 살이었을 때는 이제 늙어버린 노인의 마음을 알 것만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노인의 마음을 안다고 믿었다니. 주제넘은 오만. 어리석은 소리. 다혜는 아무것도 몰랐다. 여전히. 지금도.” (<눈이 내리네> p.209)


  그리하여 나는 피시식. 세웠던 날을 접었다. 백수린이 참 사려 깊은 작가구나.

  문장이 정치精緻하다. 매 순간 정치하려다 보니 과장이 심하고 상황도 안 맞는 순간이 잦은 빈도로 눈에 띈다. 어떤 장면인지 탁 집어서 이야기하지 않겠다. 백수린을 좀 더 읽어보고 난 다음에 말하자.

  굳이 사족을 붙여볼까? 개 좋아하는 개엄마, 개아빠들은 공감하며 재미있게 읽을 듯.


  진짜 사족. 40년 전에 청년이었던 나는 오정희를 정말 좋아했다. 백수린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오정희를 읽어도 그때만큼 좋을까? 그래서, 정말로 오정희를 다시 읽어볼까, 잠깐 생각했다가, 관뒀다. 좋았던 건 좋은 순간으로 남겨두겠다는 심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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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5-10-03 06: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백수린 작가가 어릴 때 할머니 밑에서 자라서 그 관계가 각별했다고 해요. 그래서인지 할머니, 엄마, 노인 등이 등장하고 그들의 심리를 묘사한 작품들이 많은 것 같아요.

Falstaff 2025-10-03 08:05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표현은 참 읽기 좋았는데, 본문에 썼다시피 묘사가 과한 기분이 막 들더군요. 근데 사실은 저도 읽고 벌써 날짜가 훌쩍 지난 바람에 잘 기억나지 않네요.

반유행열반인 2025-10-03 06: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백수린 작가를 어느 순간부터 할머니 소설 전문이라 칭하게 되었는데요 이 책은 읽고 낫배드지만 얼른 팔자 해서 지금은 제게 없네요. ㅎㅎㅎ

Falstaff 2025-10-03 08:08   좋아요 1 | URL
할머니 소설 전문, 그거 말 됩니다! 쉽지 않은 작업에 도전한 작가에게 박수!

2025-10-03 09: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곡 2025-10-03 09: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잘 읽었습니다 백수린의 단편 ‘흑설탕 캔디‘ 추천합니다 프랑스에 간 한국 할머니 이야기랍니다 백수린 소설집 ‘여름의 빌라‘와 공동작품집 ‘나의 할머니에게‘에 실려 있습니다

Falstaff 2025-10-03 10:19   좋아요 1 | URL
예. 기억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stella.K 2025-10-03 18: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오정희 작가를 좋아하셨다니 뭔가 특별한 고백 같습니다. 이럴까, 저럴까 하시는 폴님도 좋아 보이고요. ㅎㅎ
명절 잘 보내십시오!^^

Falstaff 2025-10-04 04:14   좋아요 1 | URL
제 또래들은 다들 오정희 좋아했어요. 특별한 거 하나도 없습니다. ㅎㅎㅎ
별 님도 추석 즐겁게 보내셔요!
 
바츠먼의 변호인 묘보설림 17
탕푸루이 지음, 강초아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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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오. 탕푸루이가 타이완에서 엔지니어 아버지, 공무원 엄마 사이의 아들로 태어난 1982년 9월에 나는 대한민국 충청남도 연무읍 육군 제2훈련소에서 박박 기고 있었으니 거 참. 아, 미리 이야기하고 시작하는 편이 좋겠다. e마트에서 파는 넙치회 안주로 쐬주 한 병 까고 얼마 지나지 않았다. 그리하여 오늘은 취중 독후감을 써야겠다. 웬만하면 안 쓰고 그냥 자빠져 자려고 했는데, 자꾸 독후감 쓰는 걸 미루면 나중에 코피 나는 걸 잘 알아서,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쓸 수밖에. 이까짓 것이 뭐라고 책 읽었으면 그만이지 죽어라 독후감을 쓰고 염병을 하는지 나도 참 팔자소관인 거 안다, 알아. 그러니 뭐라 하지 마시라.

  탕푸루이는 국립 중칭中正대학 법학과를 졸업하고 다시 푸젠輔仁대학 재정경제법학대학원에서 석사를 한 후 2010년에 변호사 자격증을 땄다. 그러나 법학과는 관계없이 학부 2학년 때 영상창작에 뜻을 두어 커뮤니케이션 대학원에 지원했지만 장렬하게 물을 먹고, 자신으로서는 제2 지망이랄 수 있는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것이니 적어도 소부르주아 집안의 자제였던 것 같다. 완전히 짐작이다. 보통 집안 아이들은 쉽게 선택하기 힘든 과정이라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본 것뿐이다.

  5년 동안 변호사 일을 하다가 (갑자기 미쳤는지, 갑자기는 아니겠지만) 타이완 정부 장학금으로 캘리포니아 예술대학에 들어가 영화연출로 석사를 받고, 시나리오 작가와 영화감독으로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오늘 독후감을 쓰는 <바츠먼의 변호인>을 발표해 타이완의 문학상을 쓸어 담았다. 그러니 타이완 예술계의 기린아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겠다.


  <바츠먼의 변호인>은 크게 봐서 ①타이완 사회에서의 약자 계급 차별과 ②사형제도 폐지/유지에 관한 이슈를 다루고 있다.

  1911년에 중화민국을 수립한 장개석 정권은 40년대 완전히 폭망해 그때까지 자기들이 수집한 중국의 온갖 문화재를 배에 싣고 타이완으로 후퇴했다. 이때 본토에서 섬으로 밀려난 사람들의 대부분은 한족漢族이었다. 이들은 타이완의 선주민들을 변두리로 쫓아내고 섬에 정착한다. 이 과정에, 타이완을 하나의 독립한 국가로 본다면, 이주해 온 한족과 나라 안 다수를 차지하는 상대적 소수인 선주민 사이에 갑과 을, 우량과 불량 비슷한 계급의 차별이 발생하는데, 한족의 정착 초기에 다수의 선주민을 탄압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더라도, 그건 한족들이 그렇게,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할 뿐이었고, 선주민들의 앙가슴에는 못이 박혀도 보통 깊게 박힌 게 아니었겠지? 그런데 이런 게 날이 가고 해가 가면서 조금씩이라도 해소가 되어야 마땅할 터이지만 아예 사용하는 언어까지 달랐던 이민족을, 한족은 자신들도 본토에서 쫓겨온 주제에, 타이완 경제의 3D 산업을 담당할 천민 취급 비슷하게 했던 모양이다.

  (여기서 다시 한번 주위 환기. 그렇다는 게 아니라 책을 읽어보니까 그러지 않았나 싶은 거다.)


  타이완의 제일 북쪽 꼭대기에 있는 지룽基隆시. 나 대학 졸업하고 초년 봉급쟁이 할 때 수입import구매 담당이었는데 당시 타이완의 무역항 가운데 하나가 지룽시였다. 물론 가오슝이 제일 큰 무역항이었지만 우리나라로 오는 배는 지룽, 키룽Keelung이라 했었고, 이곳이 더 유리해 잘 기억하고 있는 동네다. 아이고, 당시에 이과 출신이 무역한다고 신용장, 적하보험, 선하증권 이딴 거 열라 공부했던 기억이 새롭네. 공부 잘한다고 사수한테 귀염 좀 받았건만 다 옛 이야기다.

  이 지룽시가 1960년대 이전부터 근해어업, 원양어업 할 것 없이 타이완의 어업 중심지로 자리잡았으나, 60년대 들어 세계 3위권의 수산업으로 명성을 떨칠 즈음해서 갑자기 닥친 문제가 선원 인력이 턱없이 부족했던 거였다. 그리하여 타이완 정부는 주로 북부지역인 화둥華東 지역의 선주민 가운데 가장 많은 인구를 차지했던 아미족族 사람들을 데려와 어선의 어부로 투입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장시간 노동에 낮은 임금이었겠지. 안전에 관한 의식이 없던 때이니까 작업중 사고는 선주 측에서 나 몰라라 했을 것이고. 당시 3세계의 크지 않은 기업체 생각하면 아주 딱일 듯하다.

  이 가운데 1971년에 화롄현 위라진鎭에서 아들 하나 들쳐 업은 아내와 함께 지룽에 도착한 젊은 가장이 있었으니 이름이 ‘퉁서우중’이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그때부터 11년이 흐른 1982년 9월 18일. 퉁서우중은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피 묻은 칼을 옆구리에 차고 늦은 밤에, 폐선박의 목재를 써서 지은 21평 건물에 열네 명이 사는 집으로 들어왔다. 그는 얼마 전에 어부 일을 하다 사고로 바다에 빠져 죽은 사촌동생의 뒷일을 논의하다가 열을 받아 술을 과하게 마셨고, 도무지 화를 다스리지 못하여 수박 써는 칼을 품고 선박회사에 갔다가, 때마침 사무실에서 나오는 회계부장의 가슴과 목을 무지막지한 칼로 썩, 베어 버렸다. 선뜩한 기운을 느꼈는지 회계부장의 뒤를 쫓아 나오던 다른 한 사람도 퉁서우중의 눈에 띄자 마자 역시 가슴과 목을 스윽, 그어버렸던 거였다. 목과 가슴을 베었으니 피가 보통 튀었겠느냐는 말이지. 그리하여 저승야차의 모습을 하고 집에 도착해, 방에 들어오지는 않고 벽에 철퍼덕 기대 앉았는데, 이때 아들 퉁바오쥐는 난생 처음 피냄새를 원 없이 맡을 수 있었으며, 아이의 인생에서 범죄란 조금도 낯선 일이 아니게 되었다. 그러나 나중에, 아주 나중에 알게 되지만, 퉁바오쥐는 소외당하고 핍박 받으며 온갖 사고에 노출되었으면서도 전혀 보상도 받지 못하는 아미족의 일원으로써 아버지 퉁서우중을 한 명의 영웅 비슷하게 생각했을 수도 있었는데, 이건 아들 퉁바오쥐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당시 바츠먼 부락에 살던 아미족 사람들 대부분 그렇게 여겼던 모양이다.

  퉁서우중이 날 선 수박 써는 칼을 휘둘렀음에도 칼에 베인 선박회사 회계부장과 다른 한 명은 기적적으로 목숨을 보전해 퉁선생은 살인이 아니고 살인미수 죄를 적용받아 최종 10년 징역형을 받고 출소했다. 당시 판사는 술에 취하여 심신미약 상태였고, 산지부락 출신 선주민이라 생각하는 것 자체가 야만스러운데 거기다가 친족의 사고로 충격을 받아 저지른 사고여서 형량을 줄였다고 판결했다. 즉 산골 출신 선주민, 쉽게 말해 인디언이라서 천성이 무식하고 험해 그 거친 기질을 감안해 좀 봐줬다는 얘기다.

  퉁서우중의 형기 중, 이제 살림을 꾸려야 하는 아내 마제는 애초에 건강하지 않은 체질이었음에도 먹어야 사니까 새우가공공장에 들어가 새우 껍데기 까는 일을 했다. 1982년 혹은 83년임에도 타이완에서는 붉은 고무장갑이 없었는지 직원들이 맨손으로 껍데기를 깠는데, 건강 체질이 아닌, 즉 체내 저항력이 부족한 마제는 조직염과 패혈증에 감염되어 고통스럽게 삶을 접고 만다. 이제 식구 중에 하나 남은 건 아들 퉁바오쥐.


  삶이 자신을 버리는 거 같으면 오히려 독해진다. 퉁바오쥐는 스스로 동정하는 것을 거부하고 아미족 커뮤니티의 보살핌 속에 어떻게 생활을 해가면서도 시간만 나면 동네 성당 창고에 몰래 들어가 공부하는데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게 이 지긋지긋한 바츠먼 부락을 뜰 수 있는 유일한 길인 것을 아는 바에야. 반드시 이곳을 뜨고 말 테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 근데 그게 쉽게 되는 거야? 웃기지? 하지만 퉁바오쥐는 정말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퉁바오쥐가 아무리 열라 공부했다 하지만 타이완 부모 역시 자식 교육에 관한 한 우리나라 부모한테 꿀리고 싶어하는 마음이 1도 없는 족속이라 쉽게 대학에 입학할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최고의 대학은 아니고 서열 10위 정도 하는 학교의 법학과에 “원주민 특별 전형”으로 입학했고, 학교에 다니면서 놀라운 순발력과 법학 지식으로 타이완 법대생 가운데 이름을 떨쳤는데, 이때 알게 된 사람이 천칭쉐. 명성 드높은 고관 집안의 딸이자 훗날 타이완에서의 사형 철폐를 끝까지 주장하는 법무부 장관이 될 인물이었다. 퉁바오쥐는 대학을 졸업하고 타이페이 법원의 법정 변호사로 일하면서 다시 천칭쉐를 만나게 된다.

  두 명의 청춘이 20년이 흘러 40대가 되어 법정변호사-법무부장관으로 만나게 되는 것은 타이완의 산골 부락민 아미족이 아니라, 아미족 대신 원양어선을 타고 어부일을 하기 위하여 인도네시아에서 해외취업을 온 젊은 청년 압둘아들이 자기가 일한 배의 선장이자 퉁바오쥐의 어릴 적 친구 정펑췬의 집에 찾아가 정펑췬과 그의 아내를 칼로 찔러 죽이고, 두 살도 되지 않은 딸까지 욕실에서 물에 빠뜨려 질식시켜 죽인 사건 때문이었다.

  뭔가 말이 되지? 40년 전 아미족 선원 퉁서우중의 살인사건과 현재의 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 압둘아들의 살인사건. 퉁서우중은 살인미수라 10년형을 받았지만 압둘아들은 1심에서 이제 두 살박이 유아를 포함한 세 명을 살인한 죄과로 사형을 선고받고, 2심에서 법정 변호인 퉁바오쥔을 만나게 된다.  여기에 사형만은 집행하지 않고 싶어하는 사형폐지론자 법무부 장관이자, 젊은 시절 퉁바오쥔의 맞수 천칭쉐. 지금은 사형 폐지 또는 감형이라는 같은 목표를 가지게 된. 그럴 듯하지?

  작품을 쓴 탕푸루이를 높게 평가하는 건, 결국은 악당 그 자체인 천칭쉐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게 도대체 어떤 이유인지 말할 수는 없겠지? 결국 다 그렇게 사는 거다, 하고 끝맺는 탕푸루이. 미국에서 영화를 공부하지 않았어도 이렇게 만들 수 있었을까? 아쉬운 건 (할리우드 식으로)꼭 유머 코드를 삽입해야 한다는 강박이 좀 있는 것 같았다는 거. 그렇다고 작가한테 이메일까지 보낼 정성은 없고 말씀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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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돌이 2025-10-02 05: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아는 건 별로 없지만, Falstaff님 독후감을 기다리는 분들이 많을 거라는 건 압니다!! 일단, ‘아오’가 나오면 재밌는 얘기를 해 주실 것 같아서 기대하게 되는데, 부담이 되실 테니 내색은 안 할게요ㅎㅎ

Falstaff 2025-10-02 06:51   좋아요 1 | URL
에이, 설마 제 잡글 기다리시는 분이 계실까요. 곰돌이 님처럼 만날 읽어주시는 몇 안 되는 분들이 그래서 더 고마운 것입지요. ‘아오‘가 그렇습니까? ㅎㅎㅎ 조심해서 써야겠습니다.

얄리얄리 2025-10-02 15: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 며칠 Falstaff님 개인에 대한 정보(?)를 얻게된 재미도 있습니다. 얼마 전에 [경세통언]에서 달착륙 이야기에도 슬쩍 밝히시고, 오늘은 훈련소 이야기도 쓰셔서.. ㅎㅎㅎ

오늘 독후감도 잘 봤습니다. 정독은 못하지만 매일 재미있는 말씀 기다리는 저 같은 사람들 있으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Falstaff 2025-10-02 15:59   좋아요 0 | URL
그 정도야 뭐 개인정보라 할 게 있겠습니까.
걍 책 읽기 좋아하는 술꾼입니다. 젊은 때 희망대로 쪼옥 살고 있습죠. ㅋㅋㅋㅋ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자르면 위픽
전혜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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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혜진은 1980년에 나서 인하대 수학과를 졸업하긴 했지만 수학 말고도 여러 관련 학문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졸업한 후에는 IT 소설 편집, 프로그래밍 등의 일을 했고, 현재 본업은 공무원이라는데 주민센터에서 대민지원을 하는 공무원 말고 IT 관련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저기 뒤져 나온 것이니 해당 정보를 쓴 시기에 그랬다는 거고, 아직도 나라의 녹을 먹고 사는 지는 모르겠다. 위키피디아에는 순서대로 만화가, 작가라고 했고, 중요한 작품으로 <월하의 동사무소>를 들었다. <월하의 공동묘지> 말고 <월하의 동사무소>.

  나는 전혜진이라는 이름이 입에 딱 붙어서, 전에 제법 읽은 작가인 줄 알았지만 이 책을 읽은 다음에 아무리 지난 독후감을 찾아보고, 메모장까지 뒤져봐도 전혜진이라는 이름이 없다. 즉, 이 책이 처음 읽는 전혜진이라는 얘긴데, 왜 이런 일이 생겼을꼬, 구글 검색을 하자마자 단박에 알아냈다. 아하, 내가 아는 전혜진은 작가 전혜진이 아니라 연기자 전혜진이었구나.


  위즈덤하우스의 위픽 시리즈는 여러 번 얘기했듯이 절대 내돈내산 안 하고, 대신 도서관에서 눈에 띄면, 굳이 이 시리즈를 독파하는 게 아니라 그저 눈에 띄면, 단숨에 읽기 수월하다는 이유로 얼른 주워드는 시리즈이다. 당연히 좋은 작품도 있고, 아닌 것도 있어서 소위 복불복이다. 예전엔 ‘복불복’을 ‘복골복’이라 했었는데 아마 강호동, 이승기 나오는 TV 오락프로 <1박2일> 이후 ‘복불복’으로 고정된 거 같다. 그럼 이 책은 복일까, 불복일까? 내 취향엔 불복.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가정. “가장 불행한”이란 말이 적당하지는 않지만, 가장 불행한 가정 가운데 한 가정이라고 하면 비슷한 수준의 집구석에서 유일하게 아직 살아 있는 딸이 주인공이다.

  지극히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복종적인 어머니 사이의 딸 신은정. 41세. 크지 않은 회사의 총무업무를 총괄하는 차장 직급의 회사원. 그러나 어려서부터 폭력적이고 손끝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는 걸 당연하게 여긴 아버지 덕분에 산전수전 다 겪은 인물. 집안 살림은 나 몰라라 하면서도 어머니가 별의 별 일을 다 해 돈을 가져오면 그걸 홀딱 가져다 써버리는 것도 모자라, 손버릇이 지극히 나빠 은정이한테는 아직 너무 어려서 안 그랬는데 자기 아내는 하구 한 날 복날 개 패듯이 두드려 패던 인간. 수없이 말했듯 우리나라 소설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아버지하고 어쩌면 같아도 이렇게 같을 수가 있을꼬? 그런데 그 중에서도 으뜸이다.

  엄마가 돈을 꿍쳐, 아버지가 벌어온 돈을 따로 모아놓은 것이 아니고, 자기가 번 돈의 일부를 조금씩 모아 웬만큼 되었을 때, 집에 두었다가 아버지 눈에 띄었다면 그날로 없어질 것이 뻔하니, 부산 사는 듬직한 오라버니한테 맡겨, 은정이 대학 갈 때 학비로 써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엄마는 드런 세상 떠서 갈 길 갔다. 장사를 치르고 돌아오면서 중학교에도 들어가지 않은 은정이한테 아버지가 하는 말씀이:

  “얘, 배고프다. 얼른 밥 차려라.”

  이랬던 인간이다. 그리고 몇 년 흘러, 은정이가 대구 살았던 거 같은데, 아버지 꼴이 얼마나 보기 싫었는지 죽자사자 공부해서 서울에 있는 대학에 시험을 쳐, 합격증을 보여주니까, 웃기고 있네, 해버렸다. 그리하여 은정이는 그동안 숨기고 있던 자기 대학 학비를 외삼촌이 가지고 있다니까, 아버지는 갑자기 눈알을 굴리면서 광채를 뿔뿔 날리더니 네 에미 그 도둑년이 내 돈 훔쳐서 친정집에 보낸 거라고, 얼른 가서 가져와야겠다고 기가 나 악을 써댔단다. 그래서 거의 처음으로 은정이가 바득바득 서울에 있는 대학을 다녀야겠다고 우기니까, 부엌에 가서 칼을 가져오더니, 설마 자기 진짜 딸한테 겁이나 주려고 그랬겠지, 은정은 이렇게 믿고 있었지만, 아버지 새끼는 부엌칼을 두 번 휘둘렀고, 처음 그었을 때는 아슬아슬하게 눈을 피해 광대 쪽의 살점을 써억, 베어 버렸다. 곧이은 칼부림은 휘둘러 생긴 열상이 아니라 칼에 찔려 생긴 창상/자상이었는데, 은정의 몸 어딘고 하니, 오른쪽인지 왼쪽인지, 책에 나오지만 벌써 잊어서 유감으로, 가슴 한 복판을 나름대로 푹, 찔렀으나 심장과 폐와 기타 중요 장기를 보호하기 위해 자리 잡은 갈비뼈에 탁 걸려 그리 넓지 않게 피부만 쪽 찢어지는 수준이었다.

  한 순간에 눈이 돌아 친딸을 죽여버리려고 그런 거다. 부엌칼로 갈비뼈도 부러뜨리지 못하는 보잘것없는 완력만 소유한 비리비리한 남자, 아빠 새끼한테 도망쳐 마음 좋은 외삼촌한테 의지해 서울의 대학 기숙사에 들어갔건만, 이 아빠 새끼는 기숙사에 가서 난동 비슷하게 부리려다 사감과 경비한테 쫓겨나고, 과 사무실에 가서 난리 치다가 역시 관계자와 경비한테 쫓겨났다. 그래도 이후 다양한 방식으로 은정의 삶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버린다. 학교 졸업하고 취직을 해서도 마찬가지다. 사글세 주인집에 가서 벌써 죽은 은정이 엄마가 오늘낼 하는 바람에 갑작스럽게 수술을 받아야 하니 보증금의 반만 빼달라고 구라를 쳐 받아가는 등, 막강, 최강의 악마를 닮은 아버지였다. 내가 입이 닳도록 말했듯 소설에서는 선하고 아량 넓고 기타 등등 그럴듯한 아버지 보기가 하늘에서 별을 따는 것보다 힘들다니까. 그런 아버지는 소설 말고 시에서나 가끔 꼬라지가 보이긴 한다.

  근데 전혜진의 단편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자르면>에서는 나이든 남자가 하나 더 등장한다. 은정이가 다니는 회사에서 새롭게 낙하산 타고 떨어진 상무새끼. 온갖 꼰대질을 해, 41세를 먹은 현재까지 비혼을 유지하고 있는 은정에게 자기 친구의 돌싱 조카하고 소개팅을 하라고 아우성치는 갑질 마왕.

  전혜진의 특징은, 이 와중에 놀랍게도 악역을 맡은 아줌마도 한 명 등장한다는 거. 은정이 503호 사는데, 502호에는 레즈비언 커플이 산다. 두 집 여자들이 다 지극히 개인 생활을 중시하는 터라 그저 눈으로만 인사 정도 하고 지나던 사이였다가, 회식날 늦게 귀가하는데 502호 현관을 한 아줌마가 발로 차고, 문 열라고 소리치고, 욕설을 퍼붓고, 두드리고, 별 난리를 죽여서 현관문이 다 우그러져 아예 교체를 해야 할 수준으로 만들어 놓았다. 힘도 좋지. 그림을 그리는 것 같는 집주인 지수 말고 동거인 혜나의 엄마가 쳐들어와 지수더러 네가 내 딸을 꼬드겨 신세 망쳐 놓았다고 바락바락 떠드는 장면. 나중에 알고 보니, 자기 딸을 데려가려면 키운 값 4억원을 달라고 했단다.

  그러니까 전혜진의 적enemy은 나이든 모든 남자와 나이든 약간의 여자다. 엄마쪽 사람들은 다 선한 인간이고 아빠쪽 인간들은 악당들만 모여 있어서 다 빵에 가 있는지 아빠 말고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직장에서도 상무로 대표하는 나이든 상사 새끼들은 뭐든 자기 뜻대로만 하려고 하는 등, 어려운 말로 해서 안하무인眼下無人이다. 나이든 남자 새끼들 모두, 나이든 여자 년들 조금은 낡은 사고방식을 버리지 않으려 하고 선한 젊은 사람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착취하기 위해 전력을 다 한다.


  그것 참. 나이 처먹은 나쁜 새끼들하고 나이든 나쁜 년들이 그렇게 많았구나!

  이 독후감을 일년 중 가장 아름다운 달, 10월 들어 첫날 업로드 할 것 같은데, 첫 리뷰부터 우울한 이야기를 올리게 되어 무진장 유감이다. 새끼들이 삼십, 사십대가 되도록 끝없이 삶에 참견하며, 강요하고, 부모의 권리에 악착 같은 늙은 인간들에 대한 한 바탕 욕설. 이게 이 작품의 주제로 읽힌다.

  그럼 다음 번엔, 삼십, 사십대가 되어도 드러운 부모로부터, 죽어 마땅한 개 같은 부모한테 독립하지 못하고 핍박을 당하면서도 좁은 공간에서 스스로 이탈하려 하지 않는 한국형 히키코모리와 그들에 의하여 벌어지는 일탈, 범죄, 부모를 향한 폭력 같은 것을 탐구해보는 것이 어떨까? 일본 젊은 작가들은 이런 현상에 관해 탐구를 꽤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선 어째 보기 드문 거 같아 제안해 보는 거다. 물론 아주아주 소수, 지극히 적은 소수의 젊은이겠지. 그래도 개 같은 아빠 새끼들, 개 같은 엄마 년들 보다 많을까, 적을까? 누가누가 더 많을까? 그거 은근히 궁금하네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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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25-10-01 09: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이 책은 패스하겠습니다.
예소연의 <소란한 속삭임>도 읽어주세요 ㅎㅎ

Falstaff 2025-10-01 19:43   좋아요 0 | URL
예소연... 아직 한 편도 안 읽어본 작가인데요. ㅎㅎㅎ 눈에 띄면 탁 읽어보겠습니다. 자목련 님이 추천하시니 그냥 넘어갈 수 없지요!!

Falstaff 2025-10-03 14:44   좋아요 0 | URL
덕분에 좋은 단편 읽었습니다. ㅎㅎㅎ 앞으로도 추천해주세요!

yamoo 2025-10-01 10: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을 읽고 독후감에 별 3개까지 주셨네요!
폴스타프님의 책에 대한 인내력은 정말 대단하신거 같습니다. 저같으면 중간에 읽다가 제대로 던져버렀을거 같네요..ㅎㅎ

Falstaff 2025-10-01 19:45   좋아요 0 | URL
이거 단편이예요. 인내심까지는요 뭘 ^^;; 벌써 시간이 지나 읽은 당시 감정은 잘 기억나지 않고요, 그때 북플 보니까 별 셋이라 그냥 그거 보고.... ㅎㅎㅎ

꼬마요정 2025-10-01 10: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쩐지 작가가 공무원이라 공무원 일상을 잘 그렸던 거군요. 그나저나 인구 수 측면에서 히키코모리보다는 개 같은 부모가 더 많을 것 같습니다. 안타깝습니다. 요새도 특수청소 관련해서 고독사나 젊은이들이 쓰레기집 만드는 현상 연구하는 분들 있고 관련해서 소설도 있어서 몇 년 지나면 한국형 히키코모리도 연구대상에 들지 않을까 싶네요.

<월하의 동사무소> 오컬트물인데 제법 재미있습니다^^

Falstaff 2025-10-01 19:48   좋아요 1 | URL
다행입니다. 세대가 갈수록 조금씩 더 좋아지고 있다는 것으로 이해하겠습니다. 그래야 뭐라도 발전이 있는 거 아니겠어요. 그냥 궁금해서 해본 말인데 괜히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분들이 있을까봐 조금 캥겼답니다. ㅎㅎ
<월하의 동사무소>가 정말 있군요! ㅋㅋㅋㅋ
 
바움가트너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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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7년 2월에 태어난 폴 오스터는 2024년 4월, 77세 때 폐암 합병증으로 죽는다. 반면 작품의 주인공 시모어 티컴세 바움가트너는 1947년 11월 출생이다. 독자는 S.T. 바움가트너가 폴 오스터의 페르소나라고 단정하면서 읽게 되고, 상당 부분 그렇게 읽는 것이 합당하기도 하지만, 바움가트너와 오스터 사이에 적지 않은 다름이 있다는 걸 염두에 두어야 한다. 바움가트너는 역사의 격변에 따라 폴란드/오스트리아-헝가리/소비에트/우크라이나 지역이었으며 지배국의 발음대로 각각 스타니스와부프, 슈타니슬라우, 스타니슬라비우, 스타니슬라프, 최종적으로는 이바노프란키우스크라고 불리는 고장 출신이다. 반면에 오스터는 유대 폴란드 출신이라기도 하고 유대 오스트리아 출신이라 하기도 한다. 당시 동유럽의 국경이 하도 어지러운 시절이라서. 중동부 유럽에 살던 유대인 출신이니 무수하게 많은 친척들이 나치 절멸 수용소에서 학살당한 것은 맞겠지만 원래 태생부터 픽셔니스트의 별을 타고난 폴 오스터가 죽어가면서 갑자기 환골탈태, 자기 이야기를 썼다고 믿지는 마시라. 이 작품 역시 전적으로 픽션이다. 픽션인 순간 이런 사소한 차이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심지어 작중 바움가트너 교수는 첫사랑이자 첫 아내이자 유일한 아내인 애나가 10년 전에 죽은 이후 비록 숱한 과부와 노처녀들을 섭렵했지만 어쨌든 계속 독신을 유지하면서 애나를 그린 순정의 사나이지만, 폴 오스터는 첫 아내와 결혼해 7년 만에 이혼하고, 이혼하자마자 둘째 아내 시리와 결혼해서 죽을 때까지 시리의 보살핌을 받았다. 바움가트너 선생은 평생 무자식 상팔자의 은혜를 입은 반면, 오스터는 첫 결혼에서 아들 하나, 두번째 결혼에서 딸 하나를 낳은 다복한, 다복했는지 시끄럽기만 했는지는 몰라도, 하여튼 그랬다.


  노 작가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타이틀과, 역시 같은 시기를 살다 인생의 끝자락에 닿은 노 학자 바움가트너를 등장시켜 자신을 둘러싼 가족과 10년 전에 죽은 사랑하는 아내, 얼마 남지 않았지만 두번째 결혼으로 시작할 새로운 생활에 대한 기대 같은 것을 담담하게 그려 놓은 것이, <바움가트너>를 읽으면서 독자를 조금 더 센티멘탈하게 만들어 놓았을 수도 있다.

  폴 오스터는 평생, 결과는 비극으로 끝나지만 선택할 당시엔 언제나 최선의 것을 선택한 생을 이제 다 지난 시점에서, 새삼 뒤로 돌아가 자신이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고, 삶을 접는 단계에 이르러 지난 세월을 파노라마처럼 한 번 펼쳐놓고 싶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른바 글 좋은 작가가 자신의 지난 시절을 풀어놓은 작품들을 보면, <바움가트너> 역시 마찬가지지만, 살면서 명성을 제법 누려 콧대가 높아질 대로 높아진 인물이나, 이미 악마처럼 거만한 권위가 목까지 가득 찬 인간들은, 자신들이 때에 따라 아주 작은 실수는 했을지언정, 언제나 정의롭겠다고, 옳은 방향으로만 행위하려 했다고 주장한다. 저 가슴 깊이 숨겨놓은 말로 드러내면 쪽팔려 죽을 것 같이 수치스러웠고, 지금도 그걸 생각할 때마다 수치스러운 일을 솔직하게 톡 까놓는 노 작가의 마지막 작품을 나는 읽어본 적 없다. 나는 작가가 아니라서 내 가슴 속의 그런 수치는 얇은 나무 상자 속에 든 나와 함께 화장로에 들어가 활활 타 없어질 것이다. 작가라도 마찬가지지, 폴 오스터, 필립 로스처럼 마지막 작품 또는 유작 비슷한 책에서까지 나 자신을 분식할 것 같지는 않다. 차라리 최후의 순간까지 생까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하는 족속이라.


  까딱하면 폴 오스터의 페르소나로 읽을 수 있는 시모어 티컴세 바움가트너 선생이 얼마나 늙었냐고?

  먼저 색다른 이름을 알아보자. 바움가트너. Baumgartner. Baum은 ‘나무’, Gartner는 ‘정원사’. 즉 나무 정원사라는 이름이다. 이렇게 명사 두 개를 합해서 자신의 가족 성을 만드는 사람들은 대부분, 거의, 글쎄 차라리 이렇게 말하는 게 낫겠는데, 많은 가족이 유대인이다. S.T. 바움가트너가 1947년생. 아무리 유대인이라도 ‘시모어’라는 이름은 너무 올드해서 촌스러운 이름이다. 그리하여 바움가트너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시모어 대신 ‘사이’라 불러달라고 해서, 일흔 살이 넘은 나이가 되어도, 새로 전력회사 계량기 검침원으로 입사한 그리스계 청년 에드 파파도풀로스조차 바움가트너 선생에게 ‘사이’라고 부른다. 당연히 선생이 그렇게 부르라 청했지만. 두번째 이름 ‘티컴세’는 미국 정부를 상태로 부족의 운명을 걸고 죽을 때까지 전투를 치룬 아메리카 선주민 추장의 이름이다. 아버지는 사이가 티컴세와 같이 최후의 순간까지 용감한 남자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티컴세를 아들의 이름 가운데에 넣었는데, 바움가트너는 이게 폼이 났던 모양이다. 이렇게 S.T. 바움가트너가 된다.

  양장점 3세대인 유대인 아버지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젊은 유대 처녀를 얻어 아들 시모어와 누이동생 나오미를 만들고 살다가 시모어가 오하이오에서 전액 장학금으로 대학에 다닐 당시 죽었다. 역시 제대로 양장 기술을 배운 어머니가 계속 양장점을 운영해 살았는데, 오스터의 아버지가 오스터가 16세든가 그때 사라진 건 비슷하지만 바움가트너 씨는 폐에 혈전이 뭉쳐 딱 1분 만에 세상 하직한 것과 다르게, 함께 잘 살고 있지는 못했던 아내와 이혼해 엄마-아들-딸의 연대에서 찢어져 나갔다.

  바움가트너의 생애를 통틀어 유일한 아내였으며 평생을 걸쳐 사랑했던 아내 애나는 단단한 몸에 거의 모든 스포츠에 능해서, 작품을 시작할 당시엔 9년 반 전에 휴가 차 간 케이프코드 해변에서 파도를 맞으러 늦은 오후에 바다에 달려 들어갔다가, 하필이면 괴물 같은 파도와 마주치는 바람에 등이 부러져 죽었다. 늦은 시간이고 파도가 높아지는 시간이라서, 바움가트너는 애나에게 그만 하고 숙소로 돌아가자고 했으나, 애나는 그저 바라보며 웃더니 바움가트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벌써 파도를 향해 뜀박질을 시작해버렸고, 그는 그저 읽던 책으로 눈길을 던질 뿐이었다. 수영을 워낙 잘하는 애나였으니까. 여태 불행은 모두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였으니까.

  이 사건이 있고 10년 이상이 훌쩍 지난 다음, 한 사람이 추운 겨울에 1천킬로미터를 운전해서 바움가트너를 보러 오겠다고 하는 일이 벌어진다. 애나 때는 바다에 들어가지 말라고 자기가 만류하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고를 당하기 위하여 애나가 바다로 뛰어 들어갔지만, 십몇 년 후에는 상대가 뉴저지 바움가트너의 집으로 출발하려면 일주일 이상이 남아, 그러지 말고 차라리 기차를 타고 오라고 설득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있으나, 애나의 유작을 검토할 목적으로 오고자 하는 대학원생은 더 이상 바움가트너 선생에게 경제적 부담을 주는 것을 완강하게 사양한다. 대학원생의 안전을 위하여 더 이상 철도여행을 권유한다면, 애나의 유작 검토 계획마저 없던 일이 될 수도 있을까? 아마 그럴 것 같다. 학생을 위하여 이미 차고와 지하실 공사를 마쳤고, 정원까지 직업을 정원사로 바꾼 저 그리스 출신의 옛 검침원 파파도폴로스에게 용역을 주어 깔끔하게 마친 상태. 학생으로서도 부담을 더 주는 것은 진심으로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기차를 타고 오면 교수가 렌터카를 빌려주겠다고 제의했을 정도이니 내가 학생이라도 차마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을 듯.


  이런, 다른 말만 했다. 바움가트너는 늙었다.

  서재에서 키르케로그에 관한 논문을 쓰고 있다가, 인용해야 하는 책을 아래층에 두고 온 기억이 났고, 동시에 오전 10시에 누이에게 전화하겠다고 약속한 것도 떠올랐다. 그래서 불편한 다리로 아래층에 내려오니까 뭔가 타고 있는 콕 쏘는 냄새가 난다. 아차, 아까 아침식사용으로 달걀 두 개를 삶았는데 세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삶고 있는 거다. 물은 당연히 다 졸았고, 계란도 이미 산소결합을 끝내 까맣게 타버렸으며, 언제라도 화재가 날 수 있는 상황이라 바움가트너는 냄비용 장갑이나 행주 말고 그냥 맨손으로 냄비를 들어올리다가, 아 뜨거, 손을 데 버리고, 냄비는 부엌 돌 바닥, 타일 위에 쨍그랑, 아주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찬물을 틀고 수도꼭지 아래 손을 대고 한 3~4분 있으니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부엌에서 뭘 하려고 했더라?

  이때 전화가 온다. 아차, 열시에 나오미한테 전화했어야 하는데. 그 새를 참지 못하고 전화를 했구먼.

  그러나 아니다. 미지의 남자 목소리. 앞에서 말한 전기회사 계량기 검침원. 오늘 아침 9시에 온다고 해놓고 아직 도착을 못해 사과를 하고 곧바로 오겠단다. 그러자마자 초인종. 미국 택배회사 UPS 직원 몰리다. 지난 5년간 1주에 두세번씩 방문해 바움가트너 선생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환하게 밝은 표정의 흑인 30대 여성. 몰리를 잠깐 만날 수 있는 기쁨을 위하여 바움가트너는 1주에 두세번 책을 구입해 포장도 뜯지 않고 지역 도서관에 책을 기증하는 걸, 몰리는 모른다.

  다시 전화가 울린다. 이번엔 나오미겠지. 또 아니다. 9년 반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와서 집안 살림을 깨끗하게 유지시켜 준 라틴계 플로레스 여사의 딸 로지타이다. 플로레스 여사 일이 아니라 목수 아버지 플로레스 씨가 늘 하던 원형 톱을 작동하다가 손가락 두 개를 잘라버린 사고를 당해, 플로레스 여사와 함께 병원에 가느라고 오늘 집에 올 수 없단다. 아휴, 이렇게 안타까울 수가. 바움가트너는 로지타에게 지금 의술로 잘라진 손가락은 얼마든지 다시 붙일 수 있으니 슬퍼하지 말라고 위로하며 전화를 끊는다.

  그리고 또다시 초인종. 계량기 검침원 에드 파파로풀로스. 친절한 거구이며 부상으로 은퇴한 마이너리그 야구선수 출신인 에드와 함께 계량기가 있는 지하실로 내려가다가 바움가트너는 계단에서 사정없이 미끄러져 넘어진다. 냄비에 덴 손이 아파 손잡이를 잡고 내려가기가 불편해서 생긴 사고다. 어깨와 팔꿈치, 그리고 다른 곳보다 무릎이 너무 아프다. 에드가 다친 부위 역시 무릎이라서 동물이건 식물이건 생명을 손으로 다루는데 천부적 자질이 있는 것 같은 에드는 (그래서 바움가트너의 주례로 결혼한 다음에 정원사가 됐겠지만) 교수를 부축해 소파에 누이고, 일단 돌아갔다가 자기 일을 마친 시간에 얼음 한 봉지를 사와 얼음찜질까지 해준다.

  그러니 쉽게 말해서 바움가트너, 인생 다 살았다. A와 B를 해야 한다면, A를 잊고 A를 해야 할 때 B를 하거나, 같은 과정을 거쳐 B를 해야 할 때 A를 하거나, 둘 가운데 하여간 어떤 것을 해야 할 때 둘 다 잊는 일이 잦아졌다. 글을 쓰기 위해 저절로 숱한 단어가 파바박 떠올랐던 건 이미 오래 전 이야기, 지금은 단어 하나를 생각하기 위해 5분, 10분, 30분, 한 시간, 세 시간, 하루 꼬박 궁리나 고민을 해도 떠오를까 말까 한다. 침대에서 일어날 때 뼈마디의 움직임이 마치 그리스grease를 치지 않은 조인트처럼 삐걱거린다. 정말 삐걱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는 말이다.

  이렇게 살다가 이제 자신의 힘으로 움직일 수 없는 단계가 오면 양로원으로 가리라, 마음먹은 시모어 티모세 바움가트너. 그는 평생의 사랑이자 아내 애나를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그리고 애나의 작업을 인정해온 프린스턴대 영화학과 교수 주디스 포이어를 아끼다가, 연모의 정을 품다가, 사랑으로 진전하여 일흔이 넘은 나이에 조심스럽게, 아주 조심스럽게 청혼하려 시도해보기도 한다. 현명하지만 불행한 결혼생활 경험이 있는 두 아들의 어머니 주디스가 다정하게 거절을 해서 실망하기는 해도.

  그렇게 세상의 말년을 지내는 시모어 티모세 바움가트너. 소설을 읽는 일은 어느 만큼은 관음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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